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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빛과 소금의 삶
조회수 | 2,126
작성일 | 09.11.13
‘오늘 지구의 종말이 온다면 나는 지금 당장 무엇을 할까?’

자주 듣게 되는 질문입니다. 그리고 평소 관심을 가지고 살아온 삶에 따라 그 답도 달라 집니다. 어떤 사람은 그동안 절약한다고 아껴둔 돈 다 찾아서 맛있는 것 먹겠다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빨리 고백성사를 받아야 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마음에 벽을 두고 살아온 사람들과 화해를 하겠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전례적으로 연중시기가 끝나 가면서 복음은 우리에게 마지막에 대한 말씀을 들려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을 잘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다만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루 하루의 삶이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가끔씩 사람들은 과거 지향적입니다. 지금은 비록 부족하지만 한때는 열심히 살았다는 사실만 가지고 위안을 삼으려고 합니다. 지금 제대로 살지 못하면서 과거의 기억에, 과거의 추억에 머물면서 현재를 보상 받으려는 모습은 안타까움 그 자체입니다. 때로는 미래의 꿈에 젖어 살기도 합니다. 지금은 내가 먹고 사는 일이 바빠서 소홀하기도 하지만 이런 궁핍함만 해결되면 그 때는 시간과 돈과 정열을 아끼지 않고 나누면서 살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때는 늘 다음에로 남아있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못하는 사람이 미래라고 해서 잘 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과거에 아무리 잘 한것이 많아도 현재가 충실하지 못하다면, 미래가 아무리 희망적이라도 지금 현재가 잘 살아지지 못한다면 과거나 미래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오늘 교회는 평신도 주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교회 구성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람들입니다. 숫자적으로 많아서가 아니라 살아가는 삶이 소중해서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우리 삶의 모습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알게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삶의 충실함이 시대를 비추는 빛이어야 할 것이고 우리 삶의 나눔이 세상의 소금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에 충실하면서 하느님과 함께 영원을 살아가는 새 세상을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김흥수 실바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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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평신도 주일입니다. 잘 아시지만 평신도란 성직자와 수도자가 아닌 모든 신자를 말하는데, 그들은 성직자나 수도자와는 달리 세상 안에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훌륭한 평신도의 삶은 세상을 떠나서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 한가운데서 빛과 소금과 누룩의 역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신도의 가장 큰 특징을 ‘재속성(在俗性)’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평신도에 대해 이렇게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평신도들은 본래 현세적인 일에 종사하며 그것을 하느님의 뜻대로 관리함으로써 천국을 찾도록 불린 것이다. 그들은 세속의 온갖 직무와 일, 가정과 사회의 일상적인 조건들 안에 살면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복음의 정신으로 그 일을 수행하며, 마치 누룩과도 같이 세상의 복음화에이바지 하는 것이다. 특히 믿음과 희망과 사랑에 빛나는 신앙생활의 증거로써 이웃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것이다.”(교회헌장 31항, 36항 참조)

세상 안에서 태어나 세상에 살면서 세상을 성화시키는 것, 이것이 평신도의 역할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안에서 ‘신자답게’ 살아가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세상이 너무나 영악하고 혼탁하고 삭막한 곳이기에 복음 말씀대로 살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여러 가지 손해를 보기도 하고, 바보 취급을 당하기도 하고, 사기를 당하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빛과 소금과 누룩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평신도이고, 사실 그렇게 살아가는 분들이 곳곳에 많이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이런 말을 듣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분만은 믿을 수 있다. 존경하는 그분이 알고 보니 천주교 신자더라. 과연 천주교 신자들은 어디가 달라도 다르더군. 나도 나중에 종교를 갖게 된다면 천주교 신자가 되겠다.” 이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모범적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신자들 덕분에 듣게 되는 말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바로 세상에서 빛과 소금과 누룩의 역할을 다하는 평신도의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사실 우리 사회와 교회가 그나마 유지되어 나가는 것도 바로 ‘의인’과 같은 이런 분들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각자 몸담고 있는 곳에서 ‘신자답게’ 살면서 세상을 성화시키는 것이 평신도의 사명이며, 그 사명을 수행함으로써 구원이 시작되게 하는 곳이 바로 세상인 것입니다.

▥ 대구대교구 김성태 엠마누엘 신부 / 2015년 11월 15일
  |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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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과 불 편해질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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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교포 사목을 하던 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사목위원들과의 자리를 마치고 귀가하는데, 성전 옆 작은 쉼터에서 꽤 큰 사람의형체가 어렴풋이 보였습니다. 타인의 주택이나 건물에 무단으로 들어가는 일이 엄격히 금기시되어 있는 곳이고 더구나 밤 시간에 다른 사람들이 들어온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조금은 긴장된 마음으로 가까이 가보았는데 한눈에도 노숙자라는 것을 알수 있었습니다. 그분이 누워있는 것을 확인하고 일단은 사제관으로 들어왔는데, 소파에 앉는 순간부터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마음이 불편해지는 겁니다. ‘저 분이 앞으로도 계속 오시면 어떻게 하지? 신자들, 특히 아이들이 있을 때 오면 위험할 수도 있을 텐데, 지금이라도 나가서 다른 곳으로 가시라고 해야 하나?’ 이런 생각들을 하는 중에 불현듯 제가 참 못난 고민만 하고 있다는 부끄러움이 느껴졌습니다.

그 순간 저의 불편함은 오로지 그 사람으로 인해서 겪을 저의 불편함 때문이었고, 그 사람의 불편함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불편한 잠자리, 더운 날씨, 벌레들, 허기 등으로 힘들어할 그 사람의 불편함에 대한 배려와 공감은 전혀 없었던 제 자신이 참 부끄러웠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니 또 다른 갈등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도와줄 수 있지?,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나?, 저분들은 돈을 드리면 술을 드시거나 마약을 산다고 하던데…, 사제관으로 불러서 함께 잘 수도 없는 것 아닌가?’ 등등의 결론이 나지 않는 생각과 마음의 불편함이 계속 되었습니다.

결국 제가 한 행동은 시원한 음료수를 하나 가지고 깊이 잠들어있는 그분 옆에 놓아두고 온 것뿐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턱없이 부족한 실천에 불과했지만, 사실 지금까지도 그때제가 무엇을 더 할 수 있었을까에 관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경험을 통해서 배운 것이 있다면, 가난한 이들을 바라볼 때 나의 불편함이 기준이 아닌 그분들의 불편함에 공감해야 한다는 것과, 자신이 조금이라도 불편해질 용기가 없다면 작은 애덕의 실천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교형자매여러분, 우리는 올해로 두 번째인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아픔에 똑같이 공감하시고, 스스로 고통 받고 불편해지시기 위해서 우리와 함께하셨습니다. 주님의 한없는 사랑을 받은 우리가 그분의 사랑을 조금이나마 세상에 되돌려 주기 위해서 세상의 가난한 이들과 함께 아파하고 함께 불편해질 수 있는 용기를 주십사고 청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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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대교구 이정욱 안드레아 신부 : 2018년 11월 18일
  |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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