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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화해와 용서
조회수 | 1,462
작성일 | 11.12.11
찬미예수님
할머니들이 몇 달 동안 안 보이다가 이렇게 나타나셔~
“할머니, 어디 갔다 오셨어요?”

대개는 두 가지인 경우인데
첫 번째는 병이 들어서 병원에 입원한 경우
두 번째는 손주 보러 가는 거예요.
요즘은 맞벌이 부부가 많으니까 시어머니 아니면
친정어머니한테 애 맡기고 직장 다니는 부부가 참 많아요.
그렇게 몇 달 있다가 오는 할머니들은
“아이고, 신부님 보고 싶어 죽을 뻔 했어~ 딴 성당에 가도 미사 하는 것 같지 않고...”
“애를 뭐 하러 보셔~ 그냥 오시지~”
“어떡해요~ 안 봐주면 원망하고, 한 평생 애 키우고...
늙어서도  애한테 붙잡혀 있으니 참 힘이 들어요.”

그래서 노인네들이 아이를 안 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드리겠어요.
3단계인데 반드시 며느리 앞에서 해야 됩니다.

첫 번째 단계는 사투리를 심하게 쓰세요.
우리 충청도 같으면 서산, 당진 말을 진하게 쓰세요.
“밥 먹어유~~”
“했어유~~”

이 사투리를 써서도 안 먹히면 2단계로 넘어가요.
아이에게 김치를 먹일 때 반드시 입으로 ‘쪽~쪽’ 빨아서 우물거리다가
입에 넣어주면 며느리가 기절초풍할 거야.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며느리는 그것 가지고도 까딱 안 해요.

그래도 안 되면 3단계로 넘어가는데 아이 얼굴 닦을 때 반드시
걸레 가지고 한 네 번만 닦아주면
“어머니, 제가 일을 관두는 것, 고려해볼 테니까 고향으로 내려가셔!”

첫 번째, 사투리를 심하게 쓴다.
두 번째, 김치를 입에 넣고 빨아서 먹인다.
세 번째, 얼굴 닦을 때 걸레로 닦아 준다.
이 세 가지 가지고도 안 먹히면 그냥 팔자려니~~ 하고 살아야 돼!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진천성당을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떠났다가 오시면
“아이고, 우리 성당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잠이 들 때까지 우리들의 삶은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잠자리에 들면 아침에 눈떠지기를 기다립니다.
주부들은 오후가 되면 남편과 아이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립니다.
회사에 다니는 사람은 한 달에 한 번씩 월급날을 기다립니다.
자매님들은 목돈 찾을 날, 곗돈 탈 날을 기다립니다.
회사에 다니면 자기 남편이 승진되기를 기다립니다.
군인은 진급되기를 기다립니다.

또 성당에 와서 미사를 드리다 보면 신부님 강론 빨리 끝나기를 기다립니다.
맞습니까?
“아니에요.”
“당연히 그렇게 말씀 하셔야지요~”
사제도 일주일 동안 신자들 만나기를 기다립니다.
이렇게 우리들은 평소에 많은 기다림의 연습을 하지만
실질적으로 영적인 가치에 대한 기다림은 얼마나 절실한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들 마음에 평화가 있기를 기다리십니까?
그런데 내 마음 안에 미워하는 사람이 있던가~
세상에 욕심이 있다가 보면 마음이 평화롭지가 못해요.

내 마음이 불편하다면 아직도 내가 뭔가 포기해야할 것이 있다는 뜻입니다.
포기하는 만큼 행복이 오고, 평화가 옵니다.
평화를 원하면서도 우리는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기쁨을 원하면서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 천국을 원하십니까?
천국을 원하면 천국을 원하는 사람답게 찾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썩어 없어질 세상을 위해서 시간과 돈, 노력, 온갖 정성을 투자하지만
정작 하느님이 계신 천국, 영원한 세상을 위해서 쏟는 정성, 시간, 봉헌은 얼마나 됩니까?
대부분은 찌끄러기가 많습니다.

‘심는 대로 거둔다’ 고 그랬습니다.

세속적인 기다림에 대해서는 많은 연습과 인내를 가지고 살아가지만
영적인 고귀함의 가치에 대한 기다림은 절실하지 못한 것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가!
여러분들 무엇인가를 기다릴 때는 가만히 앉아서 기다려서는 안 되지요?
반드시 준비가 필요합니다.

“집 축성을 해 주십시오.”
이렇게 날짜까지 정해 놓고 막상 사제가 가서보면 아무도 없어.
방청소도 제대로 안 해 놓았어요.
찾아가는 신부도 내색을 안 하지만 기분은 나쁜 거예요.
‘이 자매 도대체 집 축성을 해달라고 해놓고 이렇게 엉터리로 사람을 맞이하나!’
그런 집 가끔 가다가 있어요.

무언가를 기다릴 때는 반드시 거기에 합당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기차를 기다릴 때는 안방에 앉아서 기다려서는 안 되지요?
대합실까지 가서 기다려야 됩니다.
세상 모든 기다림에는 반드시 준비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대림절을 지내고 있습니다.
대림절은 누구를 기다리는 기간입니까?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그리스도의 강생을 기다리는 시기가 바로 대림절입니다.
그분을 내 마음 안에 탄생시키기 위해서~
우리 진천성당 공동체 안에 탄생시키기 위해서~
냉담자의 차가운 가슴 안에 탄생시키기 위해서~
내 가족 안에 탄생시키기 위해서~
우리들이 정성과 힘을 모아야 되는 시기
따라서 준비를 착실히 해야 하는 시기가 바로 대림절입니다.

사제도 신자들을 기다립니다.
성당에 들어올 때는 어두운 얼굴이었지만 사제의 강론을 듣고
성체를 영하고 난 다음에는 성당 문을 나갈 때는
치유를 받아서 나갈 수 있게끔 사제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여러분들도 성당에 올 때는 마음의 준비하셔야 됩니다.
일주일 동안 말과 행동과 내 삶으로써, 지금 내 마음 안에 어두움이
자리잡고 있다면 고해성사를 보고 깨끗한 마음으로 말씀을 영접하셔야 됩니다.
세상 모든 것은 다 준비가 필요합니다.
어떤 기다림이든지 다 준비가 필요합니다.

대림절도 준비가 필요합니다.
성탄절을 기다리는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하면서 주님의 오심을 기다려야 될 것입니까?
지난주에 세례자 요한은 말씀을 통하여 회개하라 그랬습니다.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고 그랬습니다.

기다림의 첫 번째 단추는 바로 회개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지난주에 이어서 회개했으면
회개했다고 하는 것을 자선이라고 하는 행실로 보여라.

기다림의 두 번째 단추는 바로 자선을 베푸는 것입니다.
오늘 세례자 요한은 자선을 베풀라고 그럽니다.

2독서에 필립보서 4장 4절에서 7절까지
회개하는 사람은 회개를 통해서 반드시 기쁨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2독서에 나오는 필립보서 4장 4절부터 7절은
제가 아주 즐겨 읽고 자주 묵상하는 구절입니다.
‘주님과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의 너그러운 마음을 모든 사람이 알 수 있게 하십시오.’
회개하면 기쁨이 오고 기쁨이 오면 마음이 너그러워집니다.
마음속에 응어리가 있을 때는 누가 충고를 해도 고깝게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회개를 통해서 하느님 앞에 모든 것을 다 비우다 보면
기쁨으로 가득 차고 마음이 풍요로워지고 너그러워집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먼저 주님과 함께 기뻐해야 한다.
그러고 난 다음에는 너그러운 마음을 모든 사람에게 보이라고 합니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지켜줄 것입니다.’

주님 오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너그러워지면 내 것을 쉽게 내어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준비의 출발은 회개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자선입니다.
그 중간 단계가 회개를 하고 난 후에 기쁨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야만 자선이라고 하는 열매를 맺습니다.
자선은 구체적인 행위입니다.
이론이 아닙니다.

우리가 신자생활 하면서 불쌍하고 어려운 사람 보면 어느 사람이던지
‘안 됐어!’
그러나 그런 생각을 갖는 것과 구체적으로 자선을 베푸는 것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입니다.

판공이라고 하는 말은 힘쓸 判(판)에 공로 功(공)자입니다.
이 판공 시기는 힘써서 공로를 닦는 시기입니다.

판공성사는 힘을 써서 공로를 닦으면서 자기 삶을 뒤돌아보며
하느님과 화해하는 성사가 바로 판공성사입니다.
가장 힘을 써서 공로를 닦아야 하는 시기입니다.

자선에는 물질적인 자선이 있습니다.
회개와 기쁨과 너그러움을 통해서 구체적인 행위를 보여져야 됩니다.

자식 자랑, 자기 부인자랑을 팔불출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九不出이 있어요...지자랑 하는 게 구불출~
내가 잠시 구불출이 되어 볼 테니까 잘 들어보세요.

신학교 들어와서 지금 神父생활하기까지 내 삶을 뒤돌아볼 때
제일 열심하고 순수하고 아름다울 때가 언제였느냐?
신학생 때 참 이뻤던 것 같아!
신학교에서 미사가 끝나고 나면 밥을 먹으려고 식당으로 내려갑니다.
제가 다니던 신학교에는 네 명이 앉도록 테이블이 되어 있었어요.
지금 신학생은 호텔에서 살고 있지만 옛날에는 시설이 좋지도 않았고
보일러도 없었고 밥도 ‘훅~ ’ 불면 날아가는 안남미 밥인데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몰라요.
라면이 어디 있습니까? 오로지 밥 세끼 먹으면 그만이야~

미사 끝나면 우르르 몰려가는데 늘 제일 먼저 내려갔어요.
뭔가 내가 하나를 잡기 위해~
밥상에 보면 밥, 국 하나 접시에 날계란 네 개가 이렇게 있어요.
그 중에 하나를 내가 잡는데...배가 고프니까 제일 큰 놈?
아니에요.
내가 작은 놈을 맡아야 큰 것을 다른 신학생이 먹을 수 있도록~
계란만 나오면 그중에 제일 작은 것을 잡았어.
그때 어린 마음이었지만 신학생으로서 최대의 희생이요, 애덕이었어요.

영적자선이라고 하는 것은 남 앞에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사랑과 정성을 다하여 누가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내가 작은 계란을 먹으면 다른 신학생이 더 큰 걸 먹겠지~’
이것이 바로 자선이 아닌가!
자선에는 영적인 자선도 있고 물적인 자선도 있습니다.
영적인 자선은 한마디로 용서하는 겁니다.
우리가 대림절을 지내면서 판공성사를 통해서

하느님으로부터 내 죄를 사함 받았듯이~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내 마음속에 미워하는 사람을 용서하는 겁니다.
한 영혼이라도 이 대림절에 용서하고 주님을 맞이하시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대림절동안 미워했던 한 영혼에게 화해를 청하십시오.
또 용서하십시오.
가톨릭 신문이나 평화신문을 보면 불치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꼭 나오면서 도움을 청합니다.
한참 지나면 또 결과가 나와요.
‘골수암 환자가 신자들의 물질적인 도움으로 잘 치료가 되었다. ’
한 사람이 그 사람을 살리려면 힘이 들지만 십시일반 작은 돈이라도
정성을 다해 내어놓을 때는 몸과 그 영혼을 살릴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들에게 영적인 자선과 물질적인 자선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올 한 해 동안 영적인 자선을 통해서 용서의 삶을 얼마나 살았는지 반성합시다.

이 미사 하면서 올 한 해 동안 나도 모자라고 불편하지만
내 것의 일부를 나보다 더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베풀면서 산적은 얼마나 되는지....
반성하면서 주님의 오심을 간절히 기다리도록 합시다. 아멘

김웅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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