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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주 하느님께서 기다리고 계신다
조회수 | 115
작성일 | 18.12.05
[청주] 주 하느님께서 기다리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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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오늘은 대림2주일입니다. 대림 초 두개에 불이 당겨졌습니다. 우리의 마음도 그 만큼 빛났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어두운 마음에 주님의 빛이 환히 비춰지길 희망하며 기쁨의 성탄으로 한 발 더 내딛기를 빕니다.

피아노 조율은 언제 해야 합니까? 피아노 조율은 ‘연주가 끝난 다음에 하는 것이 아니고 중요한 연주 앞에서 조율’을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렇게나 산 다음에 후회하고 회개 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하기 전에 우리의 삶을 조율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데 함부로 헛되이 삽니까?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여정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바로 나를 당신의 모상대로 창조하신 하느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지상적인 마음가짐에서 하늘을 향한 마음으로 탈바꿈하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는데 이는 이사야 예언자가 선포한 말씀의 책에 기록된 그대로였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들은 모두 낮아져라. 굽은 데는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어라.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구원을 보리라” 는 내용입니다.

이 말씀은 곧 마음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심보를 바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삶의 양식을 바꾸고 하느님께로 향한다는 것은 분명 광야에 길을 내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마음보따리를 바꾼다는 것은 죄의 용서를 받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일이지만 하느님의 은총과 인간의 단호한 결단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사람은 남의 잘못은 잘 보지만 자기 허물은 보지 못하는 연약함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하니 결국 돌이킬 마음도 없는 것입니다. 사실 고해성사를 자주 보지 않는 사람은 고백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비출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거울을 보며 외모를 단장하듯이 하느님의 말씀에 마음을 비춰야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은 영혼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한번 살펴보십시오. 우리 이웃과의 관계 안에서 골이 패인 것은 없는지? 혹 골이 있다면 그 골을 메워야 합니다. 서로의 견해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좋은 점과 부족한 점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다른 그를 ‘나와 틀리다’ 고 단죄하며 거리를 둡니다. 그러나 이유가 어찌 되었든 잘못되었으면 고쳐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분명, 골짜기는 메워져야 합니다. 산과 언덕들도 낮아져야 합니다. 높아지려고 하는 마음, 교만함이 있었다면 겸손함으로 낮아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으로 내려오신 그 마음에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던 그 모습으로, 간음한 여인의 처지에로 내려가서 허리를 굽혀 땅 바닥에 무엇인가 쓰시던 그 예수님의 마음에로 다가가야 합니다.

그리고 굽은 데는 곧아져야 합니다. 마음이 굽으면 모든 사람과 사물이 다 굽어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물이 굽으면 그 그림자도 굽어보이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굽은 마음을 곧게 하십시오. 시기와 질투로 보면 증오와 저주를 낳게 되고 영혼이 망가집니다.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고 인정해 주는 올곧은 마음이 필요합니다. 아울러 거친 길은 평탄케 해야 합니다. 거친 마음은 상처만 남깁니다. 남이야 손해를 보든 말든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은 위험합니다. “화는 불입니다. 뜨거운 불입니다. 그러나 그 불로는 방을 따뜻하게 할 수도 밥을 지을 수도 없습니다. 나무를 태울 수도 쇠를 달굴 수도 없습니다. 오로지 자신의 속만 태울 뿐입니다”(이규경). 잘못된 열심은 영혼에 상처만 남긴다고 했습니다. 분수에 맞지 않는 기대로 화를 키워서는 안되겠습니다.

시리아의 성 이사악은 “죄인이든 의인이든 모든 사람은 하느님께로 마음을 돌려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회심하는 이들을 가장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회심의 노력이나 기간은 죽는 순간까지 항구해야 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마음을 돌이키는 일은 한두 번에 끝날 일이 아닙니다. 매일이 마음을 돌이키는 회개의 때 입니다. 그리고 “끝까지 참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마태10,22).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죄기 드러날 때 고백하는 것은 회개가 아니라 자백입니다. 회개는 자발적인 것입니다. 아무도 내 죄를 알지 못하고 추궁하지 않는데도 하느님 앞에 부끄러워 고백하는 것입니다.

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여러분이 순수하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날을 맞이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는 의로움의 열매를 가득히 맺어 하느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필리피1,10-11). 하고 권고합니다. 따라서 하루하루가 예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는 나무랄 데 없는 축복의 날 되길 희망하며 ‘내가 바라는 하느님’을 기대하지 말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나’로 거듭날 수 있는 한 주간되길 바랍니다.

“한 알코올 중독자가 비참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그 가정을 살리기 위해 알코올 중독자 부인에게 성경을 한 권 주면서 하느님을 믿으라고 권했습니다. 부인은 열심히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 부인은 성경을 통해서 많은 위로를 받고 그것을 보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아내의 신앙을 비웃기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술에 잔뜩 취한 남편이 집에 들어와 아내의 손에 있는 성경을 빼앗아 난로 속에 집어 던져 버렸습니다. “어디 네 성경이 어떻게 되는지 한번 보자.” 다음날 아침 남편은 난로 속의 재를 치우다가 타다 남은 성경 몇 쪽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눈에 딱 들어오는 성경구절이 있었습니다. 그 말씀은 마태복음 24장 35절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 순간 남편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두려웠습니다. 심한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결국 그는 살아있는 말씀에 두 손 들고 주님 앞에 나오게 되었답니다.”

오늘 복음의 끝부분의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루카3,6)는 말씀도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향한 우리의 마음가짐을 새롭게 해야겠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면 무엇이든 할 준비를 갖추고 ‘주님의 마음에 드는 것이 무엇일까?’ ‘그분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를 생각하며 아기예수님께 드릴 선물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회개의 핵심은 하느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잘못했다고 발만 동동 구르고 안타까워하는 것이 아니라 전과는 다른 삶의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회개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내가 그분을 알기 전부터 나를 사랑하셨고 용서해 주실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하느님을 향한 삶의 추구로 주님께 기쁨을 드릴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지나치게 세상과 땅만 바라보지 않고 머리를 들어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은혜가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교부 떼르뚤리아노는 말합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은 죽는 날까지 회개하기 위해서입니다. 회개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척도입니다.” 교황 요한바오로2세께서는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회개는 한없이 자비로우신 아버지를 ‘다시 발견하는 데서 얻어지는 결실입니다. 자비의 하느님! 너그러우신 사랑의 하느님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끊임없는 회개의 원천”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무쪼록 주님께서 언제나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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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교구 반영억 신부 - 2015년 12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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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와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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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형마트에 볼 일이 있어서 들른 적이 있습니다. 신나는 캐롤과 함께 화려한 형형색색의 조명들, 수많은 크리스마스 장식품과 성탄 카드, 풍성한 선물상자들을 보고 있자니 성탄이 벌써 온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이러한 세상의 크리스마스 분위기와는 달리 대림절이면 어김없이 나타나 들뜬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듯이 예수님을 맞기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는 사나이가 있습니다. 대림절의 사나이 세례자 요한입니다. 신나는 캐롤과 화려한 조명과는 대조적이게 쓴소리로 세상을 향해 외치는 소리가 들립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루카 3, 4. 6).

요한은 회개의 세례를 통해 예수님의 구원을 동참할 것을 우리에게 강력히 촉구합니다. 오실 아기 예수님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에 합당한 회개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외칩니다. 회개란 단지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무엇을 뜻합니다. 내가 잘못된 길을 걸었다면 후회할 뿐만 아니라 완전히 돌아서서 바른 길을 찾아가는 것이 회개입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고 외치는 세례자 요한은 위로보다는 경종을 울리고 아픈 데를 찔러야 했던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외침은 그야말로 광야에서 들리는 외롭고 쓸쓸한 소리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세상이 직면한 어두움과 고통, 슬픔을 외면하고 그냥 덮어서는 안 됩니다. 과장된 화려함과 거짓 희망으로 불투명한 미래를 제시해서도 안 됩니다. 회개란 이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쓰라린 경험과 발판 삼아 주님께로 다시 한 발자국 나아가는 것입니다.

다사다난했던 올 한해 사회의 가장 큰 이슈(issue)는 ‘평화’일 것입니다. 남북 문제나 난민 문제에 대해 다양한 정치적 이념이 충돌하고 다른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어찌되었든 이슈(issue)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그것이 절실하고 꼭 필요한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회개’와 ‘평화’! 이것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접목시키고 이해해야 할까요? 프란치스코 성인의 평화를 구하는 기도로 답을 대신하겠습니다.

“주님, 나를 평화를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이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주소서. 저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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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교구 견혁 시몬 신부 : 2018년 12월 9일
  |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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