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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40일간 단식
조회수 | 103
작성일 | 19.03.08
[청주] 40일간 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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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1주일인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에서 40일간 단식을 하시면서 악마의 유혹을 받으셨다는 복음 말씀을 접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세 가지 등식을 살펴보아야만 합니다. 첫째, ‘예수님의 삶은’, 둘째, ‘구약성경에 미리 예표 되어 있고’, 셋째, ‘이는 또한 우리 신앙인이 살아야 할 삶’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의 노예에서 해방되어 홍해를 건너 광야생활을 거친 다음 가나안 복지로 향해 나아갑니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고 40일간 광야에서 악마의 유혹을 받으신 다음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한 공생활을 시작하십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세례를 통해 죄의 노예에서 해방되고 신자로서의 삶을 통해 하느님 나라로 향해 나아갑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바다를 건넘과 예수님의 세례와 우리의 세례라는 등식을 만나게 됩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의 40년간 헤매야 했던 광야의 삶과 악마의 유혹을 받으며 지냈던 예수님의 40일간의 광야에서의 삶, 그리고 우리 신앙인들의 광야로 상징되는 이 세상에서의 삶이라는 등식을 또한 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의 노예에서 해방되어

기대했던 삶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에서의 행복한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홍해를 건너자 이스라엘 백성들을 기다렸던 것은 가나안이 아니라 광야였습니다. 이 광야의 삶을 거쳐야만 가나안 복지에 다다를 수 있었던 것 입니다. 예수님 역시 세례를 받으신 다음 공생활을 하시게 되는데 이 공생활의 시작은 악마의 유혹에 시달리는 40일간의 단식의 삶이었습니다. 즉, 공생활은 영광의 삶이 아니요, 고통의 연속인 십자가의 삶이었던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들 역시 세례를 받고 환란이나 역경이 없는 행복한 삶을 기대하지만, 오히려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신앙인으로서의 멍에를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험난한 세상에서의 삶입니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 역시 광야의 삶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광야는 바로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광야 생활을 통해서만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복지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 역시 광야로 상징되는 이 세상의 삶을 통해서만이 하느님의 나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오늘 악마의 세 가지 형태의 유혹은 예수님께만 해되는 특별한 유혹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공통된 유혹인 것입니다.

우리 역시 광야로 상징 되는 이 세상 안에서 온갖 유혹 속에 살아갑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우리가 어떻게 그 유혹들을 헤쳐 나아가야 하는지를 몸소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우리의 삶에 꼭 필요한 재물이라 하더라도, 누구나 누리고 싶은 권력이나 명예 그 어떤 것이라 하더라도 하느님을 섬기는데 유혹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것을 배우고 실천하는 사순 시기가 되시기를 기도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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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교구 이수한 시릴로 신부 : 2016년 2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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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사순 시기를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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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안에서 예수님은 참으로 많은 이들을 위해 노력하십니다. 마음이 가난한 이들을 위로해주시고, 병자들을 고쳐주십니다. 죄를 지어 아파하는 이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주시고, 믿음이 약한 이들을 격려하기도 하십니다. 때로는 배고픈 이들에게 빵이 되어 주시고, 친구가 필요한 이
들에게는 친히 벗이 되어주십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과 마주하게 된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게 될까요? 예수님은 늘 들어주시는 입장에 서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을까요? 힘들고 지친 손을 언제나 먼저 잡아주셔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을까요? 우리의 나약함을 이해하고 격려해주실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을까요?

그러한 예수님의 모습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여기진 않을까요? 예수님은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진 않을까요? 아마도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믿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른다고 모인 우리는 어떠한 모습이어야 할까요?

누군가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면, 누군가가 나에게 사랑을 바란다면, 누군가가 나에게 이해를 바란다면, 누군가가 나에게 용서를 바란다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우리 자신을 내어줄 수 있을까요?

만일 예수님은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정작 그분을 따른다는 나에게는 스스로가 다른 판단 기준을 적용하고자 한다면…. 이것은 깊이 숙고해보아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교회는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고자 모인 공동체인데, 정작 스승과는 다른 길을 살아가고자 한다면 스승의 참 제자라 할 수 없겠지요. 우리는 지금 올해 사순 시기의 시작 단계에 있습니다. 사순 시기는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바라보고 배우는 특별한 시간입니다. 예수님과 십자가의 길을 동행하며, 나를 사랑하고 계셨던 예수님의 마음을 바라보는 때입니다.

또한 스승의 가르침을 몸과 마음으로 함께 할 수 없었던 부분을 성찰하고 회개하며, 나에게 부족했던 사랑을 배우고 실천하는 때입니다. 그리하여 교회는 우리를 예수님과 좀 더 일치할 수 있도록 초대합니다. 우리 신앙인의 목표는 단지 예수님의 모습을 머릿속에 담아두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는 공동체 안에서 ‘제2의 예수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또 다른 예수님’으로 거듭날 수 있는 은총의 사순 시기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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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김진철 요셉 신부 : 2019년 3월 10일
  |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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