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주일강론 (다해)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47 84.4%
[광주] 바라빠! 당신은, 이 모든 것을 봅니까?
조회수 | 110
작성일 | 19.04.09
[광주] 바라빠! 당신은, 이 모든 것을 봅니까?

-----------------------------------------------------------

“그자는 없애고 바라빠를 풀어 주시오.”(루카 23,18) 바라빠는 바르(Bar: 아들) 압바(abbas: 아빠)의 합성어입니다. 아버지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예수님의 수난을 바라보는 저에게 이 이름은 한분 아버지의 자녀들인 우리 모두를 지칭하는 것으로 다가옵니다. 예수님은 바라빠를 풀려나게 하고 십자가형을 당합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자녀(바라빠)인 우리 모두를 죽음에서 풀어주십니다.

죽음에서 풀려난 이 바라빠가 바로 나임을 당신은 봅니까? 예수님 덕분에 생명을 얻은 바라빠! 그 삶의 여정을 ‘오늘’(구원을 현재화하는 루카복음의 특성) 우리가 걸어갑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23,34) 예수님은 당신을 처형하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볼 눈이 있는 사람은, 자신이 늘 용서받는 삶을 살고 있음을 봅니다. 바라빠! 당신은, ‘내가 죽인’ 그분이 ‘나를 살리는’ 무한히 용서하시는 사랑임을 봅니까?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23,43) 뉘우치는 죄수에게 예수님은 구원을 약속하십니다. 죄로 인한 절망적인 죽음의 순간조차도 그분의 사랑으로 구원의 현재, 즉 영원한 ‘오늘’이 됨을 봅니다. 바라빠! 당신은 지난날 모든 죄에도 불구하고 십자가 안에서 당신을 위한 ‘오늘’을 봅니까?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23,46) 죽음은 예수님에게 끔찍한 무엇이 아니라 기도 속에서 아버지의 자비로운 품으로 돌아가는 사랑의 완성입니다. 바라빠! 당신은, 기도 속에서 완전히 내어맡기는 죽음이 삶의 완성임을 봅니까?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백인대장”은 “정녕 이 사람은 의로운 분이셨다.”(23,47)고 고백하며 십자가가 하느님 체험의 자리임을 봅니다. “구경하러 몰려들었던 군중”은 “그 광경을 바라보고 가슴을 치며 돌아”(23,48)갑니다. “의로운 분”의 죽음에서 무엇인가를 바라보고 그들은 변화된 상태로 돌아갑니다. 제자들조차 도망갔음에도 “갈릴래아에서부터 그분을 함께 따라온 여자들”은 “그 모든 일을 지켜보았”(23,49)고 또한 “무덤을 보고 또 예수님의 시신을 어떻게 모시는지 지켜보고”(23,55) 나중에 부활의 첫 번째 증인이 됩니다. 바라빠! 당신은, 이 모든 것을 봅니까?

------------------------------------------------------------------

▦ 광주대교구 천정철 신부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735   [서울] 보답을 바라지 않는 '풀코스 서비스'  [10] 2443
734   [인천] 새벽을 사는 사람  [9] 2429
733   [마산] 구원을 얻는 길은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데 있다  [5] 2319
732   [안동]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루가 10, 29)  [4] 2265
731   [부산]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  [5] 2719
730   [대구] 너희도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되어라!  [4] 2279
729   [원주] "이웃을 의도적으로 바라보자"  [1] 2227
728   [수도회] 항구함, 충실성, 지속적인 신뢰  [3] 54
727   [광주] 따뜻한 이웃이 되어 주자  35
726   [청주] 이웃이 부담스럽습니다. 하지만...  [1] 39
725   [수원] 착한 사마리아 사람 : 그리스도  [5] 2550
724   [의정부]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2] 41
723   [전주]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5] 2543
722   [춘천] “사랑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합니다”  [3] 55
721   [군종] 이웃 사랑은 두 팔로!  [3] 2382
720   [대전] "흘러가는 것과 흘러가지 않는 것"  [2] 71
719   (녹) 연중 제15주일 독서와 복음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2] 1634
718   [대구] 농부이신 하느님의 마음  120
717   [마산] 참된 거처에로의 초대, 평화의 인사  114
716   [수도회] 그리스도의 평화  [6] 1826
715   [춘천]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109
714   [부산]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를 것이다.  [5] 2274
713   [의정부] 파견받아 떠나는 길에서  [1] 1551
712   [대전] 추수할 것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1970
711   [서울] 그리스도의 평화  [2] 2027
710   [인천] 주님에 대한 신뢰가 참된 복음 선포  [3] 1629
709   [수원] 고통은 기쁨을 낳는다?  [1] 1870
708   [전주] 댁에 평화를 빕니다.  [2] 2169
707   [광주] 평화를 빌어 주자  179
706   (녹) 연중 제14주일 독서와 복음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2] 1687
705   [수도회] 나는 죽은 자입니까, 살아 있는 자입니까?  [5] 2366
704   [수원] 자신 있게 뒤로 눕기  [1] 2650
703   [대전] 어느 화분에 물을 주려 하는가?  [1] 72
702   [원주]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예수님을 닮는 것  [1] 2582
701   [의정부]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1] 61
700   [서울] 주님 따르기  [4] 2771
699   [인천] 욕심  [3] 49
698   [춘천] 뒤돌아보지 않는 삶  [1] 2391
697   [광주] 하느님께서 '나'를 부르신다는 것은  54
696   [마산] 하늘나라는 끊어버림에서 온다.  [3] 2513
1 [2][3][4][5][6][7][8][9][10]..[19]  다음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19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