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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우리가 걸어가야 하는 길
조회수 | 110
작성일 | 19.04.09
[대전] 우리가 걸어가야 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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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그리스도교의 핵심 신비가 담겨 있는 가장 거룩한 한 주간을 맞았습니다. 특별한 은총으로 가득차 있는, 이 성주간의 시작인 오늘, 우리는 루카에 의한 긴 주님 수난기를 듣게 됩니다. 좀 더 잘 듣게 하기 위해서, 다른 주일과는 달리, 몇 사람이 역할을 나누어 입체적으로 현장감 있게 봉독합니다. 제가 사제가 된 이후에는 항상 예수님 역할을 맡았지만, 신학생 때는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는 말을 크게 외쳐야 하는 군중 역할이었습니다. 그런데, 전례연습 때 마다 꼭 지적되는 말이,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를 함께 맞추어 아주 큰 소리로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수난기 봉독이 시작되면, 큰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간혹 옆에서 아주 크게 외치는 신학생이 더러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신학생이 잘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 신학생은 당시 군중의 역할을 잘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당시 군중들이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힘없이 아주 작게 말했다면, 아마도 빌라도는 예수님께 사형선고를 내리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오늘날 우리는 비록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음성은 작을지라도, 생활에 있어서는 예수님을 다시 모욕하고, 십자가에 못 박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봅니다.우리가 알다시피, 예수님은 군중 앞에서 말씀하실 때나 기적을 베푸실 때에 사랑과 힘이 충만한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왜, 십자가에서 무력하게 돌아가셨을까요? 그것도 온갖 모욕과 조롱을 받으시면서 말입니다. “다른 방법으로 인류를 구원하실 수는 없었을까?”

사순절이 되면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한 번쯤 묻게 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십자가의 신비는 우리가 묵상하면 묵상할수록 마음속 깊이 예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오늘 제2독서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비우셨다.”고 고백합니다. “하느님과 같음”(필리 2,6)을 즐기지 않으시고, 천상에서 지니고 계시던 모든 혜택을 비우시고, “종의 모습”으로 자신을 낮추시어,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아버지 하느님께 순종하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고…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필리 2,9-11)라고 고백합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걸으신 십자가의 길은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백성들이 예수님과 함께 걸어가야 하는 길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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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교구 이원순 마티아 신부 : 2016년 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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