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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자상한, 친절한, 자비의 예수님
조회수 | 94
작성일 | 19.04.25
[청주] 자상한, 친절한, 자비의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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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올 해를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선포하신 ‘자비의 특별희년’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무한하신 자비를 깊이 체험하며 그 자비를 다른 사람들에게 실천할 것을 다짐하며 보내고 있습니다. 한편 오늘은 성 요한 바오로2세 교황님께서 제정하신 ‘하느님의 자비 주일’입니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주신 하느님의 크신 자비를 생각하는 날입니다. ‘자비의 특별희년’과 ‘하느님의 자비 주일’을 보내며 우리 는 하느님의 자비가 무엇인지를 더욱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평화가 너희 와 함께!”라고 인사하십니다. 스승을 세 번이나 배반한 베드로와 끝까지 주님과 함께 하겠다고 장담하였지만 십자 가에 돌아가시는 스승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가 버린 제자 들은 스승을 버린 자신들의 죄 때문에 죄책감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도 예수님처럼 잡혀서 십자가 에 못 박혀 죽을까봐 두려워 숨어 있었습니다. 이 죄책감 과 두려움으로 제자들은 마음의 평화를 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그들의 잘못을 야단치시지 않고 오히려 마음의 평화를 빌어주시며 죄책감과 두려움 속에 있는 제자들을 위로해 주십니다.

그리고 믿음이 부족한 제자들에게 손수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의 상처를 보여주시어 믿게 하셨습니다. 죄책 감 속에 있는 제자들이 미안해 할까봐, 제자들이 상처를 보여 달라고 청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상처를 보여주심으로써 믿음을 주시는 참 자상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그 자리에 없었던 토마스는 다른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뵙고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 하였지만 그는 믿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의 말을 듣고도 당신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토마스를 위해 다시 한 번 나타나시어 그에게 믿음을 심어 주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인사하시며 역시 토마스에게 도 마음의 평화를 주십니다. 이 발현은 토마스를 위해 한 번 더 나타나 주시는 예수님의 보너스(!)입니다. 참 친절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은 바로 우리의 죄 때문에 상처 받으시고 고통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나무라거나 원망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우리가 죄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십니다. 죽음에서 승리하신 예수님의 부활은 죄악 속에 헤매고 있는 우리에게 이제 더 이상 죄책감과 두려움 속에 살지 말라는 예수님의 크신 자비의 선물입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마음을 당신의 죽음과 부활로써 우리에게 보여주신 주님의 크신 자비입니다. 이 자비를 입은 우리는 이제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과 용서를 베풀며 그 사랑을 전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외칩시다. 주님은 언제나 자비하신 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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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교구 신광호 미카엘 신부 : 2016년 4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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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백성 가운데에서 많은 표징과 이적이 일어났다”(사도 5,12). 주님께서는 당신의 부활이 우리 안에서 어떻게 체험되는지 또 어떻게 드러나는지 오늘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토마스는 자신의 손가락을 부활하신 주님의 옆구리에 넣어보고, 손에 있는 못자국을 직접 보고 주님의 부활을 체험합니다(요한 20,27).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한 사도들은 자신들의 손을 통하여 백성 가운데에서 많은 표징과 이적을 일으킵니다(사도 5,12).

내 눈으로 보고 내 손으로 만져보기 전에는 믿지 못하겠다는, 나약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이기도 한 토마스의 믿음 앞에 주님은 손을 만지게 하고, 손가락을 넣어보게 하십니다. 또한 그 손을 통해 당신의 표징과 이적들을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십니다. 즉,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한 사도들은 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주님은 그 기도를 그들의‘손’을 통해 표징과 이적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하십니다.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사랑’과‘생명’, 그리고‘평화’를 전하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분명한 육체적 한계를 지니고 살아가는 인간에게‘부활’은 알아듣기 힘든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가장 손쉽게 부리고 가장 직접적으로 접촉하는‘손’을 통해 부활을 알아듣고 체험할 수 있고 전할 수 있습니다. 짧은 생애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우리 곁에 머무르시다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주님은 이제 우리들의 손으로 사랑과 생명, 그리고 평화를 전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회당에 모인 군중과 바리사이에게 질문을 합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마르 3,4). 예수님께서는 군중과 바리사이의 생각과는 다르게 사람을 살리는 좋은 일을 선택함으로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치유하십니다. 치유를 받은 이 사람은 사람을 살리는 예수님의 일을 자신의 손을 통해서 실천하였을 것입니다.

우리의 손은 기도하고 노동하며 타인의 눈물을 닦아주는 손입니까? 아니면 약자를 겁박(劫迫)하고 술수를 부리며 탐욕스럽게 제 이익만 챙기는 손입니까? 우리는 하루에도 열 두 번씩 자신의 손으로 수고하고 인내하며 선을 쌓을 수도 있고, 등 뒤에 숨긴 손으로 부끄러운 행업을 쌓을 수도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손을 통해 당신의 부활을 나타내 보이라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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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강성호 안토니오 신부
  | 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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