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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평화를 빌어 주자
조회수 | 181
작성일 | 19.07.04
[광주] 평화를 빌어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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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인류가 추구하는 최고의 소망입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가 생긴 이래, 아니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로 세상은 평화를 잃어버렸습니다. 평화가 깨졌으며 깨진 평화는 이후로 세상은 다시 복구되지 않았습니다. 여러 성현들이 있었고 또 많은 노력이 있었지만 평화는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갈수록 더 요원해졌습니다.

오늘 1독서에서 야훼께서는 “나 이제 평화를 강물처럼 예루살렘에 끌어들이리니,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평화는 하느님께서 주셨을 때 그때 비로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새 예루살렘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인류에게 평화를 젖먹여 주는 새 예루살렘입니다.

복음에서 주님이 장차 찾아가실 여러 마을에 제자들을 파견하시는데 그러면서 당부하시기를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평화를 빌어 주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이 가져다주는 선물 중의 하나는 바로 평화입니다. 그것도 썩지 않는 영원히 생생하게 살아 있는 평화입니다. 우리는 그래서 우리가 추구하는 평화는 하느님의 말씀과 그리고 새 예루살렘에서 얻어야 한다는 것을 새롭게 알아야 합니다.

어떤 형제가 도박 때문에 문제가 많았습니다. 그는 일종의 도박환자였습니다. 화투짝을 손에서 놓으면 늘 불안했고 곧 돈을 딸 것 같은 착각 때문에 아무 것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늘 딸 것 같은 것은 어디까지나 착각이었습니다. 이제는 건강도, 가정도, 그리고 사업마저도 병들어 가게 되었습니다. 화투를 끊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뜻대로 안되었습니다.

부인은 돈 때문에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눈물로 호소를 해 보기도 했고 이혼을 하자고 협박도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도박 자체가 병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구제불능의 친구가 어느 성령 세미나에 참석해서는 자기 병을 고쳤습니다. 믿지도 않는 사람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묘한 일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손에서 화투짝을 떼면 생 자체가 아무 의미가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손에 화투가 있어야 살맛을 느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헛된 평화에서 벗어나 참된 평화를 찾았던 것입니다. 건강도 찾았고 일이 의욕도 찾았으며 또 가정이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믿음이 평화를 가져왔고 예수님이 평화를 주셨던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정말 평화롭기를 원하십니다. 아주 간절하게 원하십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도 “하늘엔 영광”이요 “땅에는 평화”라고 천사들이 노래했습니다. 다시 말해 이 땅엔 예수님이 오심으로 해서 평화가 비로소 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인류 역사에 예수님이 들어오심으로 해서 세상은 평화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또한 그리스도의 도구이기 때문에 그분의 평화가 생생하게 살아 있어야 하고 또 실천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교회부터 평화를 사랑하고 평화의 공동체를 형성해야 합니다. 신자들도 마찬가집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시고 우리 자신이 새로운 예루살렘의 시민이기 때문에 평화의 물결이 우리를 통해 이웃으로 넘쳐나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모순(?)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평화 자체이신데 과연 그분의 생애는 평화로우셨느냐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마리아의 태중에 있을 때부터 극심한 불안을 체험하셨습니다. 태어나셨을 때도 그랬고 전도생활 3년은 그야말로 불안과 초조와 공포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럼 이게 뭐냐?

평화 자체이셨던 분이었지만 예수님은 결코 평화롭지 못했습니다. 겟세마니에서는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라는 표현까지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평화를 위해 당신이 세상의 불안을 혼자서 다 뒤집어쓰셨습니다. 세상의 공포와 불안을 그분이 걷어 가셨기 때문에 세상은 이제 그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써 참 평화를 찾은 것입니다.

우리는 평화를 위해 일해야 합니다. 평화를 위해 고통받고 눈물 흘리며 가슴 태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참 평화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산상설교에서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마태 5,9)라고 하셨습니다. 묘하게도 평화는 평화를 위해 땀을 흘릴 때 그때 진정한 평화가 주어집니다.

오늘 예수님이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평화를 빌어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전도자들은 돈이나 식량이나 옷 등 물건에 집착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거짓 평화와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우리는 서로에게 평화를 빌어줘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평화를 얻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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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교구 강길웅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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