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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참된 거처에로의 초대, 평화의 인사
조회수 | 114
작성일 | 19.07.05
[마산] 참된 거처에로의 초대, 평화의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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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사람들 가운데 천막을 치실 때(요한 1,14)의 첫 장소는 요셉과 마리아를 부모로 둔 가정이었다. 그 후 열두 살 되던 해, 예수님께서는 성전, 특별히 율법 교사들 가운데 자리를 당신의 거처로 삼으셨다.(루카 2,46.49)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의 이끄심을 받은 이후,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땅에서 머리 기댈 곳(루카 9,58)을 찾지 않으신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 최소한의 거처였던 초막(루카 9,33.37; 탈출 16,16: 광야생활에서의 천막)도 거부하신다. 사람 손으로 지어낸 골고타 언덕의 십자가, 바위를 깎아 만든 아무도 묻히지 않았던 무덤도(루카 23,53) 그분의 거처가 될 수 없었다. 결국 그분께서는 하느님 오른쪽(사도 7,56)으로 가셨으며, 마지막엔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을 당신의 거처로 삼으신다.(묵시 21,2.22-23)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도 이 노선을 걷는 듯하다. 베드로를 예로 들자면, 예수님께서 부르실 즈음 장모와 함께 지내던 집(루카 4,38-39와 병행구)에서 출발해 성전에서 머물던 시기를 거쳐(루카 24,53) 땅이나 집을 내어놓는(혹은 포기하는) 공동체의 삶을 산다.(사도 4,34) 이미 베드로는 주님께서 차려놓은 식탁(요한 21,9)을 향해 뛰어든 적이 있는데,(요한 21,7) 베드로로서는 준비할 수 없는 목마르고 돈 없는 자들을 위한 자리(이사 55,1)에 뛰어드는 모습과 같다.이와 연계해 마지막에 완성될 새 예루살렘은 생명의 샘에서 솟는 물이 거저 주어지는 곳으로 묘사된다.(묵시 21,6;22,1) 결국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계신 곳, 그분께서 최후에 머무시는 거처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베드로의 이 전환점에는 예수님께서 남기신 인사가 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19) 이후 예수님께선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성령을 불어넣으시고 죄의 용서에 대한 권한을 부여하신다.(요한 20,22-23) 복음서에선 예수님께서 죄를 용서하신 첫 번째 때를 중풍 병자를 고친 때로 묘사한다.(루카 5,17-26과 병행구)중풍 병자는 모든 것이 어긋나있던 신체를 회복하여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간다. 이 집은 중풍 병자에겐 치유 이전과는 색다른 집이 된다.

이는 노아 때 모든 것이 어긋나있던 상황(창세 6,5)이 극복되어 새 거처로 향하는 길이 열렸음과 연결되는 듯하다.(창세 8,11)비둘기 모양으로 오셨던 성령께선(루카 3,21-22와 병행구) 믿는 이들에게 전달되어 이 길로 안내하는 인도자가 되어주실 것이다. 때문에 예수님께선 길에서 만나는 이가 아닌, ‘이 집(아직도 미적거리는 자리)’에 머무는 이들에게‘평화의 인사(죄의 용서를 이루시는 성령)’를 건네라고 하셨을 것이다. 우리에게 건네어진 성령의 도움 아래 참된 거처로 발길을 내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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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김유태 비오 신부 : 2019년 7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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