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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흘러가는 것과 흘러가지 않는 것"
조회수 | 120
작성일 | 19.07.11
[대전] "흘러가는 것과 흘러가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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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흘러가서 시내가 되고, 바다를 이룬다는 것을 이상하게 여길 사람은 아무도 없다. 흔히들 고속화 시대라 부르는 요즈음, 기술문명이며 관념적 문화 등 일체가 하루가 다르게 빠른 속도로 흘러가고 있다. 어제보다 오늘이 더 나아지고,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욱 커지겠기에 사람들은 이를 일컬어 '발전'이라고도 혹은 '진화'라고도 한다. 그러나 마치 손오공이 제 아무리 재간을 부려서 빨리 달려도 역시 부처님의 손아귀에 있는 것처럼 발전이나 진화의 시간 역시 영원의 손길 안에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 모두는 발전 이상의 무엇, 흘러가는 만상들 안에서 흘러가지 않는 어떤 것을 지닐 수 있어야 한다.

이 흘러가지 않는 것, 결코 흘려 보내서는 안 되는 것,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를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라 믿어 고백한다. 이것이야말로 예수님께서 당신의 삶 전체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시고자 하신 것이며, 이 점에서 그리스도인이란 다름 아닌 이러한 생명의 말씀을 생활로써 증거해 보이는 사람들일 것이다.

논어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교언영색선의인 (巧言令色鮮矣仁). 곧 말만 잘하고 모양만 재는 사람치고 사람다운 걸 보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그런가 하면 한자의 욕(慾)자를 보면 재미있는 사실이 발견된다. 그것은 골짜기 곡(谷)자와 하품할 흠(欠)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한마디로 속이 텅 비어있을 때 나오는 것이 인간의 욕심이라는 것이다.

'영원한 생명의 말씀'에 그야말로 삶의 모든 것을 걸었던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야말로 무엇이 흘러가는 것이며 흘러가지 않는 영원한 것인지를 안 사람들이었고, 모든 것을 버림으로써 실은 그것이 모든 것을 얻게 되는 길임을 깨달은 사람들이었다.

사랑의 이중 계명으로 율법 전체를 한 계명으로 환원시키신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모습 안에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하나임을 깨달아야 한다. 고통과 고난 속에 있는 사람, 그래서 하느님의 사랑을 구체화하도록 요구받는 사람이 바로 내 이웃임을 알고 구슬땀을 흘리며 살아가는 농민들의 삶을 기억하며 그분들의 삶의 노고에 감사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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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유탁준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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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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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 안에서 율법교사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이십니다. 율법교사는 예수님께 두 가지의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와 “누가 나의 이웃입니까?”입니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 예수님께서는 먼저 율법교사의 답변을 유도하고 계십니다. 그런 다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너도 그렇게 하면 살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는 한 가지 비유를 드신 다음 또다시 율법교사의답변을 유도하고 계십니다.

“자비를 베푼 사람이 강도를 만난 사람의 이웃입니다”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두 가지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응답이 한 가지임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복음을 읽다보면 사람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응답은 우리가 흔히 생각할 수있는 내용이 아니라 항상 그보다 위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 안에 예수님의 응답도 율법교사가 의도했던 답변을 훨씬 넘어선 그삶 안에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며 우리는 또한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라고 말씀하신 것이 당시 율법교사에게만 하신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 계속해서 하고 계신 말씀이란 것을 말입니다.

오늘 복음 안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라는 말씀을 다시 한 번 기억하면서 내 삶의 모습을 되살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먼저 하느님을 사랑하고 있는가? 내가 먼저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참된 이웃이 되어주고 있는가를 말입니다. 우리에게 늘 말씀하십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많은 말보다는, 많이 아는 것보다는 한 가지를 제대로 내 삶 안에서 실천하며 산다면 영원한 생명의 나라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 삶 안에 함께하고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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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허숭현 신부
  |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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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루카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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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상에 “따뜻한 마음의 눈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 아닌가 싶습니다. 연일 터져 나오는 안타깝고 무섭고 흉측하고 두려운 사건들 속에서 따뜻한 마음들을 보여주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은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분들이 있기에 우리에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갖게 되고 오늘보다는 내일을 보다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준비해 나아갈 수 있게 합니다.

탐욕스러운 재벌과 권력이 만들어 놓은 어두운 사회 현실, 그 한가운데서 작지만 힘 있게 솟구쳐 오르는 일반 시민들의 따스한 행보는 어두운 현실 속에 감지되는 구원의 하느님께서 역사하고 돌보고 계시다는 시대의 징표를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님, 이 나라를 생명과 구원의 길로 이끌어 주심에 감사합니다.

오늘 복음은 어떤 율법교사와 예수님과의 대화에 이어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를 전해 줍니다. 율법교사는 예수님에게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묻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서에 어떻게 되어있는지를 반문하셨고, 율법교사는 구약성서를 인용하여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했다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대로 실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라고 묻는 반문에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따뜻한 행보에 눈을 돌리도록 하시고는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 하십니다.

대전교구는 교구설정 70주년을 향해 나아가면서 오늘의 사회 현실 속에 교회의 역할을 되짚어보고 세상과 인류구원과 교회쇄신을 위한 행보로 교구 시노드를 열어 놓았습니다. 우리시대의 사회 현실과 교회 현실을 각계각층으로부터 들어보고 현실을 진단하며 그 대비책들을 찾아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신앙인들인 우리 자신들이 무엇보다 먼저 사회 현실과 교회현실을 올바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올바로 보기 위해선 우리 눈에 자신도 모르게 덧씌워진 너울들을 벗어버리고 복음적인 눈, 예수님의 눈을 가져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늘 그렇듯 혼이 빠져 있는 눈, 마음의 움직임을 잃어버린 눈이 아니라 생명과 구원의 힘을 가져다줄 수 있는 눈이 필요합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당시의 사제와 레위인은 하느님의 성전과 율법에 충실한 사람들로 거룩함의 눈을 가진 사람들로 보이지만 생명과 구원의 대상인 세상과 사람들을 향한 자비의 눈은 감추어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당시 냉대와 천시의 대상이 되었던 사마리아 사람은 참으로 따뜻한 마음, 자비의 눈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행보에 눈을 돌리도록 촉구하셨습니다. 생명과 구원을 가져다줄 수 있는 따뜻한 눈, 바로 예수님의 눈이요 이 시대 우리가 갖추어야 할 눈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세상의 어두움과 교회의 위기를 운운하기 앞서 이미 복음적인 눈, 예수님의 눈에 더더욱 가까이 다가서서 세상을 직시하고 대응하는 오늘날 일반 시민들의 눈이 우리 교회의 눈이 되었으면 싶습니다. 그런 면에서 대전교구 시노드가 성령의 이끄심 아래 결실을 잘 맺어가길 함께 노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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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최익선 그레고리오 신부 : 2016년 7월 10일
  |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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