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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탐욕의 곳간’과 ‘사랑의 곳간’
조회수 | 102
작성일 | 19.08.02
[전주] ‘탐욕의 곳간’과 ‘사랑의 곳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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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말씀은 사람이 갖게 되는 물질에 대한 탐욕이 나와 너 사이의 관계는 물론 나와 하느님과의 관계도 악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유산분배 문제를 두고 예수님께서 두 형제들에게 하시는 말씀은 진정한 재물의 주인과 참된 생명, 그리고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주신다.

나는 복음 말씀을 묵상하면서, 모든 사람의 마음에 있는 ‘탐욕의 곳간’을 ‘사랑의 곳간’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풍요롭고 아름다울까 하는 생각을 했다. 주위를 둘러보면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어 이미 부자로 살고 있으면서도 내일의 죽음조차 모른채 곳간을 늘려나가는 부자들을 볼 수 있다. 그러면서 나도 주님 앞에서 나의 ‘탐욕의 곳간’은 어느 정도의 규모일까 생각해 보았다.

아무리 자신을 보잘것 없는 사람으로 여길지라도 사람의 마음속엔 탐욕의 곳간을 간직하고 있고 그 곳간을 채우기 위해 부자처럼, 그리고 오늘 복음속의 부모의 유산을 더 받기 위해 애쓰는 동생처럼, 사람들은 재물 때문에 사람들과의 관계는 물론이고 하느님과의 관계도 잊은 채 살아간다. 그러나 주님은 비유 말씀을 통해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곳간이 아닌, 진정한 생명을 얻는 구원의 곳간을 마련하라고 말씀하신다.

탐욕의 곳간이 모든 사람들에게 있듯, 구원에 이르는 ‘사랑의 곳간’역시 모든 사람에게 있다. 그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는 하느님과 자신만이 알 수 있겠지만 하느님과의 관계가 깊어 갈수록 그 크기는 커져 갈 것이다.

얼마전 돌아가신 어머니의 뜻(재물에 매이지 말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라)을 받들어 환우들을 위한 기금으로 400억원을 기탁한 할머니처럼 살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제1독서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자신이 간직하고 있는 것을 유용하게 사용할때, 타인의 입장에 서서 이해한 따뜻한 말 한마디, 그리고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배려의 마음들이 쌓일 때 사랑의 곳간은 탐욕의 곳간보다 커지고 신앙인으로서 살아가야할 의미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유산을 더 받기 위한 동생에게 직접적인 답변보다는 비유를 들어 하느님의 뜻에 맞는 결정을 내리도록 지혜를 주시고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기를 바라셨다. 우리 역시 늘 성령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사랑의 곳간을 키워가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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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이덕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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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무엇을 붙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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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달, 8월에 주님의 축복(祝福)을 빕니다. 여러분, 인간의 모습과 가장 닮은 동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원숭이입니다. 이 원숭이를 生捕(생포)하는 것은 생각보다 아주 쉬운데, 아프리카 原住民(원주민)들이 실제로 이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저녁 해질 무렵에 가죽으로 만든 자루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과일들을 넣고, 자루 주둥이는 좁게 만들어 나무에 걸어 놓기만 하면 됩니다. 원숭이는 자루 속에 손을 넣고 잔뜩 먹을 것을 움켜쥐는데 손은 빠지지 않고, 밤새 나무에 매달려 씨름하게 됩니다. 아침에 가보면 영락없이 기진 해 있고 원주민은 어깨에 메기만 하면 되지요.

원숭이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慾心(욕심) 때문입니다. 먹이에 대한 執着(집착), 자신의 손에 든 것을 포기하지 않는 지나친 애착, 무엇이 중요한가를 모르는 價値顚倒(가치전도) 때문에 자유로움과 生命(생명)을 얻지 못하고 잡히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이 미련한 원숭이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어리석은 사람에게 “이 어리석은 자야, 바로 오늘밤 네 영혼이 너에게서 떠나가리라. 그러니 네가 쌓아 둔 것은 누구의 차지가 되겠느냐? 이렇게 자기를 위해서는 재산을 모으면서도 하느님께 인색한 사람은 바로 이와 같이 될 것이다”(루가 12, 20-21)라고 훈계하십니다.

법정 스님이 쓰신 책 중에 ‘텅빈 충만’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비워 놓을 때, 空虛(공허)를 맛보는 것이 아니라, 가슴 가득한 自由(자유)와 幸福(행복)의 풍요로움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텅빈 充滿(충만)’, 자기를 비워 내면 비워진 만큼 참다운 생명과 사랑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고 행복의 길을 향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손에 쥐고 놓지 못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꽉 움켜쥐고 있는 것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무엇이 여러분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귀중한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여러분은 지금 생명의 길을 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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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오성기 신부
  |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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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재물과 영원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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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재물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옛 말에 사흘 굶고 남의 집 담을 넘지 않는 사람 없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살아가는데 재물은 필요한 것입니다. 문제는 삶의 수단이 되어야 할 재물이 삶의 목적이 될 때에 발생합니다. 오늘 복음의 부자 이야기는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곡식과 재물 그리고 목숨이라는 대립구조를 통해 소유와 존재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이지 목적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 존재의 의미를 소유하고 있는 것들을 많게 하는 것과 같게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누구나 한번은 죽게 되어있는 자연의 법칙 앞에서, 죽은 후에는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삶을 셈 바침 해야 한다는 사실에서 분명한 것은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어떤 삶을 살았느냐는 것입니다 (1코린 3,11-15참조).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이 인생의 전부였다면 현대그룹의 회장이었던 정주영씨가 죽을 때 ‘내 전 재산을 다 들여서라도 내 삶을 더 연장시키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겠습니까? 그는 삶에 있어서 많이 소유한다는 것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진정으로 풍요로운 삶을 원하는 사람은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고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오늘 제2독서의 사도 바오로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삶이 어떤 삶인지를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 하십시오’(콜로3,1).바오로 사도는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영원한 삶의 길을 계시해주신 분이 그리스도이심을 알고 그분의 가르침을 선포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은 가장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을 소유하는 것이며 그것은 허무한 것도, 지나가는 것도, 바람 같은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1독서의 코헬렛은 온갖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가지고 애쓰고서는 애쓰지 않은 다른 사람에게 제 몫을 넘겨주는 사람이 허무요 불행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캐나다에서 교포사목 하던 중에 미국에 이민을 가서 모텔을 운영하여 큰 돈을 벌었던 교포부부가 부부싸움을 하다가 서로 총으로 죽이고 죽는 사건이 발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사건을 수사하던 연방경찰이 집을 수색하던 중에 수백만 달러의 미화를 발견했답니다.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숨겨놓은 현금인데, 출처가 분명치 않은 거액의 현금은 국내법에 의해 전액 몰수되었다는 것입니다. 젊음을 다 바쳐 낯선 땅에서 온갖 수모를 겪으면서 벌었을 피땀이 서린 돈이 한 푼도 자녀에게 상속되지 못하고 국가에 귀속되어 버린 사건이 오늘 복음과 코헬렛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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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나춘성 스테파노 신부
  |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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