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주일강론 (다해)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49 3.6%
[청주] 자비로운 아버지의 비유
조회수 | 59
작성일 | 19.09.10
[청주] 자비로운 아버지의 비유

-----------------------------------------------------------------

오늘 복음 말씀은 그 유명한 되찾은 아들의 비유입니다. 그러나 저는 자비로운 아버지의 비유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의 주인공은 타락한 아들이 아니라 아들을 용서하시는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말씀의 의미를 깨닫기 위해 비유에 나오는 인물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려 합니다.

먼저 작은아들입니다. 작은아들은 당돌합니다. 마치 아버지의 것이 제 것인 양 착각하고 내어 놓으라고 큰소리치는 파렴치한 인간입니다. 또 힘도 들이지 않고 얻은 아버지의 재산을 제 것인 양 탕진해 버리고 마는 뻔뻔한 인간입니다. 그러나 작은아들은 오늘 복음을 통해 볼 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아버지께로 돌아서는 회개한 죄인의 표상이라 하겠습니다.

다음으로는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는 돌아오는 아들을 멀리서 바라봅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잊고 지냈지만 아버지는 항상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잘못을 고백하는 아들에게 아무런 꾸지람도 교훈의 말도 일체 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에게 제일 좋은 의복을 갖추어 주라고 종들에게 분부합니다. 감히 아들이라 할 자격조차 없는 아들을 다시 아들의 자리로 회복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바로 당신의 자녀인 우리들을 항상 용서와 사랑으로 보살펴 주시는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표상입니다.

마지막으로는 큰아들입니다. 큰아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아버지 곁에 머물면서 아버지의 일을 잘 도와 드립니다. 그러나 그 역시 자비로운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살아가는 나약한 인간에 불과합니다. 그런데도 그는 아버지께서 자비를 베푸시는 것을 보고 있지 못합니다. 자신은 손해 볼 것도 없으면서 회개하고 돌아온 자기의 형제에게 베푸시는 아버지의 자비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것을 가지고 좋은 일에 쓰시는데 그것을 보아주지 못하는 옹졸한 인간입니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은 큰아들이나 작은아들로 비유되어지는 우리 모두는 아버지의 크나큰 은혜로 살아가는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느님께 청해야 할 것은 아버지의 크신 자비이며, 행해야 할 것은 작은아들처럼 하느님 아버지께로 돌아서는 회개일것입니다. 또한 큰아들과 같이 용서하지 못하는 굳은 마음이 아니라 아버지의 자비로 살아가는 사람답게 나의 형제에게도 자비를 베풀 수 있는, 용서할 수 있는 그런 삶일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푸실 때 인간은 비로소 용서의 기쁨과 재생의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는 아무 힘도 없는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반면 우리는 너무나도 든든한 아버지를 배경으로 두고 있는 행복한 사람들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

청주교구 이수한 시릴로 신부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771   [수도회] 자비와 연민의 하느님  [4] 2493
770   [수원] 하느님의 크신 자비  [3] 2374
769   [인천] “아버지” 하느님  [4] 2316
768   [서울] 너무나 자비로우신 하느님  [5] 2288
767   [의정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  [3] 2298
766   [군종] 죄인들 중의 가장 큰 죄인  [1] 440
765   [안동] 나약한 인간  [4] 2337
764   [마산] 잃은 자와 죄인들을 사랑하시는 하느님  [3] 2434
763   [부산]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9] 2443
762   [대구] 아버지의 마음  [3] 2362
761   [원주] 머리의 논리보다 가슴의 논리로 살자  [3] 2630
760   [춘천] 주님께서 돌아오길 기다리십니다.  [2] 85
759   [대전] 하느님 앞에 좀 뻔뻔해집시다.  [2] 2103
  [청주] 자비로운 아버지의 비유  59
757   [광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2676
756   [제주] 화해와 용서  58
755   [전주]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1] 67
754   (녹) 연중 제24주일 독서와 복음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4] 1883
753   [수도회] 제자됨의 길  [4] 2423
752   [수원] 제자들의 선택  [5] 2315
751   [인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려면  [7] 2448
750   [서울] 예수님을 따라갈 때 내려놓아야 할 것들  [9] 2696
749   [마산] 적극적인 포기  [4] 2565
748   [대구] 동행  [3] 2393
747   [춘천] 십자가를 보물로 여기십시오  [3] 2471
746   [원주] 천국행 네비게이션  [2] 51
745   [대전] 이제는 내려놓아라.  [4] 2337
744   [청주]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라.”  57
743   [의정부] 사랑이란, 하느님을 위해 온갖 피조물을 벗어버리는 것  [2] 2474
742   [군종] 눈높이 사랑을 향한 버림  [2] 45
741   [제주] 누구든지 예수님을 따르려면...  [1] 2381
740   [전주] 신앙생활  42
739   [광주] 삶을 헤아리면서…  52
738   [안동]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  [5] 2731
737   [부산] 내 삶의 첫째가 무엇인가?  [8] 2351
736   (녹) 연중 제23주일 독서와 복음 (제자는 소유를 버리고)  [3] 1868
735   [수원] 참된 사람살이  [4] 2313
734   [인천] 겸손은 주님께서 주신 선물을 깨닫는 것에서 시작된다.  [7] 2641
733   [청주] 겸손으로의 초대  [1] 410
732   [마산] "낮은 문 - 겸손의 길"  [6] 2507
1 [2][3][4][5][6][7][8][9][10]..[20]  다음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19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