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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루가 17,5)
조회수 | 109
작성일 | 19.09.29
[대전]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루가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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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복음에서 사도들은 주님께 자신들의 나약한 믿음을 강하게 하여 달라고 청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이 청하고 있는 이 강한 믿음은 단순히 주님께 대한 확신, 곧 주님께 대한 믿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 그들은 주님께서 참으로 구약으로부터 예언된 분이고 인류의 참 구원자이신 메시아이심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그분께 믿음을 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하다면 과연 제자들이 주님께 청하고 있는 이 믿음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이겠습니까?

사도들이 오늘 청하는 “믿음”은 주님을 믿음으로 외적으로 드러나게 되는 “믿음의 행위”를 드러낼 수 있는 용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곧 오늘 복음의 바로 앞에 나오고 있는 즉 17,1-4에 나오고 있는 것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용기와 힘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죄악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절제를, 남을 죄짓게 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 그런 용기 있는 힘을, 그리고 형제가 잘못한 것을 용서할 수 있는 그것도 하루에 일곱 번이나 잘못을 저지른다 하여도 그 때마다 잘못했다고 하면 용서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을 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인의 행위는 단순히 주님을 믿는다는 그 행위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사실 행위가 따르지 않는 다면 그런 믿음은 죽은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야고보 사도는 행동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그것을 행동으로 나타내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 믿음이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믿음도 이와 같습니다. 믿음에 행동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런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야고 2,14-17).

사실 우리들이 신앙인으로 참되게 산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하기에 바오로 사도도 “마음으로는 선을 행하려고 하면서도 나에게는 그것을 실천할 힘이 없습니다. 나는 내가 해야 하겠다는 선을 행하지 않고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 나는 참으로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육체에서 나를 구해 줄 것입니까?”(로마 7,18-24)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대로 우리들도 이미 교리를 배웠고 매일 조금씩이지만 성서를 읽으면서 어떻게 생활하여야 주님의 제자가 되는지 어떻게 생활하여야 구원을 얻을 수 있는지는 잘 알고 있지만, 실상 우리들의 생활에서 그것을 실천하기는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누구나 아침에 일어나면서 주님께 기도하고 오늘 하루도 참으로 기쁘고 행복한 날이 되기를 바라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과 만나며 시달리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게 되고 서로에게 상처만을 남기는 하루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왜 이러한 일들이 우리들에게 매일 반복되고 있는 것이겠습니까? 이것은 사도들처럼 우리도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들도 우리들이 믿음이 단순히 머리속으로 주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의 생활과 일치하면서 우리들의 마음으로부터 우러난 참된 믿음이 되기 위하여 주님께 믿음을 더하여 달라고 청하여야 하겠습니다. 교회의 믿음은 지식의 대상이 아니라, 바로 행동으로 드러나는 행위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루가 17,5)

옛날 마호메트가 살아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를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예언자로 받들고 있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는 마호메트가 산을 움직일 수 있는 그런 위대한 힘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널이 퍼졌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호메트가 산을 움직이는 기적을 보기를 원하였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도 그러한 기적을 보기를 원하였기에 마호메트는 산을 움직이는 기적을 보여주겠다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마호메트가 산을 움직이기로 약속한 날,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 앞에선 마호메트는 잠시 기도를 하더니 멀리 보이는 산을 향하여 소리를 질렀습니다 “산아! 이리로 오너라”. 주위는 조용해졌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눈은 앞에 있는 산으로 쏠렸습니다. 그러나 산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이어 마호메트는 다시 “산아! 이리로 오너라”하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역시 산은 꿈적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실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마호메트는 사람들을 향하여 외쳤습니다. “산이 우리에게 오지 않으면 우리가 산을 향하여 가면 됩니다. 자! 다 함께 걸어갑시다”하고 그는 사람들의 앞장을 서서 앞의 산을 향하여 걸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산 앞까지 걸어왔을 때 마호메트는 다시 말하였다고 합니다. “자! 보십시오. 산이 우리 앞으로 오지 않았습니까?”. 이와같이 하여 마호메트는 무엇이든지 앉아서 기다리기만 하는 게으른 아랍 사람들의 성격을 적극적인 성격으로 만들어 주었다고 합니다.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루가 17,5)

교회의 믿음은 기적과 같은 외적인 사건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오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믿음은 바로 우리 마음에서부터 출발하여 외부의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교회의 믿음은 적극적이며 도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산을 움직임으로 믿음을 얻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있기에 산까지도 옮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을 간직한 사람은 무엇을 하든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 안에 함께 계신 성령과 함께 일하고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적인 힘으로는 결코 우리들에게 잘못한 사람을 완전히 용서하여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비록 생각을 하지 않고 잠시 잊고는 지낼 수 있어도 완전하게 용서를 못하며 그러하기에 자신 안에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은 자신 안에 있는 성령과 함께 행동하기에 용서하여 줄 수가 있고 받아들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바오로 사도는 오늘 독서에서 “하느님께서 주신 성령은 우리에게 비겁한 마음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를 주십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루가 17,5)

우리는 성령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은 비겁한 사람들이 아니라, 긍정적이고 도전적인 정신으로 희망 속에서 무엇인가 새로움을 행해 힘차게 걸어갈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인해 우리들 안에 자리잡고 있는 큰 산과 같은 이기적인 모든 것을 저 멀리 우리 밖으로 옮길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나약한 의지로 인해 단순히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살아있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혼자가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들에게 힘과 사랑과 절제를 심어주심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미사를 지내면서 우리들은 사도들과 같이 주님께 청하여야 하겠습니다. “주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저희 안에 오신 성령의 활동을 느끼며 앉아서 기다리기보다는 먼저 이웃을 향해 걸어갈 수 있는 용기를 더하여 주십시오”.

분명 우리들은 우리 안에 오신 성령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피하고 핑계를 대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미루기만 하는 그런 비겁한 마음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우리에게 죄악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절제를, 남을 죄짓게 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 그런 용기 있는 힘을, 그리고 형제가 잘못한 것을 용서할 수 있는 사랑을 심어주시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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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민병섭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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