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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지금, 이 순간
조회수 | 80
작성일 | 19.10.30
[군종] 지금, 이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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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끝에 나무마다 내가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몸으로 말하고 싶은 것인지 때깔 곱게 염색된 나뭇잎들을 잘 차려입고 자태를 뽐냅니다. 하지만 지난여름 강한 생명력을 표현하던 모습은 아닙니다. 자세히 보면 위태위태하게 매달려 있는 본새가 되려 애처로울 지경입니다. 한 때 잘 나가던 낙엽들이었을 겁니다. 봄이면 깨어나는 새싹을 보라고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여름이면 햇살을 피하라고 불러 모으며 가을이면 색이 곱다고 온 국민을 불러 모으던 한때 잘나가던 나뭇잎이었는데 곧 섞어 거름이 될 겁니다.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지금 이렇게 한껏 열정에 넘쳐, 세상 모든 것 위에 위용을 부리며 살아가지만 언젠가는 마지막 생명을 빨갛게 노랗게 불태우다 떨어지는 낙엽처럼 그렇게 땅에 떨어지고 말 한 생을 살아갑니다. 한 때 잘 나가던, 또 잘나가는 우리라도 저 처량한 나뭇잎처럼 매 순간 죽음과 직면하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사실 죽음과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은 저 먼일에 다가올 두려운 사건이 아닙니다. 태어남이 있듯 삶의 소중한 한 부분입니다. 도리어 내가 죽음과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적이고 괴로운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너무나도 소중하게 만들어 줍니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은 지금 순간순간에 내가 살아있는 기쁨과 감사를 느끼게 해줍니다. 지금 여기서 미사를 봉헌하며 하느님께 찬미를 드림에 감사를 드릴 수 있는 원천이 됩니다.

내가 죽음과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은 또한 내 삶을 구속하는 수많은 것들로부터 자유롭게 만들어줍니다. 복잡한 인간관계 안에서 지지고 볶고 싸우는 것들, 혹은 삶의 목표에 대한 수많은 실패와 좌절들도 죽음 앞에서는 결코 대단한 것들이 아닐 겁니다. 하느님 대전에 섰을 때 과연 무엇이 중요하겠습니까? 싸우고 다투고, 울고 어둠 속에 있기보다는 한순간이라도 진정 행복한 삶, 빛 속에서 살아야겠지요.

내가 죽음과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은 더불어 나를 머물러있지 않게 만들어줍니다. 지금 숨 쉬는 이 순간과 만나고 있는 모든 인연이 너무나도 소중하고 감사한 것들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표현하도록 하고 움직이도록 만들며 지금 바로 사랑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오늘 자캐오의 모습을 보면서 저 자신을 바라봅니다. 자캐오는 예수님을 만남으로 인하여 지금 바로 그 순간에 자신이 가진 것들을 포기하는 결단을 내리고 예수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갑니다. 예수님을 만났다는 것은 세상 무엇도 그분 앞에서 그분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겠지요. 죽음 이후를 보았고 느꼈을 겁니다. 저 역시도 지금 이 순간부터 자캐오처럼 변화되는 삶을 살고 싶다 외쳐봅니다. 하지만 자캐오처럼 자기 소유를 버리지 못하고 너무나 많은 것을 쥐고 살아가려 하므로 고백과 다르게 모순적인 삶에 허덕이고 맙니다.

자캐오처럼 지금 당장 그렇게 살아가도록 노력하고 변화되고 싶습니다. 그렇게 누가 알아봐 주지 않게 떨어진 낙엽이 되었을지언정, 지금 당장 사랑하고 지금 당장 계획한 것을 실천하고 지금 여기서 기도하며 살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순간, 순간의 변화를 이루어 내는 은총을 청하면서 한 주간도 복된 하루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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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구 김도훈 라파엘 신부
2016년 10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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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예수님을 만나러 달려가는 자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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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지나가고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는 날씨입니다. 이제 곧 1년이 지나겠구나 하는 이 시간에 교회의 1년 또한 막바지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캐오의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자캐오는 세관장이면서 부자였기에, 많은 사람들이 싫어하고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도 유명한 예수님을 보고 싶어 했고 군중들과 함께 섞여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눈을 가렸고, 자캐오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달려가 돌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가 한 번이라도 예수님을 보길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런 자캐오에게 예수님께서 먼저 말씀을 건네십니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사람들은 비아냥거렸지만, 자캐오에게 예수님의 말씀은 축복이었습니다. 그 한마디에 자캐오는 예수님께 회개로 응답하며 대답합니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자캐오의 이야기는 많은 것들을 느끼게 하는 말씀입니다. 오늘은 그중에서 자캐오가 예수님의 선물을 받을 수 있었던 것에 대해 나누어 볼까 합니다. 자캐오에게 손을 먼저 건네신 분은 예수님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자캐오는 회개를 할 수 있었죠. 하지만 그렇게 손을 건네시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자캐오는 예수님을 만나러 왔고, 거기서 바라볼 수 없자, 예수님을 만나길 간절히 바라며 달려가 예수님을 볼 수 있는 곳을 찾아갑니다. 만약 자캐오가 군중 속에 가려 그냥 포기했다면, 자캐오는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러 오고, 예수님을 바라보기 위해 달려갔기에 자캐오는 예수님의 선물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요? 우리 모두, 예수님을 만나러 이미 와 있습니다. 세례를 받았고, 예수님께서 걸어가시는 길을 함께 걸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캐오의 눈을 가로막고 있던 사람들처럼, 우리의 눈앞에는 세상의 유혹과 욕심들이 서 있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 또한 자캐오처럼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자캐오가 그랬던 것처럼 이제는 달려가야 할 때가 아닐까요?

주님께서 진정으로 바라시는 것은 회개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자캐오가 그랬던 것처럼 이번 한 주간 예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세상의 유혹과 욕심을 지나 예수님을 만나러 달려가 보시길 바랍니다. 저 또한 우리 모두 지치지 않을 은총을 주님께 청하며, 함께 예수님께로 달려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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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구 한승진 베드로 신부
2019년 11월 3일
  |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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