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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부활 에 대한 확신과 희망
조회수 | 62
작성일 | 19.11.06
[전주] 부활 에 대한 확신과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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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다가오고 또한 맞이해야 한다. 사람은 죽어서 어떻게 될 것인가? 사람은 과연 죽음으로써 모든 것이 끝나고 마는 것인가? 아니면 어떤 새로운 삶이 이어지는가? 참으로 궁금하고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오늘 복음에서 사두가이들은 자기들의 평소 주장대로 사람은 죽음으로써 모든 것이 끝나고 부활은 없다고 하면서 예수님의 의견을 묻는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명쾌하게도 부활 후의 하느님 나라에서의 삶은 이 세상의 삶과 그 본질을 달리 한다는 말씀이었다. 즉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간다. 그러나 저 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 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하늘나라에서는 모두가 다 같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하느님과 함께 영원한 행복과 완전한 평화를 누릴 뿐이라는 말씀이다. 그리고 오늘 제1독서에서는 유대인을 박해했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왕 치하의 유대인들이 용감하게 부활에 대한 신앙으로 율법을 지키다가 죽어가는 장면이 묘사되었다.

한 어머니와 일곱 형제들은 모두 한사람씩 왕 앞에서 온갖 육체적인 형벌을 당하면서도 즉 혀를 잘리우고 손발이 잘려지고 온갖 고문으로 고통을 받으면서도, 그리고 마침내 죽음을 당하는 아들들을 보면서도 그리고 자신도 결국엔 그러한 잔인한 방법으로 죽어가게 될 것을 눈으로 목격하면서도 의연하게 하느님의 율법을 지키고 죽음을 초연히 받아들일 수 있었던 용기는 바로 부활에 대한 강렬한 희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모든 순교자들은 다 부활에 대한 확신과 희망이 있었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세계적으로 순교자들의 숫자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우리 그리스도교가 진출한 곳이면 어디에서나 박해와 순교는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현세의 부귀영화와 사후의 영원한 행복을 놓고 어느 쪽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는지 그것이 바로 우리 신앙인의 척도이다. 현세의 만족을 위해서 영원한 행복을 포기하면서 살고 있는지, 아니면 사후의 영원한 축복을 위해서 현세의 물질에 대한 지나친 욕심과 육신의 쾌락에 대한 허황된 욕망을 버리고 사는지가 믿음의 척도라는 것이다.

하느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현세에서의 찰나적인 행복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 부활의 신앙이다. 물질에 대한 지나친 탐욕 때문에 이웃에 대한 사랑이 차단되고, 육체의 허황된 욕망 때문에 윤리 도덕이 무너진다면 그것은 분명 부활을 거부하는 매우 어리석은 삶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 모두 부활에 대한 확신과 희망을 갖고 오늘을 성실하게 살아가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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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박기준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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