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주일강론 (다해)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51 23.6%
[의정부] 감동을 주시는 왕
조회수 | 69
작성일 | 19.11.22
[의정부] 감동을 주시는 왕

---------------------------------------------

우리나라에서 가장 존경을 받는 왕 중 하나인 세종대왕은 당시 여성들에게 출산휴가를 100일이나 주었다고 한다. 출산 전에도 한 달의 휴가를 주었고, 남편에게도 30일이라는 휴가를 주었다고 전해진다. 또한 7년간 가뭄이 들자 신하들이 말려도 3년간 광화문 앞 초막에서 솥을 들고 백성들을 먹였다고 한다. 참으로 어진 왕이 아닐 수 없다.

무릇 왕이란 백성들의 배고픔을 해결해 주는 것이 제일 첫 번째 일이라고 했던가! 모든 백성을 다 배부르게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백성을 위하는 왕의 어진 마음과 행동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존경을 품게 한다. 이런 왕 밑에 있는 백성들은 자신들이 비록 배부른 상태는 아닐지라도 희망을 잃지 않고 힘을 내어 살아갈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진정한 왕이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해결해 주시고 계신가? 그분을 섬긴다고 해서 물질적인 배고픔이 다 채워지던가? 교회에서는 예수님을 우리의 진정한 왕이심을 고백하고 ‘주님(퀴리오스)’이라는 호칭을 드린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은”, 즉 세상 만물을 다스리는 전권을 지니신 분이시라는 고백이다.

일단 그분의 사형 죄목부터 예사롭지 않다. 억지 죄목의 명패인 ‘유다인의 왕 나자렛 예수’. 허나 왕이신데도 불구하고 그분의 스타일은 왕의 모습과는 영 거리가 멀다. 평생 가난 속에서 살다가 빈손으로 후계자도 없이 죽으셨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만을 믿으며 죽도록 사랑하고 죽도록 봉사만 하시다가 돌아 가셨다. 그저 예수님에게는 하느님과 인간이 모든 것이었고 전부였다. 심지어 병들고 죄 많은 인생들과 어울려 지내시다가 억울한 누명으로 비참한 최후를 마치셨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당신을 죽이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시며 아버지 하느님께 그들을 용서해달라고 청하기까지 하셨다. 예수님은 너무나도 보잘 것 없고 슬픈 왕, 그저 초라한 ‘고난받는 야훼의 종’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분은 정말 진정한 왕이셨다. 물질의 배고픔을 채워주시는 왕은 아닐지라도 더 중요한 영혼의 목마름을 채워주시는 분이셨기 때문이다. 세상이 슬프지만 그 슬픔 때문에 위로받는 나라를 보여주셨고, 이 세상이 괴롭지만 그 고통 때문에 평화롭고 행복한 나라, 즉 ‘하느님 나라’를 보여주셨다.

예수님은 참 감동을 주는 왕이셨다. 가장 낮은 자로 가장 낮은 사람들을 섬기는 왕이셨다. 죽음 뒤에 참 생명이 있음을, 고통 안에 참 행복이 있음을, 절망 안에 희망이 있음을, 눈물 뒤에 미소가 있음을 보여 주신 왕이셨다. 그분은 인간 삶의 의미를 채워주시는 감동의 왕이셨던 것이다.

마지막까지 자비와 사랑을 보여주셨던 이 위대한 왕에 사로잡힌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외쳤다. “그리스도는 나의 생의 전부입니다”. 진정 나의 주인은 누구인가? 나 자신인가? 아니면 우리가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예수님인가? 물질적인 것들을 채워줄 왕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삶의 의미를 채워 줄 왕을 선택할 것인가? 우리의 삶 전체를 걸고 결단을 내려야 할 시기가 바로 지금이다.

--------------------------------------------------------

의정부교구 임용훈 티모테오 신부
451 23.6%
[의정부] 왕? 시대착오?

-------------------------------------------------

쓰기 싫은 이름들이지만, 이 이름들을 나란히 적어본다. 박근혜, 김정은, 트럼프. 하아...

우리나라와 남북의 통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이름들인데, 하나같이 모자라 보인다. 희망은 사라지게 하고 걱정만 앞서게 하는 이름들이다. 답답하고 참담함이 진해져만 가는 오늘, 우리의 전례력은 그리스도 왕 대축일을 가리킨다. 지금이 때가 어느 때인데 어째서 왕이라는 시대착오적인 개념을 아직도 고집하느냐는 생각도 있겠지만, 이렇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권력을 갖기 위해 온갖 술수로 왕의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니라, 가장 낮은 모습으로 찾아온 왕이라면...
스스로 인정받기 위해 나팔을 불어대는 왕이 아니라, 진정한 왕으로서 백성들 사이에 살기 위해 오히려 그 신분을 비밀에 부쳐 두었던 왕이라면... 뭐든지 지시하고 명령하며 마음껏 권력을 휘두르는 왕이 아니라, 오히려 봉사하는 왕이라면...
자신이 옳고 똑똑하니 모두 내 말을 들으라 강요하는 왕이 아니라, 백성의 발을 씻어주는 왕이라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키는 왕이 아니라, 우리에게 천국을 알려주기 위해 머리 둘 곳조차 없이 살다가 결국은 십자가의 죽음까지 선택한 왕이라면...
자신의 실수 앞에서 이런저런 말을 궁리하며 도망갈 길을 찾는 왕이 아니라, 자신의 백성을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떤 것이든 단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선택할 왕이라면...

지난 연중시기 전체를 통해 우리가 묵상하고 따랐던 그리스도는 바로 이런 왕이시다. 왕이란 존재가 먼 옛날부터 기름 부어 세운 권력과 권위의 상징이라 하여도, 그리스도 왕과 저 위의 이름들을 비교해보라. 누가 더 권위적인지. 누가 더 시대착오적인지. 누가 지금의 이 세상을 이끌어 가는데 더 적합하고 잘 어울리는지. 저 위의 이름들은 통일과도, 정의와도, 사랑과도 멀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왕이시고

나는 그 나라의 아무 권한 없는 백성이어도 하나 억울하지 않다. 하느님으로부터 기름부음 받은 그리스도가 왕이시라는 것 때문에 전혀 답답하지도 고리타분하지도 않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겨주셨습니다.”라는 바오로 사도의 둘째 독서 말씀에 더 희망을 걸게 된다.

현재의 그 어떤 권력과 이름보다 훨씬 더 돋보이시는 희망이시다. 그래서 나는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시”도록 그분의 백성으로서 대한민국을 위해, 또 남북의 통일을 위해 오늘도 기도하고 사랑하련다.

------------------------------------------------

의정부교구 권찬길 세례자 요한 신부
2016년 11월 20일
  | 11.22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783   [수도회]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  [8] 3432
782   [서울] 진정한 왕직은 봉사직  [5] 2943
781   [인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가장 위대한 로맨스입니다.  [3] 3361
780   [수원] "천국 왕의 고난과 죽음"  [6] 2948
779   [춘천] 겸손한 마음을 가진 자만이...  [3] 3032
778   [대구] 왕이신 예수님과 부활  [2] 2866
777   [마산] 왕이신 그리스도  [4] 3048
776   [안동] 봉사의 삶  [4] 2840
775   [부산]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왕으로 모신다는 것의 의미  [6] 3433
774   [광주] 예수, 왕중의 왕  3092
773   [전주] 예수님은 왕이신가?  86
772   [대전] 우리의 왕은 이렇다.  [2] 3080
771   [청주] 감사의 생활  [1] 70
770   [원주]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루카 23, 42)  [3] 2854
  [의정부] 감동을 주시는 왕  [1] 69
768   [군종] 왕 - 섬기는 사람  [1] 75
767   (백) 연중 제34주일 (그리스도왕 대축일) 독서와 복음  [4] 2653
766   [수원] 정해진 시간과 일들 안에서  [4] 2519
765   [대구] “희망의 징조"  [3] 2019
764   [의정부] “예수님 한 분만 이상하다”  [3] 665
763   [인천] “예수님은 ‘보스(boss)’인가 ‘리더(leader)’인가?”  [5] 2546
762   [수도회] 보라, 내가 곧 간다. ...(묵시 22,12)  [10] 2871
761   [부산] 하느님의 미래를 택한 사람은 하느님의 현재를 삽니다  [4] 2756
760   [마산] 교회의 생명력은 평신도에게 있다.  [3] 2507
759   [서울] 부활을 믿는 사람  [3] 2338
758   [안동] ‘복음을 전하는 발걸음’  [1] 1185
757   연중 제33주일 세계 가난한 이의 날  151
756   [춘천] 신념  [3] 2327
755   [원주] 재난의 시작  62
754   [대전] 착한 교우들에게 예수님의 측은지심을  [1] 2641
753   [전주] 종말 전의 재난  [2] 65
752   [청주]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1] 70
751   (녹) 연중 제33주일 독서와 복음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1] 2126
750   [수도회]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5] 1504
749   [수원] 그리스도의 몸으로 사는 삶  [2] 2363
748   [서울] 부활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3] 2309
747   [마산] 영세한 미신자(未信者)가 많다.  [1] 2288
746   [대구] 부활의 삶, 지금 여기서 시작되고 있다.  512
745   [인천]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  [4] 2844
744   [부산] 알 수 없는, 그래도 좋은 하느님 나라  [2] 2592
1 [2][3][4][5][6][7][8][9][10]..[20]  다음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19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