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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예수님은 왕이신가?
조회수 | 86
작성일 | 19.11.22
[전주] 예수님은 왕이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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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력으로 볼 때 오늘은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는 대축일로 교황 비오 11세께서 1925년에 제정하셨다. 당시 무신론과 세속주의로 발생된 인권 유린과 억압, 심한 악의 세력에 맞서 그리스도의 왕권이 가정과 사회 그리고 국가에 미치어 올바른 자유와 질서, 평화와 일치를 이룩하자는 이유에서였다. 처음에는 10월 마지막 주일에 거행되었다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후 연중 마지막 주일로 바뀌었다. 시작이면서 동시에 전례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날도 역시 주님께 속한다는 취지에서 이 축일이 전례력의 마지막 주일로 정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지상 생애 동안 예수님은 정말 왕이었던가? 예수님은 공생활 동안 인간적이고 세속적으로 지나치게 바라는 군중의 메시아에 대한 열광을 받아들이시지 않았다. 예수님은 당신을 경쟁자로 생각하던 헤로데 영주의 권위에도 반항하지 않으셨고(루카 13,31-33; 참조: 루카 9,7-8), 사람들이 세금을 바쳐야 했던 로마 황제의 권위에도 반대하지 않으셨다(루카 20,20-26). 그러나 예루살렘 입성 때, 그분은 군중의 환영에 한 번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셨다. 다만 그분은 즈카르야의 예언(마태 21,5; 참조: 즈카 9,9)에 맞추어 겸손한 차림으로 나타나셔서 사람들이 당신을 이스라엘 왕으로 환호하는 것을 허락하였다(루카 19,38). 그러나 그 사건은 바로 그분의 수난의 시간을 앞당기게 하였다. 마침내 당신 수난이 시작되는 순간, 그분은 당신 제자들에게 순수한 종말론적 관점에서 당신의 왕국에 대해 말씀하셨다(루카 22,29-30).

최고의회에서 예수님에 대한 심문은 메시아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신분에 관한 것이었던 반면에, 빌라도의 심문은 그분의 왕권에 관한 것이었다. 이때 복음사가들은 그분의 수난이 그분의 왕권을 드러내 보이는 역설적인 기회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빌라도가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루카 23,3)라고 질문하자, 예수님은 그 호칭을 거절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요한 18,36)라고 명확히 밝히심으로써 당신이 황제의 경쟁자가 아님을 드러내셨다(루카 23,2 참조). 그러나 유다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메시아”,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된 이”라고 빈정거리는 행위로써(루카 23,35), 로마 군사들은 “유다인들의 임금”이라고 부르며 조롱하는 그 행위로써(루카 23,36-37) 그분의 왕권을 드러냈다.

“유다인들의 임금이다.”(38절)라는 십자가의 죄명패도, 그분의 양쪽에 십자가형을 받았던 두 명의 죄수 중 “메시아”(39절)라고 모독하는 한 죄수의 모독 행위도 결국 그분의 왕권을 드러내 주었다. 신앙의 눈으로 볼 줄 아는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의 왕권이 십자가 위에서 명백히 나타나고 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낙원으로 들어가는 문의 열쇠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 문을 열었다. 바로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구원하시는 임금’으로 당신을 드러내셨다. 회개한 도둑은 그분의 왕국의 참된 모습을 깨닫고, 예수님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42절)라고 간청하였던 것이다.

사실 예수님은 현세에서 왕위에 오르시기는커녕 당신 백성들로부터 배척당하셨지만, 당신의 부활과 마지막 날 당신이 다시 오시는 그때에 왕의 영광을 누리실 것이다(루카 19,12-15.27 참조). 그분은 이미 당신의 지상 생활 시초부터 신비스런 방식으로 왕이셨다(루카 1,33). 그러나 ‘이 세상의 것이 아닌’(요한 18,36) 이 왕권은, 지상의 어느 임금의 왕권도 경쟁할 수 없다. 바오로 사도가 말하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지상을 초월한 우주의 임금이시다. 하늘과 땅,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왕권과 주권, 권세와 권력이든, “만물이 그분을 통하여”(콜로 1,16) 창조되었다.

“교회의 머리”이시며, 만물의 “시작이고 마침”(묵시 22,13 참조)이신 그분의 십자가로 온 세상에 평화를 이루시고 하느님과 우리를 화해시켜 주셨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해 내시어,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겨”(콜로 1,13) 주실 때에 이 빛의 나라에서 받는 상속의 몫을 차지할 자격을 얻게 될 것이다. 그래서 주님이요 왕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전례력의 정점일 뿐 아니라 세상 나그네길과 인생의 목적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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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안봉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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