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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조회수 | 146
작성일 | 22.05.19
[대전]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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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6년 임치백은 감옥에서 세례를 받았다. 세례식의 집전자는 김대건 신부였고, 둘은 모두 수인(囚人)이 된 상태였다. 누추한 감옥의 초라한 예식이라도 천사들의 찬송가만큼은 하늘을 온통 울렸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하루는 판관이 임치백 요셉에게 묻기를‘십계명을 대어 보라’하였단다. 낯선 기도문이 아직은 입에 붙지 않아 서툰 것이 당연할진대, 판관이 조롱하며 비난하자 요셉이 이와 같이 대꾸하였다. “자식이 유식해야만 부모에게 효도할 수 있단 말입니까? 내 비록 무식하지만 천주께서 내 아버지이심을 잘 알고 있소이다.”자신의 대답처럼 요셉은 천주를 아버지로 여기며, 그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순교로 고백했다.

성경은‘계명’과‘말씀’을 같은 뜻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탈출기에서 하느님의 말씀들이 십계명으로 드러난 것을 보면 당연한 이치라 하겠다. 그러니 계명을 따르는 것은 말씀을 지키는 것이고, 복음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것은 곧“나(예수님)를 사랑하는 일”이다. 기도문과 계명들을 입버릇처럼 외고, 성경을 열심히 공부해서 말씀의 뜻을 충분히 깨달으려는 노력이 그래서 귀한 것이다. 다만 우리의 힘만으로는 그 깊이를 다 헤아릴 수 없다는 겸손함을 간직하면서, 이 귀한 노력들이 실현될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지게 된다. 이것이 오늘 복음이 말하는 평화가 아닐까. 적당한 타협으로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그런 평화가 아니라, 사랑이 실현됨으로써 그분의 뜻이 완전하게 이루어지는 현실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순교자는 평화를 누리고 있다. 비참한 모양으로 목숨까지 빼앗기는 치욕을 겪었어도 거기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주님께 대한 사랑으로 그분의 말씀을 지켜 가기로 다짐을 하자. 뜻하지 않게 닥쳐오는 어려움이 우리의 희망까지 장악하지 못하도록 성인들의 모범과 전구에 의탁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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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김성대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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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우리는 희생자이자 공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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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학교에 한국학을 가르치는 러시아출신 ‘박노자’(한국 이름, 본명:Vladimir Tikhonov) 교수가 있습니다. 한국의 역사를 공부하며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평을 가진 그가 칼럼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OOO 시절 저곡가 정책에 신음하고 군대에서 실컷 구타당했음에도 OOO를 비판한 필자에게 호통을 쳤던 농촌 아저씨. 외유나 일삼는 국회의원들이 더럽고 밉다 하면서도 데모하는 민중을 가리켜 아주 역적들이야, 잡아가서 잘 패야 정신 차릴 거야, 말하던 택시기사 아저씨….’ 우리는 이들 안에서 ‘체제의 피해자임에도 체제의 사고를 받아들여 수구적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기층 민중의 모습에서 희생자의 측면과 공범의 측면을 쉽게 구별할 수 있는가? 이들이 과연 지배자들에게 끌려 다니는 처지에서 벗어나 계급적인 연대의 눈으로 세계를 보는 생각하는 백성이 될 수 있을까?’ 참으로 공감되는 표현입니다.

102차 세계 이민의 날을 맞아 위의 박노자 교수의 비판을 우리 신앙인들에게 이렇게 적용시켜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국가가 나를 보호하지 못한다는 불안감이 팽배한 현실에 살면서 세월호 사건을 향해 그만 잊자고 말하면서도, 조선족 중국인 오원춘 살인 사건을 두고는 경악을 금치 못하며 모든 조선족을 추방해야 한다고 말하는 우리. 얼마 전 통과된 테러방지법으로 인해나 자신이 잠정적 테러범으로 억울하게 지목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모른 채, 132명이 사망한 파리 테러 사건을 계기로 모든 외국인을 이 법으로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는 우리. 그 위험성으로 전 세계적으로 점점 사양세인 원자력 발전소를, 정작 우리는 많이 가지고 있어 자칫 일본 후쿠시마처럼 사고로 인해 살지 못하는 땅이 되어 어쩌면 우리도 난민이 될 수 있음에도, 정작 살기위해 국내로 이주해 온 난민에 대한 인정률은 세계 평균인 30%도 안 되는 고작 2%에 머무는 우리나라.

이렇듯 우리는 나 자신도 정치라는 지배자, 매스 미디어 라는 지배자, 사상과 이념이라는 지배자에게 끌려 다녔던 희생자였음을, 동시에 그러한 지배자 앞에서 침묵하며 그들의 행동에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공범이었음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교황님께서는 2016년 이민의 날의 주제를 ‘이민과 난민의 도전에 대한 자비의복음의 응답’으로 정하시며, “이주의 흐름은 이제 구조적인 현실이기에 계획을 세워 현재의 위급 상황에 대처하는 것이 우리가 당면한 최우선 과제가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면에서 교황님께서 권고하신 ‘계획과 대처’의 핵심에는 ‘자비의 복음’이 있어야 하고, 우리신 앙인은 그 복음으로 이주민과 이주 현실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뜻으로 이를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라도 우리는 우리가 세상 체제와 지배자들의 희생자였음을 자각하며 ‘공범’이 되지 않기 위하여 마스크를 벗고 외쳐야 하겠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모든 이들에게 똑같이 베풀어진다고, 모든 이주민과 난민들도 그분의 자비와 사랑을 받아 마땅한 소중한 인격이라고, 그리고 우리 신앙인은 하느님을 아버지라 고백하는 사람으로서 형제인 그들의 인격을 외면해서는 안된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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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이진옥 미카엘 신부
2016년 5월 1일 주보에서
  | 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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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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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대전 신학교에서 재직할 때 일입니다. 학교 행사를 마치고 신학생과 교수 신부님 모두가 함께 식당에 모여 아가페를 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때 한 신학생이 마이크를 잡더니 “김한승 신부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신부님, 다롱이를 바라보는 그런 눈빛으로 저희들도 한 번만 바라봐 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자리에 함께한 모두가 크게 웃었습니다.

다롱이는 품성이 아주 좋다며 어느 지인이 저에게 선물해 준 진돗개 강아지였습니다. 정성을 들여서 돌보던 저의 눈빛이 애정으로 가득 찼었나 봅니다. 방에 돌아온 저는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신학교 신부님들이 신학생에게 갖는 애정은 부모가 자식에게 갖는 애정만큼이나 크고 간절합니다. 나보다는 더 나은 사제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 마음을 겉으로 잘 표현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사랑은 마음에만 담아두지 않고 겉으로 표현해야 완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할아버지, 아버지들이 그랬듯이 무뚝뚝한 모습이 모두는 아닌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요한 14,23)라는 말씀으로 ‘진실한 사랑이란 계명에 대한 충실한 봉사’라고 규정하셨는데, 이 말씀은 사랑하는 마음을 따뜻한 말로 표현하고, 배려 있는 행동으로 실천하는 데 주저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랑을 사려면 얼마나 많은 대금을 지불해야 하겠습니까? 만일 빵을 사려고 하면 동화를 줍니다. 토지를 구입하려고 하면 금화를 줍니다. 그런데 사랑을 사려고 하면 자기 자신을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랑의 값은 당신 자신입니다.”

우리 마음 안에 있는 그 큰 사랑의 마음을 감추지 말고 많은 사람에게 마음껏 나누어 주며 살면 참 좋겠습니다.

사랑의 마음을 십 분의 일만이라도 겉으로 표현하기만 해도 모두가 행복해질 것 같습니다. 함께 사는 가족에게 표현하고, 신자들끼리 표현하고, 이웃들에게 표현하고, 소외되고 힘들게 지내는 사람들에게도 표현하고, 그렇게 지내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요한 14,23)이라는 예수님의 약속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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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김한승 라파엘 신부
2022년 5월 22일 주보에서
  | 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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