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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조회수 | 111
작성일 | 22.05.19
[전주]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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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3월 25일 일요일 고(故) 정주영 회장의 영결식이 서울 중앙 병원에서 있었습니다. 영결식이 거행되던 중 생전에 그분이 남긴 말들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그 장면들 중 인상 깊게 보았던 것은,

한 기자가 “몇 세까지 살고 싶으십니까?”라고 묻자, 고(故) 정주영 회장이 웃으면서 “백오십세까지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대답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생(生)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여주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대답을 들으면서 저는 몇 년 전 소 떼를 이끌고 북한을 방문하던 고(故) 정주영 회장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 때 저는 지팡이를 짚고 주변 사람의 부축을 받아가며 걸어가는 정주영 회장의 모습을 보며 ‘얼마나 하루하루 가는 것이 아까울까? 그 많은 재산과 권력을 뒤로한 채,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하루하루 지나가는 것이 빠르고 아쉬울까’하는 생각을 한 기억이 납니다. 물론 당시나, 또 돌아가시기 전이나 고(故) 정주영 회장의 심경이 어떠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백오십세 까지만 살았으면…”이라고 대답하신 것으로 보아 모든 것이 아쉬웠을 것입니다.

자신의 재산으로 ‘시간’을 살 수만 있다면 자신의 전 재산을 주고라도 ‘시간’을 사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영원히 살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이면 누구나 한 번 쯤 가져보는 소망일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하나인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평화를 주기는 주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평화와는 다르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소망들 중 하나는 평화일 것입니다. 평화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한 평화를 늘 갈망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님께서는 ‘평화를 주고 간다. 그런데 이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무엇을 향해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가르침을 주시는 것입니다.

‘백오십세’ 아니 불로장생을 위해 몸에 좋은 것이라면 장소 불문하고 찾아 나서고,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자녀들에게 몸에 좋은 보약, 좋은 학원, 고액의 과외는 시키지만, 학원 때문에 첫영성체를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도 시키지 못하는 부모라고 한다면, 결국 우리는 자녀들에게 현세적인 작으마한 행복은 줄수 있을지 모르지만(그것도 장담할 수 없지만)영원한 생명은 결코 자녀들에게 물려 줄 수는 없을 것입니다.이제 우리는 주님께서만 주시는 평화를 얻어 누리기 위해 우리의 눈을 주님께로 향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남겨주신 그 평화를 만나기 위해 노력하는 한 주간 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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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김정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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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시작 : 경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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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여러분은 그 사람에게 무엇을 해주고 싶습니까? 아마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묻고,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 위해 많이 노력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갖고 싶던 선물을 사주거나 혹은 좋아하는 곳으로 여행을 가서 좋아하는 음식을 함께 먹는 일들처럼 말입니다. 사랑한다면 상대방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들어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요청으로 제자들에게 당신의 말을 들어주기를 바라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요한 14,23) 사랑하는 제자들 그리고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었기 때문에 이렇게 요청한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도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그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요한 15,7). 사랑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말을 듣고, 그들의 바람이 이루어지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예수님처럼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들어주기보다 자신의 말을 더 많이 뱉을 때가 있습니다. 또 상대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그럴수록 상대방 말을 듣지 않고 그 사람을 향한 시선도 거두어져, 결국 둘 사이의 관계는 단절되고 맙니다. 사랑과 평화가 아닌 갈등과 분열이 생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대화와 마찬가지로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들어줄 때,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들을수록, 그와 함께 살고 싶은 마음도 샘솟아 비로소 진정한 평화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은 그 자체로 퍼져나가려 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간도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분의 무한한 사랑을 느끼며, 주님을 향한 사랑이 더욱 깊어지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도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가서 그와 함께 살리라.”(요한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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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김두열 아우구스티노 신부
2022년 5월 22일 주보에서
  | 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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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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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요한 14,23ㄴ-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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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은, 바로 앞에 있는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주님, 저희에게는 주님 자신을 드러내시고 세상에는 드러내지 않으시겠다니
무슨 까닭입니까?(요한 14,22)”
이 질문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사도들과 신자들에게만 나타나시고
세상 사람들에게는 나타나시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라는,
부활 후의 상황에 대한 사도들과 신자들의 의문이 반영되어 있는 질문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증언에 의하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사도들을
포함해서 오백 명이 넘는데(1코린 15,5-8), 그들은 모두 신앙인들이었습니다.
신앙인이 아니었는데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아마도 바오로 사도가 유일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답변은 “나를 믿고 사랑하는 사람만, 나를 알아보게 된다.”
라는 뜻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가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는 사람이 예수님의 현존을 체험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아주 예외적이고 특별한 경우인데, 그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은 없었지만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열정이 뛰어난 사람이어서
특별히 선택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누구든지’라는 말은, 신앙인들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향해서 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 안에 현존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안 믿는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거나 부정합니다.>

“나를 사랑하면”은 “나를 믿고 사랑하면서 구원받으려고 노력하면”입니다.
“내 말을 지킬 것이다.”는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할 것이다.”입니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라는 말씀은,
하느님께서 충실한 신앙인들만 차별적으로 사랑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충실한 신앙인들이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고 체험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그에게 가서”라는 말씀은, 하느님과 예수님께서
충실한 신앙인들에게만 가신다는 뜻이 아니라, 충실한 신앙인들이
하느님과 예수님의 현존을 깨닫고 체험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삼위일체를 암시하는 말로 해석됩니다.)

“그에게 가서” 라는 말을,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면서
사람들이 당신을 사랑하는지 안 하는지 지켜보다가
당신을 믿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가신다는 말로 오해하면 안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어딘가에 계시다가 우리에게 오시는 분이 아니라,
이미 ‘모든 사람’ 안에 현존하시는 분입니다.
“그와 함께 살 것이다.”라는 말씀은, 우리 입장에서,
우리가 하느님, 예수님과 함께 살게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옳습니다.

<여기서 ‘지킬 것이다.’는 ‘지켜라.’로,
‘살 것이다.’는 ‘살아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는 “내가 부활해서 ‘모든 사람’ 안에
현존하는 것은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일이다.”입니다.
‘아버지의 뜻’은 ‘모든 사람의 구원’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믿음도 없고 사랑도 없어서 예수님의 현존을 모르거나
부정하는데, 그러면 믿는 사람들은 어떤가?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예수님의 현존 체험’을 하기는 커녕 ‘예수님의 부재’만
느낄 때도 있고, 버림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또 간절히 기도해도 아무 응답이 없을 때,
신앙에서 힘을 얻지 못하고 점점 지치게 될 때......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몹시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에게 “그래도 믿어라.”,
또는 “그래도 기도하여라.”라고 말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은
너무 무책임하고 성의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바오로 사도의 다음 말이 해답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로마 14,8ㄴ).”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필리 4,6-7).”

바오로 사도의 말도 결국 믿음 갖고 기도하라는 말인데,
믿음과 기도만 강조하는 것이 너무 상투적인 것 같고 식상하더라도,
사실 ‘믿음’과 ‘기도’만이 유일한 정답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요한 14,27).”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앞에서 인용한 바오로 사도의 말에 있는,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에 연결해서
묵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하면서’ 그 평화를 얻게 됩니다.
(‘기도하고 나서’가 아니라 ‘기도하는 동안’입니다.)
눈앞에 있는 어려움들이 금방 사라지지 않더라도, 기도하면서 얻는
평화를 통해서 우리는 그 어려움들에 맞설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게 되고,
그 어려움들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지혜를 얻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일시적인 진통제가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는 치료제입니다.
그 평화의 힘을 받아서, 우리는 우리를 괴롭히는
온갖 두려움과 불안감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 모든 상황을 간단하게 요약하는 말이
‘부활하신 예수님의 현존 체험’입니다.>

그 체험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에
바오로 사도는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와 같은 상황에 처합니다.
실망하고, 절망하고, 좌절하고......
바로 옆에서 예수님께서 함께 걷고 계시는데도 알아보지 못하고......
그 두 제자는 어떻게 눈이 열려서 예수님을 알아보고,
실망과 두려움에서 벗어나서 기쁨으로 가득 찰 수 있었을까?
예수님께서 인도해 주시긴 했지만, 성경 말씀을 깨닫고 믿었기 때문이고,
그리고 낯선 나그네에게 사랑을 베풀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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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송영진 모세 신부
2022년 5월 22일
  | 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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