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주일강론 (다해)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521 76.4%
[광주/제주] 가난한 이들이란 누구인가? ‘그들’이 아닌 ‘우리’!
조회수 | 43
작성일 | 22.11.14
가난한 이들이란 누구인가? ‘그들’이 아닌 ‘우리’!

--------------------------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2016년 ‘자비의 희년’을 마치며 “전 세계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가장 작은 이들과 가장 가난한 이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의 훌륭한 구체적 징표가 되기를(제1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 담화문 6항)” 바라시면서 연중 제33주일을 ‘세계 가난한 이의 날’로 선포하셨습니다. 벌써 올해로 여섯 번째 해를 맞이했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이번 세계 가난한 이의 날에 “부유하시면서도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우리가)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2코린 8,9 참조) 하셨다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빌어 우리를 초대하셨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올해 담화문에서 가난한 이들에 관해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팔을 걷어붙이고 직접 함께하여 우리의 신앙을 실천하는 것이지, 누군가에게 미룰 일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가난한 이들과의 만남은 우리가 지닌 수많은 걱정과 실체없는 두려움을 없애 주고, 삶에서 참으로 중요한 것, 곧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보물인 (거저 받은) 무조건적 참사랑에 이르게 됨을 일러주셨습니다. 그러기에 가난한 이들은 우리가 자선을 베푸는 대상이기 이전에, 우리를 불안과 피상성의 덫에서 해방되도록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임을 깨닫도록 당부하셨습니다(제6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 담화문 참조).

그러므로 가난한 이들은 헨리 나우웬 신부의 말처럼 교회의 중심입니다. 그들은 우리와 거리가 먼, 다른 부류라 여겨질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 곁에서 사랑받지 못하고, 거부당하고, 무시당하며, 학대받는 가족, 교우, 동료, 또는 우리 자신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가난한 이들이 우리와 거리가 멀든, 곁에 있든, 혹은 우리 자신이든 상관없이 서로가 손을 맞잡고, 약함과 열망을 고백하고, 용서하고 상처를 치유해주고, 주님의 식탁에 같이 앉아 빵을 나눌 때 비로소 진정한 교회가 이루어집니다. 그때에 우리는 가난한 이웃들이 바로 우리를 위해 가난해지신 예수님이심을 알아보게 됩니다”(누가 가난한 이들인가 참조).

형제자매 여러분!
“너희가 이 지극히 작은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에게 해 주었을 때마다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라는 주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우리를 위해 가난을 택하신 주님을 만나는 한 주간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

광주대교구 김민석 루도비코 신부
2022년 11월 13일 주보
521 76.4%
하느님 안에 사는 사람에게는
‘불길한 징조’는 없고 ‘부르심의 표징’만 있을 뿐입니다.

미래는 하느님 손안에

옛날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떤 상황이나 사건을 미래에 일어날 일과 연관 지어서 생각하곤 했습니다. 지금 일을 미래 일의 징조라고 보는 것이지요. 오늘날까지도 일이 잘 안 풀리거나 특별한 일이 있으면 사주나 운세, 점 등 ‘전문가’의 손을 빌려 미래의 안전을 도모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또는 돼지 꿈을 꾸면 복권을 사거나 짐승의 사체를 보면 소금을 뿌리는 등 ‘민간’에 전승되는 이론을 따라 알 수 없는 미래의 이득 또는 손해를 예상하며 행동하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전통을 따르는 사람들은 현재의 어떤 사건도 그 자체로 사람의 운명에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연도, 사람도 세상만사를 주관하시는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로마 8,28)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일들은 사람의 길흉에 관한 징조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하실 일의 표징입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께서 성전이 무너지고, 큰 지진이 발생하고, 기근과 전염병이 창궐하고, 예수님의 제자들과 그 가족까지 박해를 받고 죽임을 당하는 등 무서운 일들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언하시면서 어떤 특별한 대비책을 알려주시지 않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무슨 큰 액이 닥쳐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섭리 아래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것은 부적도 액막이도 아닙니다. 불건전한 호기심과 불안을 완전히 버리고, 머리카락 하나까지 살피시는 하느님 섭리의 손길에 모든 것을 맡긴 채 하느님 계명 길을 끝까지 걷는 힘, 그것뿐입니다.

---------------------------

제주교구 김경민 판크라시오 신부
생활성서 2022년 11월 13일
  | 11.15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842   그리스도와 대축일 성경 말씀 해설  [5] 311
841   [수도회]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  [14] 4057
840   [인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가장 위대한 로맨스입니다.  [5] 3873
839   [수원] "천국 왕의 고난과 죽음"  [6] 3404
838   [서울] 진정한 왕직은 봉사직  [9] 3394
837   [안동] 봉사의 삶  [5] 3247
836   [대구] 왕이신 예수님과 부활  [3] 3234
835   [마산] 왕이신 그리스도  [5] 3443
834   [부산]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왕으로 모신다는 것의 의미는?  [6] 3929
833   [전주] 예수님은 왕이신가?  [1] 509
832   [광주/제주] 예수, 왕중의 왕  [2] 3510
831   [청주] 감사의 생활  [3] 592
830   [대전] 우리의 왕은 이렇다.  [4] 3467
829   [군종] 왕 - 섬기는 사람  [2] 653
828   [의정부] 감동을 주시는 왕  [2] 473
827   [원주]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루카 23, 42)  [4] 3280
826   [춘천] 겸손한 마음을 가진 자만이...  [4] 3483
825   (백) 연중 제34주일 (그리스도왕 대축일 - 성서주간) 독서와 복음  [5] 3131
824   연중 제33주일 성경 말씀 해설  [5] 163
823   세계 가난한 이의 날 교황과 한국주교단 담화문  [1] 839
822   [수도회] 보라, 내가 곧 간다. ...(묵시 22,12)  [10] 3483
821   [전주] 종말 전의 재난  [2] 566
  [광주/제주] 가난한 이들이란 누구인가? ‘그들’이 아닌 ‘우리’!  [1] 43
819   [대구] “희망의 징조"  [3] 2458
818   [수원] 정해진 시간과 일들 안에서  [4] 2927
817   [인천] 예수님은 스포일러(spoiler)  [4] 2967
816   [서울] 부활을 믿는 사람  [4] 2751
815   [마산] ‘차라리’와 ‘그래도’  [1] 2896
814   [부산] 하느님의 미래를 택한 사람은 하느님의 현재를 산다  [5] 3235
813   [청주]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2] 583
812   [대전] 착한 교우들에게 예수님의 측은지심을  [2] 3102
811   [군종] “그리스도인에게 종말은 끝이 아니라 희망입니다.”  133
810   [의정부] “예수님 한 분만 이상하다”  [4] 1111
809   [원주] 재난의 시작  474
808   [춘천] 신념  [4] 2770
807   (녹) 연중 제33주일 독서와 복음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6] 2651
806   연중 제32주일 성경 말씀 해설  [4] 137
805   [수도회]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9] 1962
804   [수원] 그리스도의 몸으로 사는 삶  [4] 2721
803   [인천]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  [5] 3223
1 [2][3][4][5][6][7][8][9][10]..[22]  다음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23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