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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자캐오! 나무에서 (빨리)내려와!
조회수 | 2,175
작성일 | 07.11.10
인간의 죽음에 대한 연구에 일생을 바쳐 미국 시사 주간지 Time지의 20세기 100대 사상가의 하나로 꼽히는 엘리자베스 쿼블러로스는 임사(臨死)체험을 한 70세 되던 해 쓴 자서전 ‘생의 수레바퀴’에서 다음과 같이 적습니다. “사람들은 30년 이상 죽음에 대한 연구를 해온 나를 죽음의 전문가로 여기는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은 정말로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 같다. 내 연구의 가장 본질적이며 중요한 핵심은 삶의 의미를 밝히는 일에 있었다.”

인간은 태어난 그 순간부터 죽어갑니다. 지금 우리는 살고 있다고 말 할 수 있지만, 동시에 죽어가고 있기도 한 것입니다. 죽음은 미지의 영역이기에 인간에게는 여전히 두려움으로 남아있고, 죽음이 있기에 인간은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으려는 노력을 합니다. 그래서였는지 세관장이며 부자였던 자캐오는 주님을 만나기 위해 돌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갔는지도 모릅니다. 군중에 가려 또 키가 작아 예수를 볼 수 없었던 자캐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가치 있게 보이려 했지만 정작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알지 못했던 자캐오,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만 하는 일’에 사로잡혀 돈과 지위, 그리고 그럴싸한 직업에서 의미를 찾으려 했던 자캐오, 그는 어쩌면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기를 원했고, 자기자신과 더 평화롭게 지내기를 바랐는지도 모릅니다. 자캐오는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두려움과 후회와 싸우고, 의미와 사랑과 용기를 추구하며 상처와 상실, 덧없이 흘러가는 시간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는 자신에게 있는 부정적인 면을 인정하고 나무로 올라갔습니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역할을 벗어 던집니다. 모든 순간을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려는 가면을 벗어 버리고 진정한 자신을 찾아, 진솔한 불평을 늘어놓으며 진정한 자신이 되는 중간 지점을 찾아갑니다. 그런 자캐오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자캐오야, 빨리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너와 함께 있고 싶다.” 이 말씀이 자캐오에게는 생명의 말씀이었습니다. 나무에서 내려온 자캐오는 지난 삶을 반성하고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재산을 주님 앞에 내려 놓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름다운 사람들은 실패를 알고, 고통을 겪고, 상실을 경험하며, 깊은 구덩이에 빠져 길을 찾아 헤맨 사람들이며 그들은 동정심과 따뜻한 마음, 사랑과 배려로 가득한 사람입니다. 그들은 삶에 대한 이해와 감수성, 감사의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사람들은 결코 우연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너에게 구원이 내렸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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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지성용 가브리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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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자캐오는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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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에서 자캐오는 예수님을 맞아들이면서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자기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4배를 갚아 주겠다고 말을 한다. 예수님께서 그저 자신의 집에 들어온 것뿐인데, 예수님이 무엇을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자캐오는 왜 그러한 일을 한다고 했을까?

예수님을 만났던 사람은 자캐오 하나만은 아닌데 왜 자캐오만 그러한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하였나?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들 모두 행동으로 표현하고 변화하는 것은 아니다. 자캐오의 변화는 예수님을 만났다는 단순한 이유로 변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람의 행동은 안에서 밖으로 향하게 된다. 우리무엇을 하는지 생각하고 우리 자신이 남들과 어떻다른지 바라보고 행동을 하게 된다. 감정이 먼저 앞서가고 이성이 나중에 작용하여 행동하게 해 준다.

사람의 행동에 있어서 제품의 구매를 생각해보면 단순히 필요 때문에 구매하는 경우도 있지만, 선택의 순간에 있어서 물건이 아닌 그 물건은 만든 이유를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MP3 같은 경우 우리나라에서 많이 만들어졌지만, 나중에 사람들이 많이 선택한 것은 애플사의 제품이었다.

둘 다 같은 MP3 제품이었는데 과연 다른 것은 무엇이었을까? 둘 사이의 다른 점은 성능과 제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물건을 만든 이유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애플의 제품은 단순하게 한 손으로 조작이 가능한 것이었다. 다른 제품들은 설명서를 읽고 공부를 해야 조작을 할 수 있었지만, 애플의 제품은 설명서를 읽지 않아도 한 손으로 모든 조작법을 알 수 있었다. 애플은 단순한 조작의 즐거움을 우리에게 주었다. 이렇게 사람들의 선택은 물건이 아닌 물건을 만든 이유라고 생각할 수 있다.

지금도 좋은 의미로 만들어진 물건을 일부러 구매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러한 구매 역시 마찬가지로 행동하기 전에 의미를 찾고 공감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의미를 찾고 공감하는 것에 자신의 행동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럼 자캐오는 왜? 자캐오는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자신 삶의 근본적인 의미를 찾은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서 설득당한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자신의 집으로 찾아오신 예수님의 의미에서 자신 삶의 의미를 찾은 것이고, 이러한 공감은 바로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다. 예수님은 자캐오에게 세리가 아닌 사람의 모습을 보고 믿으시고 공감하시어 변화를 끌어내신 것이다.

공감은 행동을 통해 이룰 수 있다. 세리 자캐오의 행동은 예수님의 믿음에 공감함으로써 자신도 예수님의 믿음을 믿는다는 의미의 표현인 것이다. 자캐오의 행동은 그래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러고 싶기 때문에 한 행동이다.

그럼 우리의 믿음은 어떠한가? 과연 예수님의 믿음에 공감하고 있는가? 우리의 행동은 또 어떠한가? 그래야 하기 때문에 움직이고 있는가? 아니면 그러고 싶어서 행동하고 있는가? 우리의 믿음도 예수님의 믿음에 공감하지 못하면 표현하기 힘들 것이다.

이러한 공감의 시작은 예수님에게 있지만 결국 예수님을 위해서가 아닌 믿음의 표현으로서 자신의 표현인 것이다. 예수님과의 공감은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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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이홍일 토마스 신부
2019년 11월 3일
  |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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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사랑이 깊으면---

경상북도 울진에는 아주 예쁜 외관을 자랑하는 작은 성당이 있습니다. 안동교구 북면성당이 그곳인데 이모가 살고 계셔서 어쩌다 한 번씩 방문을 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곳 성당의 교육관 이름이 ‘자캐오의 나무’입니다. 그 연유가 궁금하던 차에 근자에 방문할 일이 생겨 찾아 간 북면성당 교육관 앞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진 돌판이 있습니다.

‘나무는 종교나 신화에서 인간이 영적인 성장에로 나아가는 상징으로 등장합니다. 자캐오가 나무에 올라간 것은 성장과 변화를 위한 적극적인 자세를 의미합니다. 결국 자캐오는 예수님을 만나 완전히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 교육관도 신자들이 함께 기도하고 음식을 나누면서 하느님 닮은 모습으로 성장하는 장소가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가 속한 공동체가 성장과 변화를 위한 적극적인 자세를 지닌 그러한 곳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마치 자캐오의 그 나무처럼 말이지요.

오늘 복음 말씀을 잘 살피며 머무르다 보니 기를 쓰고(?)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과나무로 오르는 자캐오의 노력이 여전히 가상합니다만, 또 한편으로는 “거기에 이르러 위를 쳐다보시며” 자캐오에게 말씀을 건네시던 예수님의 마음이 남았습니다. 자캐오가 군중에 가린 예수님을 볼 수 없었다면 예수님도 마찬가지로 자캐오를 볼 수 없으셨겠지요. 군중이 몰려들고, 키마저도 작았던 한 사람의 몸부림을 이미 알고 계시며 지켜봐 주시는 분, 그 예수님을 새삼 따뜻이 느끼게 되는 장면입니다. 세관장이며 부자였던 자캐오가 나무에 올라간 이유가 단순한 호기심일 뿐이었다고 하더라도 그를 지켜봐 주시고 기회를 주시어 기적과도 같은 결과를 결심하도록 만들어 주시는 예수님의 마음에 새삼 든든해집니다. 나 역시 그분 예수님을 알고 있으며 믿고 있고, 의지하기에 새 희망을 위한 결심을 가능케 해 주시리라는 것도 믿습니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루카 19,8)

아마도 자캐오는 이 약속을 지켰을 것입니다. 몸소 체험한 예수님은 자캐오가 지난날 살아오며 지켜온 모든 신념을 뒤바꾸기에 충분한 분이셨고, 죄인이며 보잘 것 없어 보이는 한 사람마저도 각별히 아끼시는 그런 분이셨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지켜나갔을 것입니다. 감사함이 깊으면 사랑이 되고, 사랑이 깊으면 봉헌이 되기에 자캐오는 사랑 가득한 감사의 마음으로 아낌없이 봉헌하며 살아갔을 것입니다.

살면서 우리도 한번쯤은 감사할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감히 생각하지도 못했던 방법으로 나를 돌보아 주셨던 지난날의 은혜에 감사할 일이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나무에 오를 용기는커녕 작은 발걸음조차 떼기 어려워하던 나를 “괜찮다”고 불러주시던 그 예수님께 깊은 감사함을 느꼈던 날이 있었을 것입니다.

사랑이 깊으면 봉헌이 됩니다. 자캐오는 자신의 재산과 지난날의 잘못을 봉헌하였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봉헌하면 좋을까요? 다만 너무 고민하지는 마십시오. 그것이 무엇이든, 혹은 봉헌하지 못하는 우리든, 이미 구원을 약속하신 분께서는 끝까지 성실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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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한덕훈 스테파노 신부
2016년 10월 30일
  | 11.03
451 29.6%
예전에는 책을 볼 때 중요하거나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으면 밑줄을 긋곤 했습니다. 그것도 한 가지 색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색깔로 밑줄을 그었습니다. 이렇게 밑줄을 그어야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또 책 읽는 기분도 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방법이 그렇게 좋은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다시 읽게 될 때는 밑줄 그은 부분만을 보게 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제 나름대로 밑줄을 긋다 보니 남들에게 이 책을 선물로 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책 옆에 노트를 함께 준비합니다. 이 노트에 밑줄을 그어야 할 중요하고 좋은 구절을 직접 적고, 또 이 글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이나 저만의 생각을 적어나갑니다.

이렇게 적다 보니 노트의 양이 점점 불어났고, 이와 함께 하루에 제가 쓰는 글의 양도 많아지는 것입니다. 매일 글을 써야 하는 ‘저’로서는 최적의 방법을 찾은 것이지요.

만약 어렸을 때부터 가졌던 방식인 ‘밑줄긋기’에 계속 매여 있다면 글을 쓰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익숙한 방식일지는 모르겠지만, 이 방식에 철저하게 구속되어 있다면 나 자신의 발전은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익숙한 방식만 고수하다 보면 다른 방식을 찾으려는 시도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높이 뛰기를 아실 것입니다. 지금이야 거의 모든 선수가 몸을 뒤로 눕혀서 뛰는 ‘배면뛰기’를 하고 있지만, 그 이전에만 해도 배를 땅 쪽으로 향하게 하고 넘는 ‘벨리 롤 오버’ 기술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당연히 이 방법 외에는 높이 뛰기의 기술이 없다고 생각했었지요. 그러나 1963년 미국의 딕 포스포리가 스스로 재능이 없다고 높이뛰기를 포기하려다가 ‘거꾸로 뛰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처음으로 배면뛰기를 시도했고, 이를 통해 올림픽 금메달까지 따게 되었지요. 익숙한 방법이 정답이 아니라, 새로운 나 그리고 더 나아질 수 있는 나를 위해 변화시킬 방법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리 자캐오의 집에 묵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 하면서 투덜거리지요.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익숙한 모습입니다. 동족들에게 세금을 걷어서 로마에 바치는 세리는 매국노인 동시에 로마 황제의 얼굴이 새겨져 있는 화폐를 만지기 때문에 우상숭배에 빠진 죄인이라고 단정을 짓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세운 사랑의 기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주님께서는 얼마나 답답하셨을까요? 사랑의 확장은 무한대로 펼쳐집니다. 특히 주님의 사랑은 어떨까요?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엄청난 사랑입니다. 그 사랑에 제약을 둬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뜻에 맞게 우리 자신을 변화시킬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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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2019년 11월 3일
  |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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