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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자캐오, 아! 행복한 사람
조회수 | 1,720
작성일 | 07.11.10
예비신자들에게 왜 성당에 나오게 되었는지를 물으면 많은 경우 ‘진정한 행복, 참된 기쁨을 찾아서’라고 대답한다. 고개가 끄덕여 지는 대목이다. 이 풍진 세상에서 사는 인생 기왕이면 행복하고 기쁘게 살고픈 것이 어찌 잘못된 것이랴. 그것을 바라는 것은 나쁜 것도 아니요 죄도 아니다.

하느님도 나무라지 않으시리라고 본다. 연약한 우리네 인생 세상 온갖 일로 우리 속이 뒤엄자리 같다는 것을 모르실리 없으실 분이니 말이다. 한데 문제는 어떻게 해야 그 진정한 행복, 참된 기쁨을 찾아 누릴 수 있느냐는 것이다. 어디로 가서, 어떻게,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는지….

오늘 복음의 자캐오가 딱 우리 같았다. 그 답답한 심정으로 예수님을 만났고 거기서 그는 진정한 행복과 참된 기쁨을 맛보았다. 물론 다른 사람은 모를 수도 있다. 누가 있어 자캐오의 속에 들어 가 볼 수 있겠는가? 그러나 자캐오가 맛본 것이 정말로 그런 행복이요 기쁨이었는지는 오늘 네 집에 묵겠노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얼른 내려와 기쁘게 맞아들였다.’(19,6)는 대목과 ‘자기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노라’는 다짐에서 확인된다. 그를 가리켜 ‘죄인’이라고 하던 다른 사람들의 빈정거림(19,7)과 손가락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자기가 할 그 선한 일을 결단하는 것은 그가 예수님을 통하여 진정한 행복과 참된 기쁨을 맛보았기 때문이다.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안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니면 무엇으로 예수님 앞에서 일어서서(19,8) 말하던 자캐오의 그 환한 얼굴과 떨리는 목소리를 설명할 수 있으랴.

진정한 행복과 참된 기쁨은 자기 처지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보고자 나름대로 결단하고 나설 때 내려 주시는 선물 같은 것이리라. 지금까지 어찌했느냐는 중요치 않으리라.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만을 물으실 것이니 우리 모두 용기를 내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살고자 다짐하고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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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김훈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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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예수님과 자캐오의 복된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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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촌 예리코에서 자캐오라는 부자 세관장을만난 예수님은 어떤 심정으로 그와 얘기를 나누고 그의 집에 묵었을까요? 복음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예수님이 되어 그분의 마음과 시선으로 자캐오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자캐오에게 마음속으로 이런 말을 건네봅니다.

자캐오야… 나는 너를 잘 안다. 너는 비록 남부러울 것 없이 많은 돈을 가진 부자였지만 결코 행복할 수 없었다. 너는 세리로서 재산을 모으는 과정에서 저지른 불의에 대해 스스로 심한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 과연, ‘순수하고 의로운’이란 뜻을 지닌 ‘자캐오’라는 네 이름대로 네 양심이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너의 탐욕에 대한 반감으로 사람들은 너를 경멸했고 너는 심한 소외감과 고독감에 빠져 있었지. 불행한 너의 현실과 행복해지고 싶은 너의 열망이 교차하는 가운데 너는 나를 만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나를 앞질러 달려가 돌무화 나무 위로 올라갈 정도로… 양심을 회복하여 새롭게 살아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겠지. 결국, 주변 사람들의 핀잔과 멸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쁘게 나를 네 집에 맞아들였다.

그리고 과오를 뉘우치며 내게 이렇게 말했지.“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루카 19,8) 아…! 나는 그 순간,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네가 회개하는 순간 너의 모습은 이 세상에서 가장 참되고 선하며 아름답게 보였다. 네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탈선하는 자들을 꾸짖으시어 올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아버지 하느님처럼, 나도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기 때문이다. 정녕 나는 선한 사람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하나를 두고 더 기뻐한다. 나에게 큰 기쁨을 준 자캐오야… 정말 고맙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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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황의현 바오로 신부
2019년 11월 3일
  |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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