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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 연중 제32주일 독서와 복음 (하느님께서는 산 이들의 하느님)
조회수 | 1,933
작성일 | 07.11.10
▥ 제1독서 : 온 세상의 임금님께서는 우리를 일으키시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실 것이오.
▥ 마카베오기 하권 7,1-2.9-14

그 무렵 1 어떤 일곱 형제가 어머니와 함께 체포되어
채찍과 가죽끈으로 고초를 당하며,
법으로 금지된 돼지고기를 먹으라는 강요를 임금에게서 받은 일이 있었다.
2 그들 가운데 하나가 대변자가 되어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를 심문하여 무엇을 알아내려 하시오?
우리는 조상들의 법을 어기느니 차라리 죽을 각오가 되어 있소.”
둘째가 9 마지막 숨을 거두며 말하였다.
“이 사악한 인간, 당신은 우리를 이승에서 몰아내지만,
온 세상의 임금님께서는 당신의 법을 위하여
죽은 우리를 일으키시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실 것이오.”
10 그 다음에는 셋째가 조롱을 당하였다.
그는 혀를 내밀라는 말을 듣자 바로 혀를 내밀고 손까지 용감하게 내뻗으며,
11 고결하게 말하였다. “이 지체들을 하늘에서 받았지만,
그분의 법을 위해서라면 나는 이것들까지도 하찮게 여기오.
그러나 그분에게서 다시 받으리라고 희망하오.”
12 그러자 임금은 물론 그와 함께 있던 자들까지
고통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는 그 젊은이의 기개에 놀랐다.
13 셋째가 죽은 다음에 그들은 넷째도 같은 식으로 괴롭히며 고문하였다.
14 그는 죽는 순간이 되자 이렇게 말하였다.
“하느님께서 다시 일으켜 주시리라는 희망을 간직하고,
사람들의 손에 죽는 것이 더 낫소.
그러나 당신은 부활하여 생명을 누릴 가망이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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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독서 : 주님께서는 여러분의 힘을 북돋우시어 온갖 좋은 일과 좋은 말을 하게 해 주십니다.
▥ 테살로니카 2서 2,16─3,5

형제 여러분,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또 우리를 사랑하시고
당신의 은총으로 영원한 격려와 좋은 희망을 주신
하느님 우리 아버지께서,
17 여러분의 마음을 격려하시고 여러분의 힘을 북돋우시어
온갖 좋은 일과 좋은 말을 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3,1 끝으로 형제 여러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 주십시오.
주님의 말씀이 여러분에게서처럼 빠르게 퍼져 나가 찬양을 받고,
2 우리가 고약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구출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모든 사람이 믿음을 가지고 있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3 주님은 성실하신 분이시므로, 여러분의 힘을 북돋우시고
여러분을 악에서 지켜 주실 것입니다.
4 우리는 주님 안에서 여러분을 신뢰합니다.
우리가 지시하는 것들을 여러분이 실행하고 있고
앞으로도 실행하리라고 믿습니다.
5 주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이끄시어,
하느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이르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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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 : 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 루카 20,27-38

그때에 27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물었다.
28 “스승님, 모세는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아내를 남기고 ‘죽으면,
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저희를 위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29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30 그래서 둘째가, 31 그다음에는 셋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습니다.
그렇게 일곱이 모두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32 마침내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33 그러면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간다.
35 그러나 저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36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37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은,
모세도 떨기나무 대목에서 ‘주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는 말로 이미 밝혀 주었다.
38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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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주요 시사 주간지인 『타임』이 선정한 ‘20세기 100대 사상가’ 중 한 명이기도 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쓴 『사후생』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10년 동안 전 세계의 임사(臨死) 체험의 사례를 모은 책입니다. 임사 체험이란 죽음에 임박했다가 다시 살아난 경우를 가리킵니다. 저자는 무려 2만 5천 명이 넘는 사람들의 체험을 종합하고 소개하면서, 인간은 죽는 그 순간부터 전혀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에 따르면, 죽음 이후의 인간은 썩어 없어지는 육체에서 이탈하여 또 다른 육체를 얻습니다. 이를테면, 다리가 절단된 사람은 온전한 다리를 갖게 된다고 합니다. 또한 누구나 정신적 에너지를 얻어, 모든 것을 지각할 수 있는 힘을 지닌다고 합니다. 이에 대하여, 사후 세계를 의심하는 사람들은 단지 죽다 살아난 사람들이 꿈을 꾼 것 같은 현상을 체험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박사는 시각 장애인들의 사례들도 연구하였는데, 이에 따르면 그들은 자신이 죽음에 임박했을 때 주위 사람들이 어떤 색깔의 액세서리와 넥타이를 했는지, 또 그것들의 모양이 어떠한지 다 ‘보았다’고 증언합니다.

이러한 책 한 권으로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증명’하는 것은 우스운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그 누구도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서 단언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신 바로 그분을 우리의 주님이요 구세주라는 사실을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는 것을 알고 희망합니다. 어떠한 어려움과 고난을 겪더라도 부활에 대한 우리의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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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13년 11월 10일
  |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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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간은 역사적인 존재로 시간 안에서 살아갑니다. 우리는 날마다 오늘의 삶이 어제의 결과이고, 또 오늘 삶의 결실이 내일로 다가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삶을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미래에 대한 불안은 늘 우리 안에 엄습합니다. 내가 나이 들어서도 외롭지 않게 살 수 있을까? 내가 병들었을 때 누가 나를 챙겨 줄까? 그리고 이러한 미래에 대한 불안은 죽음에 대해서 그 절정에 이릅니다. 죽음 이후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 버리는 것은 아닐까?

우리의 시각과 감정, 또는 두려움은 죽음 이후의 세계에까지 이어지지만, 사실 우리는 그 이후를 경험해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곳의 셈법을 우리는 잘 모릅니다. 습관적으로 이 세상의 삶에 비추어 하늘 나라를 그려 보지만, 그곳의 시간은 여기와 어떻게 다른지, 사랑하는 사람들과는 어떻게 만나게 될지, 하느님께서는 나의 삶을 어떻게 평가해 주실지 두려운 마음을 떨치지 못합니다.

하늘 나라의 모습은 이 세상의 셈법으로 계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에 참여한 이들은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그리고 더 이상 죽는 일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라고 알려 주시며, 다시 우리의 시선을 ‘오늘’로 돌려 주십니다. 오늘을 성실히 살며, 하느님의 말씀에 충실하면, 부활하신 그분께서 우리의 삶의 주인이 되어 주실 것이고, 이 확신으로부터 신앙인은 기쁨과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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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
2016년 11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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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루카 복음에 담겨 있는 매우 독특한 이 표현은, 죽음을 완전히 다르게 이해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지상에서 죽는다고 해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는 여전히 살아 있는 존재라는 믿음, 곧 영원한 생명에 대한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죽음을 완전히 다르게 받아들이도록 만들어 줍니다.

사실, 예수님 시대 때 바리사이들은 부활과 영혼 불멸에 대한 믿음을 지니고 있었지만, 사두가이들은 죽은 이들의 부활과 영혼 불멸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은 부활과 영혼 불멸에 관하여 자주 논쟁을 벌이고는 하였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두가이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오경의 구절을 근거로 설명하십니다.

모세가 하느님을 두고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고 부르는데, 하느님께서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라고 한다면,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은 하느님 앞에서 당연히 살아 있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설명입니다. 예수님의 논리에 따르자면 지상에서 우리는 육신의 죽음을 맞지만, 그 영혼은 하느님 앞에서 계속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부활이란 우리의 영혼이 종말 때 완전히 변화된 몸으로 부활하는 것입니다.

부활을 믿는 이들은 오늘 제1독서에 나오는 일곱 형제와 어머니처럼 진리를 위하여 기꺼이 목숨마저 내어놓습니다. 십자가를 피하는 이는 결코 부활을 믿지 않는 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니, 부활에 대한 믿음은 언제나 우리가 지는 십자가 위에서 가장 극명히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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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구 염철호 요한 신부
2019년 11월 10일
  |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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