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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부활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조회수 | 2,309
작성일 | 07.11.10
한국 천주교회의 성인 유대철 베드로(1826-1839)는 14세의 어린 나이에 순교를 했다. 그가 세례를 받게 된 것은 역관(歷官)이었던 아버지 유진길의 영향이 컸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와 누나는 천주교에 대해서 적대적이었다. 1839년 기해(己亥)박해가 일어나고 그의 아버지가 체포되었다. 그러자 유대철은 순교하기로 결심하고 관가에 자수를 했다. 그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극심한 고문을 견디어 냈다. 한 번은 형리가 허벅지의 살을 뜯어 내며 배교를 하면 살려 주겠다고 회유를 했다. 그러자 어린 유대철은 “저는 천주님을 배반할 수 없어요” 하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화가 난 형리는 이번에는 화로에서 시뻘겋게 타고 있는 숯덩이를 입에 넣으려고 했다. 그러자 유대철은 눈 하나 깜짝 안하고 입을 크게 벌렸다. 그는 총 14차례의 고문과 100여 대의 매를 맞아 피투성이가 되었으나 결코 배교하지 않았다. 유대철 베드로는 드디어 1839년 10월31일 교수형을 받고 순교를 했다. 모든 순교자들은 부활에 대한 확신과 희망이 있었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세계적으로 부활의 신앙을 증거한 순교자들의 숫자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오늘 복음에서 사두가이 사람들이 예수님께 부활에 대한 질문을 한다. 예수님의 대답은 명쾌하다. 부활 후의 하느님 나라에서의 삶은 이 세상의 삶과 그 본질을 달리한다는 것이다. 부활의 삶은 이 세상의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삶이다.

우리의 인생은 무엇인가? 결국 인생이란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죽음을 향해서 한 발자국씩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만약 인생에서 죽음이 끝이라면 인생은 너무 슬프고 허무하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주님의 죽음과 부활, 승천하심으로써 우리의 죽음이 영원한 소멸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시작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따라서 그리스도교 신자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행복을 얻기 위해 현세에서의 순간적인 행복을 버려야 한다. 우리의 삶은 이 세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넘어서 하느님 안에서 완성된다고 믿는 것이 부활의 신앙이다. 부활 신앙은 그리스도 교회의 핵심 진리이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신앙도 종교 생활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부활의 영광에 초대를 받은 사람들이다. 따라서 신앙인에게 죽음은 인생의 끝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삶의 시작이 된다.

부활의 믿음을 갖고 사는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이다. 죽음이 인생의 끝이 아니라고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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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허영엽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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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러분은 죽은 사람의 부활을 믿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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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에 나오는 사두가이는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에는 부활을 믿는 사람과 믿지 못하는 사람과의 삶이 대조돼 나타납니다. 복음에 나오는 사두가이는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었고, 제1독서에서의 어머니와 일곱 아들은 부활을 확신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두가이는 유다교의 대사제와 고위 성직 계층의 직책을 독점하는 자들로서, 모세오경만을 성경으로 인정하며 영적 존재나 영원한 생명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하느님의 심판도 없다고 주장했으며 현세에서 최대한 즐겁게 사는 것이 그들이 추구하는 전부였습니다. 이들은 부활이 없음을 예수님에게도 강요하려고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반박하시며 부활이 있음을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반해서 제1독서는 부활에 대한 확신으로 믿음과 희망을 지킨 한 어머니와 일곱 아들의 순교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일곱 아들은 하느님께 대한 철저한 신뢰와 미래의 부활에 대한 확신으로 모든 고통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죽어가면서도 부활에 대한 분명한 선언을 한 넷째 아들은 자신과 자신을 죽이는 왕의 근본적 차이점이 부활에 대한 인식에 있음을 설파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다시 일으켜 주시리라는 희망을 간직하고, 사람들의 손에 죽는 것이 더 낫소. 그러나 당신은 부활하여 생명을 누릴 가망이 없소"(2마카 7,14).
 
하느님을 믿으며 죽어가는 이들의 부활 신앙은 인간적으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 온갖 불가능을 뛰어넘어 영원한 삶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들의 부활 신앙은 현실의 고통을 이기며, 모든 시련을 극복하는 힘을 주었습니다.
 
전 세계 132개국 1억4000만 명의 시청자를 웃기고 울리는 '오프라 윈프리쇼', 이 쇼의 진행자 오프라 윈프리는 하포그룹의 회장으로서 재산은 10억 달러가 넘으며 그야말로 인종과 성의 장벽을 뛰어넘어 성공을 이룬 대표적인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과거는 성공과는 동떨어진 삶이었습니다. 가난한 미혼모에게서 태어나 할머니 손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14살에 자신도 미혼모가 되었지만 태어난 아기는 2주 만에 죽었습니다. 그 충격으로 가출한 그녀는 마약 복용으로 하루하루를 지옥같이 살았던 107킬로그램의 뚱뚱한 흑인일 뿐이었습니다. 이처럼 기구한 그녀의 삶에 종지부를 찍게 된 사건이 발생하는데 그것은 신앙으로 변화된 친아버지와의 재회였습니다.
 
아버지는 그녀에게 책을 읽게 했고, 성경을 읽고 암송하는 훈련도 시켰습니다. 독서는 그녀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했고, 성경은 하느님을 아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19살이 된 그녀는 TV방송국에 취직했고, 흑인 여성 최초로 뉴스 앵커로 발탁이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3년을 보낸 후 더 큰 방송국으로 진출했지만 너무 감정에 치우친다는 비판과 함께 좌천되고 맙니다. 그녀는 첫 방송에 대한 소감을 이렇게 밝혔습니다. "첫 방송이 끝난 순간, 나는 하느님께 감사했어요. 왜냐하면 내가 하고자 했던 것을 드디어 찾았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나는 아침 방송으로 좌천되었지만 이제야 진정한 내일을 찾은 것 같았어요." 방송 후 그녀는 토크쇼의 여왕이 되는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오프라는 세계에서 가장 바쁜 사람 중의 하나가 되었지만 날마다 하느님께 다섯 가지의 '감사일기'를 적는 습관을 지속하고 있답니다.
 
부활 신앙은 어떤 절망적인 사람에게도 희망을 주며 새로운 길을 열어 줍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부활을 믿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 아주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입으로는 부활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 행동은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가이처럼 현실적인 것에만 집착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돈이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으며 권력이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사는 삶은 분명 부활을 믿는 신자의 삶이 아닙니다. 부활을 믿는 신앙인은 현세를 살면서도 영원한 것에 더 큰 비중을 두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특히 11월 위령 성월은 우리의 삶과 죽음, 그리고 우리가 돌아갈 근본적인 곳이 어디인지를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 부활을 믿고, 부활을 사는 신앙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기도하는 한 주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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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이기양 신부
  |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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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실 것이오.”(2마카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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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십시오.”“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2005년 4월2일 요한 바오로 2세 성인 교황과 2009년 2월16일 김수환 추기경이 하느님께로 돌아가면서 남긴 말씀입니다. 한 인간으로서, 무엇보다도 신앙인으로서 자신의 전 생애를 마무리하는 유언이었습니다. 삶의 흔적과 지향이 고스란히 담긴 이 말씀들은 모든 사람의 마음에 울려 퍼졌습니다. 그리고 위령 성월을 지내며 신앙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우리에게 더욱 깊이 다가옵니다.

휴가나 성지순례로 집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면 왠지모를 평안함을 느낍니다. 그 여행 일정이 아주 즐겁고 행복했어도 “역시 내 집이 최고야!”라는 말을 하게 됩니다.이처럼 집이라는 곳은 우리 모두에게 평안함을 가져다주는 자리입니다. 사람이 태어나 한평생 살다가 죽어 하늘로 돌아가기까지의 인생 여정이 한 사람의 삶의 여행이라면, 우리에게 참 평안을 주는 집은 영원한 생명을 누릴 하늘나라입니다. 우리 삶은 하느님께로부터 와서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여행이기 때문입니다. 먼 훗날 가장 평안한 집인하느님 나라에서 “역시 내 집이 최고야!”라는 말을 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일곱 형제와 그들의 어머니는 ‘하느님 안에서 영원한 삶’을 누리는 하늘나라가 ‘최고의 집’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법으로 금지된 돼지고기를 먹으라는 강요, 즉 하느님을 배반하는 행위를 거부합니다. ‘영원한 생명’과 ‘부활’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희망과 믿음의 고백 앞에서 스스로에게 질문해 봅니다. 부활과 영원한 삶에 대한 깊은 믿음을 지니고 있는가? 영원한 삶이 없는 듯, 현세의 문제에만 지나치게 관심을 보이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 삶의 여정을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어떻게 가고 있는지’“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고 한 천상병 시인의 노래가 또한 우리의 노래였으면 합니다. 마지막 숨을 거두며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순간 “하느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남길 수 있었으면 합니다. 사람으로 태어나게 해 주신, 살게 해 주신, 돌아가게 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릴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전 생애가감사의 연속은 아니더라도, 감사할 순간순간들을 모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은총을 베푸시어 영원한 위로와 희망을 주십니다.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며 ‘영원한 집’으로 향하고 있는 우리의 인생 여행을 아름답게 가꾸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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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조성풍 아우구스티노 신부
2016년 11월 6일
  |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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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the Human Body'라는 다큐를 보았습니다. 인간의 탄생과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생명이 잉태되는 것은 놀라운 신비였습니다. 잉태된 아이는 어머니의 품속에서 자라납니다. 어머니는 아이에게 모든 것을 주고, 아이는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납니다. 어머니의 품속이 아이에게는 우주이며, 세상이고, 삶의 터전입니다. 가능하다면 아이는 엄마의 품에서 평생을 살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아이를 위해서도, 엄마를 위해서도 또 다른 세상으로 나와야 합니다.

세상에 태어나는 아이는 엄마와 연결된 탯줄을 끊어야 합니다. 이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이제 모든 것을 스스로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숨을 쉬는 아이는 비로소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게 됩니다.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을 견디어내야 합니다. 아이가 맞이하는 것은 차가운 공기와 강한 빛입니다. 아이에게는 죽음과 같은 순간을 우리는 탄생이라는 이름으로 축하하는 것입니다. 아이는 다시 엄마의 품속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엄마의 품속에서는 필요 없었던 것들입니다. 말을 배우고, 걷는 것을 배우고, 역사와 철학, 종교와 문학을 배워야 합니다. 엄마의 품속에서는 하지 않아도 되었던 것들을 하게 됩니다. 친구도 사귀고, 결혼도 하고, 일도 하고, 누군가를 돕고, 여행도 할 것입니다. 아이는 이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엄마의 품속과는 모든 것이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도 몰랐을 것입니다.

생각을 바꿔봅니다. 우리는 지구라는 어머니 품에서 100년을 지내는 것입니다. 지구에서 우리는 ‘희로애락’을 느끼면서 살아갑니다. 이성, 감성, 오성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봅니다. 법과 질서를 배우고, 가족, 이웃, 국가라는 틀에서 살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 밖에 또 다는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엄마 품속에서 아이가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과 같습니다. 지구는 우리에게 머물 수 있는 땅, 마실 수 있는 물, 먹을 수 있는 음식, 신선한 공기, 아름다운 강과 산을 마련해 줍니다. 이제 우리는 때가되면 어디론가 가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죽음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아이가 세상으로 나오는 것을 탄생이라고 불렀듯이, 우리가 가는 그곳에서는 ‘부활’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환영해주고, 축하해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것이 부활의 신앙이고,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입니다.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억울한 일, 잘못된 일이 많이 있지만 가장 억울하고 잘못된 일은 아무런 잘못도 없는 사람들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는 일들이라고 하겠습니다. 아벨은 아무 잘못도 없이 형의 질투로 인해서 들판에서 돌에 맞아 죽었고, 다윗의 부하인 우리야는 왕의 욕망 때문에 전쟁터에서 죽음을 당했으며, 경건한 이스라엘의 신앙인들이 단지 그들의 신앙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모진 고문 속에서 생명을 잃어버렸습니다.

오늘의 성서 말씀은 바로 이런 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둠의 세력은 결코 빛을 이긴 적이 없다는 이야길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너희가 우리의 목숨을 빼앗는다 하더라도 끝 날에 하느님께서 우리를 다시 살려주실 것이다.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너희를 심판하실 것이다.” 다름 아닌 부활의 신앙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른 민족으로부터 억압을 받을 때, 참으로 억울한 일을 당할 때 그래서 목숨을 잃게 될 때 절망하거나, 권력의 편에 서서 생명을 유지하거나 하지 않고, 하느님께서 다시 살려주시리라는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정의롭고 자비로우신 하느님은 그들의 억울함을 보시고 위로를 주시며, 불의한 자를 심판하시리라는 신앙을 가졌고 그것이 바로 부활 신앙입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심으로써 우리에게 부활은 단지 희망이 아니라 현실임을 보여주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느님의 품으로 가면 ‘천사’처럼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천사를 보지는 못했지만 세상 속에서 천사와 같은 모습을 보곤 합니다. 아무런 움직임이 없던 달걀은 부화를 하면 전혀 다른 모습이 됩니다. 눈이 있고, 다리가 있고, 날개가 있습니다. 땅위를 기어 다니는 애벌레가 죽음과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하늘을 나는 나비가 됩니다. 애벌레와 나비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우리가 천사처럼 된다는 것도 어쩌면 이와 비슷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두운 달걀 속에서 껍질을 깨고 밝은 세상을 바라보는 병아리처럼, 우리는 가식과 허위와 위선과 교만의 껍질을 깨고 사랑과 평화와 행복과 기쁨의 날개를 다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죽더라도 살아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어 천사처럼 된다면 그래서 사랑과 평화를 찾는다면, 행복과 기쁨을 얻는다면 우리는 이미 부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산 이들의 하느님이십니다.’ 겨울이 되어 들과 산은 모든 것이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대지는 생명을 품고 있어서 봄이 되면 다시금 파란 새싹이 돋아나는 것을 봅니다. 이처럼 우리 눈에는 죽은 것처럼 보이고, 죽은 듯이 보이지만, 그래서 어둠이 계속될 것처럼 보이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다 알고 계시고, 우리를 기억해 주시고, 우리를 삶과 죽음의 굴레에서 해방시켜 주십니다. 그러기에 하느님 앞에 우리 모두는 살아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산 이들의 하느님’이십니다.

이제 땅이 얼고 겨울의 황량함이 가득하겠지만 따뜻한 봄이 온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듯이, 주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믿으며 비록 우리의 삶에 고난과 고통이 찾아오더라도 실패와 좌절이 있더라도 하루 하루의 삶에 충실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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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조재형 신부
2016년 11월 6일
  |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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