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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부활을 믿는다면 부활을 살아가십시오
조회수 | 2,577
작성일 | 07.11.10
형제 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푸르던 들녘이 가을빛으로 물드는가 싶더니 어느덧 앙상한 가지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흙에서 나 흙으로 돌아가는 푸성귀와 사라져 가는 것들을 보면서도 절망하지 않는 것은 새봄이 되면 다시금 새 생명으로 움터 나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겁니다. 자연의 이러한 모습들을 통해 우리들 또한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아름다운 모습으로 돌아가야 할 그곳을 생각해 봅니다. 그곳이 있기에 우리의 삶도 아름답게 꾸밀 수 있고, 그곳이 있기에 우리의 희망도 헛되지 않다는 것을 믿는 것이 부활을 살아가는 삶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도 부활은 생각지 않고 오직 현실에만 안주하려는 우리들의 모습은 무엇을 믿고 있는지 조차 의심케 합니다.

과연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는다.”는 우리들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부활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부활을 진정으로 믿는다면 우리의 모든 것을 부활을 위해 살아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부활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진정으로 부활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며 필요한 것들을 얻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걸지만 부활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거는 사람들은 얼마나 되겠습니까? 부활을 믿는다면 그것을 얻기 위한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얼마 전부터 재테크가 인기를 끌면서 이제는 학생들 사이에도 재테크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고 합니다. 여유자금을 통한 안정된 투자가 아니라 돈이 된다는 소문만 믿고 확신 없는 투기를 하다 보니 심지어는 등록금을 날려버려 휴학하는 경우도 생기고, 사채를 이용하다가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누가 어떻게 하여 재미 좀 봤다는 이야기만 있으면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이 능력 없는 사람처럼 비춰지는 사회가 되어서 그런지 이제는 학생들 사이에도 일확천금을 노리고 학업보다는 투기에 모든 것을 허비하는 경우가 늘어난다고 합니다. 단지 나도 한 번 해 보는 것만으로 모두가 성공하고,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보다 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부동산, 주식, 펀드, 창업 등 모두가 성공할 수 있다면 어렵게 살 사람이 누가 있으며 성공하지 못할 사람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가 보기에는 운이 좋아서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성공하는 사람들은 그만큼 더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그리고 성공하는 사람보다 실패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행여나 하는 생각으로 남들이 거둔 열매만을 바라보며 모든 것을 걸다보니 가진 것마저도 모두 잃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지만 부활에 대한 믿음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습니다. 부활은 이 세상에서가 아니라 “저 세상에 참여하고(루카 20,35)”, “천사들과 같아져서 … 하느님의 자녀가(루카 20,36)” 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죽더라도 하느님의 나라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부활인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어야 할 부활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부활의 삶을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이러한 부활의 삶에 희망을 거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욕망들에 더 희망을 두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아야겠습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릴 지도 모를 헛된 것들에는 모든 것을 걸면서도 주님께서 마련하신 부활을 얻는 데는 주저하는 우리들의 마음을 되돌려야겠습니다. 우리가 이제라도 부활에 대한 희망과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지금 이 순간부터 부활을 얻기 위한, 부활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 힘들고 어렵더라도 이 세상에서의 삶이 아니라 주님께서 마련하신 부활을 믿으며 부활을 얻기 위해 살아간다면 “우리를 사랑하시고 당신의 은총으로 영원한 격려와 좋은 희망을 주신 하느님 우리 아버지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격려하시고 여러분의 힘을 북돋우시어, 온갖 좋은 일과 좋은 말을 하게(2테살 2,16-17)”해 주실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것들을 얻기 위한 삶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시는 부활을 얻기 위한 삶을 살아가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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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교구 김원현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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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1코린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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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구상에 모든 생물은 태어나면 늙게 되고 병들어서 죽게 되는 “생로병사”를 겪게 됩니다. 인간도 여기에서 제외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의학이 발달한다고 해도 약간의 생명 연장은 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죽음을 완벽하게 피해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죽음 앞에서 공평합니다. 살아 있을 때 돈이 많든 적든, 집이 호화로웠든 초라했든, 가정 형편이 좋았든 나빴든 간에 모든 인간은 죽음을 피해 갈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인간이 죽음을 맞이하게 될 테니 인생에서 잘 사는 것만큼 잘 죽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지금 여기에서 잘 사는 것만 궁리합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까?’, ‘어떻게 하면 좋은 직장을 가져서 좋은 사람과 결혼을 하며 살까?’, ‘어떻게 하면 내 자식들에게 좋은 교육을 시킬 수 있을까?’하며 현재 내가 살아가는 상황만을 중요시 여기고 어떻게 하면 잘 죽을 것인가는 많이 생각하지 않고, 먼 미래의 일로만 여기기 쉽습니다.

우리는 사람이기에 늘 죽음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그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주변의 소중한 사람을 잃을 때 죽음이 나와 가까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죽은 이 앞에서 경견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도 언젠가 그날이 닥쳐오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 신앙인은 죽음 앞에서 마냥 슬퍼하지만은 않습니다.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루카 20,38)라고 오늘 예수님께서 강한 메시지로 전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사랑과 죽음 뒤에 맞이하신 찬란한 부활의 영광이 있기에 우리는 죽음을 넘어 희망을 봅니다. 하느님께서는 죽음까지도 그분의 발아래 굴복시키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분으로 고백하는 신앙인들에게 죽음은 마지막이 아닌 새로운 삶의 시작이 됩니다. 비록 우리의 삶이 십자가 고통의 길이라도 그 길 안에서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 즉 사랑하고 희생하며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하느님의 부활과 그분이 베푸시는 은총의 영광을 차지할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에 유다인들은 하느님을 자주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믿는 사람들과 살든지 죽든지 계속해서 관계를 가지시고 도와주신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있을 수 없다고!, 죽은 이가 다시 되살아난다는 것을 절대 믿지 못한’ 사두가이파 사람들처럼, 우리의 믿음이 약해져서 주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의심이 생겨날 수는 있겠습니다.

하지만 모든 인간을 당신 생명의 충만함으로 부르시는 분, 살아 있든지 죽든지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을 절대로 버리지 않으시는 분, 생명의 아버지이시자 부활의 주인이신 분을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로 고백하는 주님이십니다. 우리를 사랑해주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신앙인답게 큰 희망을 가지고 주님의 말씀에 믿음을 더하며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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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교구 김유강 시몬 신부
2016년 11월 6일
  |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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