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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알 수 없는, 그래도 좋은 하느님 나라
조회수 | 2,592
작성일 | 07.11.10
하느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은 구원을 얻어 가게 될 하느님 나라를 꿈꿉니다. 그곳에서 하느님과 끝나지 않는 행복을 꿈꾸곤 합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그곳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그 나라를 곧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을 기준해서 생각합니다. 하느님도, 하느님 나라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도 그저 지금의 연속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를 믿는 사람들은 쉽게 지금의 행복하다는 삶이 영원한 상태가 되는 것으로 그곳에서의 삶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를 믿지 않는 이들도 마찬가지의 기준에서 하느님 나라를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부활을 부정하는 사두가이들의 주장도 그들이 이미 부활의 세상이 이 세상의 연속이라는 시각을 보여줍니다. 사실 사두가이들이 예수님께 하늘나라에 대한 답을 듣고 싶었던 것은 아닐 겁니다. 그들은 단지 불행한 여인의 인생사를 통해‘하느님 나라가 이렇다면 도대체 그것이 말이 됩니까?’라고 천국을 부정하려 했습니다. 그곳이 천국이겠느냐고 말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사두가이들 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 이후의 삶을 꿈꾸는 이들도 함께 들어야 할 대답을 주십니다. 그것은 죽음을 넘어가게 될 세상은 지금의 세상을 기준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시집도 장가도 없고, 천사와 같아진다는 말 속에 우리는 천국에 대한 가장 중요한 상상이 사라짐을 느낍니다. 먼저 우리 자신들이 전혀 다르게 변화하니 말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으로 하느님 나라에 대한 이 세상에서의 기준에서 우리를 너무나 간단하게 떼어버리시고 중요한 것은 부활이란 하느님 안에서 우리의 가치라고 말씀하십니다. 전혀 변하지 않는 가치 말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에서 우리는 아무런 부족함이 없는 혼자 그대로도 충분히 거룩하고 훌륭한 하느님의 자녀로 살리라 하십니다. 세상의 어떤 삶과도 상관없는 하느님의 천사와 같은 자녀이어서 어떻게도 행복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게 되리라 말씀하십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 눈에 죽음과 사라짐으로 보이는 우리가 여전히 하느님 안에서 전혀 사라지지 않는 그대로의 생명으로 살아갈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구조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완전히 거룩한 사람이어서 그 삶이 어떻게도 참 행복인 삶이 곧 천국이라는 것 입니다. 그래서 천국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보다 천국에서 살 나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천국은 허상이 아닌 내가 이를 수 있는 최고의 삶 자체입니다.

지금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은 자주 다음 생을 찾습니다. 다음 세상에서 최고의 인생을 살 자신을 기대하고 표현하곤 합니다. 이 세상에 실망하고 완전한 자신을 찾으려 허망한 여행을 원하는 이들에게 천국은 아직도 알려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 모두에게 오늘 예수님의 말씀이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기준이 되기를 바랍니다. 모두가 천국을 꿈꾸며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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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구 박태식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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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부활의 믿음에 대해 이의를 제기합니다.

형이 자식 없이 죽었을 때 동생이 그 형수를 아내로 맞아들이는 것은 고대 중동 사회에 널리 보급된 제도였습니다. 구약성서 신명기는 그것을 제도화하였습니(25,5-10 참조).

이 제도는 형의 대를 이어 준다는 뜻도 있지만, 유목민들에게는 불가피한 일이었습니다. 남편도 없고 자식도 없는 여성을 혼자 떠돌게 하지 않고, 남편의 부족(部族) 안에 머물게 하여 보호하는 방편이었습니다.

사두가이파는 기원 전 2세기부터 존재하는 유다교 파벌중의 하나입니다.

예루살렘의 귀족 제관들과 그 사회의 부유한 기득권층으로 구성된 집단입니다. 그들은 정치적으로는 로마의 식민지 정책에 협조하면서 그들이 누리는 기득권을 지키겠다는 정신입니다. 그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현세만을 중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이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현실은 죽음을 한계선으로 한 삶의 지평입니다. 중국의 진시황(秦始皇)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장생불사(長生不死)를 꿈꾸었지만, 아무도 죽음의 벽을 깨어버리지는 못하였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생명에게 가장 확실하게 또 예외 없이 다가오는 현실은 죽음입니다. 우리는 우리도 죽지만, 우리 주변에 죽음을 많이 발생시키기도 합니다. 전쟁과 테러와 불의의 사고들이 있습니다. 두 번의 세계 대전과 유다인들의 집단 수용소, 그리고 우리나라 6.25 전쟁 등이 모두 사람이 사람을 죽게 한 일들입니다. 아직도 자행되는 납치와 테러 그리고 북한의 수용소 등이 아직도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들입니다. 우리를 쉽게 지배하는 미움, 질투, 욕심, 등이 다른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이들의 하느님이시고, 하느님 앞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살아 있는 것이다.’

하느님과 함께 있는 사람은 죽음의 한계를 넘어서도 살아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서가 말하는 예수님의 부활은 기적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하느님과 함께 계셨던 예수님은 돌아가셔서도 하느님 안에 살아 계시다는 말입니다.

여인들이 예수님의 빈 무덤을 확인한 이야기에서 복음서들은 천사의 입을 빌려 말합니다. “왜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서 찾고 있습니까?”(루가 24,5).

예수님은 하느님 안에 살아 계시고, 이제는 그분이 살아계실 때 하신 일을 실천하는 사람들 안에 또한 살아 계신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에게 충실하셨습니다.

그분이 유다교 기득권층으로부터 죽임을 당한 것도 그분이 하느님에게 충실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분은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셨습니다.

그분은 살아서도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이제는 죽어서도 하느님과 함께 계신다는 것이 예수의 부활에 대한 믿음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행하는 일들은 현세적 삶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살신성인(殺身成仁), 순국(殉國), 순교 등의 말은 죽음을 무릅쓰고 헌신하여 이룬 일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 사실을 우리는 숭고하다고 말하며 그 앞에 고개를 숙입니다. 만일 인간의 운명이 죽음으로 끝나고 마는 것이라면, 죽음을 무릅쓴 헌신에 대한 우리의 평가는 어리석은 것입니다. 희생을 유도하는 감언이설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헌신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인류역사의 깊은 곳에 흐르고 있습니다. 그것을 부인하면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됩니다. 인간은 헌신하면서 자기의 존엄성을 유지합니다. 그것이 인간의 구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에 대해 논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관찰이나 논의의 대상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 하신 말씀과 행동들 안에서 하느님의 일을 읽어내는 사람이 그리스도 신앙인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목숨을 잃으면서까지 하느님이 사람을 버리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믿고 실천하셨습니다.

유다교는 율법과 성전을 만들어놓고 그것이 절대적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율법과 성전에 충실하지 못한 사람들은 하느님이 버리신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다교의 그런 가르침에 동의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율법과 성전에 자유로우시면서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여 하느님이 당신의 삶 안에 살아 계시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병을 고치셨습니다.

병은 유다교가 말하듯이 율법을 지키지 못한 죄의 대가로 하느님이 주시는 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유다교가 하느님이 버리신 사람들이라고 매도하는 죄인들과 세리들과 어울리셨습니다.

유다교 지도자들은 율법과 성전에 시선을 빼앗긴 나머지 하느님을 잃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은 율법과 성전을 넘어 하느님에게 시선을 집중시키셨습니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브라함과도 이사악과도 야곱과도 함께 계셨던 하느님이라는 뜻입니다.

‘하느님과 함께 있는 사람은 모두 살아 있다.’는 말씀으로 오늘 복음은 끝납니다.

하느님과 함께 있는 사람은 그분의 뜻을 존중합니다.

하느님이 살리고 용서하시는 분이라, 우리도 살리고 용서하는 노력을 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제자들의 회상을 담은 책을 복음서, 곧 기쁜 소식의 책이라 부릅니다.

율법을 지키고 성전에 바칠 것을 강요받던 그 시대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말씀과 실천은 해방이고 기쁨이었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이 우리와 어떤 이해(利害)관계에 있는지를 먼저 생각합니다.

하느님에게는 그런 이해타산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와 다르십니다.

하느님은 사람을 살리십니다. 우리도 살리는 노력을 할 것을 원하십니다.

하느님은 용서하십니다. 용서도 사람을 살리는 일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도 용서하여 살릴 것을 원하십니다.

예수님의 실천이 사람들에게 기쁨이었듯이, 우리의 삶도 우리 주변에 기쁨일 것을 원하십니다. 우리의 노력이 실패로 끝나도 좋습니다.

십자가는 예수님도 실패하셨다고 말해줍니다.

죽은 이들의 부활 혹은 내세(來世)라는 말은 죽음의 장벽을 넘어서도 살리는 하느님이 계시다는 말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시야를 가로막고 있는 죽음의 장벽을 넘어서도 계십니다.

하느님은 현세에도, 내세에도 함께 계십니다.

살리고 용서하는 그분의 생명을 우리가 실천한 그만큼, 하느님은 현세에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분의 생명이 우리 안에 스며든 그만큼 그분은 죽음의 장벽을 넘어서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것이 그리스도 신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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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구 서공석 신부
  | 11.06
451 29.6%
[부산] 우리의 믿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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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예수님께서는 사두가이파 사람들과의 논쟁에서, 부활의 삶이 분명히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이는 요한 복음서(5, 19~29)에서도 확인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5 ,21) 이에 우리는‘사도신경’을 통하여‘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라는 신앙을 고백합니다. 이같이 그리스도인은‘부활신앙’을 고백하는 사람임을 말해 줍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리스도교 신자들 모두가 한결같이 이‘부활신앙’을 믿으며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는데 있습니다. 수년 전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가톨릭 신자들 가운데‘하느님 나라가 있다고 믿는가?’라는 질문에‘절대로 믿는다’는 사람은 불과 약 55% 정도였습니다.‘어느 정도 믿는다’는 사람과‘하느님 나라가 있다고 믿지 않는다’는 사람은 과연 어떤 믿음을 가지고 미사에 나올까요?‘어느 정도 믿는다’는 신자의 마음에도 불확신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고,‘전혀 믿지 않는다’는 신자들은 그리스도교 믿음의 본질과는 다른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과 논쟁을 하였던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당신의 정치적, 종교적 혼란한 시기에 현실과 결탁한 일부 제관들과 지방 유지들이 의기투합한 조직이었고, 모세오경만을 인정함으로써 죽은 이들에 대한 부활을 믿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믿음은 단지 현세적인 윤택한 삶을 지향하였기에 그들의 희망도 자연스럽게 현세적인 풍요로운 삶 안에 갇혀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신앙인이 부활신앙을 받아들이지도 않고 여전히 현실적인 삶에만 집중하여 그것을 목적으로 살아간다면, 이러한 사두가이파 사람들과 무엇이 다를까를 생각해 봅니다. 바오로 사도는“죽은 이들이 되살아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되살아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덧없고 여러분 자신은 아직도 여러분이 지은 죄 안에 있을 것입니다.”(1코린 15, 16~17)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현실 속에서도 하느님 나라(구원 및 부활)에 희망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 하겠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역설적으로 현실을 더욱 의미와 보람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는 하느님의 힘입니다. 부활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희망이며 삶의 의미이고 모든 현실적인 가치의 토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위령성월인 11월에 우리보다 먼저 하느님의 품에 안기신 많은 영혼들을 기억하며 기도하고, 우리 자신의 삶을 이 순간부터 주님 안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도록 마음을 모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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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구 이기환 마티아 신부
2016년 11월 6일
  |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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