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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부활을 믿는 사람
조회수 | 2,338
작성일 | 07.11.14
임종을 앞두고 한 할머니는 자식들에게 자신이 녹음한 테이프를 건네주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들들은 어머니가 주신 테이프를 들었다. 그 테이프 안에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그분은 오랫동안 직접 복음서를 읽어서 녹음했다. 그 할머니는 자녀들에게 좀 더 가치 있는 것을 남겨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분은 세상에 남은 자식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자녀들은 떠듬거리며 성경 말씀을 읽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어머니가 왜 그 테이프를 유산으로 남겨 주셨는지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오늘 복음(루카 21,5-19)에서 예수님께서는 세상 종말에 대해 말씀하신다. 세상 종말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결론은 한 마디로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다. 11월은 위령성월로 죽은 모든 이들의 영혼을 특별히 기억하며 보내는 은총의 시기이다. 교회는 이 기간 동안 우리보다 세상을 먼저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함과 동시에 죽음을 자주 묵상하도록 권고한다.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분명히 슬픈 일이다. 그러나 역설적이지만 우리는 죽음을 통해 오히려 삶의 가치를 더 깊이 깨달을 수 있다. 어둠 속에서 빛이 더 빛나고 분명해지는 이치이다. 세상 종말과 심판은 우리의 몫이 아니라 하느님의 몫이다. 그래서 우리는 미래를 걱정하지 말고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겨야 한다. 우리가 할 일은 그저 최선을 다해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가는 것이다.

예수님 시대에 유다인들은 정치적이고 현실적인 메시아를 고대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다인들만을 위한 구세주가 아니셨다. 또한 유다인의 기대처럼 예수님은 결코 세속적인 왕이 아니셨다. 예수님은 스스로 고난의 잔을 받아 마시고 죄인들의 발을 씻겨 주셨던 겸손의 왕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예수님에게 열광했던 유다인들이 실망해서 예수님을 배척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신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하느님의 구원을 이루셨다. 주님의 부활은 정의가 불의를, 생명이 죽음을, 선이 악을 결국 이긴다는 것을 보여 준 사건이다. 이처럼 죽음을 넘어서는 믿음이 바로 부활 신앙이다. 부활신앙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다.

주님은 분명하게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루카 21,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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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허영엽 마티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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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개미와 베짱이

개미와 베짱이는 이웃에 함께 살았습니다. 부지런한 개미는 먹이가 없는 추운 겨울을 대비해서 한여름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부지런히 일했고, 베짱이는 시원한 그늘에 앉아 개미를 비웃기라도 하듯 콧노래를 부르며 하루하루를 즐기며 지냈습니다. 그렇게 지내는 동안 어느덧 매섭게 추운 겨울이 왔습니다. 여름 내내 열심히 일하며 먹이를 쌓아둔 개미는 따뜻한 집안에서 포근한 겨울을 보내고 있지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여름을 보낸 베짱이에겐 비참한 현실과 때늦은 후회만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유다인들에게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과도 다를 바없는 성전파괴, 그리고 이러한 종말론적인 사건을 예고하는 커다란 재앙과 혼란, 전쟁과 박해 등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는 복음의 말씀을 들으면서 떠올리는 이솝우화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시대상황은 루카복음이 저술되던 시대상황보다 더 심각합니다. 인간들의 무분별한 자연파괴와 급격한 기후변화, 유럽의 금융위기와 미국의 국가부도위험, 10년 넘게 지속되는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수천 명의 민간인들이 학살되고 있는 시리아 내전,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와 세계 도처에서 발생하는 지진과 해일, 북한에서의 인권탄압과 종교박해 등은 인류에게 빙하기처럼 닥쳐올지도 모르는 냉혹한 미래를 경고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세상은 어차피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나에게 주어진 인생을 즐기면서 오늘을 잘 사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하며 베짱이처럼 살아야 할까요?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라면 자신과 가족의 안녕이 최고의 가치일 뿐, 가까운 이웃들의 불행이나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먼 나라의 자연재해나 전쟁 등은 관심 밖의 일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개미처럼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무조건 오늘을 희생하며 살아야 할까요? 미래에 대한 지나친 염려와 불안감으로 어떠한 삶의 기쁨도 즐길 여유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이 없이 인간의 노력만으로 세상의 모든 어려움을 해결하겠다는 어리석음에 빠져 사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은 마침 평신도 주일로서 세상 안에서 현세 사물을 비추고 관리함으로써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도록 부름 받은 평신도들의 사명을 재확인하는 날입니다. 2012년도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신자 수는 5,361,369명이고, 성직자 수는 4,788명이니 교회구성원의 99.9%가 평신도인 셈입니다. ‘개미’ 군단을 떠올리게 하는 이 수치는 평신도 역할의 비중과 중요성을 단적으로 말해 줍니다. 그런데 인간의 땀과 노력과 희생만으로 세상의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루카 21,18) 하시는 주님의 약속에 근거하는 베짱이의 낙천적 여유와 더불어, 은근과 끈기의 정신으로 이 땅의 복음화와 하느님나라의 건설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서울대교구 김영국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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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오늘의 묵시록

1. 종교는 필요한가?

오래 전에는 종교가 사회를 지배하고, 얼마 전까지도 사회를 지도하고 걱정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사회가 종교를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최근 한국 사회에 일어난 엄청난 불상사에도 종교가 크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성직자, 구국 십자군, 굿당 등으로 한국 사회는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래서 인간을 죽도록 사랑하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허울뿐인 종교로 전락한 유다교와 끊임없이 마찰을 빚고 결국 그들의 농간에 희생되시고 말았습니다. 그 제자들도 유다교의 박해를 받으며 목숨을 잃어갔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나 봅니다.

“몇몇 사람이 성전을 두고, 그것이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졌다고 이야기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루카 21,5-6).

2. 오늘 벌어지고 있는 묵시록 장관

시리아 알레포에서 어른들의 공습으로 죽어가는 아이들, 수많은 사상자. 끊임없는 테러와 강대국의 무력 개입. 북한 핵미사일 실험은 이제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장사포를 비롯해서 대포로 끝낸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미군은 여러 신형 무기들로 평양을 쑥대밭으로 만들겠다고 겁을 줍니다. 사드와 강정이 이어집니다.

불벼락뿐만 아니라 물벼락도 떨어집니다. 하늘이 아니라 대한민국 경찰의 물대포 차에서 쏟아진 물벼락으로 백남기 농민이 죽고 말았습니다. 국가 권력에 의해서 국민이 죽은 것입니다. 국가의 권력이 쌀값을 현실화해 달라고 울부짖는 농민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버젓이 사회 곳곳에서 사람들은 거짓 구원과 해방을 약속하고 다닙니다. 아시아에서, 아프리카에서, 유럽에서, 아메리카 대륙에서 전쟁과 반란은 모두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 자행되고 있습니다.

일본의 후쿠시마 쓰나미의 피해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강력한 지진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경주에서 생긴 지진이 우리나라 국민을 두려움에 몰아넣었습니다. 병은 끊임없이 우리 생존을 뒤흔듭니다. 암과 같은 불치병이 우리 가정을 계속해서 위협하고 파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정이 더는 가족들의 안식처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15억 명이 훨씬 넘게 살고 있는 동북아시아에서 종교의 자유를 제대로 누리는 사람들의 비율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들의 신념대로 말하고 행동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종교와 양심이 박해받는 사회입니다.

이렇게 당장 세상이 망할 것 같은 상황이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너희는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나며, 큰 지진이 발생하고 곳곳에 기근과 전염병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과 큰 표징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앞서, 사람들이 너희에게 손을 대 박해할 것이다”(루카 21,7-12).

3. 새 하늘과 새 땅은 이미 시작되었으니

복음이 말하는 것은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새로운 인간이 나타난 것입니다. 사랑과 생명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고 교회의 구성원이 되는 것은 그 하느님 나라를 믿고, 그 나라에 자신을 내맡기고 사는 것입니다. 새로운 생명으로 사는 것입니다. 죽음을 이겨낸 부활을 사는 것입니다. 여기에 당장 어려움이 따릅니다. 그러나 결코 뒤로 물러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은 비극적인 상황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역사는 말해줍니다. 하느님께서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인내로써 생명과 평화를 얻어야 합니다.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루카 21,19).

▮ 서울대교구 주수욱 신부 : 2016년 11월 13일
  |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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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새로 태어나기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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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종말에 대해 궁금해합니다. 언제인지, 또 종말이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고자 합니다. 성경에서 종말은 두렵고 무섭게 표현되기 때문입니다. 전쟁이나 전염병, 그리고 하늘에서 일어나는 무서운 일들이 종말을 설명하는 주된 내용입니다. 종말은 말 그대로 이 세상의 끝을 말합니다. 이 세상은 사라질 것입니다. 하지만 종말은 단순한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현재의 세상을 고치거나 리모델링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은 사라지고 새로운 세상이 온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끝을 말하지만 새로운 것, 새로운 세상이 태동하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종말의 다른 의미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우리에게 전하기 위해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생명의 탄생을, 여자의 출산을 염두에 둡니다. 어머니는 새 생명을 낳기 위해 진통의 시간을 겪습니다. 그 고통의 순간이 지나고 이 세상에 새 생명이 태어납니다. 이 자연의 현상은 성경에서 종말을 말할 때 사용됩니다. 모든 것이 새롭게 되는, 새로운 세상의 시작 전에 어머니의 진통과 같은 고통의 시간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종말입니다.

그렇기에 종말은 고통스러운 일들이 일어나는 때로 생각합니다. 전쟁이나 전염병의 고통, 박해의 고난, 하늘의 표징들, 가장 가까운 가족과 친구들 사이의 갈등이나 분열. 이런 모든 것은 진통의 시간을 나타냅니다. 이 진통의 시간이 지나고 모든 것은 새롭게 되고 새로 태어납니다. 그래서 교부들은 모든 어머니들이 고통의 시간을 넘어 새 생명의 탄생에 기뻐하는 것처럼 종말 역시 고통을 넘어서는, 새로 태어나는 기쁨을 준비하는 시간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오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연중시기가 끝나가는 이 때에 우리가 듣는 종말에 관한 말씀은 새로 태어나는 것을 생각하고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종말은 미래의 일이지만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합니다. 신앙인은 종말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한다면 늘 새로운 생명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끝을 넘어 새로운 세상이 있는 것처럼, 죽음을 넘어 생명이 있는 것처럼, 새롭게 주어질 생명에 희망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 희망은 우리의 믿음에 바탕을 둡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끝이 아니라 부활하신 것을 믿는 이들에게 종말은 단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새로 태어나는 과정입니다.

그렇기에 성경은 종말과 함께 희망을 약속합니다. 시대와 배경은 다르지만 그 약속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희망 안에서 기쁨을 누리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나의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움의 태양이 날개에 치유를 싣고 떠오르리라.” 그리고 그때에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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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허규 베네딕토 신부
2019년 11월 17일
  |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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