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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교회의 생명력은 평신도에게 있다.
조회수 | 2,507
작성일 | 07.11.17
묵상길잡이 : 교회의 근본사명은 「세상을 복음화 하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의 이 사명은 세상 구석구석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평신도들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평신도야말로 바로 그 삶의 현장에서 세상을 비출 수 있고, 진리의 소금으로 부패를 막을 수 있다.

1. 누가 평신도인가?

오늘은 평신도 주일이다. 한국교회는 1970년부터 연중 마지막 주일을 ‘평신도 주일’로 지내고 있다. 이 주일의 의의는 세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평신도들의 적극적인 참여 없이는 교회가 그 본연의 사명을 다할 수 없음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데 있다.

그런데 ‘평신도’는 누구인가?

바티칸 2차 공의회는 “평신도는 신품(神品)과 교회에서 인정하는 수도 신분에 속하는 이들 이외의 모든 그리스도 신자를 말한다.”(교회헌장,31항)고 그 신분을 규정하고 있다.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는 세례를 받은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면에서는 꼭 같다. 다만 교회 안에서 그 맡은 바 역할이 다를 뿐이다. 일찍이 사도 바오로는 교회의 신비를 설명하시면서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지만 그 지체가 모두 같은 기능을 하지 않듯이, 우리도 수가 많지만 그리스도 안에 한 몸을 이루면서 서로서로 지체가 됩니다.” (로마12,4-5)하셨다. 사실 평신도, 수도자, 성직자는 같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며 맡은바 고유한 사명을 다함으로 교회를 완전하게 해야 한다.

그런데 교회의 현실은 어떤가?

많은 평신도들은 “신부님 수녀님이 계신데 우리가 뭘 어떻게 합니까?” 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런 자세를 취하는 그 밑바탕에는 ‘평신도는 신앙심이 부족해서 세속을 끊지 못하여 수도자도 성직자도 못된 변변치 못한 신자’ 라는 인식이 깔려있는 지도 모른다. 얼핏 보면 이런 태도는 참으로 겸손한 자세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은 “평신도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병신도(病身徒)이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이런 생각과 태도야말로 깨끗이 떨쳐버려야 할 낡은 생각인 것이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한 스스로 평신도로서 마땅히 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소홀히 하고 무책임하게 살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평신도는 세례로써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고, 하느님의 백성 중에 들고, 그들 나름대로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예언직과 왕직에 참여하며, 교회와 세계 안에서 그리스도 백성 전체의 사명을 각기 분수대로 수행하는 신도들을 말한다”(교회헌장,31항)고 평신도의 직분과 사명을 명시하였다.

2.세속에 살면서 세상을 성화(聖化)하는 평신도.

만일 모든 하느님의 백성이 성직자나 수도자가 된다면, 세상 속에 살면서 세상에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명은 누가 수행할 것인가?

수도자는 청빈과 정결과 순명의 서원을 통해 현세적 가치들을 뛰어넘어 하느님만으로 만족하는 삶을 증거 한다.

그리고 성직자는 말씀의 선포와 성무 집행을 통해 신앙의 씨를 뿌리며 신앙인들을 키우고, 하느님과 하느님의 백성 사이의 다리가 되어 준다.

평신도들은 세속에 그 삶의 바탕을 두고 있는 이들이다. 세상 도처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의 빛으로 세상을 비추며, 세상의 부패를 막고 새롭게 변화시켜야 할 사명을 구체적으로 실행할 사람들은 바로 평신도들이다. 집을 짓는데 설계도 중요하고 기둥도 중요하지만, 벽돌로 모든 공간을 쌓아 막지 않으면 건물은 완성될 수 없다. 평신도는 바로 건물을 완성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수많은 벽돌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성직자 수도자가 평신도 가정에서 나온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3.한국교회의 빛나는 전통

한국교회는 참으로 평신도들이 교회를 세우고 가꾸고 지켜온 빛나는 전통을 지니고 있다. 1784년 이승훈이 영세하고 1836년 프랑스 선교사들이 입국할 때까지 두 분의 중국 사제가 잠시 활동했을 뿐, 50여년을 평신도들의 열성적인 활동으로 박해 중에 교회를 이끌고 가꾸었다. 유요한과 이 누갈다 동정부부 순교자의 생애는 우리에게 특별한 감동을 준다. 당시 사회상으로 볼 때 어려운 사회여건 속에서도 맹렬한 활동을 한 여회장 강완숙(골롬바), 선교사를 모시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5천리 북경 길을 아홉 차례나 왕래한 정하상(바오로)성인, 16세에 장원급제하여 임금과 뭇 사람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지만, 하느님을 알고는 세상의 명예와 영광을 쓰레기처럼 버린 황사영(알렉산델) 등 우리 선조 평신도들은 참으로 위대하였다.

교회가 조직이나 구조적으로 아무리 거대하다 하더라도 깨어 활동하는 평신도들이 없다면 교회는 더 이상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없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하느님의 백성인 내가 바로 교회이다.”는 자각이 그 어느 때 보다 절실한 때이다.  

유영봉 몬시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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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의 17만 교형자매 여러분! 제46차 평신도주일을 축하합니다. 교회에서 특별히 기념하진
않지만 우리 스스로 기뻐하고 춤추며, 행복한 축제일로 지내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그나마 위로가 될 것 같습니다.

벌써 신앙의 해를 마감하게 됩니다. 지난 한 해 동안 교회와 평신도는 신앙을 재발견하고 신앙의 정체성을 찾기 위하여 나름 노력하였습니다. 평신도 여러분께서는 신앙을 다시 찾고 정체성을 회복하셨습니까? 하지만 교회의 모습과 우리들의 모습을 돌이켜보면 참으로 위험하고 아슬아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세상은 빠른 속도로 변하며 인간의 삶도 날로 풍요로워지고 빠르게 변하는 탓에 ‘신앙’은 소설속의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이웃들이 신앙에는 관심도 없고 웰빙, 힐링을 꿈꾸며 풍요로움을 추구하고 있으면 우리도 어느새 그 모습을 동경하고 닮아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연일 어두운 뉴스가 보도되어도 사람들은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나만 잘살고 아무 일 없으면 된다는 이기주의 때문입니다. 참 세상 무섭습니다.

반드시 우리 사회에는 교회가 있어야 하고 신앙이 있어야 하며,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파견되어야 하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나마 세상을 동경하면서도 ‘신앙’이라는 인큐베이터를 통해 주님을 찾고 있는 것이 다행일 뿐 입니다. 사실 평신도들은 항상 이런 위험한 세상 속에 방치되어 있지만, 교회는 치유할 수 있는 관심도 능력도 보여주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이제 새로운 평신도 그리스도인의 이상을 펼쳐봅시다. 특히 마산교구는 2016년 교구설정 50주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교구설정 50주년은 ‘희년’으로 기쁨과 희망의 해입니다. 평신도사도직의 사명을 온전히 비우고 다시 채울 수 좋은 기회로 평신도의 길을 다시 묻고, 다시 배우고, 다시 걸어갈 때입니다. 50주년을 맞으며 평신도들이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일상과 좋은 책을 읽으며 ‘책 읽는 그리스도인’의 풍경을 교회에 선물 하였으면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교구의 다양한 사업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열정을 보여줌으로써 평신도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밑거름이 되고 교회의 희망이며 기쁨이라는 봉사와 증거의 삶을 살도록 다짐해봅시다. 교회는 우리 평신도에게 세상의 빛이며 땅의 소금이지 않습니까?

<김황성 바오로 마산교구 평협 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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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평신도운동은 학습보다 삶의 실천으로 완성됩니다

제49회 평신도 주일을 허락하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평신도운동의 정체성을 바로 알고 우리들의 신원이 ‘평신도 그리스도인’임을 묵상하는 행복한 날입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평신도운동은 레지오, 꾸르실료, ME, 여성운동 등 다양한 모습으로 교회의 발전에 함께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본당 중심으로 평신도운동을 실천하였다면 이제는 가정과 사회 안에서 ‘평신도 그리스도인’의 작은 교회로서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 이 부르심의 응답은 평신도를 바르게 사는 것입니다. 평신도사도직의 거창한 가르침은 몰라도 좋습니다. 다만 평신도운동은 학습보다는 삶의 실천으로 완성된다는 것을 기억하고 ‘교회인’으로서 내가 본 그리스도의 모습을 세상 안에서 보여주어야 합니다. 나 때문에 냉담하거나 상처받은 이웃은 없는지 성찰하는 좋은 습관도 배워보고, 어색해도 ‘사랑’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가끔 ‘복음의 기쁨’을 묵상만 하여도 행복한 평신도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이 세상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가꾸고 변화시켜야 할 소중한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평신도의 날은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날’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나를 위해서 기도해주십시오.”라는 부탁을 자주 하십니다. 우리도 교황님의 가르침대로 사도직 활동에 참여하는 서로를 위해서 기도합시다. 나를 위해서 기도해주는 형제들이 있다면 얼마나 기쁘고 행복하겠습니까? 아울러 평신도 주일은 2차 헌금으로 평신도사도직운동을 응원하고, 함께 참여하는 사랑을 실천하는 날입니다. 기쁜 마음으로 사랑을 나누어 주십시오.

오늘은 우리들의 날입니다. 은인들의 도움을 받아 교중미사에 오시는 모든 분들과 작지만, 사랑을 가득 담은 떡 나누기를 통하여 평신도 주일을 축하하고,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의 기적을 배워보고 싶습니다.

▮ 마산교구 안상덕 다니엘 회장(평신도사도직협의회) : 2016년 11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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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차라리’와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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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세계 가난한 이의 날’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루살렘 성전 파괴에 대한 예언과 여러 재앙을 예고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 파괴를 시작으로 거짓 그리스도의 등장전쟁, 큰 지진, 기근, 전염병 그리고 무서운 일들과 큰 표징들이 일어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아니라도 살다 보면 누구나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것 같은 절망의 때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달자 시인의 글을 옮겨 적어 봅니다.

신달자 시인은 대화 중에 수 차례 “차라리 안 하고 말지!” “차라리 헤어지고 말지!” “차라리 죽고 말지!” 하면서 삶의 한 부분 부분마다 ‘차라리’라고 말하는 이의 얘기를 들으며 한 때 자신도 ‘차라리’를 연발 하며 살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합니다. 시인은 ‘차라리’ 하고 부정하기 보다 ‘그래도’ 하면서 희망을 찾았던 것은 기도의 힘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김승희 시인의 “그래도라는 섬에 살고 싶다”는 시를 적었습니다.

“가장 낮은 곳에
젖은 낙엽보다 더 낮은 곳에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도 사랑의 불을 꺼트리지 않는 사람들…”
세상이 끝장날 것만 같은 시기를 겪더라도 “인내로써 생명을 얻으라”는 주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인내는 가끔 시련을 동반하지만 하느님께 대한 희망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젖은 낙엽보다 더 낮은 곳에 사는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십니다. 신달자 시인도 ‘차라리’가 아니라 ‘그래도’는 언제나 자신에게 희망의 공간이었다고 말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담화문 첫 머리에 “가련한 이들의 희망은 영원토록 헛되지 않으리라”(시편 9,19) 하시면서 주님께 대한 신앙은 우리의 불안한 삶 안에서 잃어버린 희망을 되찾아 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말라키 예언자도 유다인들이 유배에서 돌아왔을 때 기쁨과 열정이 있었지만, 그것도 잠시뿐 또 다시 절망에 빠져 들자 ‘주님께 대한 신뢰를 가져라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약속을 실행하실 것이라고 하시면서 ‘차라리’가 아니라 ‘그래도’ 살아가는 이들에게 힘과 용기, 희망을 주십니다.‘“너희에게 의로움의 태양이 날개에 치유를 싣고 떠오르리라.”(말라 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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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장병욱 베네딕토 신부
2019년 11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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