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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희망의 징조"
조회수 | 2,019
작성일 | 07.11.17
많은 사람들이 불안 속에 살고 있다. 지치도록 고민하고 일을 하면서도 미래를 보장받지 못한 이유 때문에 불안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 평일 미사에 참례하는 신자들의 얼굴도 불안과 지친 얼굴들이 많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그렇게 각자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살면서도 미사시간이 되면 성전을 찾는 신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주님께서 현존하시는 성전은 신자들의 유일한 피난처요, 큰 위로를 받으며 마음과 영혼의 휴식처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복음은 혼란하고 무질서한 이 세상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시면서 이 세상이 감당해야 할 재난의 징조를 알려 주신다. 전쟁과 무서운 지진이 일어나고 기근과 전염병이 세상을 휩쓸 것이며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과 자연계의 질서조차 뒤집어지는 일이 일어날 것임을 예고하신다. 또한 우리가 겪어야 할 박해와 순교를 대비하라는 메시지와 함께 그런 와중에서도 두려워하지 말고 참고 견디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라는 절대 희망을 약속하신다.

불행한 운명을 재촉하던 예루살렘의 상황은 오늘의 이 세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참으로 두렵고도 불길한 징조를 예감하면서도 매일같이 성전을 찾는 우리 신자들을 보면 늘 깨어 기다리며 앞날을 대비하고 있는 하느님의 새 백성임을 의심할 수 없게 된다. 이는 바로 희망의 징조가 아닌가! 불안한 이 세상 한 가운데에 던저져 수 많은 고통과 죄악과 유혹에 시달리면서도 그리스도인의 양심과 신앙을 지키며 저렇게 끝까지 참고 버티어 내고 있는 교우들을 보며 교회의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가난과 고통 중에 살고 있는 이웃을 찾아 나서는 교우들이 적지 않다. 이것이 바로 희망의 징조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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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조성택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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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잊지 말아야 할 것

평신도로 살아간다는 것, 성직자로 살아간다는 것, 수도자로 살아간다는 것,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한 해를 돌아보는 지금, ‘나는 올 한 해, 하느님의 자녀임을 잊지 않고 살아왔는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됩니다.

고(故) 최인호 씨가 이런 글을 적었습니다. “어느 날 병원 복도에서 마주친, 천사와 같은 머리 깎은 어린 환자의 눈빛을 보았을 때, 나는 남몰래 눈물을 흘리면서 절규했다. 그렇다면 주님, 저 아이는 누구의 죄 때문에 아픈 것입니까? 자기의 죄입니까? 부모의 죄입니까? 그때 주님은 내 귓가에 속삭이셨다. ‘자기 죄 탓도 아니고 부모의 죄탓도 아니다. 다만 저 아이에게서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요한9,3)”고 통 중에 있을 때, ‘우리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나는 하느님의 사랑스러운 자녀’라는 것입니다. 나아가 자녀인 나를 통해 당신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함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번 보십시오. 고통 중에 있을 때, 아픔 중에 있을 때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임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지? ‘왜 저에게 이런 일이, 왜 저에게 이 같은 비난의 말이, 왜 저에게 이 같은 오해가, 왜 저에게 이 같은 시련이?’

“이런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루카 21,13).” 삶의 여정 가운데 고통이란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에서 헤어 나오기만을 바라며 발버둥 친다면 우리는 ‘십자가의 신비’를 깨달을 수 없을 것입니다. 십자가 위에 달리신 아들 예수님을 보십시오. 아들 예수님을 통해 놀라운 일을 드러내시는 성부의 뜻을 보라는 것입니다.

지금 나에게도 이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다만 내 스스로 하느님의 자녀임을 잊지 않을 때, 내 안에서 이루시는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우리는 보게 될 것입니다. 그때가 바로 평신도로서 우리들이 증거할 때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대구대교구 권대진 다마소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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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수도자, 성직자. 교회는 이렇게 각자에게 주어진 부르심에 따라 직무 사제직을 수행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평신도 주일입니다. 교회 안에서 평신도의 역할과 사명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합당하게 살아가도록 은총을 청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중심 구성원으로서 잘 살고 있는 것에 대해 하느님께 축복을 받는 날이기도 합니다.

평신도와 수도자와 성직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신앙인이라는 것입니다. 신앙인은 하느님을 믿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며 구원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수도자나 성직자라고 해서 구원이 보장되거나 쉽게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구원은 교회 안에서, 교회를 위해, 교회의 기초로 자리 잡고 살아가는 신실한 이들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특히 한국교회는 평신도의 역할이 아주 크고 소중합니다. 초대 한국교회는 평신도에 의해 하느님을 알게 되었고, 그들의 노력으로 성직자가 오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무서운 박해도 이겨내고 죽음으로써 신앙을 지키고 우리에게 유산으로 물려주었습니다. 오늘날의 한국교회를 있게 했고 성장하게 한 주인공들입니다.

그 신앙을 오늘날 현대사회에서도 그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평신도들의 열심한 신앙생활과 교회에 대한 사랑은 수도자와 성직자가 자신의 삶과 신앙생활을 겸허히 돌아보게 만들기도 합니다. 봉사의 왕직, 말씀선포의 예언직, 성사생활의 사제직 직무를 아주 잘 수행하며 살아가는 평신도들은 분명 교회의 보물이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제인 저 역시도 그런 평신도들의 삶과 신앙을 보면서 반성하고, 감동하고, 다짐하고, 고마움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세상에 복음적 가치를 보여주며 살아가는 평신도들은 신앙의 삶으로 희망의 세상을 만들어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교회와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사명과 역할인 것입니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루카 21,19)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용기의 말씀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중심으로, 또 주인으로 살아가는 평신도 여러분에게 하느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역할이 우리 교회의 미래이기에 여러분에게 파이팅을 외쳐 봅니다.

세상에 빛과 소금인 “평신도 여러분, 파이팅”입니다.

▮ 대구대교구 홍창익 비오 신부 : 2016년 11월 13일
  |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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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마지막을 준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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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코헬렛 3,2)라는 말씀처럼, 한 해의 시작이 어제 같은데 벌써 정리를 해야 하는 때가 다가왔습니다.

“예루살렘의 찬란한 모습을 다 보지 못한 사람은 아름다운 것을 보았다고 할 수 없고, 그 성소의 눈부신 장식을 보지 못한 사람은 예루살렘이라는 도시의 매력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이다.”라는 속담이 있을 만큼 아름답고 훌륭한 예루살렘 성전을 바라보며 탄복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오늘 예수님께서 아무런 감정 표현도 없이 성전의 파괴를 예고하시는 이유는 모든 사람에게 바로 끝, 마지막을 생각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부터 지금까지, 자신이 그리스도라고 하는 이들도 있었고, 종말의 두려움을 강조하여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하며 현실에서 도피하도록 이끄는 집단과 사람들도 여전히 생겨나고 있습니다.

권력자든 부자든 가난한 이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게는 끝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맞이할 그 끝은 지금 주어진 이 순간에 어떤 삶을 사느냐에 따라 확연히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현실 사회에서는, 어려운 이들의 삶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삶을 누리는 이들도 있고, 사회적 불평등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현실을 열심히 살되 그 삶을 나누지 않는 그 끝이 어떤지를 우리는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를 통해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마지막을 준비하는 자세는 현세 생활의 어려움을 회피하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 속에서 모든 사람들이 더욱더 하느님의 사랑에 마음의 문을 활짝 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생활하는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비록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녹녹하지 않지만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하겠다.”(마태 28,20)는 주님의 약속이 있으니, 주님을 만나는 그 순간까지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열심히 일하며”, 그 삶을 이웃과 나누며 주님과 함께 힘차게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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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시성복 바오로 신부
2019년 11월 17일
  |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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