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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착한 교우들에게 예수님의 측은지심을
조회수 | 2,642
작성일 | 07.11.18
어느 본당에든 착한 교우 분들이 많습니다. 이런 착한 교우 분들 때문에 사목생활에 활기가 있고 많은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새벽 추위를 가르고 이른 아침 어두운 성당에서 기도하시는 분들, 성당의 온갖 궂은 일들을 불평 없이 묵묵히 하시는 분들, 자신의 귀한 물건과 선물은 먼저 본당 신부님에게 드려야 마음이 편한 분들, 본당 여러 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 하시면서도 교우들의 참여도가 영 부족하다 싶으면, 마치 자신의 죄인 양 송구스럽고 안타까워하시는 분들, 감사의 작은 금액을 내 놓으면서 겸언쩍어 하시고 죄스러워 하시는 분들, 이 모든 분들 덕분에 사제가 살아가는 힘을 얻습니다. 때문에 '사제를 성인으로 만드는 것은 평신도요, 교우들을 성인으로 만드는 것은 사제라'는 말이 설득력을 얻습니다. 또한 '사제는 기도를 먹고 사는 사람이다.' 하였습니다. 사제의 양식인 기도는 거의 대부분 교우 분들에게서 얻습니다.

조금만 사랑의 시선을 가지고 돌아보면, 그분들은 겨우 얻은 휴식을 반납하여 교회에 봉사하고 있으며, 목구멍이 포도청인 사회의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남으려 발버둥 치면서도 교회 일에는 헌신의 봉사를 하며 하느님 나라를 가꾸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사목자들이 그분들의 은혜를 잊지 않는 하루가 되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많은 위로와 격려, 영적 목마름에 갈망하는 착한 교우 분들께 늘 무엇인가를 채워주어야 할 사명이 사목자들에게 있습니다.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인 측은지심의 눈길로 교우 분들께 다가가야 합니다. 그리고 끝내 용기를 잃지 않도록, 하느님의 기적과 사랑의 승리를 온 몸으로 보여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 나라가 이 지상에서부터 건설되도록 열심히 일해야 할 하느님 나라의 일꾼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상 오늘자 가톨릭신문 배광하 신부님의 ‘복음생각’ 요약). 저도 명심하겠습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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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방윤석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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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루가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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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연중 제33주일이며 동시에 1968년부터 한국교회에서 지내온 평신도 주일이기도 합니다. 그러하기에 오늘 주일은 바로 여러분들의 주일이며, 동시에 여러분들의 축제일이기도 한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 교회에서는 유일하게 사제에게 유보되고 사제들의 의무이기도 한 주일 강론을 오늘만은 평신도에게 양도할 수 있다고 허락을 주어서 많은 본당에서 본당 회장님이나 일반 평신도가 강론도 할 수 있는 주일이기도 한 것입니다. 오늘 평신도 주일을 맞이하여 무엇보다도 먼저 평신도란 어떤 사람들인가 하는 교회의 가르침에 대하여 생각해 보야야 하겠습니다. 1988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세계주교대의원 회의를 마친 후 평신도의 그리스도인에 대한 사도적 권고를 하였습니다. 그 문헌에 의하면 평신도들은 마태오 복음 20장에 나오고 있는 “포도원의 일꾼들”과 같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하늘 나라는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들을 사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밭 임자와 같다. 그는 일꾼들과 하루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고 그들을 자기 포도밭으로 보냈다.”(마태 20,1-2). 그러나 교회에서는 평신도를 단순히 포도원에서 일하는 일꾼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을 포도원의 일부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하시기에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에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포도나무의 표상은 구약성서에서부터 하느님으로부터 선택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되었습니다. 예레미야 예언자도 “나는 너 포도나무를 순종으로 골라 심었다”(2,21)라고 말씀하시며, 이스라엘을 하느님의 참 포도나무로 비유하여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도 구약에서부터 내려오는 이 포도나무의 비유를 다시 취하시어 하느님 나라의 여러 가지 측면들을 설명하는 데에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요한복음사가는 포도나무의 비유를 통하여 우리들에게 구약의 표상을 넘어서 더 깊은 신비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포도나무는 하느님 백성만의 상징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의 모습이요 상징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그분의 제자들인 우리는 그 가지인 것입니다. 그분은 참 포도나무이며 가지는 그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생명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하다면 평신도란 과연 어떤 사람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겠습니까?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31항에 보면 “평신도는 신품과 교회에서 인정된 수도 신분에 속하는 이들 이외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말하는 것이다. 즉 성세로써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고, 하느님 백성 중에 들고, 그들 나름대로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예언직과 왕직에 참여하여, 교회와 세계 안에서 그리스도의 백성 전체의 사명을 각기 분수대로 수행하는 신도들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편 교황 비오 12세께서도 1946년에 새 추기경들에게 하신 인사말에서 “신자들은, 더 정확하게 말해서, 평신도들은 교회 생활의 일선에 서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교회는 인간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 원리다. 그러므로 평신도들은 특별히 교회에 속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바로 교회라는 더욱 분명한 의식을 지녀야 한다. 교회란 모든 사람의 으뜸인 교황의 지도 아래 그리고 교황과 일치하는 주교들의 지도 아래 있는 지상의 신자 공동체이다. 이들이 바로 교회이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포도나무라는 성서적 표상에 따르면, 평신도들은 교회의 다른 모든 구성원들과 더불어 참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께 붙어 있는 가지들이며, 그분으로부터 생명을 얻고 또 열매를 맺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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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오늘 성서의 말씀은 세상 마지막 날 곧 종말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불살라버릴 마지막 날에 화려하게 꾸며진 성전은 돌 하나 남아 있지 아니한 채 무너져 내릴 것이며, 이런 일에 앞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빙자한 일들로 일대 혼란이 벌어질 것이라 예고하고 있습니다.

1947년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과학자들이 핵전쟁에 의한 인류의 멸망을 경고하기 위해 만든 ‘지구 종말의 시계(Doomsday Clock)’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시계는 세상 최후의 심판 날에 그 시간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당시에는 자정 7분 전이었고, 지금까지 모두 17번 조정되었습니다. 2007년에도 시계는 다시 등장했는데, 1월 17일자로 핵과학자협회는 23시 53분에서 23시 55분으로 2분 앞당겼습니다. ‘지구 멸망 5분 전’이라는 것입니다. 이 협회는 시간조정 이유에 북한과 이란 등 일부 국가의 핵개발 움직임과 함께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와 환경재앙을 추가했습니다.

우리는 성경과 교회의 가르침대로, 우주만물(宇宙萬物)이 시간과 더불어 창조됐고, 마침내 시간과 함께 종말을 맞게 되리라는 것을 압니다. 인간은 우주의 시작이 137억 년 전이라는 것은 분명하게 알아냈지만 우주 종말은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주 종말의 시각 역시 분명하게 예정되어 있습니다. 이 종말은 인간의 어떠한 노력으로도 되돌릴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 종말의 시간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제1독서 말라키서에서는 “보라, 화덕처럼 불붙는 날이 온다. 거만한 자들과 악을 저지르는 자들은 모두 검불이 되리니, 다가오는 그날이 그들을 불살라 버리리라.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날은 그들에게 뿌리도 가지도 남겨 두지 않으리라.”(3,19)고 되어있는데 이는 하느님의 뜻을 저버린 이들의 멸망을 뜻합니다. 이에 반해 하느님의 이름을 두려워하며 진실하게 산 이들에게는 “의로움의 태양이 날개에 치유를 싣고 떠오르리라.”(3,20)는 말씀이 내려지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최후의 날과 관련하여, 그 날이 오면 그리스도의 이름을 내세우는 이들이 나타나고 전쟁과 반란의 소문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면서 결코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민족과 민족끼리의 분규와 싸움이 일어날 것이고 무서운 지진과 전염병, 기근이 돌고 하늘에 이상한 징조가 나타날 것이라고 예고합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잡혀서 박해를 당하고 회당에 끌려가 감옥에 갇히고 주님 때문에 임금들과 총독들 앞에 끌려갈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서도 결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런 때일수록 하느님의 기쁜 소식인 복음을 증언해야 하고, 하느님께서 내려주시는 언변과 지혜로써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깨우쳐주고 계십니다. 이 같은 박해와 시련 때문에 생명까지도 잃게 될 것이지만 결코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하시면서 끝까지 참는 사람은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21,18)이라는 주님의 약속은 모든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시는 절대자이신 하느님 말씀입니다.

세상 안에서 현세 질서의 개선을 위해 예언직, 왕직, 사제직을 수행해야 하는 평신도 주일을 맞이하면서 이 말씀은 더욱 호소력 있게 들립니다. 세상의 모든 제도와 체제, 삶의 방식이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경쟁만을 부추기는 극도의 자본주의, 상업주의, 금권 만능주의에서 벗어나 하느님 말씀에 따른 이타주의, 자율적 봉사, 헌신적 사랑으로 바뀌어야 함을 깨닫게 해줍니다. 그러하기에 오늘 제2독서 중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3,10)는 말씀은 주어진 여건 안에서 자기가 할 바를 다하고 자기 몫을 차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곧 근면과 성실 안에서 서로 봉사하며 하느님께서 주시는 참된 구원을 얻어야 하며 또 이웃들과 함께 그 나라를 차지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오로가 당시의 사람들에게 “그런데 듣자 하니, 여러분 가운데에 무질서하게 살아가면서 일은 하지 않고 남의 일에 참견만 하는 자들이 있다고 합니다.”라고 꾸짖는 이 말씀은 또한 오늘의 우리들에게 하시는 말씀이기도 한 것입니다.

파도가 심한 바다 가운데 있는 조그마한 섬에 한 나비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심한 비바람에 겁이 나서 영영 날지를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바람이 그치는 날 날겠다고 생각했으나 바람이 그칠 리 없는 섬에서 그는 매일 같이 기어 다니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이렇게 기어 다닌 지도 몇 달, 그의 날개는 영영 쓸 수가 없는 폐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날아다니는 나비가 땅에 기어 다니는 곤충처럼 되어버린 것입니다.

주님의 날을 기다리며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깨어 있으라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은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하느님 은총의 선물을 잘 활용하여 항상 자신이 처한 위치와 상황에서 자신이 맡은 책임을 항상 성실히 수행하라는 말씀이기도 한 것입니다. 세상의 종말에, 아니 바로 우리들의 종말인 죽음을 맞이하여 우리들에게 다가올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들이 작은 사욕은 물론, 오만, 독선, 이기심, 명예심을 버리고 서로서로 기쁨과 보람을 주고받는 마음, 흐뭇하고 자발적인 마음으로 서로 봉사하는 사랑의 삶을 통하여 오는 것입니다.

오늘 평신도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들이 세례를 통하여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제직, 왕직, 예언직의 평신도 사도직의 의무를 다시 한 번 되새기며 이 세상에서 깨어있는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하느님의 나라는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말하는 방식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대로 우리들에게 주어진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기쁘게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때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러한 깨어있는 삶을 살 때만이 언제나 하느님 앞에 ‘서 있는’, ‘살아있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평신도 사도직의 날개가 폐물이 되지 않도록 매일 매일을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며 모든 시련을 이겨낼 수 있는,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인내를 주님께 청하며 이 미사를 봉헌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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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민병섭 신부
  |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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