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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연중 제34주일 (그리스도왕 대축일) 독서와 복음
조회수 | 2,671
작성일 | 07.11.23
▥ 제1독서 :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웠다.
▥ 사무엘기 하권 5,1-3

그 무렵
1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있는 다윗에게 몰려가서 말하였다.
“우리는 임금님의 골육입니다.
2 전에 사울이 우리의 임금이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출전하신 이는 임금님이셨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너는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고 이스라엘의 영도자가 될 것이다.’ 하고 임금님께 말씀하셨습니다.”
3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원로들이 모두 헤브론으로 임금을 찾아가자, 다윗 임금은 헤브론에서 주님 앞으로 나아가 그들과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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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독서 :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겨 주셨습니다.
▥ 콜로새 1,12-20

형제 여러분,
12 성도들이 빛의 나라에서 받는 상속의 몫을 차지할 자격을 여러분에게 주신 아버지께 감사드리기를 빕니다.
13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해 내시어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겨 주셨습니다.
14 이 아드님 안에서 우리는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습니다.
15 그분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맏이이십니다.
16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든 땅에 있는 것이든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왕권이든 주권이든 권세든 권력이든 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또 그분을 향하여 창조되었습니다.
17 그분께서는 만물에 앞서 계시고 만물은 그분 안에서 존속합니다.
18 그분은 또한 당신 몸인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그분은 시작이시며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맏이이십니다. 그리하여 만물 가운데에서 으뜸이 되십니다.
19 과연 하느님께서는 기꺼이 그분 안에 온갖 충만함이 머무르게 하셨습니다.
20 그분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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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 : 주님,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 루카 23,35ㄴ-43

그때에 지도자들은 예수님께
35 “이자가 다른 이들을 구원하였으니, 정말 하느님의 메시아, 선택된 이라면 자신도 구원해 보라지.” 하며 빈정거렸다.
36 군사들도 예수님을 조롱하였다. 그들은 예수님께 다가가 신 포도주를 들이대며
37 말하였다. “네가 유다인들의 임금이라면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
38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이자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다.’라는 죄명 패가 붙어 있었다.
39 예수님과 함께 매달린 죄수 하나도,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 하며 그분을 모독하였다.
40 그러나 다른 하나는 그를 꾸짖으며 말하였다. “같이 처형을 받는 주제에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41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
42 그러고 나서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하였다.
4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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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죄도 없으신 주님께서 죄 많은 사람들에게 사형 선고를 받고 십자가에 달려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시고, 만왕의 왕이신 분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사람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사람으로 오신 참하느님이십니다. 그런 분께서 한 줌의 먼지도 안 되는 사람들에게 순순히 당신 자신을 내어놓으셨습니다. 다시 한 번 사랑의 의미가 빛나는 순간입니다.

지도자들과 군사들이 ‘자신이나 구원해 보라.’며 예수님을 조롱합니다. 심지어 예수님과 함께 매달린 죄수 하나도,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 하며 예수님을 모독합니다.

사람들이 “교회가 왜 정치에 관여하느냐?”고 빈정거립니다. 지도자들이나 지식인들은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리고,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리라고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데, 어찌하여 교회가 그 말씀을 어기느냐?”고 조롱합니다. 몇몇 힘 있는 신자들도 “교회는 교회답게 조용히 기도나 할 것이지.” 하면서 세상 편을 듭니다. 그래서 오늘날 주님의 교회가 짊어져야 할 짐이 버겁습니다.

그렇지만 그 짐이 어두운 세상에 빛이 될 수 있다면, 누군가를 살리는 생명이 될 수 있다면, 우리는 기꺼이 그 짐을 지고 걸어가야 합니다. 빈정거림이나 조롱 따위는 들리지 않습니다. 왕이신 주님의 음성만이 들릴 뿐입니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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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10년 11월 21일
  |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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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그리스도 왕 대축일입니다. 전례력으로 한 해를 마감하면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임금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을 보면 의문이 생깁니다. 만물의 임금이신 예수님께서 너무나 무력하게 십자가에 매달리셨습니다. 왜 그러셔야만 했을까요?

우리말 가운데 곰곰이 새겨볼 만한 글자가 있습니다. 바로 ‘높’ 자입니다. ‘높’을 거꾸로 보면 ‘푹’이 됩니다. 곧 높아지는 사람은 푹 꺼지게 되고, 푹 아래로 내려간 사람은 높아집니다.

하늘 높은 곳에 계셨던 예수님께서는 그 자리를 그대로 간직하지 않으시고 ‘푹’ 내려오셨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그분께서 참다운 임금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분의 왕관은 가시관이었으며, 그분의 어의는 알몸이었습니다. 그렇게 푹 내려오시자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높이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늘과 땅과 땅 아래 있는 모든 조물이 그분을 주님이라 외치며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한자어 ‘왕’(王)은 본디 하늘(-)과 땅(_)을 연결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십자가를 통하여 하느님과 우리를 연결해 주신 예수님이야말로 참된 임금이 아니겠습니까?

해마다 전례력의 끝에 그리스도 왕 대축일을 지내는 것은 1925년 비오 11세 교황의 결정에 따른 것입니다. 당시는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였고 나치의 출현을 경험했던 터라, 그리스도를 임금으로 고백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시대적인 과제였을 것입니다. 참된 통치는 무력이 아니라 사랑임을, 참된 권력은 자신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낮추는 데에서 오는 것임을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삶으로 우리 모두에게 보여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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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13년 11월 24일
  |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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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백성을 이끌 영도자요 왕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이 자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다.”라는 죄명 패가 보여 주듯이, 그분의 왕권은 십자가 주위에서 펼쳐집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의 세례 때에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루카 3,22)라는 명패를 주셨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완전히 반대의 의미로 예수님을 고발합니다.

팻말뿐만 아니라, 형식에서도 예수님의 왕직이 드러납니다. 이스라엘에서 왕의 즉위식에는 늘 두 명의 증인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에서는 모세와 엘리야가(루카 9,28-36), 예수님의 부활 사화에서는 눈부시게 차려입은 남자 둘이 증인으로 등장합니다(루카 24,4). 그러나 골고타의 즉위식에는 단지 천박한 강도 둘이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시시한 즉위식에 오르실 왕은 끝까지 조롱거리가 될 뿐입니다.

그러나 이 초라한 즉위식에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두 강도의 이야기를 통해 그리스도의 왕직의 진정한 의미를 알려 주십니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적들과 죄인들에게 용서를 베푸는 직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왕권을 통해, 뉘우치는 강도를 아버지의 나라로 받아들이시고, 뉘우치지 않는 완강한 적들도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라고 하시며 용서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왕권은 용서와 화해를 위한 봉사의 직무인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뉘우치고, 다른 이의 죄를 용서해 주는 것도 그리스도의 왕직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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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교구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
매일미사 2016년 11월 20일
  |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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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그리스도께서 온 누리의 임금이심을 기억하는 그리스도왕 대축일입니다. 교회가 예수님을 온 누리의 임금으로 선포하는 이유는, 이스라엘의 임금이 된 다윗이(제1독서) 당신의 조상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바오로 사도가 이야기하듯이 세상 모든 것이 예수님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창조되었기(제2독서) 때문입니다. 곧, 예수님께서 만물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만물의 임금이신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에서는 십자가 위에서 조롱을 받으십니다.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분께서 아무것도 아닌 당신 백성에게 조롱을 받으시고 죽임을 당하시는 아주 역설적인 상황입니다. 이렇게 보니 예수님의 왕권, 예수님의 통치는 세상의 왕권과는 무엇인가 다른 모습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만물의 임금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만물이 하느님과 화해를 이루도록 하시려는 것이었다고 고백합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으신 것은, 오로지 당신 피로 모든 이의 죄를 대신 기워 갚으시기 위함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알려 주신 하느님의 계획이었고, 십자가는 바로 세상 창조 때부터 진행된 하느님의 계획이 온전히 실현된 장소였습니다.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만물을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내어놓으심으로써 참된 임금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오늘, 우리도 그분을 본받아 예수님의 왕직에 동참합시다. 곧, 이웃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놓는 십자가의 삶을 살아갑시다. 이것이 바로 우리 모두를 위하여 마련하신 하느님의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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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구 염철호 요한 신부
매일미사 2019년 11월 24일
  |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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