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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왕이신 예수님과 부활
조회수 | 2,882
작성일 | 07.11.23
죄수가 되어 강도들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참혹한 죽음을 당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세주가 되었고 온 인류의 빛이 되셨습니다. 죽음으로 단절된 절망의 세계 안에 영원한 희망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당신께서 부활하심으로써 이러한 일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류 역사에서 일찍이 없던 일이고 그 이후로도 자연 세계 안에서 있은 적이 없는 유일무이한 사건이요, 인류에게 최상의 희망을 주는 사건입니다.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사람들 속에서 30년을 함께 사셨던 예수님의 삶은 일반사람들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제나 그제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한 부류의 삶을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신 이후부터는 특별한 모습을 많이 보이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도 노력하면 예수님이 사셨던 삶을 어느 정도는 재현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불가능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공생활의 모습을 나의 삶 안에 재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의 죽음도 당시 이미 7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당했던 것입니다. 개중에는 자신이 저지른 범죄 때문에 그러한 죽음을 당한 사람도 있겠지만, 로마의 압제로부터 자신이 속한 민족의 자유를 쟁취하려다가 그러한 죽음을 당한 의인들도 대단히 많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삶과 죽음만이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고, 예수님이 시대와 장소에 제한되지 않고 온 인류의 왕이 되신 것은 바로 그분의 부활 때문입니다. 진정 그분은 부활하셨기에 그리스도왕이 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제2독서에서 전하는 바오로 사도의 논리를 뛰어넘는 다음의 말씀이 가능한 이유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형상이시며 만물에 앞서 태어나신 분이십니다. 그것은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 곧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왕권과 주권과 권세와 세력의 여러 천신들과 같은 보이지 않는 것까지도 모두 그분을 통해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만물은 그분을 통해서 그리고 그분을 위해서 창조되었습니다. 그분은 만물보다 앞서 계시고 만물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속합니다. 그리스도는 또한 당신의 몸인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그분은 모든 것의 시작이시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최초의 분이시며 만물의 으뜸이 되셨습니다.”

전헌호 실베스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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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성경의 핵심 주제는 무엇일까요?

예전 어떤 분의 강의에서 “성경은 절대로 읽으면 안 되는 책이다!”라고 들은 것이 기억납니다. 대신 “책장에 반듯하게 잘 꽂아 놓고 한 번씩 먼지만 닦아 주는 책이 바로 성경이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말씀을 듣는 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한 정적이 흐르더니 누가 시작했는지 모를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만큼 성경을 잘 안 읽는다는 것을 그렇게 빗대어 말씀하신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전 말씀을 드리는 것은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해서라는 것을 눈치 채셨을 것입니다.

사실 성경에 대해서 배우고 공부하거나 성경을 읽고 나누는 모임이 주위에 많습니다. 그리고 본당 차원에서 성경을 통독하거나 강의가 실시되는 경우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분명 예전보다는 훨씬 성경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고 실제로 읽으시는 분들도 많아졌습니다. 그래서인지 한 번씩 성경 통독 피정에 가서 “성경의 핵심 주제는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을 드리면 사랑, 창조, 구원, 용서, 희망, 생명, 자비, 평화, 정의 등 성경에서 다루어지는 주제들을 어렵지 않게 대답하십니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핵심 주제라고 생각하는 것들 가운데서 “하느님”이라고 대답하는 분은 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언급된 개념들은 곧 하느님께서 가지고 계시고 역사 안에서 드러난 그분의 속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는 속성을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그 속성의 주인을 이야기 하지 않은 셈입니다. 아니면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에 언급할 필요가 없는 심오함이 들어 있기 때문일까요?

어쨌든 두꺼운 성경의 주제는 한 마디로 “하느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속성을 가지신 하느님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 알고 또 그분과 어떤 관계로 맺어져 있는가를 아는 것이 성경을 읽는 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누구신지, 그분과 나는 어떤 관계인지 그리고 내가 누구인지를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대한 지식을 쌓아가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그보다 성경을 자주 펼쳐서 그 속의 한마디 한마디가 그 말씀을 읽는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를 알아들으려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할 것입니다.

오늘부터 우리나라 교회는 성서 주간을 시작합니다. 이 성서 주간은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에 더 관심을 가지고 그 말씀을 읽음으로써 생활을 복음화하기 위한 것입니다. 물론 성경을 매일 읽고 말씀을 묵상해야 하지만 조금 느슨해져 있다면 오늘을 시작으로 다시 해 봅시다. 그러면 멀리계신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님, 곧 임마누엘 하느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 대구대교구 박상용 요한 신부 : 2016년 1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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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사랑의 왕권

오늘은 교회력으로 1년을 마무리하는 그리스도 왕 대축일입니다. 세상 마지막 날 그리스도께서 참된 왕으로 오실 것이고 우리가 그 왕을 뵙게 될 것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왕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우리도 곧 대통령을 뽑아야 합니다. 우리가 대통령을 뽑을 때도 그 사람이 우리를 좀 더 잘 살게 해주고 대외적으로도 우리나라의 위상을 더 높여줄 것 같은 사람을 뽑습니다. 최고 지도자에게 그런 기대를 거는 것은 시대와 민족을 불문하고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일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강한 지도자에게 자신을 의탁하고자 합니다.

제 1독서는 남부 유다부족의 왕이었던 다윗이 온 이스라엘 민족의 왕이 되는 장면입니다. 이스라엘이 다윗을 왕으로 모시는 이유는 그가 사울 휘하에서 적들로부터 거둔 승리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다윗을 왕으로 모시면 다시는 주변 나라들의 침략을 받지 않고 평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고 기대를 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다윗 왕 때는 백성들의 꿈이 실현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이스라엘은 남·북 왕국으로 분리되고 차례대로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한 역사를 바라본 사무엘서의 저자는 “너는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고, 이스라엘의 영도자가 될 것이다”라는 하느님의 특별한 약속을 삽입시켰습니다. 진정한 왕은 백성들을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목자가 되어야 한다는 예언자들의 사상입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유다인들은 다윗과 같은 훌륭한 왕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로마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고 다윗 시대의 영화를 누릴 수 있길 기대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루카사가는 예언자들이 기대하던 진정한 왕권이 예수님 안에서 성취되었음을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셨고 그 위에는 “이 자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다”라는 죄명 패가 붙어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누가 보아도 실패한 인생입니다. 그래서 호기심 많은 군중들 그리고 백성의 지도자들, 군인들 심지어 함께 십자가에 매달린 죄수까지도 예수님을 조롱하고 모독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죄수는 그러한 예수님이 만민의 왕이심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자비를 구했습니다.

놀랍게도 무력해 보이던 예수께서는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라고 선언하십니다. 낙원은 인간의 모든 소망이 성취되는 장소 곧, 하느님 나라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정치나 군사적으로 뛰어난 능력이 아니라 자신을 온전히 내어놓는 삶의 결과로 지게 된 십자가로 우리를 하느님의 나라로 데려가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루카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왕권의 본성을 구체적으로 이해하도록 도와줍니다. 그리스도의 왕권은 당신의 생명까지도 다 내놓으시는 봉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사랑의 왕권입니다.

형제 자매님, 그리스도의 왕권은 논리적으로 수긍하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생활로써 체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 2독서의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받고 죄의 속박에서 풀려났으니 그리스도의 왕권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향해 창조된 만물이 그리스도께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이제 우리가 그 왕권을 행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참 왕이신 예수님의 왕권을 우리가 어떻게 행사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으면 됩니다. 즉 그리스도를 닮아 그리스도다운 사랑을 행동으로 펼쳐 보일 때 사람들은 그러한 우리를 보면서 볼 수 없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게 되고 그분께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그리스도를 따라 그분의 왕권을 행사하도록 불림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라 하기 위해서는 그분이 어떻게 사셨는지를 알아야 하고 또 그분이 지금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열린 마음을 지니고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 성경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 지금 내가 무엇을 하기를 바라시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형제 자매님, 우리가 성경을 멀리하고서는 결코 하느님의 뜻을 제대로 알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죠. 성경을 자주 접함으로써 우리 생활 중에 들려오는 많은 음성들 가운데서 어느 것이 주님의 음성인지도 잘 식별할 수가 있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 왕 대축일을 지내면서, 다시 한 번 매일 우리의 생활 안에서 왕이신 예수님의 뜻을 잘 알아듣고 그 말씀을 실천하겠다는 결심을 새롭게 하도록, 성서주간도 함께 지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매일 성서를 읽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죠? 마침 어떤 성경이 소개해 달라고 자신의 일기를 보내왔습니다. 한번 들어보세요!

1월 4일. 오늘은 정말 기쁜 날이다. 성 바오로 서원 서가에 꽂혀 있던 나는 새 주인을 만나 오늘 이 집으로 이사를 왔다. 주인도 나를 너무나 예뻐해 준다.

1월 6일. 주인은 내가 매우 사랑스러운가 보다. 어제처럼 오늘도 1시간 동안이나 따사로운 눈빛으로 나를 열심히 들여다보았다. 나도 주인이 무척 사랑스럽다.

1월 15일. 요즘은 주인이 무척 바쁜가 보다. 며칠째 나를 쳐다보다간 곧 밀쳐 버린다. 내가 잘못한 것은 없는데...

3월 1일. 나는 오랜만에 기쁨을 누렸다. 주인이 나를 완전히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오늘은 나를 다시 사랑해주었다.

3월 2일. 너무 실망스럽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오늘 주인은 나를 찾아 주지 않았다.

5월 30일. 주인은 나를 까맣게 잊어버렸나 보다. 난 벌써 두 달째 책꽂이에서 잠만 자고 있다.

10월 15일. 가냘픈 코스모스 두 송이가 내 뺨을 간지럽혔다. 꽃잎을 말리기에 내가 제일 적합했나 보다. 아, 슬퍼다!

12월 2일. 주인은 부랴부랴 내 머리에 쌓인 먼지를 털더니 나를 책상 위에 펴놓았다. 본당 신부님이 가정 방문을 오시는 날이다.

형제 자매님, 형제 자매님의 성경이 이런 슬픈 일기를 쓰는 일이 없도록 매일 조금씩이라도 성경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형제 자매님의 성경은 “아! 나는 주인을 잘 만나서 참으로 행복하다. 내 주인이 매일매일 나를 사랑해준다. 내 주인이 무척 자랑스럽다.”라는 일기를 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형제 자매님, 우리는 성경 안에서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또 맏형이신 예수님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만나야 아버지의 뜻을 올바로 알 수가 있습니다. 나아가 알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생활 가운데서 실천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왕권을 행사하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를 만나는 사람들은 우리를 통해서 하느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도 예수님 사랑의 왕권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 대구대교구 박영봉 안드레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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