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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예수, 왕중의 왕
조회수 | 3,139
작성일 | 07.11.23
교회는 연중 마지막 주일을 그리스도왕 대축일로 정하여 예수님이 왕으로 다시 오실 것을 기리고 있습니다. 십자가 위에는 라틴어로 INRI라는 글자가 새겨 있습니다. 이는 ‘유대인의 왕 나자렛 예수'라는 말의 약자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정말로 예수를 왕으로 인정하여 쓴 것이 아니라 조롱하기 위해 썼던 것입니다. 그러나 맞는 말이 되었습니다.

본래 유대인들에게는 하느님만이 진정한 왕이었습니다. 그들은 또 다른 왕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국가의 왕이 없으니 여러 가지 곤란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 청하여 왕을 세웠던 것입니다. 제일 처음 왕으로 뽑힌 자가 사울인데 그러나 그는 하느님 눈밖에 난 사람이었고 둘째 왕인 다윗이야말로 유다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오늘 1독서에 보면 다윗이 통일 국가의 왕으로서 등극하는 내용이 나왔습니다. 기원전 약 1천 년경이었습니다. 다윗은 비록 목동 출신이었지만 하느님께 순명하고 또 그 길을 충실하게 걸어가려 했습니다. 물론 죄도 있었지만 이내 뉘우칠 수 있었고 그 때문에 더 겸손할 수 있었던 아주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후계자들은 하나같이 못난 왕들이었습니다. 건듯하면 하느님을 배신하고 우상이나 섬겼으며 못된 짓거리를 골라서 하다가 결국은 나라를 망쳤습니다. 그리고 뼈아픈 유배생활을 체험했습니다. 이처럼 왕들의 실정에 실망한 백성들은 다윗에 버금가는 새 왕을 기다리게 됩니다. 이것이 메시아 사상의 시초가 됩니다.

유대인들은 정말 강력한 힘을 가진 왕을 기다렸습니다. 압박 받는 식민생활에서 해방되어 독립국가를 건설하고 경제적으로 배부르고 사회질서가 안정된 복지국가를 꿈꿨습니다. 그리고 그 꿈은 메시아 가 나타나서 해결해 주리라 믿고 그래서 간절한 마음과 신앙으로 기다렸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혜성처럼 등장하자 그가 바로 메시아다 하면서 기대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예수는 너무 딴판이었습니다. 하느님께로부터 온 사자 같기도 한데 이건 어찌된 일인지 순전히 죄인들과 어울리면서 먹고 마시기나 하지, 나라를 해방시키고 독립시키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빵 다섯 개로 수천 명을 배불리 먹이시면서도 국민들의 가난에는 손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를 단죄했습니다. 저 친구는 메시아도 뭣도 아니고 한낱 사이비 종교의 교주쯤으로 무시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왕이라고 사칭하면서 백성을 선동시키고 우롱했다 해서 십자가에 매달아 처형시켰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아무런 힘의 과시나 방어도 없이 그대로 당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였을 때 그들은 이제 세상이 조용하리라 믿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메시아를 열심히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다른 메시아는 오지 않았고 죽은 예수는 오히려 유대인들을 더 곤혹스럽게 만들었습니다. 그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이며 그리고 그를 믿는 추종자들이 계속해서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정말 왕으로 오셨습니다. 물론 세상에서는 더없이 초라한 왕이었습니다. 가난한 왕이었으며 힘없는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겸손하면서도 가장 완벽한 왕이었습니다. 그분은 진정 가난하고 병든 사람에게 참된 희망을 주었으며 죄로 타락하여 구제불능인 세상에 하늘의 문을 복되게 열어 주셨습니다. 가진 것이 없으면서도 모든 이에게 넉넉하게 채워 주셨습니다.

그 왕이 이제 다시 오십니다. 이것은 그분의 약속입니다. 우리는 정말 살아서도 죽어서도 그분 나라의 백성입니다. 십자가 옆의 강도는 그분을 왕으로 고백했다가 바로 그 자리에서 구원받았습니다. 우리의 구원도 그분이 왕이라는 고백과 믿음에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왕으로 고백하고 믿음으로써 늘 새 날을 만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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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교구 강길웅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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