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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우리의 왕은 이렇다.
조회수 | 3,135
작성일 | 07.11.24
오늘 복음을 보면 두 사람의 왕이 나옵니다. 하나는 예수님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빌라도이며, 다른 또한 왕은 조롱의 의미로 유다인의 왕이라고 십자가 위에 명패를 붙인 나자렛 예수님입니다. 이 두 왕, 빌라도라는 유다인의 왕과 우리 신앙의 왕 예수님을 비교해 보면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이 확연히 드러날 것입니다.

유다 나라의 총독이었던 빌라도는 권력과 명예와 부를 한 손에 거머쥐고 무서운 힘을 가진 세상의 왕이었습니다. 반면에 유다의 가난한 시골 나자렛 출신 예수님께서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몸소 보이시며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신 '왕'이십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렇게 조롱거리가 되어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는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전 세계 어디서나 주님으로 흠숭 받으며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반면에 막강한 무력을 행사했던 빌라도왕은 예수님 덕분에 기억되는 존재일 뿐 역사 속에서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시고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그 모든 곳은 성지가 되어 순례객들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그 분의 가르침과 행적을 기록한 성경은 출간된 이래 세상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기록을 끊임없이 갱신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바꾸어 놓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힘을 발휘하고 있는 왕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랑의 왕이지요.

미국의 철학자이자 사상가인 '랄프 왈도 에머슨(1803-1882)'은 <성공>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엇이든 자신이 태어나기 전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만들어 놓고 가는 것, 자네가 이곳에 살다 간 덕분에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더 풍요로워지는 것, 이것이 바로 성공이라네." 예수님의 지상 삶은 한 사람의 행복과 풍요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기를 두고 세상 끝나는 날까지 모든 사람에게 미칠 것입니다. 때문에 그분은 온 세상에서 사랑의 왕으로 불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두 왕을 비교하며 어떤 왕을 섬겨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세례성사를 통해 빌라도와 같은 인생길에서 돌아서서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신앙고백하고 서약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의 생활은 빌라도의 권력을 흠모하고 빌라도의 삶을 흉내 내고 있지나 않은지요? 스스로 되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왕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십니다. 오늘로써 한해가 끝나고 새해가 시작됩니다.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께 새로운 출발을 약속드리며, 우리의 앞날을 지켜주시기를 청하기로 합시다.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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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방윤석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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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참된 메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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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는 이집트의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모세의 인도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정착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셨습니다. 자유와 해방의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은 위기 때마다 하느님의 도움을 받은 판관들이 나타나서 다스려 왔습니다. 그러다가 점점 주변의 강대국들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해 줄 임금을 원하였고, 사무엘 예언자가 사울의 머리에 기름을 붓는 예식을 거행하면서 드디어 이스라엘에도 왕국이 세워졌습니다.

사울의 뒤를 이은 다윗 왕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정치, 경제, 종교, 문화 등을 아우르는 가장 강력한 왕권을 건설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솔로몬 왕이 예루살렘 성전을 건설하면서 안정된 제정일치의 왕국을 다스렸으나, 솔로몬의 아들들에 의해 왕국이 남북으로 갈라졌습니다. 그 이후에 북 이스라엘 왕국이 먼저 멸망을 하고, 남유다 왕국도 바빌론으로 유배를 갔다가 돌아오면서 예수님 시대에 이르기까지 주변 강대국들의 식민지 지배를 받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면서 유다 왕국은 종교를 중심으로 더욱 굳건하게 뭉쳤습니다. 이를 통해 정치적으로는 주변 강대국들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지만, 종교적으로는 독립적인 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왕국의 아픈 역사를 겪은 민중은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다윗 왕과 같은 강력한 임금이 나타나 자신들을 해방시켜줄 것을 희망하는 메시아사상을 꿈꿔왔습니다.

히브리어 “메시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그리스어로 바꾸면 “그리스도”라는 단어가 됩니다. 결국 메시아사상은 이스라엘에 왕국이 설립될 때부터 왕에게 기름을 붓는 예식을 거행한 데서 비롯되었으며, 유다인들은 다윗 왕처럼 이스라엘 왕국을 부흥시킬 강력한 왕의 도래를 기다려왔습니다. 이렇듯 민중은 예수님에게서 정치적인 메시아의 모습을 기대했기에,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사랑의 완성을 보여준 참된 왕이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이 된 우리는 어떠합니까?

교회 전례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주일인 오늘은 “그리스도 왕 대축일”입니다.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된 왕이심을 성경 전체는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성서주간”을 보내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우리는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가운데 각자의 삶 속에서 “참된 메시아”이신 “그리스도 왕”의 사랑을 더욱 깊이 닮아 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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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김대건 베드로 신부
  |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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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나는 왕이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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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는 왕이로소이다’는 태종의 셋째 아들 충녕대군이 세자 책봉을 받고 석 달 동안 잠적한 내용 다루고 있는 코믹한 영화다. 왕이 되는 것을 죽는 보다 더 싫어했다는 충녕군은 남몰래 궁궐을 넘어 노비의 신분으로 백성들 고달픈 현실을 온몸으로 고달픈 현실을 온몸으로 부딪히면서 점점 성군의 자질을 갖춰가고 또한 자신이 왕으로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배워가게 된다. 그가 바로 우리 역사상 가장 훌륭한 임금으로 칭송받는 세종이다.

예수님은 빌라도가 ‘네가 유다인의 왕이냐?’ 하고 심문할 때 스스로를 왕이라고 하지 않고 왕이 되기를 거부하셨다. 빵의 기적을 베풀었을 때 군중들이 억지로라도 왕으로 모시려고 했을 때에도 그 분은 다른 곳으로 피해가셨다. 오히려 그분은 세상의 왕들과는 거리가 먼 초라한 삶을 사셨다. ‘섬김을 받으러 오지 않고 섬기러 왔다.’는 그분 말씀대로 병자와 세리 어린이와 과부 같은 힘없고 가난한 이들과 어울려 살다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 이러한 예수님을 우리는 만민의 왕으로 ‘하늘에 있는 것이든 땅에 있는 것이든 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또 그분을 향하여 창조되었다.’고 고백하며 만군의 주님으로 모신다.

오늘 지내는 그리스도 왕 대축일은 ‘만물이 그분 안에 존속’ 하듯이 인간의 전 존재도 그분께 속해있 음을 고백하고 기념하는 날이다. 스스로 자신을 낮추면 높아진다는 역설적인 진리를 우리는 예수님 뿐 아니라 오늘의 역사와 현실에서도 똑같이 배운다. 우리는 저마다 ‘나는 왕이로소이다’라고 외치며 각자의 자리에서 또 다른 왕이 되기를 꿈꾼다. 군림하려 하고 지배하려 하고 대접받으려 하고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란다. 자비의 특별희년을 마무리 하고 전례력으로 한 해를 마감하는 그리스도 왕 대축일에 왕이 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

왕이 되기를 꺼려하고 스스로 낮은 신분을 선택했던 충녕처럼 백성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며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는 자가 그 시대의 칭송받는 왕이요 지도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시대가 바뀌어도 백성들의 심금을 울리며 감동을 주는 자가 그들 마음속에 각인된 영원하고 진정한 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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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여준구 안토니오 신부
2016년 11월 20일
  |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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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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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3주일의 감사송은 ‘주님은 거룩한 사랑의 불을 놓으시려고 사마리아 여인에게 신앙의 갈증을 느끼게 하셨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신앙의 갈증을 느끼는 사람만이 희망 속에 살아갈 수 있으며 매일의 삶이 솟아오르는 샘물처럼 마르지 않고 생기가 있으며 기쁨이 되기 때문입니다.

10대 때부터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보인 청년이 있었습니다. 청년은 대학을 졸업한 뒤 첫사랑과 결혼해 유럽을 여행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갑작스런 건강 악화로 4년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큰 슬픔에 빠진 청년은 독일에서 머물며 마음을 추슬렀는데 이 가운데 ‘인생찬가’같은 아름다운 시를 남기며 슬픔이 아닌 오히려 희망을 노래했습니다. 훗날 하버드대학교 교수가 된 청년은 다시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 재혼을 했지만 불의의 화재로 다시 아내를 잃었습니다. 극심한 우울증에 빠진 교수는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펜을 잡아 단테의 신곡을 번역했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아름다운 시들과 예수님의 사랑을 다룬 글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교수직을 은퇴하고도 미국 문학사에 남을 뛰어난 업적들을 계속해서 남기던 헨리 롱펠로는 인생의 숱한 고난에도 다시 일어서고, 고령의 나이에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던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 집 정원에는 늙은 사과나무가 있습니다. 누가 보아도 나이가 많아 보이는 고목이지만 해마다 맛 좋은 사과가 열립니다. 늙은 나뭇가지에서도 새순이 나고 사과가 맺히는 것을 보고 나도 저 사과나무처럼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주님을 찾는 시기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발견할 때만이 우리 삶은 희망 속에서 꽃을 피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십자가 위에서 목마르다고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주님께 우리 사랑의 물을 드려보십시오. 분명 그분은 우리에게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생명수로 보답을 해 주실 것이며, 우리의 삶은 희망과 기쁨에 넘칠 것입니다.

코로나19로 고통과 갈등 속에 있는 지금이야 말로 주님께 우리 삶의 생기를 되찾을 생명수를 청할 때입니다. 우리 사랑의 물을 이웃들에게 나눠줌으로 주님으로부터 위로와 희망의 샘물을 얻어 마시는 한 주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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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민병섭 바오로 신부
2020년 3월 15일
  |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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