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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 오드리 헵번과 2000년의 사랑
조회수 | 11,514
작성일 | 10.01.30
오드리 헵번(1929~1993)하면 무엇이 떠오를까요? 우리는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인형 같은 외모를 떠올릴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아프리카에서 깡마른 아이를 안고 있는 그녀의 사진을 떠올립니다. 그녀는 두 번의 이혼으로 사랑의 배신을 경험했고, 말년에는 암으로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유니세프 친선대사를 자청해서 20여 개국을 방문하며 도움이 필요한 굶주린 아이들의 실상을 세상에 알렸고,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그녀가 죽기 전 마지막 크리스마스 이브에 아들에게 남긴 글은 우리에게 진한 감동을 줍니다.

“매력적인 입술을 갖고 싶으냐? 그러면 친절하게 말하여라. 사랑스런 눈을 갖고 싶으냐? 그러면 사람들 속에서 좋은 것을 발견하여라.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으냐? 그러면 너의 음식을 배고픈 사람과 나누어라. 아름다운 머릿결을 갖고 싶으냐? 그러면 하루에 한 번이라도 아이들이 그 머릿결을 어루만지게 하여라. 균형 잡힌 걸음걸이를 유지하고 싶으냐? 그러면 네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걸어라. 생기 있게 살고 싶으냐? 그러면 물건뿐 아니라 사람도 새로워져야 하고, 재발견해야한다. 존경받는 삶을 살고 싶으냐? 그러면 어떤 사람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생명 있는 모든 사람을 존중하여라.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싶으냐? 그러면 너 역시 도울 수 있는 손을 갖고 있음을 기억하여라. 아들아, 나이를 먹으면 너도 알게 된단다. 우리가 두 개의 손을 가진 이유는 한 손은 자신을 위한 것이지만 나머지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한 것임을.”

그렇습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젊음이 아니었습니다. 평생을 사랑의 마음으로 살았기에 그녀가 진정 아름다울 수 있었습니다. 부분이 아니라 전부가 아름다울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고향사람들에게 배척을 받았습니다. 왜 예수님은 고향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했을까요? 사람들이 부분을 보고 전체를 평가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놀라운 말씀을 듣고도 이렇게 말합니다.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루카 4,22)

맞습니다. 그분은 요셉의 아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부분입니다. 그분은 요셉의 아들이었지만 하느님의 아들이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과소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분에게 최상의 기적을 원했습니다. 마치 자기 자녀들에게 나무랄 때에는 누구누구보다도 못한 가치 없는 아이로 만들어 놓고, 그 아이에게 바라기는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좋은 배우자를 원하는 부모들처럼 말입니다. 부분을 가지고 전부를 무너트린 사람이 최고의 결과를 바란다는 건 모순 아닐까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기가 뜻한 대로 되지 않자 예수님을 벼랑 끝으로 내몹니다.

요즘도 예수님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왜 믿지 않는 사람들이 사랑이신 예수님을 거부할까요? 예수님이 싫어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정신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2000년 전의 모습으로 가둬놓지 마십시오. 그것이 그분을 부분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분을 지금 우리와 함께 머물게 하십시오. 그분의 손길이 필요한 모든 이방인들에게 우리의 손을 내미십시오. 우리도 예수님처럼 그들에게 도움을 주십시오. 빵이 필요한 이에게 빵을 주고, 사랑이 필요한 이에게 사랑을 주십시오. 그것이 그분을 온 세상에 완전히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행하신 2000년의 사랑이 됩니다. 빵을 주고 싶어도 몇 개밖에 안 된다고요? 그러면 그것을 5000일 동안 매일같이 하십시오. 매일 100원의 기금을 5000일 동안 모아 기아 돕기를 하십시오. 그러면 5000일의 기적을 행할 수 있답니다. 한 번의 많은 헌금보다는 평생의 작은 헌금이 그리운 오늘입니다.

손용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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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연중 제4주일이면서 동시에 우리나라 교회에서 정한 해외 원조주일입니다. 교회는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주님의 계명을 가르쳐 왔을 뿐만 아니라, 초대교회 때부터 지금까지 이 계명을 실천하여 왔습니다. 수세기에 걸쳐 다양한 길을 통하여 이웃사랑을 가난한 형제들에게 증언해 온 수많은 그리스도인 덕분에 교회 역사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자선의 역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세계 도처에는 가뭄과 홍수, 지진과 태풍 등의 자연 재해와 전쟁, 분쟁, 동족 간 내전 등의 인재로 수많은 사람들이 헐벗음과 굶주림 가운데 우리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자비의 특별 희년을 선포하시면서 사회적 가르침을 통하여 이웃 사랑의 실천을 권고하셨습니다. 또한, 교구 사목교서 ‘축복의 형제애’를 통해 주교님께서는 형제애의 원천인 하느님 사랑을 통해 이웃 사랑 실천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주셨습니다. 가난한 나라에서 영양실조로 굶주리는 이들을 정성을 다해 돕도록 청하며, 국제 자선 기구를 통해 물질적 도움을 보내며, 우리 주님의 사랑이 슬픔에 젖은 이들에게 위로하고 격려하자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듣고 실천해야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무조건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듣지 않으며 거부하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잘 듣고 실천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 주님의 기쁜 소식인 것입니다.

이 땅에는 아직도 소외받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 삶의 자리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을 위한 조그마한 관심, 작은 기도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 역시 예수님 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예수님을 벼랑 끝으로 몰아내게 되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주님께서 한가운데를 걸어 나가시는 그런 곳을 만들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토록 사랑하신 이 시대에 소외받는 사람들이 주님으로부터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우리 공동체가 되길 기도하면서 오늘도 힘차게 생활합시다.

▥ 군종교구 홍헌표 베드로 신부 2016년 1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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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시선과 말씀 안에 사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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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말씀은 우리에게, 믿음이 없는 이들에게는 기적도 없음을 알려줍니다.

갈릴래아에서 시작한 공생활 동안 예수님은 사람들을 가르치시고, 병자를 고쳐주시고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예수님의 공생활 시작과 함께 고향에서는 수많은 소문이 생겼습니다. “기적”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냉소적으로 비웃는 어른들도 있었습니다.“아! 내가 예수라는 아이를 갓난아기 때부터 봤는데, 얼마나 귀엽고 착한아이였는데 그 꼬맹이가 무슨 기적을 행해!”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행적과 기적, 가르침 등을 소문으로만 듣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예수님을 궁금해 했습니다. 바로 그때 예수님께서 나자렛 고향 사람들에게 다가가셔서 하느님말씀을 권위 있게 선포하고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예수님을 긍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음 구절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고향 사람들은 그동안 궁금해 했던 예수님을 직접보고 놀라워하면서도 예수님의 말씀선포와 가르침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영적인 말씀을 찾기보다“내가 저놈 다 알아! 이야, 근데 많이 컸네!” 하면서 예수님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겁니다. 샘을 내고예수님을 깎아내리려 수군거립니다. 예수님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들은 소문으로만 듣던 예수가 정말 권위 있게 말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기특하게만 바라봅니다. 영적 지도자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적인 눈으로만 예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고향 사람들의 눈에 비친 예수님은 “아이”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는 얼마나 억울하고 답답하셨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답답하고 억울한 역경을 어떻게 극복하셨는지를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떻게 하셨나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향해서 말씀하십니다.“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말씀을 통해서 힘을 얻으시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구약성경을 완전히 꿰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예언자들의 삶을 공부하셨고 그래서 성경 속에 나타난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위안을 얻으셨습니다. 남들의 인정을 구걸하지 않으시고 예수님은 늘 말씀을 곱씹고 되새기면서 다니셨습니다. 그러기에 그런 힘든 상황에서도 말씀을 예로 들어서 힘을 얻으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한 주간, 고통과 고난, 역경을 마주하는 예수님의 태도를 본받아 늘 말씀을 되새기면서, 말씀 안에서 영적인 눈을 성장시킬 수있는 은총을 청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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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종교구 박우성 암브로시오 신부 : 2019년 2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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