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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피조물 안에 숨어계신 하느님 찾기
조회수 | 1,555
작성일 | 10.01.30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수도회에 들어와 살아온 지가 2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이러한 세월을 지내오는동안 처음 가졌던 마음가짐과 신중함은 사라지고 이제는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 새로운 것도 없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하던 수사님들도 그냥 다 허물 많은 인간으로

보일 뿐입니다. 물론 저도 그 안에서 예외는 아니겠지요. 그래서 수도원에서 피정 강의할 때가 참 힘듭니다.저의 약점을 너무나 잘 알고 제 삶을 훤히 다 아는 수사님들께 훈화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요. 같은 울타리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 안에 살아가려 노력하지만 서로의 부족함을 잘 알고 있기에 실망하고 그로 인해 더불어 살아가는 형제를 하찮게 여길 때도 있어 부끄럽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나하고 잘 맞지 않는 형제, 내가 인정하지 못하는 형제에 대해 어떤 사람은 그를 아주 좋아하고 칭찬을 합니다.아무리 요모조모 뜯어봐도 칭찬할 것 없고 내세울 것 없는 사람인데도 다른 사람은 그 형제를 칭찬하고 좋아하니 참으로 희한합니다. 왜 그럴까요? 아마 저는 그 형제를 잘 알지 못하나 봅니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봅니다. 그 형제의 참모습을 볼 눈이 없어 편견에 사로잡힌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탄복하면서도 그분이 자라온 환경과 배경을 알고있기 때문에 아무리 예수님께서 좋은 말씀을 들려주셔도 그저 좋은 말이라고 여길 뿐, 그 말씀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듣고 마음에 새기는 단계까지는 도달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분에 대해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인성만 볼 수 있었지 그분 안에 내재되어 있는 신성은 보지 못한 것입니다. 완전한 인간으로, 완전한 하느님으로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을 볼 수 있는 눈이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하느님으로 알아보지 못한 고향에서 아무런 기적도 보여주시지 않은 것입니다. 볼 눈이 없고 깨달을수 있는 열린 마음이 없는 그들에게 기적은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이었겠지요.

예수님 이전에도 예언자를 알아볼 수 있는 눈이 있는사람들에게만, 믿음의 눈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하느님께서는 기적을 허락하셨습니다. 기적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미워하시거나 차별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그럴만한 믿음과 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작은 공동체인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아버지, 어머니, 동생, 내가 늘 보아왔고 인간적인면에서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하는 그들 안에 숨겨져 있는 하느님의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칭찬하는 내 가족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그 안에서 존경과 사랑과 일치가 나올 수 있을까요? 우리 모두 가까이 있는 사람들 안에 숨겨져 있는 영적인 보화, 하느님께서 그들

에게 나누어주신 그분의 선물, 하느님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주님께 도움을 청합시다.

오늘은 내가 그토록 이해하지 못하고 하찮게 여겨왔던 사람들 안에 숨어계신 하느님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 바오로회 안성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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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허전함

오늘 저녁 선배 신부님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교통편이 애매해서 택시를 탔습니다. 개인 택시였는데, 기사님은 연세가 지긋하신 분이셨습니다.

꽤 무료하셨던지 제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이런 저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요즘 통 매상이 안 오른다는 말씀, 오늘 나온 지 벌써 두 시간이 지났는데, 6,000원밖에 못 벌었다는 말씀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업택시가 아니기에 사납금에 쫒기지 않는 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한 일이냐는 말씀에 제 마음이 놓였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이런 요지의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최근 막내딸이 취직을 하게 되서 자식 농사를 다 끝냈다. 아들 하나 딸 둘 다 대학 나오고, 다들 일류 기업체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월급 받는 회사에 다니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모른다.

그런데, 막내딸이 마지막으로 취직하고 나서, 섭섭한 일이 한 가지 생겼는데, 가족들이 더 이상 자신을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인도 가게를 운영하다보니 거기에 매여서 정신이 없고, 아들딸들도 다 이제 월급타고 제 몫을 하니 기쁘긴 한데, “아빠, 용돈 좀 올려줘요”, “아버지, 신발이 다 떨어졌는데요.” 이런 말을 못 들으니 마음이 너무도 허전하다는 것입니다.

집에 돌아가면 다들 바쁜 관계로 자신은 완전히 왕따 취급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아직까지는 가장 노릇을 하고 싶은데, 아직까지는 뭔가 역할을 하고 싶은데, 그럴 기회가 이제 더 이상 없다는 것이 그렇게 슬프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이 세상 살아가면서 “별 도움이 안 된다”, “왕따 당했다”는 말처럼 섭섭하고 슬픈 말은 다시 또 없을 것입니다. 왕따 당한다는 것은 필설로 표현 못할 서러움과 죽음과도 같은 고통을 동반합니다.

오늘 루가 복음사가는 자기 고향 사람들로부터 철저히 배척당하는 예수님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 성장한 고향 마을 사람들에게서 당한 따돌림과 거절 앞에 예수님께서 느끼셨던 소외감은 참으로 컸을 것입니다.

유다인들이 저지른 과오 중에 가장 큰 과오는 가장 값진 보물이 자신들 손 안으로 굴러들어왔음에도 그 보물을 절벽 밑으로 멀리 던져버린 행위였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고대해왔던 메시아, 자신들을 죄와 악에서 구해줄 구세주이신 예수님께서 코앞에 나타났음에도 그분을 인정하려 들지 않고 오히려 십자가형에 처한 사람들이 바로 유다인들이었습니다.

유다인들이 예수님의 메시아성을 인식하지 못한 원인이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그들 각자 마음에 존재하고 있던 거짓 메시아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유다인들은 자신들 입맛에 맞는 가짜 메시아를 각자 안에 간직하고 있었기에 참 메시아 예수님께서 도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을 몰라보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극히 현실적 욕구나 사리사욕만을 끊임없이 충족시켜주는 해결사 메시아를 기대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들 앞에 나타난 메시아는 그들이 바라던 메시아가 아니었기에 모두들 예수님을 외면했던 것입니다.

제 안에도 역시 마음 깊은 곳에 참 메시아를 몰라보게 시야를 가로막는 거짓 메시아가 존재함을 깨닫습니다.

서원을 통해 이제 오직 하느님 영광만을 위해 살기로 서약한 수도자이면서도 2000년 전 유다 백성들과 별반 다름없이 나만의 만사형통과 나만의 구원을 위해 존재하시는 가짜 메시아를 따라가고 있음을 깊이 반성합니다.

이웃들 고통 그 한가운데 계시는 하느님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비정함을 깊이 반성합니다. 예수님의 이 세상 탄생을 통해 이미 하느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와있지만 이를 전혀 깨닫지 못하는 아둔함을 깊이 반성합니다.

법정 스님 말씀처럼 “모든 종교의 핵심은 깨어있는 맑은 영혼”입니다. 언제나 깨어있는 마음, 맑은 영혼 상태로 지금 이 시대 어디에 예수님이 현존하시는지 파악하고자 노력하는 이번 한주가 되길 바랍니다.

무엇이 본질적이고 무엇이 부수적인지를 식별하면서 언제나 겸손하게 새 출발하는 갓 출가한 수행자 마음으로 세상 앞에 서는 우리이길 빕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신부
  |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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