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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밑바닥 체험
조회수 | 1,550
작성일 | 10.02.06
바오로 사도는 오늘 제2독서에서 자신을 ‘칠삭둥이’, ‘사도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는 몸’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가 하느님의 교회를 박해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는 진정으로 하느님을 체험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리스도교를 박해하기 위해 다마스쿠스로 가는 도중에, 하느님의 번개 같은 섬광을 맞고 사흘 동안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지냈습니다. 그는 여기서 인생의 밑바닥 체험을 하였습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면서, 가장 낮은 자의 체험을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하느님을 그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만났던 인물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부 네 사람을 부르십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우리는 ‘왜?’라는 질문을 던질 때, 더 풍요로운 묵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왜 어부 네 사람을 부르셨을까요?’ 열두 사도 중에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직업이 어부였습니다. ‘왜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어부라는 직업은 늘 위험을 안고 생활합니다. 갈릴래아 호수는 일반적인 호수와 다릅니다. 넓은 면적에 늘 파도가 칩니다. 기후의 변동에 따라서는 심한 폭풍우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어찌 보면, 어부들은 늘 고기를 잡으면서 죽음을 체험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인생의 밑바닥을 자주 체험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구원을 말씀하셨을 때 받아들이기가 더 쉬웠습니다. 어부 베드로는 고기가 그물이 찢어질 만큼 잡히자,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 자신을 ‘죄인’이라고까지 겸손하게 표현하였습니다.

인생이 밑바닥을 체험한 사람은 이렇게 겸손하게 낮아질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도, 베드로 사도도, 그리고 수많은 성인⁃ 성녀들도... 그들은 인생의 밑바닥을 체험한 분들이었습니다. 인간 능력의 한계를 뼈저리게 체험한 사람, 그리고 겸허하고 정직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이 부족한 인물임을 인정하는 사람이 주님께로 온전히 향할 수 있습니다. 이제까지의 인간적 능력이나 경험을 훨씬 벗어나는 하느님의 위대하심 앞에 겸허히 엎드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는 순명에서 하느님의 역사는 시작됩니다. 때론 극한의 상황이 닥치고 좌절이 밀려올 때, 오히려 기뻐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그 밑바닥에서 우리를 다시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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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야고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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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가 취미인 본당신부님이신학생들에게 밤낚시를 가자고하신 적이 있다. 신학생 세 명이 신부님을 따라갔고 저수지에 떠 있는 좌대를 둘 얻었다. 밤에 낚시를 해야 잘 잡힌다는 어디선가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수면 위에 떠 있는 낚시를 바라보다 무거운 졸음에지고 말았다. 아직 새벽이 먼시간, 산 위에서 심한 바람이 불더니 저수지 물을 다 뒤집어 놓았고, 좌대에 묶어 놓은 배가 좌대에 부딪치며 꼭 부서질 것 같은 소리를 내었다. 낚시를 걷고 작은 배를 타고 나오는데 바람에 물이 파도가 되어 배를 넘어 들어온다. 옷이 다 젖어서 물이 떨어져도 움직이지 못했다. 움직이면 배가 뒤집힐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배 밑창이 저수지 가장자리 흙에 스치는 소리가 들렸을 때에야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나중에 본당 신부님에게 그 때를 말씀드리자 웃으시며, 처음이라 무서운 거지하셨다. 그래도 베드로 사도의 경우를 보면 ‘일평생 어부였던 사람도 예수님 따라 물위를 걷다가 파도를 보고 무서워서 빠졌었는데요.’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고향 나자렛에서 쫓겨났다는 랍비가 가파르나움으로 흘러들어 왔다는 소문을 들은 시몬은 시큰둥했다. 원래 어부와 랍비는 어울릴 인연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깨트린 건 흘러들어온 랍비의 행동이었다. 별 볼일 없는 어부 인 시몬의 집에 찾아와 열병으로 고생하는 장모를 낫게 해 준 것이다. 시몬은 그 일을 잊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 마치 자기의 배처럼 시몬의 배에 오른 랍비의 부탁을 쉽게 들어주었다. 일종의 품앗이였으니까! 예수님의 가르침 중에도 그는 예수님과 함께 단둘이 배에 있었다. 그러나 생각은 씻다만 그물에 가 있었다. 가르침이 끝났을 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시몬은 정중히 거절하는 말을 했어야 했는데 그 뒤에 생각지도 않은 말이 따라붙었다. “그러나 스승님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놀랍게도 한낮인데도 엄청난 물고기가 잡혔다. 두 배를 가득 채워 배들이 가라앉을 지경이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정말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가라앉을 만큼 위험한 배에서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린 것이다. 구경하던 모든 사람, 가르침을 듣고도 자기를 떠나지 않은 군중들이, 그리고 시몬의 동업자들이 억 하는 비명을 지를 만큼 위험하게 가득찬 물고기 사이를, 아니 물고기 위에서 엎드렸던 것이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환시 속에서 하느님을 뵌 이사야 예언자는 이미 예언자로서의 사명을 수행하는 중이었음에도 이렇게 말한다.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 베드로 사도는 시몬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어부였을 때 일상적인 생활에만 열중이었던 자신에게 나타난 예수님의 정체를 알아보고 말했던 것이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그의 입술이 과연 우리보다 더 더러웠을까? 그의 죄가 우리보다 더 많았을까? 하느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던 예언자도, 일상생활이 충실하던 시몬도, 모두 자기의 부족함을 고백하는 데 주님의 고상 앞에서 우리는 진정 그렇게 말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 대전교구 최병석 마리아노 신부 : 2016년 2월 7일
  |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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