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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사순 제1주일 독서와 복음 [예수님께서 유혹을 받으심]
조회수 | 1,679
작성일 | 10.02.17
선택받은 백성의 신앙 고백
신명기 26,4-10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4 “사제가 너희 손에서 광주리를 받아 그것을 주 너희 하느님의 제단 앞에 놓으면, 5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 앞에서 이렇게 말해야 한다.
‘저희 조상은 떠돌아다니는 아람인이었습니다. 그는 몇 안 되는 사람들과 이집트로 내려가 이방인으로 살다가, 거기에서 크고 강하고 수가 많은 민족이 되었습니다.
6 그러자 이집트인들이 저희를 학대하고 괴롭히며 저희에게 심한 노역을 시켰습니다. 7 그래서 저희가 주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께 부르짖자, 주님께서는 저희의 소리를 들으시고, 저희의 고통과 불행, 그리고 저희가 억압당하는 것을 보셨습니다. 8 주님께서는 강한 손과 뻗은 팔로, 큰 공포와 표징과 기적으로 저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9 그리고 저희를 이곳으로 데리고 오시어 저희에게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습니다.
10 주님, 그래서 이제 저희가 주님께서 저희에게 주신 땅에서 거둔 수확의 맏물을 가져왔습니다.’
그런 다음에 너희는 그것을 주 너희 하느님 앞에 놓고, 주 너희 하느님께 경배드려야 한다.”

그리스도 신자의 신앙 고백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10,8-13

형제 여러분, 8 의로움은 성경에서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그 말씀은 너희에게 가까이 있다. 너희 입과 너희 마음에 있다.” 이것이 우리가 선포하는 믿음의 말씀입니다. 9 그대가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0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11 성경도 “그를 믿는 이는 누구나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 하고 말합니다.
12 유다인과 그리스인 사이에 차별이 없습니다. 같은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으로서, 당신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13 과연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시어, 유혹을 받으셨다.
루카 4,1-13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가득 차 요르단 강에서 돌아오셨다. 그리고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시어, 2 사십 일 동안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그동안 아무것도 잡수시지 않아 그 기간이 끝났을 때에 시장하셨다. 3 그런데 악마가 그분께,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4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5 그러자 악마는 예수님을 높은 곳으로 데리고 가서, 한순간에 세계의 모든 나라를 보여 주며, 6 그분께 말하였다. “내가 저 나라들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당신에게 주겠소. 내가 받은 것이니, 내가 원하는 이에게 주는 것이오. 7 당신이 내 앞에 경배하면 모두 당신 차지가 될 것이오.”
8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9 그러자 악마는 예수님을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운 다음, 그분께 말하였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여기에서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 10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소? ‘그분께서는 너를 위해 당신 천사들에게 너를 보호하라고 명령하시리라.’ 11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
12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하신 말씀이 성경에 있다.” 하고 대답하셨다.
13 악마는 모든 유혹을 끝내고 다음 기회를 노리며 그분에게서 물러갔다.

보편지향기도

+ 형제 여러분, 우리가 온갖 유혹을 물리치고 구원의 기쁜 소식을 힘차게 선포할 수 있도록 주님께 마음을 다하여 기도합시다.

1. 하느님 백성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주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백성이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생명의 양식으로 삼아, 이 세상 갖가지 말과 정보 속에서 진실을 가려내고 진리를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지혜와 용기를 주소서.
◎ 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2. 세계 평화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주님, 평화를 간절히 바라는 저희의 기도를 귀여겨들어 주시어, 세계 모든 나라가 인류의 평화와 복지 실현에 마음을 모으고 협력해 나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

3. 태아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주님, 부부의 사랑으로 임신된 태아들은 모두 주님의 귀한 선물이오니, 저희 가정과 사회가 태아를 힘써 존중하게 하시고, 뜻있는 의사들의 노력으로 낙태를 방지하 고 생명을 지키게 도와주소서. ◎

4. 본당 단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주님, 본당의 각 단체들이 서로 아끼고 도움을 줌으로써 그리스도의 사랑을 드러내고, 마침내 본당 발전에도 이바지하게 하소서. ◎

+ 주님,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충실히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자녀들의 기도를 즐겨 들어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묵상

악마는 예수님을 유혹합니다. 단식을 마치고 허기지신 예수님께 빵을 만들어 보라며 충동질한 것입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셨던 그분께 ‘빵 하나’ 만드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거절하십니다. 자신을 위한 기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 그분께서는 긴 여운의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악마는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의 성전 꼭대기로 갑니다. 그러고는 ‘뛰어내려 보라’며 유혹합니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떨어지는 그대’를 천사가 잡아 주지 않겠느냐며 충동질합니다. 예수님께서 정말로 뛰어내리셨다면 얼마나 철없는 위인이 되셨을까요? 유혹은 이렇듯 유치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런 감정에 속아 유혹에 발을 내밉니다.

예수님께서도 유혹받으셨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위안이 됩니다. 예수님까지도 유혹한 악마라면 당연히 우리도 유혹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유혹에는 예외 인물이 없습니다. ‘나만 왜 유혹에 시달리는가?’ ‘나는 왜 여태껏 이 유혹을 받아야 하는가?’ 이런 느낌이 들면 오늘의 복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악마를 물리치셨던 예수님을 떠올려야 합니다. 유혹은 죄가 아닙니다. 윤리적인 그 무엇도 아닙니다. 유혹은 그저 ‘유혹일’ 뿐입니다. 사순 첫 주일에 우리는 유혹의 본질을 보았습니다. 유혹을 물리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매일미사 2010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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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세 가지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이 가운데 세 번째 유혹에 대하여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서 악마가 예수님께 말합니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여기에서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소? ‘그분께서는 너를 위해 당신 천사들에게, 너를 보호하라고 명령하시리라.’” 이러한 유혹은 우리 삶에서도 종종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괜찮아!’의 유혹입니다.

죄악의 구렁텅이로 뛰어내려도 하느님께서 보호해 주실 것이라는 생각, 죄를 지어도 그분께서 한없이 용서해 주실 것이니 괜찮다는 생각이 바로 이 유혹입니다. 악마는 이렇게 속삭입니다. ‘네가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져도 그분께서 너를 보호해 주실 거야. 하느님께서 그렇지 않는 분이라면 무슨 사랑의 하느님이야? 사랑이시라면 당연히 용서해야지. 안 그래? 죄를 지어 버려! 그래도 괜찮아.’

물론 하느님께서는 용서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의 사랑은 끝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을 담보로 삼아 계속해서 죄짓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죄를 지어 놓고서는 ‘용서해 주시지 않으면 사랑의 하느님도 아니다.’라고 우기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을 죄의 잣대로 재어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시험해야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악마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하신 말씀이 성경에 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시험할 수는 없습니다. 그 사랑을 믿고 죄짓기를 거듭한다면, 하느님께서 아무리 용서해 주신다 해도 어느새 우리는 그 죄에 중독되어 죄의 멍에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매일미사 2013년 2월
  |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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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어려운 과목을 강의하던 신부님이 학생들에게 그 내용을 이해했는지 물으시며, “이해했는지 아닌지는 나중에 보면 알겠지.” 하고 말씀하셨는데, 그 나중은 시험 시기였습니다. 아마도 시험이 없다면 학생이 과연 그 내용을 파악했는지 여부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을 것입니다.

유혹과 시련을 겪는 순간에는 지금 드리는 이 말씀이 너무 매정하고 잔인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분명 유혹은 우리의 신앙을 확인하고 성장시켜 줍니다. 아무런 유혹이 없다면 신앙이 있는지 여부를 제대로 알 수는 없겠지요. 사람들 사이에서도,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위험한 순간이 닥쳐오면 얼마나 쉽게 그 믿음을 포기하는지 ……. 하느님만 신뢰하며 의지한다고 장담하던 사람도, 막상 어려운 유혹과 시련의 때가 오면 악마가 제시하는 빵과 권세와 영광의 유혹에 아주 쉽게 넘어가는 것이 우리 모두의 약점이며 한계인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이집트 탈출 이후 광야 시기는, 그들의 신앙이 시험받는 때였습니다. 믿음이 부족한 그들은 모든 것이 불편하고 척박한 광야에서의 자유보다는, 노예근성에 젖어 종살이하던 이집트의 음식을 더 그리워하며 울부짖었고, 더욱이 시련이 닥쳐오면 하느님의 약속마저 의심했습니다. 예수님께도 광야 시기가 있었는데, 그 광야에서 예수님께서는 신명기의 말씀들을 인용하시면서 이스라엘과는 전혀 다른 대답을 하십니다.

우리에게도 광야는 있습니다. 믿음 없이는 도저히 건너갈 수 없는 광야들이, 어느 순간 우리의 눈앞에 나타나서 우리를 위협하기도 할 것입니다. 칠흑같이 어둡고 질식할 정도로 꽉 막히고 암울한 광야 시기에도, 한 분이신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끝까지 고백할 수 있는 은총과 믿음을 더해 주시도록 간청합시다.

▥ 매일미사 2016년 2월 14일
  |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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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사십이라는 수는 매우 중요합니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간 뒤 하늘이 열려 밤낮으로 비가 내리며 땅을 씻어 냈던 기간이 사십 일이었고(창세 7,12.17 참조), 산봉우리들이 드러난 뒤 노아가 방주의 창을 열려고 기다린 기간도 사십 일이었습니다(창세 8,6 참조). 모세가 하느님과 계약을 맺으려고 산에서 머물렀던 기간이 사십 일이었고(탈출 24,18 참조),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 생활을 한 것이 사십 년이었습니다(탈출 16,35; 민수 14,34 참조). 이렇게 보면 사십이라는 수는 정화의 시기, 기다림과 준비의 기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개의 경우 이 시간을 거친 이들은 구원을 봅니다. 그러나 늘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 땅에 정찰대를 보내어 사십 일 동안 정찰합니다(민수 13,25 참조). 그러나 그들 가운데 여호수아와 칼렙만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구원을 봅니다. 또한 요나서에서 하느님께서는 니네베에 심판을 선포하신 뒤 사십 일 뒤에도 그들이 변화가 없다면 그들을 심판하겠다고 하십니다(요나 3,4 참조). 이렇게 보니 사십 일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이들에게는 구원을, 그렇지 못한 이에게는 심판을 준비하는 시기가 됩니다. 자, 그러면 여러분은 어느 쪽에 속하십니까?

우리 모두는 바오로 사도가 제2독서에서 이야기하듯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고 마음으로 믿어 구원을 얻게 된 이들입니다. 그렇지만 주님을 저버리게 하는 유혹의 홍수 속에 자주 빠지며 살아갑니다. 사순 첫 주일을 지내면서 다시 한번 오늘 복음의 예수님처럼 모든 유혹을 이겨 낼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사 주님께 청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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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철호 요한 신부 : 매일미사 2019년 3월 10일
  |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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