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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사순절을 보내며
조회수 | 1,772
작성일 | 10.02.20
사순절을 시작하는 첫 주일인 오늘의 복음은 유혹을 받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전해주고 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해주는 복음사가의 뜻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가 하느님의 아들이요, 우리 인간의 구세주로 고백하는 그분이 여느 세상 사람들처럼 유혹을 받으셨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예수님을 깎아내리는 사건 같아 보인다. 그것도 한 복음서에서만도 아니고, 마태오, 마르코, 루카 세 공관 복음서 모두가 이 유혹사화를 전해주고 있다면 거기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다. 더구나 교회가, 사순 첫 주일에 이 복음말씀을 신자들에게 듣도록 하는 것은 틀림없이 어떤 의도와 뜻이 담겨 있을 것이다.

예수님이 유혹을 당하셨다는 이야기는, 한마디로 예수가 인간적으로 유혹을 받을 만큼 나약하다는 것을 보여 주려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사명은 악과의 끝없는 투쟁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오늘 루카복음에서 그런 의도가 더 분명하고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악마는 예수를 여러 가지로 유혹해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음 기회를 노리며’ 그분에게서 물러갔다고 전해준다. 그 말은 유혹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때문에 예수는 자신의 전 생애와 활동을 통해 그 악과의 싸움을 끝까지 계속해 나가실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리는 지난 수요일 머리에 재를 받는 예식을 하며 사순절을 시작했다. 우리가 지내는 이 사순절은 내가 가지고 있는 악과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단절시키고자, 악의 유혹을 단호히 뿌리치고자, 그래서 완전히 새로운 사람, 하느님의 말씀으로만 사는, 예수님의 삶과 말씀이 내 삶의 기준이 되어 사는 그런 그리스도인으로 되돌아서야 하는, 다시 나야 하는 시기를 의미한다.

사실 우리 삶 속에는 늘 악의 유혹이 도사리고 있다. 예수님을 유혹했던 그 악의 유혹이 늘 우리들 곁을 맴돌고 있다. 우리를 유혹하는 그것들은 창세기의 아담의 범죄 이야기에서처럼, ‘먹음직하고, 보기 좋고, 사람을 영리하게 해줄 것 같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우리가 하느님을 내 삶의 중심에 모시고 살려고 할 때마다, 악의 유혹들은 우리 앞에 좋고, 편안한 모습으로 또 아름답고 매력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우리 삶에서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로 살지 못하게 만드는 그 악의 유혹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편안하고, 달콤하고 매혹적인 모습으로 다가오는지 우리가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렇게 악의 유혹들이 우리를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려고 다가설 때마다, ‘악에서 우리를 구하소서!’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런 기도와 함께 예수님처럼 용감히 그 악의 유혹을 이겨나가는 의지를 지녀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세상의 악을 없애러 오신 주님의 일에, 삶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고, 그것이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의 모습이다. 그런 마음, 그런 결심, 그런 실천으로 올해 이 사순절을 살아야겠다.

박강희 안드레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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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이 쪄서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기 시작합니다. 적신호가 켜지면 그 동안의 삶의 습관들을 돌이켜보고 건강을 다시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됩니다. 꾸준히 운동을 하든지 아니면 다이어트를 하게 됩니다. 다이어트를 하게 되면 일단 텔레비전을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저녁시간 때만 되면 항상 군침 도는 음식들이 소개가 됩니다. 그리고 10시 이후에는 라면과 맥주등의 다이어트를 방해하는 각종 음식들의 광고가 쏟아집니다. 정말 참기 힘든 유혹들입니다.

사순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사순시기가 시작되면 주님의 수난을 기억하면서 우리 또한 주님의 수난에 동참하는 자세로 살아가며 부활을 맞이할 준비를 해 나갑니다. 그렇게 사순시기를 맞이해서 여러 가지 다짐들을 하게 되는데, 이상하게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금육”입니다. 말 그대로 금육인데 이상하게 금요일만 되면 고기(肉)를 먹게 되거나 먹고 싶어집니다. 금요일에 고기가 당긴다고 해서 “금육”일까요…? 아무튼 많은 유혹들이 생깁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40일간의 단식을 마치치고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 악마의 유혹을 받으십니다. 그런 유혹 앞에서 예수님께서는 “단호함”을 보여주십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라는 성경말씀을 들어 악마의 유혹을 단호히 거부하십니다. 당신을 시험하는 달콤한 말 앞에 고개 숙이기보다는 오히려 하느님의 말씀을 내세우며 당당하신 모습,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음에도 그것이 바른 길이 아니기에 가지 않는 모습…. 예수님의 그러한 모습은 일상의 유혹 앞에 한없이 작아지는 우리 자신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합니다.

우리 안에 끝없는 욕망은 끊임없이 속삭입니다. ‘누구나 다 하는 것이니까’, ‘이 정도는 괜찮겠지’, ‘다음에 하지 뭐’, ‘이번 딱 한 번만.’ 결국 우리에게 남은 숙제는 그렇게 다가오는 유혹에 맞서느냐 무릎을 꿇느냐 하는 것입니다. ‘조금만 더’, ‘한번만 더’. 그렇게 욕망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끊고 버린다는 것…. 그리 쉽진 않겠지만, 어쩌면 어리석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우리의 참된 행복은 그렇게 ‘물러서지 않는 용기’를 통해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물러서지 않는 용기는 바로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사람이며 그러한 사람은 바오로 사도가 말씀하신 것처럼 모두가 구원을 받을 사람입니다. 새로운 마음을 다지며 시작하는 이번 사순절, 일상의 유혹 앞에 고개 숙이지 않고 당당하게 하느님을 내세우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내게 다가오는 헛된 유혹들, 하나라도 버릴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악마는 이번만이 아니라 다음 기회를 늘 노리고 있기에….

대구대교구 김재호 신부
  |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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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투쟁의 시기, 사순절이 시작 되었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 사순 시기를 특별히 “죄인인 아담에게서 새로운 생명인 그리스도에게로 넘어가는 시기”라 표현합니다. 이 교부의 가르침에 따르면 이 사순 시기에 그리스도교인은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하기 위해 회개와 보속으로 하느님과의 일치에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우리 가톨릭교회는 4세기 로마제국으로부터 종교의 자유가 주어지자 더 이상 순교를 통해 하느님을 증거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순교를 방해하는 외적인 억압과 회유, 내적인 갈등과 유혹들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하느님을 증거 하기 위한 투쟁의 대상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많은 고대 은수자들은 스스로 광야로 나가 시련과 유혹의 환경을 만들어 극복함으로써 하느님을 증거 하는 신앙을 드러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시련과 유혹을 극복하며 각자 개인의 영적인 성장을 위한 싸움을 영적전쟁의 시기라 표현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영적인 움직임은 차츰 그리스도교인들의 신앙 안에 자리를 잡게 되었고, 가톨릭교회는 전통의 역사 안에서 재의 수요일을 영적인 전쟁의 시작 날로 선포하고 40일간 스스로 악과 투쟁하며 하느님을 증거 하기 위하여 보속과 애덕실천의 시기를 지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순 시기에 가장 중요시해야하는 삶은 하느님을 증거 하는 삶입니다. 우리 그리스도교인은 사순 시기를 시작하면서 교회의 전통에 따라 하느님을 증거 하기 위한 자신과 외부의 여러 가지 유혹들과 맞서는 투쟁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부활의 영광을 누릴 수 있는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증거하기 위해 투쟁해야 될 대상은 여러 가지 내적외적 유혹들입니다. 이러한 유혹들을 이기는 방법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우리의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당신께서도 유혹을 당할 때마다 하느님의 말씀을 근거로 해서 그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하느님사랑과 이웃사랑이 핵심인 복음, 그것이 우리의 무기입니다.

성 보나벤투라는 “우리의 생활 안에서 애덕과 선함이 더욱 커질 수 있는 것은 악으로부터의 도망이 아니다. 악과 유혹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사랑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즉 현재에 내가 가지고 있는 사랑, 그것이 크든 작든 거기서부터 출발하여 그 사랑을 더욱 키워나갈 때 우리는 악으로부터,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다고 합니다. 사랑을 키워나가는 것 그것은 하느님을 증거 하는 행위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투쟁의 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복음의 정신, 복음의 원칙이 영적인 성장을 위한 우리 그리스도교인의 삶의 지표입니다. 복음정신이 우리의 삶에 깃들고 복음의 원칙이 우리의생각과 행동의 안내자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교의 전통을 따라 이 사순 시기를 사랑을 통해 하느님을 증거 하는 시기로 보내기를 희망합니다.

▥ 대구대교구 김태형 베드로 신부 : 2016년 2월 14일
  |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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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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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 재의 수요일에 이마에 재를 얹는 예식을 하면서 사순 시기를 시작했습니다. 초대교회에서는 두 가지 목적으로 사순 시기를 설정하였는데 우선 아직 세례를 받지 않은 이들의 세례를 준비하기 위함이었고 두 번째로는 죄로써 하느님을 저버린 세례 받은 신자들이 하느님께 되돌아오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2천 년이 지난 뒤 지금 우리의 사순 시기는 초대교회에서 그랬던 것처럼 예비신자들의 세례를 준비하고 또 유혹에 넘어져 죄로 인해 하느님을 저버린 우리들이 회개하여 하느님께로 돌아와 죄를 뉘우치고 영광의 부활을 준비해야 하는 중요한 때입니다.

오늘 주님의 말씀은 유혹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사탄에게 받은 세 가지 유혹에 관한 이야기로서, 첫 번째 유혹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명해보라는 것이고, 두 번째
유혹은 악마를 섬기라는 것이었고, 마지막 유혹은 하느님을 시험 해보라는 유혹이었습니다.

악마가 예수님을 유혹할 때마다 붙이는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이라는 조건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도 들었던 말입니다. “네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아라.”(마태 27,40) 악마의 유혹 속에는 끊임없이 예수님께 하느님의 아들임을 증명해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요구는 공생활 출발부터 십자가의 죽음까지 예수님의 전 생애에 걸쳐서 받아온 요구였습니다.(마태 12,38; 16,1)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이라는 유혹은 지금 우리에게도 여전히 다가오는 유혹입니다. “하느님이 정말 계시다면…” 혹은 “하느님이 정말 나를 사랑한다면…” 특히 우리가 여러 가지 시련을 겪을 때이런 유혹은 더 크게 다가옵니다. 이런 유혹을 이겨내는 방법을 오늘 복음에서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세 가지 유혹에 대한 답을 하실 때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라고 하신 것을 새겨봅시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말씀을 늘 가슴속에 간직하셨고, 악마의 유혹 앞에서 그 말씀을 기억하시고 말씀을 선포하시며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참으로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말씀은 우리 삶의 중심이고, 하느님의 뜻을 찾아갈 수 있는 등불이며, 죽음으로 빠지지 않는 길이었습니다.

이제 사순 시기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멈추어 서서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유혹이 닥칠 때마다 성령의 칼인 성경 말씀을 자주 읽고 묵상하면서 말씀으로 무장하도록 합시다. 그래서 우리를 하느님에게서 떼어놓으려고 유혹하는 유혹자를 용감하게 물리치는 사순 시기를 보낼 수 있도록 다 함께 노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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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이정효 예로니모 신부 : 2019년 3월 10일
  |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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