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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사순 제2주일 독서와 복음 [예수님의 변모]
조회수 | 1,888
작성일 | 10.02.24
하느님께서 충성스러운 아브람과 계약을 맺으셨다.
창세기 15,5-12.17-18

그 무렵 하느님께서 5 아브람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말씀하셨다. “하늘을 쳐다보아라. 네가 셀 수 있거든 저 별들을 세어 보아라.”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너의 후손이 저렇게 많아질 것이다.” 6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다. 7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주님이다. 이 땅을 너에게 주어 차지하게 하려고, 너를 칼데아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이다.”
8 아브람이 “주 하느님, 제가 그것을 차지하리라는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묻자, 9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삼 년 된 암송아지 한 마리와 삼 년 된 암염소 한 마리와 삼 년 된 숫양 한 마리, 그리고 산비둘기 한 마리와 어린 집비둘기 한 마리를 나에게 가져오너라.”
10 그는 이 모든 것을 주님께 가져와서 반으로 잘라, 잘린 반쪽들을 마주 보게 차려 놓았다. 그러나 날짐승들은 자르지 않았다. 11 맹금들이 죽은 짐승들 위로 날아들자, 아브람은 그것들을 쫓아냈다. 12 해 질 무렵, 아브람 위로 깊은 잠이 쏟아지는데, 공포와 짙은 암흑이 그를 휩쌌다.
17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자, 연기 뿜는 화덕과 타오르는 횃불이 그 쪼개 놓은 짐승들 사이로 지나갔다. 18 그날 주님께서는 아브람과 계약을 맺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집트 강에서 큰 강, 곧 유프라테스 강까지 이르는 이 땅을 너의 후손에게 준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의 필리피서  3,17ㅡ4,1<또는 3,20ㅡ4,1>
짧은 독서를 할 때에는 < > 부분을 생략한다.

17 형제 여러분, <다 함께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여러분이 우리를 본보기로 삼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는 다른 이들도 눈여겨보십시오. 18 내가 이미 여러분에게 자주 말하였고 지금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는데,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19 그들의 끝은 멸망입니다. 그들은 자기네 배를 하느님으로, 자기네 수치를 영광으로 삼으며 이 세상 것만 생각합니다.
20 그러나> 우리는 하늘의 시민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구세주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대합니다. 21 그리스도께서는 만물을 당신께 복종시키실 수도 있는 그 권능으로, 우리의 비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4,1 그러므로 내가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형제 여러분, 나의 기쁨이며 화관인 여러분, 이렇게 주님 안에 굳건히 서 있으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졌다.
루카 9,28ㄴ-36

그때에 28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오르셨다. 29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였다. 30 그리고 두 사람이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모세와 엘리야였다. 31 영광에 싸여 나타난 그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세상을 떠나실 일을 말하고 있었다. 32 베드로와 그 동료들은 잠에 빠졌다가 깨어나 예수님의 영광을 보고, 그분과 함께 서 있는 두 사람도 보았다.
33 그 두 사람이 예수님에게서 떠나려고 할 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 34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는데, 구름이 일더니 그들을 덮었다. 그들이 구름 속으로 들어가자 제자들은 그만 겁이 났다.
35 이어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36 이러한 소리가 울린 뒤에는 예수님만 보였다.
제자들은 침묵을 지켜, 자기들이 본 것을 그때에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보편지향기도

+ 형제 여러분, 우리 모두 기도하며 살아감으로써 신앙의 빛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느님 아버지께 더욱 진실한 마음으로 청합시다.

1. 교황님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주님,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일을 대리하는 베네딕토 16세 교황과 늘 함께하시어, 그가 언제나 충실한 기도로 인류 구원과 평화 증진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 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2. 정치인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주님, 정치인들이 이 시대 국민들의 진정한 바람과 나라의 발전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과 사명을 올바르게 실천하게 하소서. ◎

3.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주님, 고통 받는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의 사랑과 위로로 희망을 잃지 않게 하시고, 그들을 돌보는 사람들에게 지칠 줄 모르는 사랑의 힘을 주소서. ◎

4. 지역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주님, 저희가 살고 있는 이 지역의 모든 사람이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며 진정한 공동체를 이루어, 사랑과 기쁨이 가득한 삶의 터전을 만들어 가게 하소서. ◎
+ 하느님 아버지,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저희가 언제나 믿음과 희망을 잃지 않도록 함께하여 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묵상  

주님의 거룩한 변모 사건은 충격 요법입니다. 놀란 베드로는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하지도 못합니다. 산을 내려오던 다른 제자들 역시 말이 없습니다. 잠시 혼이 나갔던 것입니다. 스승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예감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방황과 옛 직업으로 돌아갈 것을 내다보셨습니다. 그대로 두실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핵심 제자 세 명을 데리고 산으로 가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잊지 못할 충격’을 심어 주신 것입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오늘을 기억하며 용기를 잃지 말라는 배려이셨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러한 체험은 있습니다. 인생에서 낙담하지 말라고 그분께서 개입하신 ‘사건들’입니다. 그것을 찾아내어 묵상하라는 것이 복음의 교훈입니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얼마나 아슬아슬한 순간이 많았는지요?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사건은 분명 있습니다. 우연히 마무리된 것이 아닙니다. 은총의 개입이었습니다. 우리에게 드러내신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은총은 예고 없이 옵니다. 주님께서는 아버지시기에, 필요하다 여기시면 언제든 주시기 때문입니다. 올해 사순 시기에도 우리가 겪는 사건마다 은총의 개입은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작은 사건이라도 그분의 뜻을 먼저 헤아려 봐야 합니다.  

매일미사 2010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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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를 보며 이러한 물음을 던져 볼 수 있습니다. ‘평소에도 이렇게 영광스러운 모습을 갖추셨다면 더 많은 사람이 믿지 않았을까?’, ‘산에서 변모하실 것이 아니라 십자가 위에서 변모하셨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그 순간 회개하지 않았을까?’

과연 그랬을까요? 어쩌면 모두들 믿기는 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었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전혀 없었을 것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오늘 복음에 등장한 베드로와 다른 두 제자는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를 보았고,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를 들었으면서도 나중에 예수님을 배반하여 뿔뿔이 흩어지고 맙니다. 곧 예수님께서 아무리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드러나신다고 해도 그것 자체가 힘을 불어넣어 주지는 않았습니다. 비록 황홀한 체험을 안겨 주셨다고 해도 신앙을 한층 굳건하게 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멋진 예수님, 절대적 권능의 예수님,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모습만 보고 사람들이 믿었다면, 그들은 그러한 예수님을 통해 삶의 고통과 역경을 이겨 낼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분 앞에서 진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죄를 고백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주위의 보잘것없는 사람들에게 시선조차 돌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바로 앞 구절의 내용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에 대한 예고와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라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따라서 오늘 복음에는 고통 안에서 당신의 진면목을 발견하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 부활하신 뒤의 모습은 철저한 고통과 죽음을 전제합니다. 고통과 죽음이 배제된 영광스러운 모습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매일미사 2013년 2월
  |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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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늘의 시민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구세주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대합니다.” 세 제자가 보았던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는 우리의 이 기다림을 더욱 간절하게 만듭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을 가리켜 예수님의 ‘엑소도스’라고 말합니다. 탈출기의 그리스어 제목이 ‘엑소도스’이지요. 우리말 번역에서 전에는 출애굽기라고 했었지만, 이집트를 떠난 한 번의 사건만이 아니라 역사 안에서, 그리고 인간의 삶 안에서 계속해서 일어나는 탈출을 포함한다는 의미로 이해하여 『성경』에서는 탈출기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은 바로 예수님의 이 ‘엑소도스’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그 의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그분의 떠나심, 이 세상에서 벗어나심을 가리키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닌 듯합니다. 구약 성경에서 이스라엘이 이집트 탈출을 통하여 억압에서 벗어나고 해방되어 하느님 백성으로서 본모습을 온전히 누리며 살게 되었듯이, 이제 예루살렘에서 수난하시고 돌아가실 예수님께서는 그 ‘엑소도스’를 통하여 당신께서 지상에 계실 때에 감추어져 있던 당신의 본모습을, 당신의 영광을 온전히 드러내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변모를 통하여 제자들이 믿음을 잃지 않도록 하시려고 미래의 영광을 잠시 미리 보여 주신 것이지요. 우리가 하늘의 시민이 되어 그 모습을 뵙게 될 때까지, 우리는 제자들이 산에서 보았던 빛나는 예수님의 모습을 그리워하며 살아갑니다.

▥ 매일미사 2016년 2월 21일
  |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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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동에서는 임금들이 서로 계약을 맺을 때 희생 제물을 가져와 반으로 자른 뒤 계약 조건을 말하며 잘라진 제물 사이로 지나가곤 했습니다. 그러면서 둘 가운데 누구라도 계약을 어기면 이런 식으로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고 맹세했다고 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계약을 맺으시는 장면도 이와 비슷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자른 짐승 사이를 지나가시며, 가나안 땅을 그의 후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특이점이 발견됩니다. 계약 당사자인 아브라함은 잘라진 짐승들 사이를 지나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잘린 짐승 사이를 지나가시면서 계약 조건을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보니 창세기 15장은 하느님과 아브라함의 계약을 이야기하는 대목이라기보다 하느님의 일방적인 약속, 곧 하느님의 언약에 관한 장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그와 계약을 맺으시는 것도 아브라함이 청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느님 편에서 선택하시고 결정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계약에 당신 스스로를 옭아매시는 하느님. 여기서 당신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마지막까지 책임지시려는 하느님의 사랑이 느껴집니다.

오늘 제2독서는 이런 하느님의 모습이 당신의 외아들 예수님을 통해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복음은 주님께서 변모하시면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스스로 희생 제물이 되실 때, 바로 당신의 죽음에 관하여 이야기하셨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당신이 바로 아버지께서 마련하신 제물이며, 당신의 피로 새로운 계약이 이루어지리라는 것,

그리고 우리 모두 그분의 피로 구원을 얻게 될 것임을 알려 주십니다. 이 모든 것은 아브라함과 맺으신 약속을 이루고자 하셨던 하느님의 충실하심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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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철호 요한 신부 : 매일미사 2019년 3월 17일
  |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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