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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독서와 복음
조회수 | 1,665
작성일 | 10.03.09
나는 모욕을 받지 않으려고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나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주님의 종의 셋째 노래).
이사야서 50,4-7

4 주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제자의 혀를 주시어, 지친 이를 말로 격려할 줄 알게 하신다. 그분께서는 아침마다 일깨워 주신다. 내 귀를 일깨워 주시어, 내가 제자들처럼 듣게 하신다.
5 주 하느님께서 내 귀를 열어 주시니, 나는 거역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 6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7 그러나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내 얼굴을 차돌처럼 만든다. 나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을 낮추셨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드높이 올리셨다.
필리피서 2,6-11

6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7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8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9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10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11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

수난 복음

루카가 전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입니다. 22,14ㅡ23,56<또는 23,1-49>

짧은 독서를 할 때에는 < > 부분을 생략한다.

○ 해설자  † 예수님  ● 다른 한 사람  ⊙ 다른 몇몇 사람  ◎ 군중

○ <14 시간이 되자, 예수님께서 사도들과 함께 자리에 앉으셨다. 15 그리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 “내가 고난을 겪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파스카 음식을 먹기를 간절히 바랐다. 1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파스카 축제가 하느님의 나라에서 다 이루어질 때까지, 이 파스카 음식을 다시는 먹지 않겠다.”
○ 17 예수님께서 잔을 받아 감사를 드리시고 나서 이르셨다.
† “이것을 받아 나누어 마셔라. 1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제부터 하느님의 나라가 올 때까지,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결코 마시지 않겠다.”
○ 19 예수님께서는 또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사도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 20 예수님께서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방식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다.
†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21 그러나 보라, 나를 팔아넘길 자가 지금 나와 함께 이 식탁에 앉아 있다. 22 사람의 아들은 정해진 대로 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 23 사도들은 자기들 가운데 그러한 짓을 저지를 자가 도대체 누구일까 하고 서로 묻기 시작하였다. 24 사도들 가운데에서 누구를 가장 높은 사람으로 볼 것이냐는 문제로 말다툼이 벌어졌다.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 “민족들을 지배하는 임금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민족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자들은 자신을 은인이라고 부르게 한다. 26 그러나 너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가장 어린 사람처럼 되어야 하고, 지도자는 섬기는 사람처럼 되어야 한다. 27 누가 더 높으냐? 식탁에 앉은 이냐, 아니면 시중들며 섬기는 이냐? 식탁에 앉은 이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사람으로 너희 가운데에 있다. 28 너희는 내가 여러 가지 시련을 겪는 동안에 나와 함께 있어 준 사람들이다. 29 내 아버지께서 나에게 나라를 주신 것처럼, 나도 너희에게 나라를 준다. 30 그리하여 너희는 내 나라에서 내 식탁에 앉아 먹고 마실 것이며,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다. 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처럼 체질하겠다고 나섰다. 32 그러나 나는 너의 믿음이 꺼지지 않도록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그러니 네가 돌아오거든 네 형제들의 힘을 북돋아 주어라.”
○ 33 베드로가 말하였다.
● “주님, 저는 주님과 함께라면 감옥에 갈 준비도 되어 있고, 죽을 준비도 되어 있습니다.”
○ 34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 “베드로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오늘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 35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물으셨다.
† “내가 너희를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없이 보냈을 때, 너희에게 부족한 것이 있었느냐?”
○ 사도들이 대답하였다.
●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 36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 “그러나 이제는 돈주머니가 있는 사람은 그것을 챙기고, 여행 보따리도 그렇게 하여라. 그리고 칼이 없는 이는 겉옷을 팔아서 칼을 사라. 37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성경에 기록된 것이 나에게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는 무법자들 가운데 하나로 헤아려졌다.’는 말씀이다. 과연 나에 관하여 기록된 일이 이루어지려고 한다.”
○ 38 사도들이 말하였다.
● “주님, 보십시오. 여기에 칼 두 자루가 있습니다.”
○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 “그것이면 넉넉하다.”
○ 39 예수님께서 밖으로 나가시어 늘 하시던 대로 올리브 산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다. 40 그곳에 이르러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여라.”
○ 41 예수님께서는 돌을 던지면 닿을 만한 곳에 혼자 가시어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다.
† 42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 43 그때에 천사가 하늘에서 나타나 예수님의 기운을 북돋아 드렸다. 44 예수님께서 고뇌에 싸여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핏방울처럼 되어 땅에 떨어졌다. 45 그리고 기도를 마치고 일어나시어 제자들에게 와서 보시니, 그들은 슬픔에 지쳐 잠들어 있었다. 4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 “왜 자고 있느냐?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일어나 기도하여라.”
○ 47 예수님께서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났는데,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유다라고 하는 자가 앞장서서 왔다. 그가 예수님께 입 맞추려고 다가오자, 48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 “유다야, 너는 입맞춤으로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느냐?”
○ 49 예수님 둘레에 있던 이들이 사태를 알아차리고 말하였다.
● “주님, 저희가 칼로 쳐 버릴까요?”
○ 50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대사제의 종을 쳐서 그의 오른쪽 귀를 잘라 버렸다. 51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 “그만해 두어라.”
○ 예수님께서는 대사제의 종의 귀에 손을 대어 고쳐 주셨다. 52 그러고 나서 그분께서는 당신을 잡으러 온 수석 사제들과 성전 경비대장들과 원로들에게 이르셨다.
† “너희는 강도라도 잡을 듯이 칼과 몽둥이를 들고 나왔단 말이냐? 53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을 때에는 너희가 나에게 손을 뻗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둠이 권세를 떨칠 때다.”
○ 54 수석 사제들과 성전 경비대장들과 원로들은 예수님을 붙잡아 끌고 대사제의 집으로 데려갔다. 베드로는 멀찍이 떨어져 뒤따라갔다. 55 사람들이 안뜰 한가운데에 불을 피우고 함께 앉아 있었는데, 베드로도 그들 가운데 끼어 앉았다. 56 그런데 어떤 하녀가 불 가에 앉은 베드로를 보고 그를 주의 깊게 살피면서 말하였다.
● “이이도 저 사람과 함께 있었어요.”
○ 57 베드로는 부인하였다.
● “이 여자야, 나는 그 사람을 모르네.”
○ 58 얼마 뒤에 다른 사람이 베드로를 보고 말하였다.
● “당신도 그들과 한패요.”
○ 베드로가 말하였다.
● “이 사람아, 나는 아닐세.”
○ 59 한 시간쯤 지났을 때에, 또 다른 사람이 주장하였다.
● “이이도 갈릴래아 사람이니까 저 사람과 함께 있었던 게 틀림없소.”
○ 60 베드로는 말하였다.
● “이 사람아, 나는 자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 베드로가 이 말을 하는 순간에 닭이 울었다. 61 그리고 주님께서 몸을 돌려 베드로를 바라보셨다. 베드로는 주님께서 “오늘 닭이 울기 전에 너는 나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62 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다. 63 예수님을 지키던 사람들은 그분을 매질하며 조롱하였다. 64 또 예수님의 눈을 가리고 물었다.
● “알아맞혀 보아라. 너를 친 사람이 누구냐?”
○ 65 사람들은 이 밖에도 예수님을 모독하는 말을 많이 퍼부었다. 66 날이 밝자, 백성의 원로단, 곧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이 모여 예수님을 최고 의회로 끌고 가서 말하였다.
● 67 “당신이 메시아라면 그렇다고 우리에게 말하시오.”
○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 “내가 그렇다고 말하여도 너희는 믿지 않을 것이고, 68 내가 물어보아도 너희는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69 이제부터 ‘사람의 아들은 전능하신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을’ 것이다.”
○ 70 그러자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이 모두 물었다.
● “그렇다면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말이오?”
○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 “내가 그러하다고 너희가 말하고 있다.”
○ 71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이 말하였다.
● “이제 우리에게 무슨 증언이 더 필요합니까? 제 입으로 말하는 것을 우리가 직접 들었으니 말입니다.”>
○ 23,1 온 무리가 일어나 예수님을 빌라도 앞으로 끌고 갔다. 2 그리고 예수님을 고소하기 시작하였다.
● “우리는 이자가 우리 민족을 선동한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황제에게 세금을 내지 못하게 막고, 자신을 메시아 곧 임금이라고 말합니다.”
○ 3 빌라도가 예수님께 물었다.
●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
○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 “네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 4 빌라도가 수석 사제들과 군중에게 말하였다.
● “나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 죄목도 찾지 못하겠소.”
○ 5 수석 사제들과 군중은 완강히 주장하였다.
⊙ “이자는 갈릴래아에서 시작하여 이곳에 이르기까지, 온 유다 곳곳에서 백성을 가르치며 선동하고 있습니다.”
○ 6 이 말을 들은 빌라도는 이 사람이 갈릴래아 사람이냐고 묻더니, 7 예수님께서 헤로데의 관할에 속한 것을 알고 그분을 헤로데에게 보냈다. 그 무렵 헤로데도 예루살렘에 있었다. 8 헤로데는 예수님을 보고 매우 기뻐하였다.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오래전부터 그분을 보고 싶어 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분께서 일으키시는 어떤 표징이라도 보기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9 그래서 헤로데가 이것저것 물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10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은 그 곁에 서서 예수님을 신랄하게 고소하였다. 11 헤로데도 자기 군사들과 함께 예수님을 업신여기고 조롱한 다음, 화려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돌려보냈다. 12 전에는 서로 원수로 지내던 헤로데와 빌라도가 바로 그날에 서로 친구가 되었다. 13 빌라도는 수석 사제들과 지도자들과 백성을 불러 모아 14 그들에게 말하였다.
● “여러분은 이 사람이 백성을 선동한다고 나에게 끌고 왔는데, 보다시피 내가 여러분 앞에서 신문해 보았지만, 이 사람에게서 여러분이 고소한 죄목을 하나도 찾지 못하였소. 15 헤로데가 이 사람을 우리에게 돌려보낸 것을 보면 그도 찾지 못한 것이오. 보다시피 이 사람은 사형을 받아 마땅한 짓을 하나도 저지르지 않았소. 16 그러니 이 사람에게 매질이나 하고 풀어 주겠소.” (17)
○ 18 수석 사제들과 지도자들과 백성은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 “그자는 없애고, 바라빠를 풀어 주시오.”
○ 19 바라빠는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반란과 살인으로 감옥에 갇혀 있던 자였다. 20 빌라도는 예수님을 풀어 주고 싶어서 수석 사제들과 지도자들과 백성에게 다시 이야기하였지만, 21 그들은 외쳤다.
◎ “그자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 22 빌라도가 세 번째로 수석 사제들과 지도자들과 백성에게 말하였다.
● “도대체 이 사람이 무슨 나쁜 짓을 하였다는 말이오? 나는 이 사람에게서 사형을 받아 마땅한 죄목을 하나도 찾지 못하였소. 그래서 이 사람에게 매질이나 하고 풀어 주겠소.”
○ 그러자 23 수석 사제들과 지도자들과 백성이 큰 소리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다그치며 요구하는데, 그 소리가 점점 거세졌다. 24 마침내 빌라도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결정하였다. 25 그리하여 그는 반란과 살인으로 감옥에 갇혀 있던 자를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풀어 주고, 예수님은 그들의 뜻대로 하라고 넘겨주었다. 26 그들은 예수님을 끌고 가다가, 시골에서 오고 있던 시몬이라는 어떤 키레네 사람을 붙잡아 십자가를 지우고 예수님을 뒤따르게 하였다. 27 백성의 큰 무리도 예수님을 따라갔다. 그 가운데에는 예수님 때문에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여자들도 있었다. 28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들에게 돌아서서 이르셨다.
†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 때문에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 때문에 울어라. 29 보라,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 아이를 배어 보지 못하고 젖을 먹여 보지 못한 여자는 행복하여라!’ 하고 말할 날이 올 것이다. 30 그때에 사람들은 ‘산들에게` ′우리 위로 무너져 내려라.′ 하고, 언덕들에게` ′우리를 덮어 다오.′ 할’ 것이다. 31 푸른 나무가 이러한 일을 당하거든, 마른나무야 어떻게 되겠느냐?”
○ 32 수석 사제들과 지도자들과 백성은 다른 두 죄수도 처형하려고 예수님과 함께 끌고 갔다. 33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두 죄수도 십자가에 못 박았는데, 하나는 그분의 오른쪽에, 다른 하나는 왼쪽에 못 박았다. 34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이 제비를 뽑아 예수님의 겉옷을 나누어 가졌다. 35 백성들은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지도자들은 빈정거렸다.
● “이자가 다른 이들을 구원하였으니, 정말 하느님의 메시아, 선택된 이라면 자신도 구원해 보라지.”
○ 36 군사들도 예수님을 조롱하였다. 그들은 예수님께 다가가 신 포도주를 들이대며 37 말하였다.
● “네가 유다인들의 임금이라면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
○ 38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이자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다.’라는 죄명 패가 붙어 있었다. 39 예수님과 함께 매달린 죄수 하나도 그분을 모독하였다.
●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
○ 40 다른 죄수가 그를 꾸짖으며 말하였다.
● “같이 처형을 받는 주제에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41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
○ 42 그러고 나서 그 죄수가 예수님께 간청하였다.
●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 43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 44 낮 열두 시쯤 되자, 어둠이 온 땅에 덮여 오후 세 시까지 계속되었다. 45 해가 어두워진 것이다. 그때에 성전 휘장 한가운데가 두 갈래로 찢어졌다. 46 그리고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외치셨다.
†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 이 말씀을 하시고 숨을 거두셨다.
<무릎을 꿇고 잠시 묵상>
○ 47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백인대장은 하느님을 찬양하며 말하였다.
● “정녕 이 사람은 의로운 분이셨다.”
○ 48 구경하러 몰려들었던 군중도 모두 그 광경을 바라보고 가슴을 치며 돌아갔다. 49 예수님의 모든 친지와 갈릴래아에서부터 그분을 함께 따라온 여자들은 멀찍이 서서 그 모든 일을 지켜보았다. <50 요셉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의회 의원이며, 착하고 의로운 이였다. 51 이 사람은 의회의 결정과 처사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유다인들의 고을 아리마태아 출신으로서 하느님의 나라를 기다리고 있었다. 52 이 사람이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신을 내 달라고 청하였다. 53 그리고 시신을 내려 아마포로 감싼 다음, 바위를 깎아 만든 무덤에 모셨다. 그것은 아직 아무도 묻힌 적이 없는 무덤이었다. 54 그날은 준비일이었는데, 안식일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55 갈릴래아에서부터 예수님과 함께 온 여자들도 뒤따라가 무덤을 보고, 또 예수님의 시신을 어떻게 모시는지 지켜보고 나서, 56 돌아가 향료와 향유를 준비하였다. 그리고 안식일에는 계명에 따라 쉬었다.>

보편지향기도

† 형제 여러분, 성자의 수난으로 우리를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이끄시는 하느님 아버지께 정성을 다하여 기도합시다.

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빛이신 주님,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가 십자가 죽음을 받아들이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모든 어려움을 이겨 내고 주님을 따름으로써 파스카 신비를 세상에 드러내게 하소서.
◎ 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2.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인류의 창조주 하느님, 온 인류가,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수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신 성자를 믿고 섬기며, 이기심과 탐욕을 버리고 영원한 생명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

3.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 받는 이웃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자비로우신 주님,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 받는 이웃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어,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시고, 저희도 그들의 고통에 함께하며 위로하는 참된 이웃이 되게 하소서. ◎

4. 지역 사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사랑이신 주님, 저희가 살고 있는 지역 사회가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사랑으로 보살피며, 주님 뜻에 합당하게 환경을 이용하고 보존하는 데 앞장서게 하소서. ◎

† 주님, 오직 주님의 자비와 사랑에 의지하며 드리는 자녀들의 기도를 즐겨 들어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묵상  

오늘 우리는 길고 엄숙한 수난 복음을 읽었습니다. 주님께서 잡히시고, 심문받고, 사형수 ‘바라빠’와 비교되는 장면들입니다.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이 복음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는지요? 유다인들은 새로운 임금이 출현하면 나뭇가지를 흔들며 환영했습니다. 오늘의 우리 역시 그런 의미로 성지를 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서는 말합니다. 우리가 환영하는 예수님은 임금으로 오신 분이 아니라, 수난하시고 죽임을 당하시는 분이시라고 합니다. 복음 내용도 따지고 보면 ‘이러한 예수님’을 알리려는 데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아무 저항 없이 죽음의 길을 가셨습니다. 그를 믿는 이들도 그렇게 ‘삶의 십자가’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자신의 뜻을 꺾지 않으면 십자가는 무거워집니다. 성질대로 하면 점점 귀찮아집니다. 자신을 죽이려 할 때 은총은 ‘그 사람 안에서’ 힘을 발휘합니다. 전혀 예기치 않던 곳에서 하늘의 힘을 얻게 합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신비입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억울함을 체험합니다. 실패를 만납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수난 복음의 주인공이 예수님이시라면, 우리 역시 당당한 ‘조연’입니다. 그러니 인생의 ‘아픔’을 의미 없는 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사람의 일생에도 사순 시기에 해당되는 시련기가 있기 마련입니다. 마찬가지로 ‘부활의 체험’ 역시 반드시 주어집니다. 오늘은 이 신비를 묵상하는 날입니다.

▶ 매일미사 2010년 3월호
447 45.6%
사순 기간 동안 우리가 행했던 회개와 보속이 오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중심으로 모아집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느님에 대한 순명이며, 우리 인간과의 유대이고, 그분의 고통이 바로 부활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오늘 수난 복음에 나오는 올리브 가지는 모든 불행을 극복하는 부적이 아닙니다. 오히려 왕으로 오시는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왕권은 보잘것없는 십자가입니다. 바로 이 모욕과 고통, 그리고 버려짐 속에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있습니다. 십자가를 처음 만나면 우리의 신앙이 흔들립니다. 세상에서 가장 의로우신 분이 처형대에 서시는 것이 바로 불의와 폭력으로 가득한 이 세상을 대변해 주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신앙 안에서만 십자가의 무능함 안에 계신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극진히 사랑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자유로이 그분의 계획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이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사랑으로 가득 찬 온전한 자유로 자신을 바치신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인간의 지혜가 역전됩니다. 십자가로 인해 모든 것이 끝나 버리고, 악이 승리한 것 같지만, 그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벌써 온 세상에 새로운 질서와 새로운 성전이 건설되는 것입니다.

▦ 매일미사 2016년 3월 20일
  | 03.18
447 45.6%
[말씀묵상] 핏발선 저항도 무력한 순응도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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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인간은 ‘고통’이라는 현실 앞에서 ‘저항’하거나 ‘순응’하게 된다고 합니다. 생존을 위해 누군가는 아무리 위험하고 불안한 여정을 걸어야 한다 하더라도 투쟁하거나 싸우기를 주저하지 않는가 하면, 누군가는 그 투쟁이 결코 희망을 가져다주는 온전한 혁명이 되지 못함을 깨닫고 안전한 종속의 길을 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주간으로 들어서는 사순의 마지막 주일에 봉독되는 본문들에서는, 이러한 우리의 선택과는 다른 길을 걸으신 예수님의 모습이 소개됩니다. 극도의 고통과 비참 속에서 돌아가셨지만 그것은 결코 불의에 대한 저항도, 종교적 심성의 발로인 비폭력 순응도 아닌 매우 독특한 속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체념으로 말미암은 수동성이나, 좌절과 절망에 항복하는 무기력과는 구별되는 당당함이 있었고, 동시에 민중의 분노를 가열시켜 체제 전복을 부추기고 사회를 광폭에 휘둘리게 하는 선동성을 품은 것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저항도 순응도 아니었던 예수님의 태도는, 하느님과 인간을 향한 ‘완전한 사랑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자발성’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기본적으로 자발성이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데, 관계에 들어선 이들 사이에는 그 어떤 의무나 규칙의 강요 없이도 저절로 파고드는 극적인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향한 충직함과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그 어떤 힘에도 훼손되거나 파괴되지 않으시고, 오로지 자발적인 헌신과 내어줌, 신뢰와 신념으로 당신의 사명을 완수하십니다.

■ 복음의 맥락

예수님의 수난과 십자가상 사건은 모든 공관복음서가 다루고 있는 내용인데, 저자가 속한 공동체의 신학적 관점에 따라 조금씩 달리 묘사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인 루카복음은 다른 복음서들과는 달리 잔혹한 고문이나 치욕적 순간들에 대한 묘사가 상대적으로 자제되어 있습니다. 이는 십자가상 죽음을 결코 비극적 사건이 아닌, 하느님의 구원사업을 이루는 여정이며 이미 예고된 필수적 사건(루카 24,6.44.46 참조)으로 보려는 저자의 의지를 드러냅니다. 특별히 루카복음은 ‘마지막 만찬’ 장면에, 제자들 사이에 일어났던 누가 가장 큰 사람인지에 대한 논쟁을 삽입해 두고 있는데(23,24) 이는 이어지는 내용, 즉 타인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고 낮아지는 자세를 선택하신 예수님의 수난을 염두에 둔 장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실존적 변화는 헌신과 내어줌을 통해서

모든 것을 내어주고 가장 낮아지는 길을 선택하신 예수님의 수난은 그 길이 곧 구원이며 영광이라는 역설을 명확히 알려줍니다. 인간의 실존적 변화는 훌륭한 교육이나 지성, 우아한 훈련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헌신이나 내어줌, 무조건적인 사랑과 희생을 체험하고 목격했을 때에만 제대로 이루어지는 기적이기 때문입니다. 고학력자들이 넘쳐나고 생존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부를 소유하게 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사회의 질적 향상과 직결되지 않음은 작금의 우리 사회를 관찰할 때 쉽게 확인됩니다. 성공과 행복을 위해 혹독하게 교육받고 세상이 만들어낸 가치에 적합한 존재로 제조되는 숨 막히는 과정을 무던히도 감수하지만, 그 교육의 결과로 난무하는 것은 상대적 빈곤과 공허한 결핍, 추태와 위선입니다. 그러니 인간을 진정으로 변화시키는 힘은 나를 위한 누군가의 헌신과 내어줌, 항구한 사랑과 희생을 직접 목격하고 배우며 그 경이로움에 온전히 동화될 때 비로소 시작된다는 것이 맞습니다. 그것만이 세상을 개혁하고 바꾸는 기본 규칙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러한 진리를 몸소 증거하셨는데, 우리를 정치적 능력이나 군사적 힘으로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낮추시어 세상에 오시고 온전히 내어주심으로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루카복음서는 특별하게, 이러한 예수님의 사랑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십자가상의 두 강도의 대화를 통해 대별시킵니다. 두 사람의 상반된 행위는 십자가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 전반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는데 한 죄수는 그분을 여전히 모독하고 비난하며 하느님과 운명을 저주하지만, 다른 죄수는 그러한 상대방을 꾸짖고 예수님의 무죄함과 의로움을 선언합니다.(39-40절) 그리고 이러한 지고한 사랑은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기적임을 전제하고 자신의 잘못을 고백합니다.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주십시오.”(41-42절) 이 강도의 고백은, 수난과 죽음을 선택하셔야 했던 예수님의 의도가 실현되는 중대한 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분의 겸손과 진리, 인간을 위한 진심 어린 사랑을 목격하면서 우리 자신의 죄를 하느님께 고백하고 마침내 구원되기를 간청하는 것, 이 진정어린 관계야말로 생명을 바쳐 인간을 사랑하신 예수님의 구원사업이 목적하고 추구한 결과인 것입니다.

■ 수난받는 주님의 종과 바오로가 증언한 예수님의 고난

제1독서의 이사야서 본문 역시 모든 수난과 고통을 감내하게 하는 힘은 하느님께 대한 신뢰임을 알려줍니다. “나에게 제자의 혀를 주시어… 격려할 줄 알게… 아침마다 일깨워 주신다. 내 귀를 일깨워 주시어… 듣게 하신다.”(이사 50,4) 특별히 주님의 종은 모욕하는 자들의 폭력에도 물러서지 않는데(5-6절)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7절)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음은 일반 영웅들이 남겼던 역사적 서사와는 분명히 다른 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신을 고통스럽게 한 이들의 죄를 밝힘으로써 누가 진정한 의인이고 죄인인지를 증명하려 하지 않으셨고, 자신의 무죄함을 항변하거나 밝히려고 하지 않으셨으며, 그 수난과 죽음이 얼마나 가치 있고 고귀한 것인지를 과시하려고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 수난과 죽음을 진정한 구원의 길로 인정하시어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십니다.(제2독서, 필리 2,9) 스스로를 낮추신 예수님의 방식은 하느님에 의해 드높여지고 가장 뛰어난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고통을 종교로 승화한다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하지만 자칫하면, 마르크스의 지적대로 ‘종교가 아편’이 되는 순간을 허용하는 말인 듯하여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표현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수난은, 그분의 고통이 우리의 불행보다 더 처참한 것이었기에 상대적 위안을 주기 위한 것도, 그분처럼 잘 참으면 천당에 가게 된다는 편의적 발상도 아니었습니다. 정해진 제도와 규범 안에 얌전히 구속되어 있을 때 우리의 모든 고통은 천국을 위한 보험처럼 안전성을 보장해준다는 프레임으로 예수님의 수난을 이해하는 것은 도덕과 금기의 이름으로 감시와 위선만을 더욱 양산시키는 구조로 추락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선은, 가장 낮고 위험하며 고독한 곳에서 인간에 대한 사랑을 완성하신 구원의 본질을 축소시키고 왜곡할 여지를 갖습니다.

인간의 구원은, 무엇이 되고 무엇을 이루며 무엇을 소유할 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존재를 충만히 채우고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축복을 온전히 누릴 때 발생합니다. 그리고 그런 구원을 이루는 힘은 누군가의 정직한 내어줌과 사랑에 근거합니다. 메시아의 수난은 이러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계획되고 실현된 위대한 ‘하느님의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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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윤 수녀 (미리내성모성심수녀회) : 가톨릭신문 2014년 4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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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교회는 정신을 집중하여 주님의 수난을 묵상합니다. 루카는 주님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의 수난을 회상하도록 도와줍니다.

마태오와 마르코와 달리, 루카는 예수님께 침을 뱉고 주먹으로 치며 손찌검하는 행위, 가시나무로 엮은 관을 씌우는 행위, 거짓 증인들에 대하여 들려주지 않습니다. 또 루카는 예수님을 고통받는 의인,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여 온갖 고통을 받아들이고 다른 이들이 회개하고 하느님과 일치하도록 도와주시는 분의 본보기로 여기며 찬미하는 마음을 보여 줍니다.

번민에 싸이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하라고 하십니다. 올리브산에서 예수님께서는 몸소 제자들에게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보여 주십니다. 기도를 마치신 뒤 예수님께서 다시 “왜 자고 있느냐?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일어나 기도하여라.” 하고 촉구하십니다.

예수님의 관대함과 자비로움은 당신께서 잡히실 때부터 드러납니다. 제자 한 사람이 칼로 대사제의 종을 쳐서 그의 오른쪽 귀를 잘라 버렸을 때 예수님께서 종의 귀에 손을 대어 고쳐 주십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뉘우치는 죄수에게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이런 표현들은 예수님의 관대하고 인자하신 마음뿐만 아니라 그분께서 거두실 승리의 확신을 보여 줍니다. 수난은 참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가장 위대하게 드러내는 순간입니다. 수난의 상황들은 분명 비극적이지만 사랑으로 극복되고 승리를 거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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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 매일미사 2019년 4월 14
  | 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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