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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조회수 | 2,178
작성일 | 10.03.20
용서! 단순하게 생각하면 참 쉬운 단어이지만 우리가 생활화하기에는 매우 어렵습니다. 특히 누군가에게 큰 상처를 받은 사람에게 용서는 자신과 상관없는 말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큰 상처를 받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도덕과 종교의 가르침으로 언젠가는 상처 준 사람을 용서하리라 마음 먹습니다.

몇 해 전, 한 어머니가 친아들을 죽인 살인자를 양아들로 받아들여 가정을 이룬다는 내용의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영화에서 보여준 어머니의 모습은 용서가 얼마나 위대하고 놀라운지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친아들을 죽인 사람을 용서할 뿐 아니라 양아들로 받아들여 새로운 가정을 꾸려나가는 어머니의 모습, 누구도 변화할 수 없을 거라 믿었던 살인자가 자신을 용서해 준 양어머니의 사랑으로 바른 길을 선택하는 모습. 용서란 행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신비로운 사랑, 새로운 시작이라 느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간음한 죄인 한 명을 예수님 앞에 세웁니다. 그리고 율법을 내세우며 예수님을 몰아세웁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은 놀랍습니다. 오히려 여인의 죄를 고발하는 이들에게 죄를 물으십니다. “죄가 없는 사람부터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예수님의 이 한 말씀은 그들 마음속에 폭풍을 일으킵니다. ‘하느님 앞에 나 자신은 떳떳하게 죄 없는 사람인가?’, ‘하느님께서는 나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살도록 허락해 주시는데 과연 내가 저 여인을 죄인이라 벌할 수 있는가?’예수님의 말씀으로 그들은 하느님의 용서와 사랑에 직면합니다. 내가 얼마나 큰 사랑을 받고 있는지 깨닫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 둘 양손에 쥐었던 돌멩이를 내려놓고 뒤로 물러섭니다. 용서와 사랑의 신비 앞에 두려운 나머지 조금 전 처벌을 소리치던 당당한 모습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이제 예수님 앞에는 간음한 여인만 남았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사순시기의 마지막을 보내는 이 시간,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말씀을 되새겼으면 좋겠습니다. 매순간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하느님을 잊고 있지는 않는지,그 사랑을 받으면서도 이웃을 용서하지 못하고 단죄하려 하지 않는지 깊이 생각하고 삶에서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대전교구 이상준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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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고 있던 돌을 내려 놓읍시다.

예수님께서 백성들을 가르치고 계실 때,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스승님, 이 여자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소할 구실을 만들려고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만약 "그 여자를 용서해 주라."고 하면 율법을 어기는 것이 되고. 또한 "그 여자를 법대로 처리하라."고 하면 평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자비, 용서'와 정반대이기 때문에 모순이 됩니다. 그야 말로 진퇴양난입니다. 너무도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갑니다. 한 여자의 목숨이 걸려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미 이 여자를 쳐 죽이려고 돌을 손에 쥐고 있습니다. 육이오 때 인민공화국 시절 ‘인민 재판’과 비슷합니다. 총알이 아깝다고 곡괭이, 삽으로 찍어 죽였습니다. 사형 당하기 직전의 그 여자는 얼마나 공포에 질려 있었을까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지라."고 판결하십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돌멩이를 땅바닥에 내려놓으면서 떠나가고, 예수님과 여인 둘만 남았습니다. "여인아, 그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 이제 살았다는 기쁨 속에 눈물을 흘리며 그분께 대답했습니다. "선생님, 아무도 없습니다." 그분은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너무나도 엄청난 일입니다. 사형장에서 사형 직전에 석방되었으니 말입니다.

오늘 복음의 주제는 용서입니다. 돌을 놓고 물러간 군중의 순수성이 그립습니다. 그들에겐 일말의 양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양심이고 뭐고 없습니다. ‘똥낀 놈이 화낸다.’고 남의 쥐꼬리만한 하찮은 잘못을 용서 못 하고 머리통만한 돌을 머리 위까지 추켜들고 내리치려 합니다. 팔자 고치려 덤벼듭니다. 우리는 그래선 안 됩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처럼 서로 용서합시다. 특히 신자들 간의 불화는 안 됩니다. 평생지기들끼리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쥐고 있던 돌을 어서 내려놓읍시다. 아멘.

▶ 방윤석 신부
  |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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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죄 없는 자

“아직도 우리 성당에는 착하고 훌륭해서 존경할 만한신자들이 참 많아.” 교회의 한 어르신께서 해 주신 말씀이다. 그러나 모든 분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선거철에 사회적으로 매우 알려진 한 사람이 무례하기 짝이 없는 태도로 ‘나도 천주교인이다.’라고 할 때 ‘제발 저런 사람은 신자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신자와 성직자 사이에서 늘 좋은 감정을 갖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본당신부님께서는 우리에게 꼴도 보기 싫다고 하시는데 사실 신부님께서도 꼴 보기 싫은 신자들도 있겠지만 신자 입장에서 꼴 보기 싫은 신부님도 계시거든요.”하고 말씀하시던 할머니신자분도 기억한다. 소위 냉담하고 계시는 한 분을 만나 성당에 나오시라고 권유를 한 적이 있다. 그분은 “성사에 참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그날강론을 들으면서 복음말씀은 강론 전체의 십분의 일도 되지 않는 것 같고 거의 절반은 자기편이 아닌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이었고 나머지 거의 절반도 자기자랑에 불과한 것을 보면서 ‘적어도 저런 사람이 성직자고 교회의 지도자라고 한다면 천주교에는 하느님이 안 계시다.’라고 생각하여 더는 다니지 않습니다.”라는 대답을 들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자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것을 절실히 인식하기는 쉽지 않은지도 모른다. 그래서 늘 자신을 되돌아보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반성할 줄 모르는 정신구조를 가진 사람도 있는 듯싶을 때도 있다. 함부로 말하고 때로는 소수의 잘못한 사람들을 열거하면서 나머지 사람들까지 다 그런 사람들인 것처럼 인격을 모독하고 명예를 훼손하면서도 전혀 죄의식조차 없다. 나아가 그렇게 하는 것이 하느님과 교회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며 자신의 직무가 요구하는 사명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싶기도 하다. 죄 많은 자가 죄 없는 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는 꼴이다.

그러나 오늘 복음의 모습은 다르다. 죄를 지은 여인이 있다. 그 여인은 참회하여 용서를 청한 것도 아니지만 예수님은 그 여인을 받아주시며 단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고 격려까지 하며 돌려보내신다. 그리고 그 여인에게 돌을 던지는 것이 하느님께 대한 충실성의 증명이고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하나씩 하나씩 자신의 죄를 기억하며 손에 쥐고 있는 돌을 내려놓고 떠나간다. 오늘의 우리에게는 참 많이 그리운 모습이다.

▦ 대전교구 김기만 알베르또 신부 : 2016년 3월 13일
  |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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