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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 연중 제16주일 독서와 복음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조회수 | 1,756
작성일 | 10.07.17
▦ 제1독서 : 나리, 부디 이 종을 그냥 지나치지 마십시오.
▦ 창세기 18,1-10ㄴ

그 무렵 1 주님께서는 마므레의 참나무들 곁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 아브라함은 한창 더운 대낮에 천막 어귀에 앉아 있었다. 2 그가 눈을 들어 보니, 자기 앞에 세 사람이 서 있었다. 그는 그들을 보자 천막 어귀에서 달려 나가 그들을 맞으면서, 땅에 엎드려 3 말하였다.
“나리, 제가 나리 눈에 든다면, 부디 이 종을 그냥 지나치지 마십시오. 4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시어 발을 씻으시고, 이 나무 아래에서 쉬십시오.
5 제가 빵도 조금 가져오겠습니다. 이렇게 이 종의 곁을 지나게 되셨으니, 원기를 돋우신 다음에 길을 떠나십시오.” 그들이 “말씀하신 대로 그렇게 해 주십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6 아브라함은 급히 천막으로 들어가 사라에게 말하였다. “빨리 고운 밀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 반죽하여 빵을 구우시오.” 7 그러고서 아브라함이 소 떼가 있는 데로 달려가, 살이 부드럽고 좋은 송아지 한 마리를 끌어다가 하인에게 주니, 그가 그것을 서둘러 잡아 요리하였다. 8 아브라함은 엉긴 젖과 우유와 요리한 송아지 고기를 가져다 그들 앞에 차려 놓았다. 그들이 먹는 동안, 그는 나무 아래에 서서 그들을 시중들었다.
9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댁의 부인 사라는 어디에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 그가 “천막에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0 그러자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내년 이때에 내가 반드시 너에게 돌아올 터인데, 그때에는 너의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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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독서 : 과거의 모든 시대와 세대에 감추어져 있던 신비가 이제는 하느님의 성도들에게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콜로새서 1,24-28

형제 여러분, 24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며 기뻐합니다.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내가 이렇게 그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25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당신 말씀을 선포하는 일을 완수하라고 나에게 주신 직무에 따라, 나는 교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26 그 말씀은 과거의 모든 시대와 세대에 감추어져 있던 신비입니다. 그런데 그 신비가 이제는 하느님의 성도들에게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27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 나타난 이 신비가 얼마나 풍성하고 영광스러운지 성도들에게 알려 주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 신비는 여러분 가운데에 계신 그리스도이시고, 그리스도는 영광의 희망이십니다.
28 우리는 이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사람으로 굳건히 서 있게 하려고, 우리는 지혜를 다하여 모든 사람을 타이르고, 모든 사람을 가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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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 : 마르타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 루카 10,38-42

그때에 38 예수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그러자 마르타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39 마르타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40 그러나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 다가가,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41 주님께서 마르타에게 대답하셨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42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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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청년이 매일같이 빵집을 들러 식빵을 사 갔습니다. 얼굴이 창백한 그는 늘 식빵만 찾았습니다. 빵집 여주인은 영양가가 부족한 빵만 사 먹는 그 청년을 볼 때마다 측은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청년도 모르게 빵에 버터를 듬뿍 발라서 그에게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청년은 빵집을 찾아와 불같이 화내다가 마침내는 좌절한 표정으로 맥없이 주저앉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는 도시 계획의 설계 공모에 제출하려고 오랫동안 설계도 작업을 해 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설계도의 지우개로 사용하려고 지금까지 식빵을 사 갔는데, 하필 마무리 작업을 하던 그날 저녁 그 버터 빵 때문에 설계도를 모두 망쳐 버린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이러한 일이 적지 않습니다. 상대방의 처지는 전혀 모르는 채 그를 위하여 무언가를 해 준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방해가 되기도 합니다. 사랑이란 상대방을 이해하고 그를 중심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된 사랑에 필요한 것은 헤아림입니다. 이것이 없는 사랑은 상대방을 힘들게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을 향한 두 가지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마르타와 마리아의 사랑입니다. 마르타의 사랑은 예수님께서 지금 바라시는 것을 알지 못한 채 드리는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하느님 나라에 대하여 말씀하고 싶어 하시는데, 그녀는 그것에 대해서는 듣는 둥 마는 둥 시중만 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바로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어떻습니까? 자기중심적인 사랑으로 오히려 상대방을 힘들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매일미사 2013년 7월>
  |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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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집에 찾아온 손님을 잘 대접하는 것은 모든 이에게 필요한 덕입니다. 특히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자신들이 이집트에서 이방인이며 노예로 살았던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신앙의 행위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마리아와 마르타의 집을 방문하십니다. 마르타는 음식을 잘 준비해서 예수님께 맛있게 대접하려고 했고,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손님을 맞아들이고 가장 잘 대접하는 것은 그분이 원하시는 것을 해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첫 번째 자세는 바로 듣는 것입니다. 손님의 뜻을 먼저 듣지 않고 자기의 뜻대로 차리는 것은 대접이 아니라 자기 과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의 접대는 자신의 삶을 완전히 뒤집어 변화되기를 바라시는 그분을 맞아들이는 것입니다. 내 자신의 삶의 공간을 ‘조금’ 내어 드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세상의 가치관을 버리고 그분의 가치관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삶의 주변에서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면 우리가 이웃이 되어 주고 봉사해야 할 이들이 보입니다. 모두에게 버림받은 노인이든, 불의하게 천대받는 외국인 노동자든, 삶의 의미를 상실한 노숙자든 모두 다 우리가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귀를 기울이기를 바라시는 주님의 초대요 부르심입니다.

▮ 매일미사 2016년 7월 17일
  |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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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에 익숙하기에 마르타와 마리아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왜 마르타가 꾸중을 들을까?’ 생각합니다. 마르타는 열심히 일하는데 마리아는 앉아서 놀기만 하는 듯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야기 흐름을 통하여 등장인물 중 누가 옳은지를 보여 줍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마르타가 너무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한다고 하시며, 마리아가 좋은 몫을 택했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바탕으로 오늘 복음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르타의 문제가 분명히 드러납니다.

성경에서 주님을 맞아들여 그분께 가까이 다가가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은 다른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을 집에 모신 인물은 마리아가 아니라 마르타입니다. 그런데 마르타는 주님을 초대해 놓고서 그분께 가까이 다가가 그분의 말씀을 듣는 데 집중하지 않고, 온갖 시중드는 일에 ‘분주’합니다. 분주하다는 표현은 마르타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암시해 줍니다. 이에 반하여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성경의 관점에서 볼 때 가장 중요한 일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1독서의 아브라함도 마르타처럼 주님을 맞아들인 뒤 주님과 그분 천사들의 시중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마르타와 달리 아브라함은 주님 곁에 머물며 시중을 듭니다. 그리고 그분 말씀에 귀 기울이며 공손히 답합니다. 제1독서에서 주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인물은 천막 안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던 사라였습니다.

성경의 관심에서 벗어나 개인적 관점에서 ‘말씀만 듣고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마리아가 정말 잘한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 의문으로 복음의 초점을 흐려 놓아서는 안 됩니다. 오늘 복음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개미 마르타와 베짱이 마리아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님과 가까운 자리에 머물며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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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구 염철호 요한 신부 : 매일미사 2019년 7월 21일
  |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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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앗아갈 수 없는 ‘좋은 몫’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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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셋째 주일은 주님의 창조질서 보전에 유익한 몫을 선택하여 더위에 땀 흘리고 있는 농민들에게 감사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농민 주일입니다. 주님께서는 마리아에게 빼앗기지 않을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루카 10,42)고 격려하십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친교로 주님의 뜻을 따라 각자의 소명에 충실할 부름을 받았습니다.

의인 아브라함이 마므레에 살던 시절 한 여름 대낮에 주님께서 그를 방문하십니다.(제1독서) 아브라함이 신비한 세 사람의 그룹 지도자에게 ‘나리’라고 호칭하는 것으로 보아 처음에는 주님인 줄 몰랐습니다. 두 분은 나중에 시중드는 ‘천사’로 밝혀집니다.(창세 19,1)

천막 입구에 앉아있던 아브라함이 달려 나가 “부디 이 종을 그냥 지나치지 마십시오” 하고 경외하며 모십니다. 발을 씻으시게 물을 떠오는 겸손한 봉사를 합니다. 가족들은 한 말 가량(3 measures, seahs)의 밀가루를 반죽하여 빵을 굽고, 원기를 돋우도록 우유와 치즈로 요리한 송아지 고기로 상차림을 합니다.

주님께서는 한해 뒤에 아브라함의 부인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 축복하십니다. 아브라함은 99세 때 하느님과 할례 계약(창세 17,1 이하)을 맺었습니다. ‘아들의 약속’이 이루어진 후 그는 주님의 흠 없는 증거자가 됩니다. 사라는 이 말을 듣고 ‘어찌 아이를 낳을 수 있으랴, 내 남편도 나도 늙은 몸인데’ 하고 속으로 웃었습니다. 이듬해 아브라함은 아들의 이름을 이사악(Isaac, 주님의 미소)이라고 짓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 주신 직무인 말씀을 선포하는 ‘교회의 일꾼’이 된 소명을 고난 속에도 기쁘게 수행합니다.(제2독서)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내 육신으로 채운다”(콜로 1,24)는 표현은, 십자가의 수난에 역사의 예수님께 부족함이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사도가 감내해야만 하는 고통을 두고 한 말입니다. 이 고난에는 위선자들의 소행은 물론 종말에 일어날 환난도 포함됩니다.

바오로 서간에 드러난 특색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선포하고 구원의 신비를 알리는 일입니다. 구약시대에 감추어져 있던 그리스도의 신비가 성도들에게 명백히 드러났기에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소망합니다. 말씀의 선포는 모든 민족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원수를 사랑하기까지 ‘완전한 사람’(마태 5,48)으로 굳건해지는 성화의 길임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이 소명에 교회의 성도’들이 모범이 되어주기를 당부합니다.

오늘 복음(루카 10,38-42)에서 예수님은 자매의 집을 방문하십니다. 마리아(동생)는 주님의 발치에서 말씀을 경청합니다. 혼자 손님접대에 부담을 안고 불안해하던 마르타(언니)는 주님께 다가가 동생이 자기를 도와주도록 일러주시라고 청합니다. 주님께서는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라고 대답하십니다.

복음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대가족 제도와 남녀 성별차이라는 당시의 문화적 특성을 감안할 때, 예수님께서 두 여인을 가르치는 일은 놀랍습니다. 마리아는 오빠 라자로(요한 11장)와 제자들을 포함한 남자들의 공간에 함께했음이 분명합니다. 남자는 자발적으로 참석할 수 있지만, 여성의 경우에는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경우에만 부름을 받게 됩니다.

복음의 메시지에 대해 성 아우구스티노는 마리아가 주님과 마주하는 천상의 상태를 미리 맛보는 것이라고 전합니다. 성 암브로시오는 아무도 앗아갈 수 없는 지혜를 갈망하고, 시중드는 일에 바빠서 천상적 말씀에 관한 지식을 놓치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베르나르도 성인은 내적 잠심(기도)의 의미를 강조합니다.(베네딕토 16세 교황, 2014; 암브로시오 루카복음서주해, 1720)

수도원 전통 가운데 가장 빛나는 일은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거룩한 독서)로 이해합니다. ‘기도와 말씀봉사에만 전념’하겠다는 사도들의 결심(사도 6,4)처럼 매일 성경을 읽고 주님과 일치를 이루는 수행을 우선합니다. 베네딕토 성인은 회칙에서 “기도하고 일하라”고 합니다. “복음은 세상의 바이러스를 이겨낼 항체”(2017.12)라고 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신앙의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관상으로 자라난다고 가르치십니다.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서 침묵 중에 말씀을 경청하는 관상기도에 열정을 보입니다. 임마누엘 예수님 곁에서 친밀한 우정을 쌓고 침묵 속에 말씀을 경청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몫이 어디 있겠습니까? 주님께서도 이러한 만남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성과주의와 생산성이란 잣대로 업적을 평가하는 오늘날 주님의 말씀 묵상과 충실한 기도의 힘은 참으로 값진 무기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너무 많은 일에 매달려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활동주의는 경계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요?

말씀의 경청과 사랑의 봉사는 어느 것도 비난할 수 없습니다. 흔들림 없이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서 기도 속에 주님과 일치를 이루는 일이 우선이며, 누구도 앗아갈 수 없는 좋은 몫의 선택이요 소명입니다. 마더 데레사 성녀의 말처럼 “모든 것은 기도에서 시작됩니다.” 주님과 함께 동행 하는 충실한 믿음은 바로 기도의 열매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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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선(요한 세례자) 가톨릭영성독서지도사
가톨릭신문 2019년 7월 21일
  |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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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어떤 마을에 들르십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길을 걸어가십니다. 사람들을 찾으러 길을 나서시는 주님이십니다. 마침내 마르타와 마리아를 찾으셨습니다. 그들은 전에도 몇 번 만났던 자매입니다.

주님께서는 자매가 사는 집으로 들어가십니다. 자매가 주님을 모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주님을 모실 줄 알고, 또 주님께서는 당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 마다하지 않으십니다. 거기에서 주님께서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좋은 것을 말씀해 주시고, 보여 주십니다. 들을 줄 아는 사람이 그 말씀을 듣고, 볼 줄 아는 사람이 그분의 모습을 뵐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각자의 삶의 몫이 있습니다. 마리아처럼 주님의 말씀을 열심히 듣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르타처럼 주님께 열심히 시중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비록 그 몫은 다르지만, 모두 주님의 공동체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지요. 다만, 주님 안에서 각자의 몫에 충실해야 하지만, 가끔씩 다른 이의 몫에 이래라저래라 참견하는 경우가 있지요. 오늘 주님께서는 자신에게 맡겨진 직분에 충실할 것을 주문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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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2010년 7월호
  |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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