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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 연중 제21주일 독서와 복음 [좁은문으로, 꼴찌가 첫째가--]
조회수 | 1,744
작성일 | 10.08.18
그들은 모든 민족들에게서 너희 동포들을 데려오리라.
이사야서 66,18-21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8 “나는 모든 민족들과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을 모으러 오리니, 그들이 와서 나의 영광을 보리라.
19 나는 그들 가운데에 표징을 세우고, 그들 가운데 살아남은 자들을 타르시스와 풋, 활 잘 쏘는 루드, 투발과 야완 등 뭇 민족들에게 보내고, 나에 대하여 아무것도 듣지 못하고 내 영광을 본 적도 없는 먼 섬들에 보내리니, 그들은 민족들에게 나의 영광을 알리리라.
20 마치 이스라엘 자손들이 깨끗한 그릇에 제물을 담아 주님의 집으로 가져오듯이, 그들도 모든 민족들에게서 너희 동포들을 주님에게 올리는 제물로 말과 수레와 마차와 노새와 낙타에 태워, 나의 거룩한 산 예루살렘으로 데려오리라.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21 그러면 나는 그들 가운데에서 더러는 사제로, 더러는 레위인으로 삼으리라.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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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훈육하신다.
히브리서 12,5-7.11-13

형제 여러분, 5 여러분은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시면서 내리시는 권고를 잊어버렸습니다. “내 아들아, 주님의 훈육을 하찮게 여기지 말고, 그분께 책망을 받아도 낙심하지 마라. 6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훈육하시고, 아들로 인정하시는 모든 이를 채찍질하신다.”
7 여러분의 시련을 훈육으로 여겨 견디어 내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십니다. 아버지에게서 훈육을 받지 않는 아들이 어디 있습니까?
11 모든 훈육이 당장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것으로 훈련된 이들에게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를 가져다줍니다.
12 그러므로 맥 풀린 손과 힘 빠진 무릎을 바로 세워, 13 바른길을 달려가십시오. 그리하여 절름거리는 다리가 접질리지 않고 오히려 낫게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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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과 서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루카 13,22-30

그때에 22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하시는 동안, 여러 고을과 마을을 지나며 가르치셨다.
23 그런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24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25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닫아 버리면, 너희가 밖에 서서 ‘주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며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여도, 그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
26 그러면 너희는 이렇게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27 그러나 집주인은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하고 너희에게 말할 것이다.
28 너희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모든 예언자가 하느님의 나라 안에 있는데 너희만 밖으로 쫓겨나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29 그러나 동쪽과 서쪽, 북쪽과 남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30 보라,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보편지향기도

+ 형제 여러분, 구원에 이르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쓰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뜻을 따라, 우리의 구원에 필요한 은혜를 하느님 아버지께 간절히 청합시다.

1.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주님, 모든 그리스도인이 복음의 정신으로 돌아가, 세상 모든 곳에 마음의 문을 열고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데 몸 바치게 하소서.
◎ 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2. 세계 평화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평화의 주님, 인종 차별과 빈부의 차이로 갈등을 겪고 있는 나라들이 미움과 폭력을 버리고, 주님의 정의대로 서로 존중하고 가진 것을 나누어, 모든 이가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

3. 농민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주님, 더운 날씨에 땀 흘려 일하는 농민들의 노고를 굽어보시어, 풍성한 수확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그들의 수고로 얻은 농산물을 온 국민이 애용함으로써 농촌 경제를 돕게 하소서. ◎

4. 지역 사회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사랑이신 주님, 저희가 살고 있는 이 지역을 저희가 관심과 애정으로 끊임없이 살피며, 도움이 필요한 곳에 기꺼이 함께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소서. ◎

+ 자녀들의 구원을 바라시는 주님, 주님의 제단에 모여 한마음으로 바치는 저희의 기도를 너그러이 들어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묵상

주님께서 사람들에게 베푸시는 구원은 보편적입니다. 아무도 그 구원에서 제외되지 않습니다. 신자이든 비신자이든, 일정한 한계가 주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구원의 문이 좁은 문이라고 하십니다.

구원의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영원한 생명의 길입니다. 그 길은 오직 하나밖에 없는 길입니다. 그 길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길이며, 그 문은 주님이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에 대한 굳건한 신앙을 가지고 참된 진리를 찾으며, 언제나 기쁘고 떳떳하게 살아가는 사람만이 그곳에 다다르게 됩니다.

매일미사 2010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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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동창 신부가 그의 부친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아버지라 하였는데, 그분은 공직자로서 청렴결백하기로 유명하였습니다. 비근한 예로, 추석 같은 명절 때가 되면 사람들이 과일 등의 선물을 보내오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곧바로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그 누구에게서도 단돈 만 원 한 장 받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아버지가 아들 신부에게 언젠가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살아가면서 내가 지키려고 했던 원칙 하나가 있단다. 사람이 살다 보면 두 가지 가운데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할 때가 있단다. 선택할 때에는 언제나 선택하기 싫은 것, 바로 그것을 택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삶의 보람을 느끼게 될 거야.”

덜 원하는 것, 덜 편한 것, 덜 쉬운 것을 선택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는 분명히 복음적인 선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를 보여 줍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좁은 문은 들어가기가 불편합니다. 고개를 숙이고 몸을 오그려야 합니다. 그 반면, 넓은 문은 대접받는 사람들을 위한 문입니다. 그래서 그 문으로 들어가는 길이 편하고 쾌적합니다. 이 두 개의 문 가운데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것은 불편하기 짝이 없는 좁은 문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선택의 갈림길에 놓일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오늘 복음 말씀을 떠올리도록 합시다.

<매일미사 2013년 8월>
  |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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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 첫머리를 보면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이에 예수님께서는 구원을 받기 위해서 각자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먼저 성찰하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왜냐하면, 하늘 나라는 내가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자동으로 들어가는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내 상태에 안주해서는 결코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따라서 하늘 나라에 들어가려면 무엇보다도 믿음을 굳게 하려고 힘써야 합니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굳게 하려면 먼저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신 분, 나는 그분 앞에서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것부터 인정해야만 합니다. 물론 신앙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볼 수 없고 들을 수도 없는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는 점입니다. 더욱이 착한 사람이 고통을 받고, 악과 불의가 선과 정의를 이기는 것만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 앞에는 ‘분명히 존재하면서도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천사, 영혼, 사랑 등이지요. 어떤 사물이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참된 믿음은 ‘내가 하느님을 볼 수 있으므로 믿는다.’가 아니라, ‘하느님을 볼 수 없어도 믿는다.’여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나의 기도를 지금 들어주시기에 믿기보다는 나의 기도를 지금 들어주지 않으셔도 믿어야 합니다. 이럴 때 나의 믿음은 굳건해질 것이며, 나에게 주어지는 시련과 고통마저도 극복해 나갈 것입니다.

▮ 매일미사 2016년 8월 21일
  |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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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라고 묻는 어떤 사람은 시대마다 거듭되어 온 질문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질문은 당시 라삐 학교들 안에서 제기되었고, 구원이나 멸망에 대하여 몇몇 사람들을 고뇌하게 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라삐들은 구원이 유다인들의 전유물이라고 말하는 데 일치하였지만, 몇몇 라삐는 선택된 백성에 속하는 모든 이가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직접 대답하지 않으시고 열정적으로 권고를 하십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사방에서 온 다른 이들에게 열려 있는 문의 비유를 드시며, 이민족들에게 나라와 복음이 열려 있음을 설명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 소속된다는 사실에 근거를 둔 그릇된 구원의 확신을 거부하십니다.

오늘 복음은 구원받는 사람의 숫자와 구원받는 것의 어려움을 말하며, 메시아 잔치를 예언하는 표상으로 상징되는 구원의 보편성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나라로 이끄는 문이 모든 이에게 좁다고 이르십니다.

마태오 복음의 병행 구절은 이 사실을 더 자세하게 들려줍니다.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고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마태 7,13-14).

나중에 온 이들, 곧 복음을 믿고 실천하는 이방인들이 이스라엘보다 먼저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들어갈 것입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충실하게 대답한다면 우리는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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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 매일미사 2019년 8월 25일
  |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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