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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내가 하는 기도는
조회수 | 2,270
작성일 | 10.10.15
세례식 또는 대부모 설 때

사제 : 여러분은 하느님의 교회에서 무엇을 청합니까?  
교우 : 신앙을 청합니다.
사제 : 신앙이 여러분에게 무엇을 줍니까?  
교우 : 영원한 생명을 줍니다.

몇 년 후

교우 : 신부님! 하느님이 계시기는 합니까? 세상이 불의한 것도 그리고 제 고통과 고민을 해결해 주십사하고 열심히 기도를 해도 제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 것을 보면 하느님이 원망스럽고 진짜 계신지 그 존재가 의심스럽기만 합니다. 차라리 전 성당 안 다니렵니다.

사제 :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 크신지 모르지만, 하느님께서는 분명히 당신의 은총을 교우 분에게 주실 겁니다. 음… 근데 혹 기도는 언제 얼마나 어떻게 하시는지요?

교우 : 기도요? 뭐 묵주기도나 성체조배도 하고, 평일미사도 하고, 기도회도 다니고 그러지요. 그런데 진짜 너무 힘들어서 바치는데 도대체 들어주시지 않네요. 그래서 믿음을 포기하렵니다.

사제 : 아, 네, 그러시군요. 그런데 묵주기도 몇 단 정도면 아픈 사람이 낫고, 평일미사 몇 번이면 돈다발이 생기고, 기도를 얼마나 하면 자녀들이 대학이나 직장에 붙을까요? 지금 가지고 계신 신앙이 모든 걸 얻게 해주는 요술램프라고 생각하시나요? 오히려 기도를 가지고 하느님을 시험하는 실수를 하시는군요. 기도는 하느님과 하는 대화이지 거래나 흥정이 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이 무슨 커피나 음료수 자판기입니까? 내가 몇백 원 넣으면 먹고 싶은 종류에 따라 맘대로 골라 마시는 기계는 아니잖아요. 기도를 통한 은총은 내가 선택하거나 갈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우 : 아, 그렇군요. (속으로 : 너 잘났다. 궤변론자, 사기꾼… 하느님은 폼인가?)

기도의 내용을 보면 새로운 것에 대한 청원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평상의 기도는 이미 하느님으로부터 선지급된 것을 우리가 후불로 답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미 받은 은총이 많았기에 지금 하는 기도는 후불성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계산법으로 기도의 양식을 바꿔야 할 것입니다. 지금 당장 내 것만 바라는 어린 투정 같은 기도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답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우리들은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당연히 아버지의 꼴을 닮아 살아가야 하는 필연적인 숙명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게다가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입니다. 그리스도가 짊어진 십자가를 나도 짊어져야 하는 그리스도인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앙이라는 신비로운 관계를 세상의 계산법으로 너무나도 잘못된 행동을 많이 합니다. 기도라는 명목으로 아버지를 시험하기도 하고 십자가를 저버리려고 합니다. 신자 분들의 고민을 듣다 보면 힘들다고 죽는시늉을 해도 사실 다 자기 욕심 때문에 숨이 막혀 있는 것뿐입니다. 기도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생활이 동반되어야 합니다(야고 2, 14-26). 내가 먼저 이해라는 연고를 바르고 화해라는 붕대를 감아야 합니다. 스스로 용서라는 주사를 맞고 나 자신의 회개라는 병실에서 자숙하며 삭혀야 합니다. 이러한 믿음의 기도 생활을 하다 보면 모든 것이 하느님의 방식대로 해결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반드시 기도를 통해서 하느님의 은총을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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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박광선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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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기도로 주님의 뜻을 이루세요

기도의 힘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하느님께서 함께하시어 불가능을 가능으로 이끄시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을 보면 뭔가 말할 수 없는 강한 힘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순간순간마다 기도하셨고 기도함으로써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는 언제나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도는 무엇일까요? 기도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하느님과 삶을 나누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삶을 나누기에 기도는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가끔 신자들에게 기도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기도 부탁 받은 것을 잊어버릴까 봐 부탁을 받는 즉시 기도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 제자들은 물론 우리 모두에게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에 전념할 것을 강조하십니다. 기도는 우리의 믿음을 숨 쉬게 하는 힘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항구한 기도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 왔습니다. 끊임없이 기도하라는 가르침은 누누이 들어 온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기도하지 못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기도하면서 기쁨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기도가 즐겁고 행복하다면 자연스레 바치게 됩니다. 기도할수록 피곤함이 사라진다면 누구나 매 순간 기도할 겁니다. 기도의 항구함이 부족한 것은 이렇듯 기도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면 기도는 진정 즐거운 것일까요? 기쁨을 줄까요? 그것은 경험의 문제입니다. 그러한 경험을 한 번만 해 보더라도 기도의 기쁨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시도해 보십시오. 마음을 비우고 조용히 기도해 보십시오. 아무 생각도, 아무 상상도 하지 말고 십자가만 바라보십시오. 시간을 내어 그렇게 한다면, 기도가 이끌어 주는 힘을 느끼게 됩니다. 기도는 이끄심입니다. 내 안에 계시는 하느님의 힘이 이끌어 주시는 것이지요. 그러려면 먼저 조용한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아무리 할 일이 많고 감정이 복잡하더라도 그것을 제쳐 둘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재판관은 사람을 우습게 보는 거만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한 그도 과부의 청원에는 마음이 움직입니다. 주님께서는 거만하지 않으십니다. 언제 어디서라도 청원을 들어주실 분이십니다. 기도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내 욕심을 내려놓고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인내심을 가지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낙심으로 넘어지더라도 즉시 일어나 심기일전하여 다시 새롭게 기도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기도생활에는 요령도, 지름길도 없습니다. 끊임없이 한결같이, 간절히 절실히 기도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매일, 평생,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심장의 박동처럼, 폐의 호흡처럼, 그렇게 끊임없이 리듬에 따라 기도해야 몸과 마음이 건강해집니다.

기도는 테크닉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할수록 기도도 잘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 사랑의 표현이 기도요, 하느님과의 생명의 소통이 기도입니다. 끊임없는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의 소통이 원활해야 하늘 문이 활짝 열려 이웃과의 소통도 원활할 수 있습니다.

▮ 인천교구 손동훈 요한 세례자 신부 : 2016년 10월 16일
  |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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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일정을 마치고서 성지 주변을 돌면서 묵주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우연히 바닥에 깔려 있는 고압블록을 보게 되었습니다. 10년 전, 제가 이곳 성지를 조성하기 시작했을 때 재정적으로 어려워서 어느 곳에서 보드블록 공사하고 버린 것들을 모아서 바닥에 깔았던 고압블록입니다. 그러면서 제가 처음 성지에 왔을 때가 떠올랐습니다. 아무것도 없었고 휑함만을 느낄 수 있었던 성지였습니다. 지금처럼 성당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잘 정돈되어 있지도 않았습니다. 너무 할 것이 많아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밖에서 일을 해도 끝이 보이지 않았던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성당도 두 개나 가지고 있고, 피정의 집이 있어서 사람들이 위로를 받고 힘을 얻을 수 있는 공간도 있습니다. 또한 이렇게 성지 주변을 산책을 하면서 기도와 묵상도 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막연하게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불가능해 보였던 일들이 가능한 일이 되어서 현실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어떤 생각을 품으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즉, ‘불가능하다, 할 수 없다, 포기해야 한다.’ 등의 부정적인 생각을 품고 있을 때에는 정말로 불가능하고 할 수 없어서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렵고 힘듦 가운데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했을 때에는 어느 순간에 가능한 일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태어나면서 잘 하는 것이 있을까요? 걷지도 못하는 것은 물론 기어 다니지도 못합니다. 자신의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말도 전혀 하지 못합니다. 그저 우는 것만 잘 할 뿐입니다. 그러나 지금 자신이 잘 하는 것을 떠올려 보십시오. 처음에는 못했던 것들을 많은 노력을 통해서 잘 하는 것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스스로의 한계를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그 한계를 뛰어 넘어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한계를 지어서 포기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것을 우리들에게 명하십니다. 그래서 재판관에게 끝까지 매달리는 한 과부의 이야기를 전해주시지요. 그 재판관이 불의한 사람이지만 귀찮도록 매달리는 과부에게 시달리다가 결국은 올바른 판결을 내려준다는 것입니다. 불의한 사람 역시 이러한데, 사랑 가득하신 하느님께서 노력과 함께 매달리는 우리의 기도를 어떻게 하시겠냐는 것입니다.

스스로의 한계를 만들어서 포기하면 그 순간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그러나 그 한계를 뛰어 넘는 노력과 함께 주님께 포기하지 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런 모습을 갖춘 사람이야말로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할 때 나를 뛰어넘는 또 다른 나를 만날 수 있습니다.

▮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 2016년 10월 16일
  |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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