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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루카 23, 42)
조회수 | 2,888
작성일 | 10.11.20
교회의 전례력으로 오늘은 연중 마지막 주일이며, 그리스도 왕 대축일입니다. ‘마지막’ 이라는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구원이 완성될 그 날을 기다리며, 그 날의 의미를 오늘 전례 안에서 미리 기념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바치게 되는 본기도와 감사송에서 그 뜻이 잘 드러납니다. “아버지께서 외아드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기쁨의 기름을 바르시어 영원한 사제와 온 누리의 임금으로 세우셨으며, 그리스도께서는 몸소 십자가 제대위에서 티 없는 평화의 제물로 당신을 봉헌하시어 인류 구원을”(감사송) 이루시고 “만물을 새롭게 하셨으니, 모든 창조물이 종살이에서 벗어나 주님을 섬기며 끝없이 주님을 찬미하게 하소서”(본기도)라고 기도합니다.

만물이 새롭게 되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바오로 사도의 말씀에서 그 의미를 찾을수 있습니다.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콜로 1, 20)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세상 만물이 하느님을 섬길 수 없는 종살이의 처지에서 벗어나그분과 화해하고 그분을 섬길 수 있는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났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리와 생명의 나라, 거룩함과 은총의 나라, 정의와 사랑과 평화의 나라인 하느님 나라에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하느님의 자녀로 받아들여진 대표적인 인물이 소개됩니다. 바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형을 받은 죄수입니다. 사람들이 십자가에 달려계신 예수님을 빈정거리고 모독하는 그 절망의 상황에서 그 죄수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주님의 자비를 간청합니다.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그를 기억해 주시고 구원의 기쁨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고백하고 만물의 임금으로 섬기는 삶의 의미는 내 뜻을 이루고자 지배하려는 욕심에서 벗어나 예수님께서 죄수를 용서하시고 받아들이신 것처럼 우리도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섬기고 먼저 용서하는 삶을 살겠다는 뜻입니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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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교구 김영욱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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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왕이 되어 오실 때 저를 꼭 기억하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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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예수님의 왕 대축일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이해될 수 없는 왕의 모습입니다. 흔히 생각할 수 있는 권력의 왕, 성서에서도 여러 사람들에게 의해서 왕이 된 영광스러운 다윗 모습이 아니라 군인들에게 얻어맞고 모욕을 당하는 사면초가의 죄인의 모습입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메시아로서의 그분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상처, 무기력함을 통해서 죄인인 우리를 하나로 묶으시고 미움과 폭력의 세상을 향해 용서와 평화를 심어주십니다. 세상의 그 어떤 왕도 가지지 못한 힘을 주님은 사람들 안에서 발휘하시며 세상을 새롭게 변화시키십니다. 예수님과 함께 못 박힌 한 죄수의 "왕이 되어 오실 때에 저를 꼭 기억해 주십시오"라는 신앙고백을 우리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요즈음 핸드폰이 없다면 불편하다고 야단일 것입니다. 세상이 편해저서 어디에서든 원하기만 하면 전화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편한 핸드폰도 불편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배터리를 충전해야 전화기를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전화를 걸다가 배터리가 나가서 애먹은 사람은 그 불편한 것을 잘 알 것입니다. 그래서 시간이 없거나 귀찮아도 배터리를 충전하는 데는 각별히 신경을 씁니다. 이런 고충을 돕고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까지도 배터리 고속충전 서비스까지 생겼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배터리 충전에는 신경을 쓰면서도 막상 신앙생활에서 주님을 충전하는 데는 소홀히 하기 쉽습니다. 주님을 충전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기도와 성서를 통해서 주님께로부터 힘을 얻는 것을 말합니다. 매일의 기도를 통해서 주님과의 깊고 진솔한 통교가 이루어지고 성서를 통해서 구원의 역사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특히 성서를 읽고 공부하다 보면, 참다운 맛을 솔솔 느끼게 되고 삶의 생기를 얻게 됩니다. 그래서 기도와 성서의 충전을 통해서 우리는 지치지 않고 늘 새롭게 생활의 리듬을 얻는 것입니다.

이번 주간이 성서주간이며 전례력으로 한 해를 보내는 때입니다. 한 해를 마감하며 신앙의 옷깃을 여며야 하겠습니다. 아울러 성서전체를 읽는 계획도 지금 새롭게 세우고 실천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식탁과 거실에서 또 잠자리 어디에서도 성서를 우선 읽어보면 어떨까요? 우리는 '성서를 읽어야 한다', 또는 '성서를 읽으면 좋지'라고 맞장구를 칠 줄은 알면서도 막상 성서를 읽는 것을 소홀히 할 수 있습니다. 성서주간에 성서를 읽고 묵상하며 한 해를 마감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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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교구 정인준 신부
  |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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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 “핍박과 조롱 각오하고 왕직 수행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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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전례력으로 한해를 마무리하는 연중 제34주일을 지내면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으신 그리스도의 왕권을 기리는 그리스도왕 대축일을 지내게 됩니다. 그리스도왕 대축일을 지내는 의미는 우리가 세례로 그리스도의 왕직에 참여하게 됨을 기념하면서 온 세상이 그리스도의 다스림에 따라 새롭게 되도록 기도하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오늘 우리는 복음을 보면 약간은 실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기대와는 너무나 다른 분위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왕하면 뭔가 모르지만 호화로운 궁전과 권력, 엄위와 힘의 모습을 생각합니다.

때문에 우리가 오늘 복음에서 기대하는 것은 막연하게나마 화려함과 웅장함이 깃들어 있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 복음을 통해 만나는 예수님의 모습은 그러한 모습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오히려 정반대의 모습만이 보여집니다.

단지 『유다인의 왕』이라는 조롱 섞인 죄목만이 예수님이 왕이심을 보여주고 있을 뿐, 예수님의 엄위로운 모습은 그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환호와 박수 화려한 왕관과 왕좌는 고사하고 조롱과 모욕, 가시관과 십자가만이 오늘의 주인공이요 왕이신 예수님을 묘사하는 도구들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바로 우리가 이해하는 왕의 개념이 수정되어야 한다는 사실과 왕이신 예수님은 세상의 왕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의미의 왕직을 수행한다는 사실입니다. 심판과 조롱 멸시마저도 각오하면서 걸어가신 길, 가난과 봉사의 왕직이 바로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입니다.

이 사실이 왜 중요한가 하면 바로 오늘의 우리들이 수행해야할 기본사명인 왕직(봉사직)이 바로 예수님의 이 모습 안에 그대로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우리 신앙인들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왕직을 수행한다는 것은 음지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이요, 가난과 핍박, 희생과 봉사뿐 아니라 조롱과 멸시마저도 각오한다는 것이고 그러한 태도만이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자세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 오늘 복음의 후반부에는 그 분의 나라에 참여하게 되는 모범적인 한 사람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한 짓을 보아서 우리는 이런 벌을 받아 마땅하지만 저분이야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이냐?』 『예수님, 예수님께서 왕이 되어 오실 때에 저를 꼭 기억하여 주십시오』라고 고백하는 한 죄수의 모습입니다. 윤리적인 죄를 넘어서는 신앙」, 「자신(의 죄)을 앎과 예수 그리스도를 앎」, 그리고 「멸시와 조롱 앞에서 예수님께 매달리는 신앙」.

이것이 바로 그분 나라의 시민이 될 수 있는 자세임을 보여주면서 구원에 있어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이며, 예수님을 신앙함에 있어 우선적으로 행해야 할 삶은 외적인 무엇이 아니라 내적이고 정신적인 자각임을 분명히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모욕과 멸시 천대가 난무하는 상황 속에서 죄인의 몸으로 구원의 길로 나아간 한 죄수의 모습! 이 한주 우리가 살아야 또 하나의 교훈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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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교구 홍금표 신부
  |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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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섬기는 그리스도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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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사랑은 이것저것 재지 않습니다. 그저 줄 뿐입니다. 아플 때까지 주십시오. 기도하면 믿게 될 것입니다. 믿으면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면 섬기게 될 것입니다. 나는 모든 인간에게서 신을 봅니다. 내가 나환자의 상처를 씻을 때 예수를 돌보는 느낌을 갖습니다. 어찌 아름다운 경험이 아니겠습니까. 어느 날 꿈에서 내가 천국의 문에 이르렀을 때 베드로는 내게 “지상으로 돌아가라. 여기에는 빈민굴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사랑하기를 원한다면 용서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작은 일들이란 정말 자잘한 것들이지요. 하지만 작은 일에 충실하다는 것은 위대한 일입니다. 우리는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실패했다고 마음 상해하지 마세요. 최선을 다했다면 말입니다. 우리는 가정을 고통을 나누고 서로 용서하는 곳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많이 가질수록 줄 수 있는 것은 적습니다. 가난은 놀라운 선물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자유를 줍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우리가 그들에게 주는 것 이상을 돌려줍니다. 그들은 강한 사람이며 음식이 없이 하루하루를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저주하고 불평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동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그들로부터 배울 것이 굉장히 많습니다. (1997년 9월 5일 데레사 수녀가 사망했을 때 각 언론에 보도된 데레사 수녀의 어록 모음 중에서)

오늘 복음에 보면 갖은 모욕과 조롱이 난무하는 가운데, 단지 강도 한 사람만이 예수가 죄 없다는 사실을 알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말합니다. 이 강도 한 사람만이 ‘사형을 당하여 죽어가는 왕’, 그리스도를 알아본 것입니다. 바로 이 대목이 오늘 죽어가는 예수를 생명의 왕으로 고백하는 이유로 드러납니다. 비록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오직 죄인인 한 강도만이 예수를 왕으로 고백하고, 오늘이 가기 전에 그리스도의 왕국에 든다면 예수는 진정 그 나라의 왕이십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진리와 사랑의 왕, 정의와 평화의 왕, 봉사와 희생의 왕, 섬김과 겸손의 왕, 용서와 자비의 왕, 금관대신 가시관을 쓴 왕이십니다. 자신을 낮출 대로 낮추어 백성을 오히려 섬기는 왕입니다. 예수께서 회개하는 저 강도를 낙원으로 초대하는 왕이시라면, 우리에게도 진정한 왕이십니다. 우리 또한 저 강도와 크게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데레사 성녀는 바로 이러한 그리스도왕의 모습을 우리에게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대림절을 준비하며 참된 그리스도 왕을 묵상했으면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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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교구 한상용 신부
  |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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