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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하느님을 향한 일편단심
조회수 | 937
작성일 | 13.02.23
결혼 전에는 꿈에도 생각 못했는데, 결혼생활 몇 달 만에 심각할 정도로 성격차이를 발견한 부부, 그로 인해 한 평생을 고통스런 갈등관계 속에 살았던 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30년간 결혼생활 내내 부인은 “이럴 수가 없어!”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남편은 인생에 동반자가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망친 ‘웬수’였습니다. 이런 감정은 남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나마 지금까지 갈라서지 않은 것은 주변 사람들 이목과 불쌍한 ‘자식새끼들’ 때문이었노라고 공공연히 말씀을 하셨습니다. 틈만 나면 부부싸움이 벌어졌기 때문에 집안에 사기나 유리로 만든 그릇이라고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두 분 사이의 골이 너무나 깊어 관계회복을 위한 희망은 조금도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주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한 가지 ‘대사건’이 생겼습니다. 도저히 변화될 것 같지 않던 두 분 관계에 뭔가 변화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변화는 부인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부인의 변화는 남편에게도 영향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따발총같이 쏘아대던 부인의 잔소리와 바가지가 조금씩 사라지자, 남편의 술주정도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나 신기한 일이어서 사람들이 부인에게 “도대체 변화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부인은 “나도 신기하다”고 말했습니다. “저 양반 저렇게 한 평생 술에 찌들려 살다가 죽겠거니 생각했었는데… 지금 와서 무슨 변화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생각했었는데, 정말 신기하다”고 말했습니다.

부인 쪽에서 먼저 시작된 심경의 변화는 마치 미풍이 꽃잎을 스치며 지나가듯 시작되었습니다. 어느 늦가을 저녁 시장을 봐오던 부인이 우연하게도 앞서 걸어가는 남편을 발견하게 되었답니다.

남편의 약간 꾸부정한 뒷모습이 그날따라 그리도 쓸쓸해 보이고 허전해 보이더랍니다. 그 순간 측은한 마음을 견딜 수가 없어 골목 안으로 들어가 한참을 울었답니다.

불현듯 “아무것도 아닌 일에 그토록 목숨을 걸고 자존심 싸움을 해왔구나” 하는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왔답니다. 그저 한 걸음만 물러났으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로 티격태격 다투느라 좋은 시절 다 보냈다는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답니다.

생각 하나를 바꾸니 모든 것이 다 술술 풀려만 갔습니다. 한쪽에서 먼저 마음을 비우고 한 발자국만 물러서니 모든 것이 다 해결된 것입니다. 결국 변화된 삶의 출발점은 한번 생각을 바꾸는 일이었습니다.

작지만 소중한 깨달음을 얻은 부인에게 남편은 더 이상 ‘웬수’가 아니라 한번이라도 더 따뜻이 감싸주어야 할 측은한 존재였습니다. 남편에 대한 증오심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그 자리에 연민의 마음이 조용히 스며든 것입니다.

오늘 루가 복음사가는 예수님 변모 사건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산에 올라 간절히 기도하시던 가운데 예수님 모습이 변하고 옷이 눈부시게 빛났습니다.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예수님은 나자렛에서 숨은 생활 그리고 공생활을 거치면서 끊임없는 변모를 추구하십니다. 육적 삶에서 영적 삶으로, 인간 예수에서 메시아인 그리스도로 점차 건너가십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예수님처럼, 위에 소개해드린 부부처럼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하는 사람입니다. 진정한 신앙인은 언제나 매년 새로이 피어나는 꽃처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참 사랑입니다. 죽는 순간까지 변화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야말로 참 그리스도인입니다.

변화, 회개다운 회개, 새 삶…. 이런 단어들은 결국 하느님과 절실한 만남 그 이후에야 가능한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하느님과 참 만남이 이루어진다면 억울함, 분함, 불평불만, 아쉬움 같은 인간적 감정은 눈 녹듯이 사라질 것입니다. 하느님과 친교가 이루어지기 시작하면서 피하고만 싶던 십자가마저 은총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이번 사순절, 어떻게 해서라도 하느님의 은혜로운 손길을 체험하는 기쁨의 시기가 되길 기원합니다. 인간이란 존재는 하느님과 만남으로 인해 의미 있는 존재입니다.

그분이 우리 삶을 스치는 그 순간 우리 인생은 점화된 촛불처럼 의미와 활기를 지니기 시작합니다. 그 순간이야말로 우리가 다시 한 번 영적 여정을 힘차게 걸어갈 수 있는 은총의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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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교구 김춘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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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세상에 공짜는 없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 살고 싶어. 봄이면 씨앗 뿌려 여름이면 꽃이 피네. 가을이면 풍년 되어 겨울이면 행복하리. 멋쟁이 높은 빌딩 으스대지만 유행 따라 사는 것도 제 멋이지만 반딧불 초가집도 님과 함께면 나는 좋아 나는 좋아 님과 함께면 님과 함께 같이 산다면. 저 푸른 초원위에…'

사랑하는 님과 함께라면 대도시의 고층빌딩이나 멋진 의상이 비록 없더라도 반딧불 초가집인들 좋고, 푸른 초원 위에 살고 싶다는 가사의 이 노래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남진의 ‘님과 함께’입니다.

늘 땀과 흙먼지로 얼룩진 스승의 모습, 딱히 주님이라고 따라 다니긴 했지만 뭐 보여준 것도 없었던 예수가 오늘 제자들 앞에서 눈부신 모습으로 그것도 역사의 위대한 인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베드로는 머리를 조아리며 간청합니다.

“선생님, 여기가 좋습니다. 우리 여기에 삽시다. 다시는 저 가난과 괴로움에 찌든 속세로 내려가지 맙시다. 허락하시면 제가 얼른 초막을 짓겠습니다.” ‘님과 함께’에 나온 주인공의 심정처럼 정말 내 사랑할 분으로 드러나셨기 때문에 여기에 살고 싶다고 하는 베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 산다는 것’, ‘주님과 함께 한 백년 함께 살고 싶은 곳’, 우리도 바라는 것. 남진도, 베드로도. '세상 번뇌 시름 잊고' 살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다더라’로 끝나면 좋겠지만, 오늘의 복음은 그렇게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습니다. 야속하게 스승 예수는 제자 베드로의 간청을 단호히 거절합니다. 뒤통수 한 대 치면서 “꿈 깨라”.

아직 예수는 수난과 죽음을 겪어야 합니다. 그 후에 바로 부활이라는 영광이 오고, 저 푸른 초원 위에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 수난과 죽음 너머에 부활을 보지 못했습니다. 단순히 지금이 너무 힘들기 때문에 피하려고 하는 아주 얕은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오늘의 메시지는 십자가 없는 부활, 공짜의 은총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묵상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에 은총을 무수히 쏟아부어 주십니다. 하지만 그 은총은 가만히 있어도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은총은 진행 중에 있는 일종의 내가 노력하는 가운데 내리고 열매 맺는 것입니다. 대충대충 신앙생활해서는 얻어지는 것이 없습니다.

고통 없는 기쁨, 십자가 없는 부활, 노력 없는 성공은 있을 수 없습니다. 세상을 거저 살겠다는 심보지요. 예수님의 의도도 모른 채 베드로는 잠시 그런 마음을 가졌을 것입니다. 사순절은 부활이라는 대축제를 위해서 준비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여러 가지 시련이나 십자가 등도 바로 우리의 영광이나 축복을 위해서 준비된 것입니다. 만약 이 사실을 잊고 산다면 세상을 공짜로 살겠다는 아주 고약한 심보입니다.

내 희생과 노력을 바쳐야만 은총도 그만큼 많이 주어지겠지요. 하나를 봉헌하면 열이나 백으로 되돌아오고 가진 것을 바치면 더 많은 것을 얻게 됩니다. 인간의 계산으로는 도저히 타산이 안 맞는 얘기지만 하느님의 계산으로는 맞는 말입니다. 따라서 사순 시기의 은혜는 우리가 어떻게 자신을 위해서 봉헌하고 희생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거기에 부활로 이어지는 영광이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공짜로 살지 맙시다.

▥ 안동교구 정철환 타대오 신부 : 2016년 2월 21일
  |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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