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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
조회수 | 637
작성일 | 16.02.19
[청주]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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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영광스러운 변모의 모습을 보여 주시는 장면입니다.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이러한 모습을 미리 보여주신 이유는 당신이 잡혀 수난하시고 죽으실 때 제자들이 자칫 두려움과 실망에 빠져 뿔뿔히 흩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질 것이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신성을 미리 맛보게 하심으로써 어려운 고비를 잘 이겨 내도록 하기 위한 사랑의 배려였습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예수님과 함께 서있는 두 사람이 모세와 엘리야라는 것을 즉시 알아보았다는 점입니다. 모세와 엘리야의 얼굴을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제자들이 말이죠.

오늘 복음을 통해서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가 천국에 갔을 때의 모습이 어떠하리라는 것과, 죽으면 우리보다 먼저 죽은 우리의 먼 조상들과 예언자들까지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을 것이란 점입니다. 영의 세계, 영혼이 영혼을 알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우리의 영혼을 만드신 창조주를 알아보는 능력 또한 당연히 갖고 있을 것입니다.

비록 우리의 영혼이 세상에서 육체라는 한계 속에 갇혀 살고 있기에 100% 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그리고 지향을 갖고 있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우리 영혼의 능력으로 우리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알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살이가 아무리 바쁘고 힘들더라도 하루 중에 잠깐 동안이라도 고요 속에서 하느님을 우리의 영혼이 느낄 수 있다면 큰 위로와 기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의 죽음을 지켜봅니다만 마지막 모습은 모두가 해맑은 어린이와 같이 깨끗한 모습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선종자의 맑고 평화로운 얼굴 모습을 통해서 그 영혼이 천국에 가셨을 것이란 예표를 보여주고 계십니다. 이러한 모습은 가족들에게 큰 위안이 됩니다.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가 성모꽃마을에서도 수없이 반복되어 일어나고 있음을 확인합니다. 그러니 용기를 내어 우리의 영혼이, 우리의 시선이 하느님께로 향해 있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영혼이 즉시 하느님을 알아 볼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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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교구 박창환 가밀로 신부 :  2016년 2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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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말씀을 기초삼아 초막을 지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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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예수님, 사랑합니다. 한 주간 행복하셨습니까?
지난 주일에 유혹도 은총이라고 말씀 드렸는데 유혹을 많이 받으셨죠? 사순절을 맞아 희생 봉사, 극기 절제의 삶을 살려고 하니까 왜 그렇게 없던 일이 생기는지…그래도 나름대로 절제된 삶을 통해서 기쁨을 간직하셨으리라 믿습니다. 이번 주간은 베드로가 짓고자 하였던 초막을 지을 수 있는 은혜가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산에 오르셨습니다. 성경에서 산은 하느님께서 현존 하시는 곳, 하느님과 가장 가까이 있는 곳으로 그분과의 일치를 나누는 곳을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시나이 산에 내려오셔서 말씀하셨고 하느님의 영광이 시나이 산에 머물러 모세가 사십 주야를 그 산에서 지냈습니다(출애24,15-18.) 그리고 십계판을 받은 곳(신명5,22)도 산입니다. 엘리야도 호렙산에서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시어 밤을 새워 기도하시고 12제자를 부르신 장소도 산입니다 (루카6,12).

그렇다면 우리가 하느님을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산에 올라야 합니다. 등산을 하라는 말씀입니까? 하느님과의 깊은 만남을 이룰 수 있는 곳, 고독한 장소를 찾아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의 시끄러운 소음을 떠나 때때로 침묵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하는 기도시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성체조배를 한다든지, 피정을 한다든지 고요한 시간을 만들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갖으라는 말씀입니다. 하루의 시작을 주님의 이름으로 하십니까? 끝맺음에 기도하십니까?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묵주기도 하지 말고 별도의 시간을 만들어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자투리 시간에 기도하려 하지 말고 온전히 바치는 시간을 마련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였습니다. 한마디로 얼굴에서 광채가 났습니다. “사람은 나이 40이 되면 얼굴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링컨).고 합니다. 사실 탐욕으로 가득 찬 사람의 얼굴은 독살스런 모습으로 변합니다. 분노로 가득 찬 사람은 살기가 도는 얼굴로, 절망감이 가득 찬 사람은 수심이 가득한 모습으로, 어떤 사람은 슬픔으로 가득 찬 모습으로 변하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마음이 얼굴에 나타나는 만큼 마음을 잘 가꾸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얼굴이 바뀐 것은 기도하시는 가운데 바뀌었습니다. 나의 얼굴도 기도하는 가운데 변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앞에 서 있는 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가끔은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나의 모습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 좀 더 거룩하고 빛나는 모습으로, 어제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변해야 합니다.

하안주 신부님께서는 시를 쓰셨는데 ‘임쓰신 가시관’ 이라고 있습니다. “이 뒷날 임이 보시고 날 닮았다 하소서, 이 뒷날 나를 보시고 임 닮았다 하소서. 이 세상 다할 때까지 당신만 따르리라.” 고 하셨습니다(노래 한번 할까요?) 우리도 임이 보시고 날 닮았다. 임 닮았다는 소리를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옷이 하얗게 빛났다는 것은 인간의 능력을 뛰어 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을 때 흰옷을 입습니다. 그것은 거룩함의 상징이고 예수님으로 온 몸을 무장한다는 의미(로마13,14)를 담고 있습니다. 요한 묵시록을 보면 하느님의 옥좌에 “희고 긴 겉옷을 입은 사람들은 누구이며 어디서 왔느냐?” 는 질문과 함께 그 대답이 나옵니다. “저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겪어낸 사람들이다. 저들은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들은 하느님의 어좌 앞에 있고 그분의 성전에서 밤낮으로 그분을 섬기고 있다. 어좌에 앉아 계신 분께서 그들을 덮는 천막이 되어 주실 것이다. …. 하느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주실 것이다”(묵시7,13-17).

결국 흰옷은 아름답게 빛나는 모습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세례를 통해 이미 흰옷을 입은 사람이니 만큼 지금 어려움이 있더라도 “모든 눈물을 닦아주신다.”는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며, 가정에서 사회에서 나의 삶의 자리에서 빛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아름답고 빛나는 모습을 보여 주신 것은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앞두고 영광스러운 모습을 미리 보여 줌으로써 어떤 어려움에도 흔들림 없는 믿음을 지키라는 위로였습니다. 우리도 세상의 위로와 격려가 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5,16) 고 명하셨습니다.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고 나서 베드로는 “스승님, 저희가 여기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루카9,33). 하고 말하였습니다. 좋은 것을 보았으니 그 자리에 머물고 싶은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시편에 보면 (“오직하나 주께 빌어 얻고자 하는 것은 한평생 야훼의 집에 산다는 그것, 당신의 성전을 우러러보며 주님의 사랑을 누리는 그것이오니”) “주님께 청하는 것이 하나 있어 나 그것을 얻고자 하니 내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살며 주님의 아름다움을 우러러보고 그분 궁전을 눈여겨보는 것이라네”(시편27,4).하며 자신의 갈망을 표현하였습니다. 그분 안에 머물고 싶은 것은 자연스런 바람입니다.

초막을 지어서라도 함께 머물고 싶어 하였는데 초막은 그야말로 하느님의 거처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거처하시는 초막을 짓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하는 소리가 들려 왔는데 바로 ‘그의 말을 듣는 것’입니다. 누구의 말입니까? “이러한 소리가 울린 뒤에는 예수님만 보였다”(루카9,35). 모세도 엘리야도 사라지고 “예수님만 보였다” 결국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거처, 초막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사는 곳에 지어지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제발, 말 좀 들어라!”했을 때 말 듣는 것이 귀로 듣는 것만을 얘기하지 않습니다. 들었다는 것은 부모의 뜻대로 하였을 때 비로소 ‘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 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들은 대로 행동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손에 펴들고 먼저 주님의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기초 삼아 주님의 초막을 지으시기 바랍니다. 베드로가 머물고 싶었던 곳, 그곳을 생각하면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어려움들을 이겨낼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미루지 않는 사랑을 희망하며 사랑에 사랑을 더하여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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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반영억 신부 : 2019년 3월 17일
  | 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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