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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필요한 한 가지”
조회수 | 429
작성일 | 16.07.15
[안동] “필요한 한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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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농민 주일입니다. 요즘 같이 바쁜 농사철에 농부들은 새벽별 보고 나갔다가 저녁 별 보고 들어오는 것이 예삿일입니다. 그 와중에서도 신자들은 주일미사에 참석하느라 더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그래도 우리가 믿음이라는 농사를 함께 짓는 것은 ‘필요한 것은 한가지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먹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먹는다.’는 말처럼 우리가 단순히 먹기 위해 살기보다는 살기 위해 먹고 또 더 중요한 하느님의 말씀을 먹고 산다면 그 말씀은 우리에게 힘을 줄 것이고 또 생명을 줄 것입니다.

현대인들이 옛날 사람들보다 수명이 더 길어진 이유를 두고 누가 ‘너무 바빠서 죽을 시간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이 생각나는데, 바쁘고 분주한 날들이지만 그래도 우리의 힘만으로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라 농부이신 하느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생각을 잊지 않는다면 더욱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마르타와 마리아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데, 마르타는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로 바빴지만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서 그분의 말씀을 듣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이를 본 마르타는 예수님께 마리아가 자기를 좀 도와주기를 청하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오니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정작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루카 10,41)

우리가 오늘 복음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난 주 복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주 복음은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말씀인데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어려움에 처한 이들에 대한 주저 없는 사랑을 말씀하셨고 그리고 오늘 복음에 이 사랑은 하느님의 말씀에 기초를 두어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말씀하신 안식은 하느님 말씀 안에서 누리는 안식이지 짐을 지느라 수고했다고 주는 휴식은 아닌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일 속에 파묻혀 수고하는 인간들을 위로하고 다독거려 주시면서 꼭 필요한 한 가지를 제시하셨는데 그것은 바로 하느님 말씀 안에서 숨 쉬고 움직이며 사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바오로 사도는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1코린 10,31)라고 말했습니다. 즉 우리가 하는 일은 하느님 안에서 하고 또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일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영광을 받을 것이고 그것은 곧 우리의 영광이 될 것입니다.

오늘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서 아무 일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했는데,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란 당신이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잘 귀담아 듣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사랑의 가치는 자신이 얼마나 만족하느냐가 아니라 상대방이 얼마나 행복해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마리아는 자신의 만족보다는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일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실천했던 것입니다.

마르타는 예수님을 단지 집안의 손님으로 모셨다면 마리아는 자기 영혼의 주인으로 모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내 영혼의 주인으로 모신다면 우리의 영혼은 풍요로워질 것이고 또 많은 걱정거리에서 벗어나 안식을 얻게 될 것입니다.

어떤 신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주일은 꼭 지키겠다고 다짐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주일미사는 꼭 참석했는데 지나고 보니 바쁜 것은 여전하고 수입은 비슷했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참 편안했습니다.” 그 편한 마음을 주님께서 계속 지켜 주실 것입니다. 참 바쁜 날들이지만 이 말씀만은 마음에 새겨 살면 좋겠습니다. “필요한 것은 한가지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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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교구 권상목 세례자 요한 신부 : 2016년 7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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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찾아라!

예루살렘에서 남동쪽으로 3km 떨어진 곳에 베다니아라는 작은 시골 마을이 있습니다. 이곳은 나병환자 시몬의 고향이며(마르 14,3),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고 나온 뒤 묵었던 곳이며(마태 21,17), 부활한 후 마지막으로 제자들과 헤어진 곳(루가 24, 50-51)이기도 합니다. 이 동네에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 그리고 마을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던 라자로가 살고 있었습니다.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 그리고 라자로와 관련된 성경의 여러 내용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르타는 사람들과 사귀는 법도 잘 모르고 애교도 별로 없는 말수 적은 노처녀였습니다.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는 오빠 라자로를 간호하면서 집안 살림을 책임져야 할 가장이기도 했습니다. 마르타가 노처녀가 된 것은 오빠 때문입니다. 청혼이 들어 왔지만 마리아에게 오빠를 떠맡기고 편하게 시집을 갈 수가 없었습니다.

마르타는 ‘이렇게 살다가 늙은 하녀의 모습으로 전락해 버리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에 매일 가슴앓이를 하고 살아갑니다. 동네사람들은 모두 칭찬들뿐입니다. “마르타를 좀 봐 저렇게 착하고 믿음직스러울 수가 없어. 저앤 우리 동네의 자랑일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돼” 그러나 마르타는 그 말이 듣기 싫었습니다. 자랑거리가 되는 것도 싫고 진주보다 더 가치 있는 여자가 되는 것에도 지쳤습니다. 밤에 혼자 있을 때 마르타는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기도를 합니다. 자신의 등 뒤에 바구니를 지는 일뿐만 아니라 아기도 업고 싶고 남을 안아주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도 안기도 싶었습니다. 그것이 자신의 유일한 소망이었습니다.

막내 마리아는 상냥하고 자신의 속을 쉽게 드러내는 시쳇말로 철이 좀 없는 순박한 시골 처녀였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고 누구에게나 말을 건네고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면서 명랑하게 살기 때문에 동네에서 가장 인기가 많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마르타 마리아 자매와 오빠처럼 지냅니다. 예수님도 고향 집처럼 편안하게 생각하면서 지치고 힘들 때 일부러 시간을 내어 들러서 힘을 얻고 갑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두 자매는 일하러 갔다가 막 들어오는 길인데 예수님께서 찾아 오셨습니다. 마리아는 오랜만에 보는 예수님이 반가워 손을 잡고 팔짝팔짝 뛰면서 어린애 마냥 좋아합니다. 그런데 마르타가 보기에 예수님의 얼굴이 반쪽이었습니다. 도대체 식사는 제대로 하는지 말라도 너무 말라 보였습니다. 그래서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 주고 싶어 바로 부엌으로 가서 요리를 하기 시작합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 새로운 소식을 듣고 싶어서 자리에 앉아 예수님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습니다. 씨 뿌리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 같기도 하고 집짓는 사람들 비유 갔기도 한 말씀이 뜨문뜨문 들렸습니다. 요리를 하면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마르타는 혼잣말로 중얼거립니다. “하느님의 말씀만으로 살아가라고? 말은 맞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끼니 걱정을 해야 하지 않는가? 그리고 누군가에게 관심이 있으면 먹고 사는 문제를 걱정하기 마련 아닌가? 아무도 먹고 사는데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누가 밥을 하고 빨래를 하고 살림을 한다는 말인가? 모두 굶어 죽자는 말인가?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하는데 좋은 일도 먹고 나서 할 수 있는 것이지 배고픈데 무슨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밥은 다 되어 가자 마르타가 마리아에게 여러 번 눈치를 보내면서 식탁을 차리고 수저도 놓으라고 해도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만 앉아 있습니다. 마르타가 혼자 상 차리고 시중을 드는데도 마리아는 여전히 일어 날 줄 모르고 예수님 이야기만 듣고 있습니다. 마르타도 한계가 있었는지 이젠 화가 좀 났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따지듯이 묻습니다. “예수님, 저 혼자만 요리하고 시중을 드는데 마리아에게는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십니까? 저 좀 도와주라고 말씀 좀 해 주세요” 그러자 예수님은 마르타를 올려 보시면서 다정하게 말씀하십니다. “마르타 당신은 많은 일 때문에 분주하지만 필요한 것은 한가지뿐입니다. 사실 마리아는 그 좋은 몫을 택했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하신 말씀은 마르타가 잘못해서 야단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마르타처럼 먹고 마시고 입는 일도 중요하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는 일이 그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너희는 먼저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 6, 31.33)

먹을거리와 마실거리, 입을 거리를 걱정하다보면 세상에 마음을 빼앗겨 하느님과 멀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세상 일에 마음을 두면 견물생심이라고 욕심이 생기게 마련이고 그 욕심이 지나치면 사람을 무시하고 깔보게 됩니다. 또한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뭇생명들을 이용하면서 오염시키고 파괴시켜 사라지게 만들게 마련입니다.

하느님의 의로움을 찾는 일이란 어떤 것입니까? 바로 하느님께서 만드신 아름다운 이 터를 아끼고 사랑하며 더 아름다운 세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천민자본주의를 뛰어 넘기 위해 편리위주의 삶을 벗어나 스스로 불편을 선택하고 소박하게 사는 것입니다. 눈에 보기에 보잘 것 없는 작은 생명일지라도 아끼고 사랑하여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것이 비록 적어도 이웃과 서로 나누면서 섬기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느님 보시기 좋은 생명 공동체 세상을 이 터에 만드는 것입니다.

▮ 안동교구 김시영 베드로 신부
  |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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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들음의 영성

우리는 지난 주일에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들으며 사랑의 실천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닮아 사랑을 실천하며 한 주간을 살고 다시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오늘은 손님으로 오신 예수님을 맞이하는 자매들의 다른 모습을 통해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을 맞이하고 있으며,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지 돌아봐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매인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을 찾아가십니다. 마르타는 예수님을 대접하기 위해 분주했고, 반면에 동생 마리아는 한마디 말도 없고 움직임도 없이 예수님의 발치에 머무르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합니다. 그래서 일손이 부족했던 마르타는 예수님께 마리아가 자기의 일을 돕도록 해 달라고 청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두 자매의 갈등을 중재하거나 화해시키지 않으시고, 오히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이 되기를 요청하십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도 세상의 잡다한 일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두 여인, 마르타와 마리아는 활동가와 관상가의 모범으로 표현됩니다. 각자 자신의 몫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는 데 최선을 다했으며, 이는 믿는 이들이 추구해야 할 두 가지 몫이기도 합니다. 그 어느 것에도 소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선 생각해야 될 것은, 기도하고 말씀을 새기는 영성생활이란 바로 ‘들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새기는 것이 우선이고, 그것이 이루어지면 활동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들음’이 없는 활동은 빈껍데기가 될 수 있으며, 모래위에 지은 집과 같고, 항구한 신앙에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말씀을 들어야 우리는 주님의 사람이 됩니다. 따라서 주님의 발치에 앉아 있는 마리아의 모습, 말씀을 경청하는 마리아의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실제로 우리 공동체의 모습들을 보면 들음의 영성을 잘 실천하고 있기도 하고, 반대로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성서쓰기와 읽기, 성체조배를 통해 말씀을 묵상하고, 그 안에서 주님과의 만남을 체험하는 많은 교우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의 모습에서 들음의 신비를 봅니다. 세상의 온갖 잡다한 일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기쁘고 떳떳하게 살 수 있는 이유도 바로 말씀을 ‘들음’에서부터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분명히 확인합니다.

반대의 모습도 우리들의 공동체에서는 흔히 봅니다. 성당이라는 공간이 미사나 예식이 있을 때에만 들어가는 곳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본당에 볼 일이 있거나 행사준비를 하러 와도 성당에 들르지 않습니다. 잠시 앉아 기도하지 않고, 해내야 되는 일들로 바로 가는 분들을 보면서 마르타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혹 우리는 ‘좋은 몫’을 놓치고 ‘많은 일을 염려하며 걱정’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 더 돌아보기 바랍니다.

말씀을 듣는 것은 마치 집안의 전등을 켜기 위해 전기스위치를 켜는 것과 같습니다. 건물에는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전기가 항상 연결되어 있지만 내가 스위치를 켜지 않으면 전등은 꺼져 있는 이치와 같습니다. 말씀은 항상 우리에게 주어지지만, 내가 듣지 않으면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맙니다. 그러기에 내가 손을 움직여 스위치를 켜는 것처럼 말씀도 들어야 나의 것이 되고, 삶의 중심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마태 4,4) 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며 사는 것은 바로 들음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명심합시다.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 마음속에는 기쁨과 평화가 강물처럼 흘러넘칠 것입니다.

▮ 안동교구 차호철 세례자 요한 신부
  |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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