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 신부의 가톨릭

 l Home l Bestsite l Search l Freeboard l E-mail l

 
 

주일강론

평일강론

축일강론

대축일/명절강론

혼인강론

장례강론

예 화

사설/칼럼

♣ 현재위치 : 홈 > 강론자료실 > 주일강론 (다해)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 쪽지보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홈페이지 )
451 26.8%
[청주] 말씀은 신앙생활의 지도
조회수 | 478
작성일 | 16.07.15
[청주] 말씀은 신앙생활의 지도

-----------------------------------------------------

보물섬으로 가는 최신식 시설의 큰 배에 잘 훈련된 선원들과 유능한 선장, 그리고 연료와 식량을 가득 싣고 출발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배는 얼마가지 못하고 표류하고 말았습니다. 지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목적지를 잡고 모든 준비를 갖추었지만 지도가 없었기에 방향을 잡지 못했던 것 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신앙의 씨앗을 심었습니다. 그런데 쉬는 교우들이 왜 이리 많습니까? 세례 직후에 왜 많은 이들이 교회의 품을 떠날까요? 세례 받은 지 10년, 15년이 넘었는데도 왜 큰 기쁨 없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주일미사에 참례하고 영성체를 꼬박 모시는데도 부담과 의무감이 앞서고, 신앙의 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신앙생활의 지도인 말씀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목적지는 있으되 말씀이 빠져있으니 방향을
잡지 못해 표류하고 있는 배와 같고, 씨앗은 심었지만 꽃과 열매가 빠진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1독서에 지나가는 나그네를 천사로 대접하라는 하느님의 말씀에 충실했던 아브라함은 나이 백 살에 금쪽같은 아들 이사악을 낳을 것이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말씀을 중심에 놓고 살았던 아브라함이 받은 커다란 축복입니다.

제2독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수인이 된 바오로 사도가 자신의 사도직은 바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일을 완수하는 것임을 밝히고 있으며, 자신이 받는 고통이 참된 복음을 선포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주기에 기쁘다고 증언합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시중드는 일로 분주한 마르타에게 말씀을 듣고 있는 마리아를 칭찬하시며 “많은 일을 염려하거나 걱정하는 것보다 꼭 필요한 한 가지를 선택하라.”라며 말씀을 듣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형제 여러분, 말씀을 읽고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쓰고 말씀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이 내 인생에 방향을 잡아주고, 위험과 풍랑을 극복하게 하여 우리를 최종 목적지에 안전하게 인도하여 줄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 인생의 의미를 깨우쳐주고 신앙의 진리를 밝혀줄 것이며 우리를 축복의 길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오늘부터 단 10분이라도 가족들과 함께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말씀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

청주교구 조병환 세례자 요한 신부 : 2016년 7월 17일
451 26.8%
[청주] 억울해요, 예수님!!!

“기준! 체조 대형으로 벌려!!!” 신나는 체육시간입니다. 그러나 따갑게 내리쬐는 뙤약볕 때문인지 아이들의 움직임에는 신명과 즐거움보다는 귀찮음과 짜증이 짙게 배어있는 듯 합니다. 그래서 행동도 민첩하지 못하고 늘어선 줄도 비뚤비뚤합니다. 한 차례 선생님의 기합을 받고 나서야 겨우 기준에 맞춰 곧게 줄을 섭니다.

모퉁이의 머릿돌이 기준이 되어 벽면이 이어지고 하나의 건물이 서게 되듯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도 바른 기준이 있어야 질서가 바로 서고, 삶도 세상도 바로 설 수 있음을 아이들의 체육시간을 통해 새삼 깨닫게 됩니다. 아울러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절대 기준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자문하게 됩니다.

마르타와 마리아는 예수님을 집에 모시는 영광을 누립니다. 예수님께 보다 좋은 음식을 대접해 드리고자 음식 장만에 한창인 마르타, 예수님의 말벗이 되어 경청 중인 마리아. 행동은 달라도 모두가 예수님께 대한 사랑과 배려에서 나온 처신이기에 대견하고 기특해 보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정작 마리아가 ‘더 좋은 몫’을 택했다고 말씀하시며 동생의 손을 들어 주십니다. “억울해요, 예수님!!! 이렇게 땀 흘려 수고했는데......” 마르타의 불만 섞인 푸념입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말처럼 나쁜 것과 좋은 것이 있을 때 이왕이면 좋은 것에 마음이 쏠리는 법이며, 혹 좋은 것들만 있다면 그 중에서도 이왕이면 더 좋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렇다면 나쁜 것과 좋은 것, 좋은 것과 더 좋은 것의 구별은 어디서 생겨난 것일까요? 기준의 차이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마르타와 마리아의 몫은 둘 다 좋은 것이었지만, 그에 앞서 마르타는 잊고 있었던 반면, 마리아는 기억하고 있었던 사실이 있습니다. 자신이 하는 행동의 기준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점입니다. 마르타의 행동은 자신의 기준에서 나온 것이요, 마리아의 행동은 예수님의 기준에서 나온 것이기에 결국 예수님께서는 ‘마리아가 더 좋은 몫을 택했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유아 교육에 있어서 눈높이 교육이 강조되는데 우리 신앙인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눈높이로, 예수님을 기준으로 이웃과 세상을 바라보는 교육이 우리 자신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선택의 연속인 삶 안에 산재해 있는 좋은 것과 나쁜 것 사이에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고, 나아가 좋은 것들 사이에서도 ‘더 좋은 몫’을 취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언제 어디서나 더 좋은 몫을 택함으로써 예수님께서 손들어 주시는 승리자일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 청주교구 최종훈 신부
  | 07.15
451 26.8%
[청주] 밥보다 말씀이 먼저다

찬미예수님, 사랑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당신의 양식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먼저 “사람이 빵으로만 살지 않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신명8,3)고 하셨고, 실제로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습니다(요한1,14). 오늘도 성체성사를 통해 아주 가깝게 오셔서 영적인 양식을 주십니다. 다른 모든 것에 앞서 주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는 가운데 복을 받고 영성체를 통해서 주님과의 만남의 깊이를 더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간은 영육의 합일체로 인간입니다. 그런데 구지 영과 육으로 구분해 본다면 ‘영을 지닌 육이 아니라 육을 가진 영’입니다. 영이 먼저입니다. 그렇다면 밥도 먹고 말씀도 먹어야 산다고 할 때, 말씀이 먼저 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살기 위해서 밥을 먹는 것이지, 밥을 먹기 위해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아닙니다.

마태복음 6장25절이하에서 주님께서는 세상걱정과 하느님의 나라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무엇을 먹고 마실까? 무엇을 차려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고 하시면서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6,33)하셨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히브리서 4장12절에서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무엇보다도 살아있는 말씀이 우선입니다. 근본을 택하면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다 채워주십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마르타 집을 방문하였습니다. 마르타는 열심히 음식준비를 하였습니다.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마르타가 참다못해 예수님께 부탁합니다. “주님, 제 동생이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주십시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활동으로 예수님을 섬기는 마르타와 말씀을 경청하는 마리아의 역할이 다 필요하지만 무엇이 근본적인 선택이고 우선이냐를 생각하면 마리아의 몫이 먼저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을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마르타도 자기가 열심히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으면 그것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사랑을 담아 준비하였으면 그것으로 행복해야지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고 있는 마리아와 비교하여 시기나 질투, 얄미운 마음을 갖는 것은 아직 성숙하지 못한 처신입니다. 예수님께서 마르타의이름을 두 번이나 반복해서 부르신 것을 보면 그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느 누구를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마르타는 깜박 잊은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받으려 하시는 분이 아니라 주고 싶어 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원,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서 파견되신 분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섬기는 최상의 방법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것입니다. 마르타는 자신의 일에만 너무 집착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간과해 버렸습니다. 그녀에게는 말씀을 듣는 것보다 활동이 더 중요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적생활에도 선택과 집중이 요구됩니다. 주님을 따르려면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성모님을 경청의 달인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마리아도 경청에 몰두하였습니다. 우리도 경청의 달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마르타의 유형으로 삽니다. 가끔 신부가 가정 방문을 가면 텔레비전을 켜 놓고는 ‘잠깐 보고 계십시오’ 하고 말한 다음 차나 과일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신자 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과일이나 음식보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더 중요하지만 그래도 체면 때문에 안절부절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모습이 꼭 마르타의 모습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활동에만 매달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온 동네 다 쫓아다니며 봉사한다고 합니다. 음식도 만들고, 청소도 하고, 단체 활동을 많이 하는 분이 계십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모든 것이 기도 안에서 나온 활동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는 기도 없이 자기만족으로 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반대로 마리아 유형을 흉내 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서서 하는 활동은 아예 외면하고 성체조배를 한다. 무슨 기도회를 한다. 신심활동을 한다면서 자신의 기도 생활에만 열심입니다. 사실 기도를 제대로 하면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활동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말합니다.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야고1,22).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이듯 실천이 없는 믿음도 죽은 것입니다”(야고2,26). 그렇다면 기도와 실천이 어우러진 삶이 필요합니다. 기도하고 실천하는 신앙생활이 조화를 이뤄야 풍요로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과 사회생활이 따로따로 분리되어 이중생활을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활동과 기도의 조화는 꼭 필요합니다. 사실 활동은 기도 안에서 나와야 바른 활동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뜻에 맞는 활동이 되려면 기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활동을 아무리 많이 한다 하더라도 기도가 없었다면 그 일은 주님의 일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빠서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바쁠수록 더 기도해야 하고 기도하면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기도 없이 이루어지는 활동은 힘을 잃게 됩니다. “활동은 창조사업의 연장이요 구원사업의 하나이지만 거기에는 항상 기도가 병행되어야 합니다”(성 줄리 빌리아르).

기도를 뒷전으로 미루고 활동을 앞세우는 것은 아무래도 내세우고 싶은 교만함이 쌓여있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음식을 잡수실 겨를이 없이 바쁘셨지만 한적한 곳을 찾으셨고 이른 새벽에, 한 밤중에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결코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사업이 바쁘다고 주일을 소홀히 하는 분이 계십니다. 한 주간 열심히 일하기 위해서 ‘주일 하루는 쉬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다. 그러나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주일을 거룩히 보내기 위해서 한 주간 열심히 일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날인 주일에 주님과 함께 쉬기 위해 한 주간을 정성껏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은 한 주간이 즐겁습니다. 사업뿐 아니라 모든 것이 잘되어 복으로 돌아옵니다. 주님을 만나는 기쁨으로 일하십시오. 그리하면 분명히 주님의 손길을 느끼게 됩니다. 인간으로서는 감히 생각할 수 없는 기쁨과 평화의 영적인 축복과 경제적인 물질의 축복도 넘치도록 채워주십니다. 그러므로 언제 어느 때이든 근본을 바로 세우십시오. 길이 열립니다. 사실 마리아가 선택한 몫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마태16,26) 아우구스띠노 성인은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알되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불행하며, 이 모든 것을 모르나 하느님을 아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하였습니다. 세상 것에 앞서 하느님을 알고 차지하면 모든 것을 얻은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만물을 주관하시고 모든 것을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알면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근본에 충실해야 하겠습니다.

한 주간 밥보다 말씀을 우선 선택하여 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행하는 가운데 복을 짓고 주님과의 만남을 새롭게 하시기 바랍니다. 미루지 않는 사랑을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신부 : 2016년 7월 17일
  | 07.17
파란색 글자 빨간색 글자 녹색 글자 밑줄 글자 진한 글자 빨간색 테이블 파란색 테이블 녹색 테이블
이름 :   
암호 :
· d41d8cd98f * 왼쪽의 글자중 빨간글자만 순서대로 입력하세요.
 목록보기 스크랩하기  프린터하기
783   [수도회]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  [8] 3443
782   [서울] 진정한 왕직은 봉사직  [5] 2949
781   [인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가장 위대한 로맨스입니다.  [3] 3368
780   [수원] "천국 왕의 고난과 죽음"  [6] 2954
779   [춘천] 겸손한 마음을 가진 자만이...  [3] 3038
778   [대구] 왕이신 예수님과 부활  [2] 2873
777   [마산] 왕이신 그리스도  [4] 3054
776   [안동] 봉사의 삶  [4] 2846
775   [부산]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왕으로 모신다는 것의 의미  [6] 3440
774   [광주] 예수, 왕중의 왕  3098
773   [전주] 예수님은 왕이신가?  99
772   [대전] 우리의 왕은 이렇다.  [2] 3087
771   [청주] 감사의 생활  [1] 82
770   [원주]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루카 23, 42)  [3] 2860
769   [의정부] 감동을 주시는 왕  [1] 77
768   [군종] 왕 - 섬기는 사람  [1] 81
767   (백) 연중 제34주일 (그리스도왕 대축일) 독서와 복음  [4] 2660
766   [수원] 정해진 시간과 일들 안에서  [4] 2526
765   [대구] “희망의 징조"  [3] 2026
764   [의정부] “예수님 한 분만 이상하다”  [3] 673
763   [인천] “예수님은 ‘보스(boss)’인가 ‘리더(leader)’인가?”  [5] 2553
762   [수도회] 보라, 내가 곧 간다. ...(묵시 22,12)  [10] 2879
761   [부산] 하느님의 미래를 택한 사람은 하느님의 현재를 삽니다  [4] 2764
760   [마산] 교회의 생명력은 평신도에게 있다.  [3] 2514
759   [서울] 부활을 믿는 사람  [3] 2345
758   [안동] ‘복음을 전하는 발걸음’  [1] 1192
757   연중 제33주일 세계 가난한 이의 날  159
756   [춘천] 신념  [3] 2334
755   [원주] 재난의 시작  70
754   [대전] 착한 교우들에게 예수님의 측은지심을  [1] 2649
753   [전주] 종말 전의 재난  [2] 72
752   [청주]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1] 78
751   (녹) 연중 제33주일 독서와 복음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1] 2133
750   [수도회]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5] 1512
749   [수원] 그리스도의 몸으로 사는 삶  [2] 2370
748   [서울] 부활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3] 2320
747   [마산] 영세한 미신자(未信者)가 많다.  [1] 2295
746   [대구] 부활의 삶, 지금 여기서 시작되고 있다.  519
745   [인천]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  [4] 2852
744   [부산] 알 수 없는, 그래도 좋은 하느님 나라  [2] 2599
1 [2][3][4][5][6][7][8][9][10]..[20]  다음
 

 

주일강론

가   해

나   해

다   해

 

 

 관리자 Profile  l  홈페이지이용안내  l  즐겨찾기추가  l  추천사이트  l  가톨릭검색사이트  l  관리자 E-mail

Copyright ⓒ 2003 - 2019 www.ocatholic.com All rights reserved.   Ver 4.01_050227